추석특집 북한 지하교회에 전하는
Ⅱ. 그리스도의 구속사건과 구원
1. 새로운 시대의 도래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 육의 나라가 아닌 영의 나라가 시작된다. 이 것은 재창조된 세계이다. 이 나라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나라이다. 따라 서 성령님은 구속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신다.
롬 1:4 육과 영의 구분
딤전3:16 롬8:10
사진설명 : 충남 공주, 청양, 부여 햇밤 (명절선물)
2. 구속사건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
1)예수님의 구속으로 죄용서가 주어졌다. 행2:38, 3:19, 5:31, 10:43, 13:38
2)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고전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 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다 시 살아나사"
a.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의 죄와 직결되었다.
b. 그리스도의 죽음은 성경의 성취이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3)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 시 살 자가 아니라 산 자이다.
고후5:21 "산 자들로 하여금...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 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벧전2:22-24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 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 니"
4)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화목 : 그리스도의 대리적인 행위로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거두게 하고 그 결과 인간들이 자유롭게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롬 5:8
III. 구속의 개인적 적용
1. 구원의 서정이란 존재하는가?
1) 십자가 부활사건에서 일어났던 구속 사건이 개별적으로는 그리스 도를 주로 영접할 때 일어난다. 실제로 내가 그것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혜택의 순간이다.
2) 재창조의 사건이 실제 내 삶의 영역에서 경험된다.
(1)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해서 삶
(2) 그리스도와 연합됨. 의롭다 칭하심, 거룩하게 구별하심.
(3) 조직신학적 용어로는 중생이라 함. 칭의, 성화.
3) 따라서, 구원론에서 말하는 구원의 서정들은 구별된 별개의 실체들 이 아니다. 단일한 구원의 각각 다른 강조점들이라 할 수 있다.
롬8:30 : 부르심, 의롭게 하심, 영화롭게 하심,
28절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 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의 이유를 제 시한다. 즉 구속받은 백성들이 누럴 안전과 영원한 축복을 수사적으로 설 명하는데 있다.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 니하고 오직 그의 궁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 로 하셨나니"
"중생, 믿음, 돌이킴, 새로워짐 등등의 표현들은 성경 속에서 구원의 여정에서 나타나는 연속적인 단계들을 가리키기 보다는, 사람 속에서 일 어나는 변화의 전체 과정을 한 단어로 요약시키는 것이다".
고전6: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 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죄 사함과 거룩과 칭의가 동 시에 이루어짐
고전1:39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 수는 하나님께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 셨으니." 칭의와 성화는 동시에 나타나는 사건이다.
4) 따라서 구원의 순서를 정할 수 있는가? 또는 구원의 과정은 개개별로 독립적인가 하는 문제를 짚고 가야할 필요가 있다.
(1)재창조의 관점에서 : 중생이라 함
(2)하나님과의 법적인 관계의 관점에서
(1)법정적 : 칭의.
(2)혈연적 아들(양자)
(3)하나님과의 소속 관계의 관점에서 : 성화. ·
칭의
I , 이신칭의
이신칭의 이는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말로 종교개 혁시대 가장 논쟁이 되었던 교리이며,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개신교 안 에 논쟁이 끊이지 않는 교리이다.
그럼 이신칭의가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가 만들어 낸 사상인가?
아니다 성경에서 명백히 가르치는 교리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었을까?
1. 이신청의는 "믿음을 통해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지 "믿음을 통 해서 의인이 된다 흑은 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로마 카톨럭이 주장하는 교리이다. 죄인은 믿음을 통해서만 하 나님 앞에서 의롭다 선언을 받는 것이지, 죄인이 실제로 성품이 변해서 의인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2. 이신청의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리이다. 따라서 기독교회는 이 교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단이 된다. 그런데 로마 카톨 력이나 오늘날 많은 개신교회에서조차 믿음뿐만 아니라 행함을 통해 의롭 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믿음 때문에 의롭게 된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 러나 의롭게 된 것이 믿음 때문에 라는 조건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그 믿음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믿음은 피조물인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는 속 성이다. 우리가 칭함을 얻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밖에 있는 의, 예 수 그리스도의 의이다.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이신칭의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의롭게 된 이유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고, 그 구속사역의 의가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것이 된 것이 다.
3. 여기에서 또 하나의 논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믿음이란 단어 이다. 믿음이란 어떤 믿음인가? 개혁교회는 "오직 믿음"이라 주장하는데 민음이 무엇인가? 우리는 칭의에서의(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구원 얻은 성도로서의 삶 의 믿음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먼저 칭의에서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 들어와 내 안에 믿음을 주신 것으로 믿음은 선물이라 한다.(엡 2:8 ; 룸 12:3 : 갈 3:5,
23 딤후 1:13 벤후 1:1 : ,R. 5:18)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 나님의 은혜이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얻은 성도로서의 삶의 내 안에 내가 산 것 이 아니라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심을 믿는 믿음으로서의 삶이기에 오직 성령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믿음이라하기에 믿음 은 성도로서 의무를 믿음으로 행하는 것으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 음이 된다.(약 2장)
그렇다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행위를 일으키지 않는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 행위를 일으키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 된다. 곧 구원에 이르는 믿 음은 내가 먼저 믿기에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나의 대속 제물 되신 그리스도의 의가 내 안 에 들어와(들음으로)(톰 5:8-10) 그 약속의 말씀을 믿게 믿음을 주십으. 로 얻어지는 것이다.
4. 칭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에도 논쟁이 있는데, 로마 카톨릭은 하나님 의 은혜가 우리에게 주입되므로 죄인인 우리가 의인으로 변화된다고 주장 하는데 이는 실제로 우리가 의로운 이유가 실제적으로 의롭기 때문이다. 이런 사상은 알미니안 주의들의 사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성경은 죄인 인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대속 제물로 죽으실 때 죄인인 우리도 그리스도 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바 되었다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이 새로운 피조물 안에는 오직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은혜 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칭의 믿 음은 성품의 변화가 아닌 신분의 변화이고 성화는 신분이 신의 소생이 된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믿음이다.
따라서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으로 이 믿음은 반드시 행함 을 일으키는 믿음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저자 lim선교사
다음호 칭의와 성화와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