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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092427 빛난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 231008 주일
오늘이 중국 항저주에서 열린 제19회 안시안게임 폐막일입니다.
이런 스포츠대회를 평화의 제전이라고 하지요.
규칙을 정해 놓고 신사적으로 경쟁을 하면서 국제적 우의를 증진시키는 건데요.
그런데 사실은 평화의 제전이라고 하지만 그 경쟁은 치열합니다.
경기에서 이기게 되면 개인적으로 큰 영예를 얻고, 메달, 그리고 국가에서 주는 평생 연금도 쏠쏠합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국위를 선양하게 되지요.
그래서 체력은 국력이라고도 합니다.
선수들은 매 경기마다 그야말로 사활을 걸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경기는 1등으로 잘 해 놓고 마지막 순간적으로 방심하여 그 영예를 놓친 선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데요.
영상을 하나 보십시다.
영상1)
https://v.daum.net/v/20231005124810822
경기를 1등으로 잘 해 놓고 마지막 순간에 그만 실수로 1위의 영광을 놓쳤는데요.
3인1조의 경기라서 본인만 영예를 놓친 것이 아니고 3명 모두 1위의 영예를 놓치고 말았는데요.
금메달을 못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생 받는 연금도 금메달에서 은메달로 등급이 내려왔고, 그중에 2명은 금메달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병역 면제의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달렸던 선수 본인은 본인의 실수니까 그렇다고 해도 나머지 두 사람은 안장아서 큰 낭패를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아쉬울까요?
그런데 이런 일이 비단 스포츠 게임에서만 일어날까요?
오늘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 보시겠습니다.
고린도전서9:24-27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생활에서의 절제의 중요성을 교훈하시는 말씀으로, 절제하는 성도의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을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앞 부분, 15절에서-23절까지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 복음 사역자가 되어 그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신의 모든 권리와 자유를 절제한 것은 오직 복음을 위함임을 고백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는 운동 경기를 예로 들어 이렇게 자유를 절제하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얻게 될 것임을 주지시키며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유를 절제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린도에서 3년마다 개최되는 익숙한 이스티미안 운동경기를 예로 들어 모든 운동 경기자가 각 종목에서 단 한번의 영광의 승리를 얻기 위해 부단한 연습과 극기의 훈련을 통해 자신을 철저히 절제하는 생활을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면류관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마치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선수와 같이 전진하는 성도들(딩후 4: 8; 계 2: 10) 역시 철저한 극기의 삶을 살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의와 생명의 면류관에 비해서 너무나 초라하고 꺾어 없어질 월계관을 쓰기 위해 운동 선수들이 마치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감내하며 모든 사사로운 욕망을 눌러야 한다면, 과연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자신을 다스리며 경건의 훈련을 쌓아야 하는지 너무나도 분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딤전 4:7-8).
물론 하나님 나라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따라 모든 성도들에게 차별없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상급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믿음의 경주에 임하는 성도들에게만 주어 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운동 경기자가 상급을 얻기 위해 오직 목표점만을 바라보며 질주하듯이 세상적인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만 바라보며 생활하되(히 12 : 1. 2) 자기 자신의 몸을 온전히 쳐 복종시키는 절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27절).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성도들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와 같은 자유 및 권리 포기와 절제가 요청된다는 사실을 운동 경기자의 모습을 비유로 권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당시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운동 경기가 사회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고린도에서는 매 3년마다 올림픽과 비슷한 ‘이스티미안’경기가 벌어지곤 했으며 주요 종목으로는 경마, 경주, 권투 등이 있었습니다.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당시 경기에서는 우승자에게만 월계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은 복음을 영접하고 최선을 다해 신앙의 경주를 마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집니다.
따라서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은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자와 같이 신앙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결코 최후 승리를 거둘 수 없음을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달리기 선수의 비유의 주된 사용 목적으로서 우승하기 위한 훈련과 연습 태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경주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자는 훈련의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계속 훈련에 임해야만 합니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운동 선수로서의 신체적 상태를 유지하는데 해가 된다면 그 음식은 절제하여야 합니다.
이 비유는 복음의 승리를 위한 성도의 자유 포기를 권하는 말씀입니다.
즉 운동 경기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 선수들은 곧 시들어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이처럼 힘든 훈련 과정을 참고 감수하는데, 하물며 썩지 않을 면류관을 상으로 얻을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많은 절제와 권리의 포기를 감수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현재의 고난과 역경을 앞으로 받을 승리의 면류관을 소망하며 감수해야 함을 권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로마서8:17-18
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두 종류의 운동 경기, 즉 달리기 선수와 권투 선수의 행동을 통하여 바울의 전하려고 하는 요점이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즉 달리기 선수가 결승점을 향하여 달려야 하듯이 바울 자신도 목표없이 달리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복음의 목적에 맞추려고 노력했으며, 복음의 목적지에서 자신의 관심을 돌리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권투 선수도 상대를 쳐서 쓰러뜨려야 승리를 얻게 되듯이 바울 자신도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갖고 복음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허공을 치는 것처럼 싸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본 구절에서 교훈하는 것은 달리기 선수나 권투 선수가 목적을 갖고 경기에 임하듯이 그리스도인 개개인도 역시 그리스도를 향한 분명한 목적을 갖고서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여기서 ‘쳐’ (휘포피아조)라는 말은 ‘~아래’를 의미하는 ‘휘포’와 ‘눈’을 의미하는 ‘옵스’, 그리고 ‘친다’를 의미하는 ‘피아조’의 합성어로, 직역하면 ‘눈 아래를 친다’가 됩니다.
이는 권투 선수가 상대방의 눈 아래를 가격한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바울의 싸움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권투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 선수의 얼굴을 쳐 다운을 시켜야 하듯이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기와의 부단한 싸움, 절제가 필요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복종하게 하다’ (둘라고게오)는 말은 ‘종으로 인도한다’는 뜻으로, 경기나 전쟁에서 패자가 승자에게 무조건 굴복하는 것을 나타낸 말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육체적인 본성 및 죄의 경향과 욕망 등을 영의 일, 믿음을 위해 굴복시킨다는 말로 사용하였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믿음을 목표로, 믿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이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킨 이유이다.
그런데 27절의 ‘버림을 당할까’는 문자적으로 ‘불합격자가 될까’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믿는 자가 복음을 전파하면서 복음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참된 믿음의 소유자라 할 수 없으며 그런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자 자신이 먼저 복음에 따라 사는 삶으로 성도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야 함을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분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첫째, 승리의 면류관의 영광됨을 알자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우리가 수없이 보았듯이 운동 경기에서 이긴 자의 영광이 얼마나 귀한 것한 것인지...평생의 훈장이 될 것입니다. 금메달리스트!!
국가연금도 평생 받게 되고, 남자의 경우 병역 면제도 받습니다.
올림픽의 경우(금메달)연금 100만원, 포상금 6,300만원, 병역 면제
그러나 운동 경기에서 우승하여 얻는 영광과 유익은 믿음의 승리자가 얻는 면류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선 운동 경기에 우승하여 얻는 영광과 유익은 이 세상에서 끝납니다
그 우승자가 죽으면 그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됩니다
그리고 운동경기에서 우승했다 해서 인생이 행복하거나 인생 승리자가 되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운동 경기에서 우승한다고 해서 제한적이고 인생 승리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영광과 축복은 영원합니다
이 세상 인생의 길은 그야말로 가수 최희준이 노래한 것처럼 나그네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살다가 영원한 사후의 세계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영생복락의 길과, 영벌 지옥의 길로 나뉘어 집니다
영생 복락의 길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안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들만이 가는 곳입니다.
믿음에 실패하면 갈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천국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곳이냐?
영생 복락 천국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21:3-4
3.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요한계시록 21:10-11
10.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성곽은 갖은 보석으로 되어 있고, 문이 12이 있는데 모두 진주로 되어 있고, 길은 황금길이라 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믿음의 승리자들, 의인들은 해와같이 빛나리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그 아무리 아름답다고고 해도 천국에는 비할 바가 못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은 모두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킨 믿음의 승리자들로 ,그 무엇에도 비교할수 없는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천국의 면류관은 믿음의 승리자에게만 주어진다
이 세상의 면류관은 이 세상에서 세상일에 승리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세상의 면류관은 매우 다양합니다.
운동 선수가 최고로 잘하면 금메달을 받고, 평생 연금도 받고, 포상금도 받고, 남자의 경우는 병역도 면제받습니다.
사업가가 사업을 잘하여 최고가 되면 부자의 명예를 얻고, 세상에서 부를 누립니다.
학생이 공부로 최고가 되면 원하는 직장을 얻고 최상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무엇을 하든지 최고가 되면 부와 명예가 따라 옵니다.
그러나 세상의 부와 명예, 세상의 면류관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뿐이고 죽으면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본문을 기록할 당시, 운동 경기자들이 승리하여 얻게되었던 면류관은 월계수 잎으로 만든 것으로, 시간이 가면 시들고 말라 버렸습니다.
지금은 녹슬지 않는 금메달을 걸어주지만 여전히 물질로 된 것으로 분실하거나 도둑 맞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면류관은 오직 믿음에 승리한 성도들만이 얻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면류관은 영원합니다.
천국의 면류관은 잃어버릴 염려도, 빼앗길 염려도 없으며 영원히 빛나는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천국의 면류관은 오직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에게만 주어집니다.
디모데후서4:7-8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천국의 면류관은 믿음의 거룩한 경주를 한 사람, 믿음을 지킨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입니다. 믿음의 완주를 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길이 고난의 길이요, 형극의 길이요, 희생과 봉사의 길임에도 흔들리지 않고 시간과 재산과 생명까지 바쳐서 믿음을 지킨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지킨 사람에게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누가복음 18:29-30
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이라고 하셨는데,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목숨을 버려서 지켜야할 사람들인데, 이들을 주님을 위해 희생하다는 것은 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입니까?
이것이 곧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이런 사람에게 천국의 면류관이 예비된 것입니다.
천국의 면류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 믿음의 승리를 위해서는 끝임없이 절제해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절제를 말씀하고 있는건데요.
사람에게는 세 가지 기본적인 본능이 있습니다.
먹고 싶은 본능, 이성간 사랑의 본능, 소유본능입니다. 이러한 본능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아름다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갖고 싶다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이며 먹고 싶다고 해서 다 먹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좋은 코치가 있고, 좋은 시설이 있고, 맛있고 영양가 높은 식단이 제공되어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면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우선 너무 힘든 훈련과정 때문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실제로 선수촌 생활이 너무 고독하고 힘들어서 도망가는 선수들도 있다고 합니다.
또 운동선수들은 고된 훈련을 하기 때문에 항상 배고프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체중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습니다.
실수로 체중관리를 못해서 실패하는 선수들도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운동선수들이 대개 젊은 청년들이기 때문에 데이트도 하고 싶고, 젊음을 마음껏 발산할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선수촌 생활은 그러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받는 선수, 좋은 선수가 되려면 이 모든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아니 포기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 절제하고 수년간을 몸을 만들고 기량을 발전시켜서 나갈 때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입니다.
성도의 생활, 신앙생활에서도 절제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잘 연단 시키기 위해서 모든 일에 절제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영적 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생활에서 절제는 필요 불가결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이곳 저곳에 절제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가령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후서 1장 6절에서『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라 했는데 이와 같이 믿음에 일곱 가지 요소를 더하는 말씀가운데 절제 하나를 더 넣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5장 23절에서 아홉가지 성령의 열매를 열거하면서 역시 사랑, 화평(和平)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절제의 열매를 말씀했습니다.
사도행전 24장 25절에 사도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기독교는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에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해서 말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절제의 종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빛난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
우리가 다 지켜보았듯이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들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주었습니다.
선수 본인들은 평생 연금과 겅액의 포상금을 받고, 병역면제까지 받는 명예와 유익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영광과 유익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동안에 한정되고 본인이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납니다.
그러나 믿음의 승리로 얻어지는 천국에서 받는 면류관은 빛나고 영원하며, 해와같이 빛나는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끝까지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까지 절제하며 달리고 또 달려야 합니다.
빛난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달려간 성도의 몫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