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할 놈이 그만 딱 10년 살더니 채 눈을 감지 못하고 창가 쪽을 바라보며 자연의 섭리를 맞이한 것이다.<br><br>
참으로 이상했다.<br>
왜 난 멀쩡히 자다가 불현듯 벌떡 일어나서 녀석의 잠자리를 가 보았을까? <br>
교감이 통했을까?<br><br>
금년 초,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만해도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열심활발하게 상추와 양배추를 그렇게 먹어대던 녀석이 3개월 만에 죽을 줄 알았던가...<br><br>
92년 여름, 러시아 도착 기념으로 한 동물가게에서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새끼를 구입하여 '옐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4년 간 동거동락하다가 주머니에 쏙 집어넣고 귀국하여 지금껏 미샤와 같이 살아 왔는데.... 먼저 갔다. <br><br>
3년전, 미샤가 한창 이빨이 간지럽던 시기엔 녀석을 물어뜯은 적이 있었다.<br>
그때 화장실에 있다가 나온 난 미샤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하게 때렸고, 당시 피범벅이 된 옐친은 목 부분의 갑옷에 큰 상처를 입었었다. 등에도 아직 이빨자국이 있다. <br>
하지만 그 이후론 절대 미샤는 옐친을 건드린 적도 없고 옐친도 미샤를 피한 적이 없다. <br><br>
늦게 일을 마치고 귀가를 할 때면 미샤와 싱크대 밑에 있던 옐친이가 나를 반기며 밥을 달라고 한 녀석을 겅중겅중 뛰며 날 머리로 툭툭 건드리고 또 한 녀석은 엉금엉금 기어 내 발등 위로 올라오곤 했다. <br><br>
한 번은 베란다에서 투신을 해서 이틀만에 1층 화단에서 아무런 이상 없이 발견한 적도 있었고.......<br><br> 녀석이 우주의 운동을 느끼며 호흡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라는 미물은 참으로 눈앞의 것만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반성하기도 했었다.<br><br>
전국일주도 같이 가고.....그렇게 수컷 셋이 살았는데....참...<br><br>
actually, just shock!<br><br>
왜 이리 일찍 죽었을까? 거북이는 수명이 길다는데....<br><br>
사실 몇 달 전부터 좀 이상하기는 했다. 활동이 굼떠지고, 밥도 잘 안 먹었다. 그리고 잠을 많이 잤다.<br><br>
그동안 워낙 겨울잠을 오래 자던 놈인데 이번엔 좀 일찍 깨서 잠이 좀 모라랐겠거니 라고 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몹시 지금 죄스럽다. <br><br>조금만 신경을 더 썼어도 어쩜 살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br><br>
혹시 상추에 묻은 농약을 먹었을까? 아님 미샤털이 위장에 가득 찼을까? 부검을 해보지 않는 다음에야 알 길이 없다. <br><br>
동물병원에 죽은 거북이를 데려가서 시체부검을 부탁하면 의사선생님이 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표정관리를 할까?<br><br><br><br>
아무튼 불가능한 탈출을 필사로 시도해서 '빠삐용'이라는 닉네임을 얻는 이 龜선생은 지금 숯과 실리카겔을 넣은 골판지 상자에 안치되어 냉동실에 보관중이다.<br><br>
양지바른 곳에 묻어줄까, 수장을 할까, 아님 화장을 시킬까 생각하다가 냉동장으로 결정했다. <br><br>
그 이유는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분명 죽은 세포로도 복제가 가능한 세상이 곧 올 것이다. <br><br>
그리고 그것이 일반화 되는 날, 난 이 탈출대장을 꼭 복제하리라. <br><br>
그리곤 더, 더, 더, 과학이 발달하면 동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br><br>
그때 녀석에게 물어볼게 있다. <br><br>
'너 왜 죽었었니?'<br><br><br><br><br><br><br>
john's essay 열세번째 이야기 끝<br>
2002. 06.22<br><br>
Music : cinema paradiso<br>
bass by Charlie Haden / guitar by pat metheny<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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