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가 좋다. 85년이던가,정규파이오니아 시절,서대문 어느 극장에서 [깊고 푸른 밤]이라는 영화를 홀로 본 적이 있다. 서울역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유난히도 가슴이 휑하던 그 해, 안성기와 장미희 주연의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잘 모르던 미국 이민사회의 그늘과 사랑의 의미를 홀로 곱씹어 보게 되었다. 영화 말미에 타락한 남자를 권총으로 살해하는 여주인공의 시니컬한 표정과 쓰러진 남자의 머리가 누르는 자동차경적소리는 아직도 내 머리속에 생생하다. 그 옛날,그런 영화를 만든 배창호감독은 천재같았다.오래 전 아내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그의 평범한 일상을 보고 문득 뛰어가서 함께 커피한잔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종종 영화를 홀로 본다. 요즘은 주로 집사람과 함께 하지만, 영화를 홀로 본다는 것은 함께 하는 커피만큼이나 독특한 기쁨이 있다.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이다. 걸쭉한 예술영화인 [관용의 집]에서부터 할리우드의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 [아바타}까지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영화마다 개성적인 캐릭터가 있고 우리네 일상이 녹아있으며 나름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소소한 디테일을 따져서 본다면 다 나름의 재미가 쏠쏠하다.
치열한 대사가 살아 있는 어퓨굿맨, 조용한 가운데 놀라운 반전이 있는 후라이드그린토마토, 괴기스럽지만 아름다운 영화 택시드라이버, 사랑의 의미를 생각케 하는 [Far from her], 사관과 신사 , [Far from heaven], 그리고 송곳니와 같은 블랙코미디...
그리고 아름다운 한국영화들...파이란, 내 마음속의 지우개, 봄날은 간다, 비트, 8월의 크리스마스, ..다시 보고픈 명작들이다.

그 중 2007년 만난 [밀양]이라는 영화는 충격에 가까웠다. 영화일을 하는 동창생 녀석의 추천으로 개봉하자 마자 보게 된 이 영화는 전도연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예술적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50만의 흥행을 기록했다.
이 영화가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신앙의 본질과 한계를 정말 현실적으로 다뤘다는 점 때문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하느님의 은총을 볼 수 있다고 전도하는 여약사에게 햇볕을 만지작거리며 신애(전도연분)는 말한다.
'어디요? 이 햇살에 어디 하느님의 은혜가 보이나요? 난 안 보이는데...' 이 평범한 물음은 마치 구도에 이른 법사에게 칭얼거리는 어린 동자의 말같기도 하지만, .. 사실 많은 이들이 신애처럼 이런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한다. 아들을 잃은 극한의 괴로움을 겪고 있는 신애에게 "당신처럼 불행한 사람들에겐 하나님이 필요해요"라고 전도하는 교회사람들의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그 무례함의 정체는 바로 근본주의 기독교의 일방주의 아니었을까.. 자동차 유리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비추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축축하게 젖고 평범한 땅을 비추며 끝난다.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끝나는...그래서..우리네 삶에 신앙의 허무함과 용서의 만용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탄 전도연의 연기도 소름이 끼치지만, 시골청년 종찬을 연기한 송강호의 헛헛한 대사와 능청스러움을 꼼꼼히 보다보면 참 감칠맛이 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언젠가 증인들의 삶과 고뇌가 서려있는 영화가 나온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란, 대놓고 무언가를 비판하기 보다 대사와 인물의 몸짓으로 관객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증인들의 모든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으면서도 조직에 대한 환상과 참된 신앙사이에서 종속적 삶을 살고 있는 그네들의 인생을 표현하는 영화. 편향된 온실속에서 자라난 좁은 시각을 깨우는 영화, 자신들의 조직속에 있는 모순의 덩어리를 문득 깨닫게 되는 영화...그런 영화들 말이다.
최근에 이 곳 카페에 소개된 [세상밖으로]라는 유럽영화도 그런 범주의 월메이드무비라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생각에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족하나마 소설 하나를 집필하고 있다. 시놉시스는 완성한 상태고 짬짬이 살을 붙히고 수정하고를 거듭하고 있다.
앗, 그런데,,어느날 메일이 와 있었다. 젊은 여성인 영화감독 한 분이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증인의 이야기를 영화화 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썼는데, 일종의 감수?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특히 종교적 부분의 대사들에 대해 말이다. 증인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단다. 물론 이 분은 증인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분이다. 카페를 통해 좀 더 객관적 정보를 알게 되었고..증인이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 어린 시절 연구한 기억때문에 증인들의 이야기를 꼭 영화화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분이었다. 떨리는 가슴으로 시나리오를 보고, 대사 중 일부를 첨언해 주었다. 고마워 하는 그녀를 서울에서 만나 3시간 가량 긴 대화를 나누었다. 이 시나리오에서..무수혈외과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충실증인인 여의사가 자신의 아들이 사고를 당하게 되고 무수혈을 고집하다 아들을 잃게 된다. 그로 인해 이어지는 탈증인인 남편과의 갈등, 회중의 시선, 몰래 아들을 수혈시킨 회중장로의 위선과 고통을 지켜보는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자녀의 죽음과 관련 병원의 고발을 당한 여의사의 법정 장면이 나온다. 이때의 대사를 추가해 주었는데, 다행히 맘에 든다니 고맙다. (나중 이 분과의 협의를 통해 시나리오를 이 카페에 공개하겠습니다)
이 감독은 상업영화로 10년 정도 일을 하였고 여러 편의 단편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이 시나리오는 적절히 다이나믹하다.
이 시나리오는 현재 중편으로 한 공모전에 출품한 상태다. 물론 채택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실패하더라도 장편으로 계속 개작을 하여 꼭 영화를 완성하겠다고 한다. 의지가 강하다.
알다시피, 창작인들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하다. 창작영역에 대해 타인의 간섭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 역시 그녀에게 많은 수정을 요구할 수는 없다. 또한 그 역시 전문영역이니까.
증인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에는 많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영화도 있고, 소설, 유투브영상, SNS, 인터넷방송...다양한 방법을 다양한 사람들이 접근하게 되면 좀 더 많은 시너지가 나오리라.
그녀에겐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제작비 문제도 큰 것이다. 한국의 영화제작사는 대부분 대중적 소재나 상업성을 중요시한다. 배급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메이져 제작사는 감독을 을로 고용하고 시나리오를 간섭한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영화를 만드려면 이런 큰손들과 거래를 하기 힘들다. 종교를 비판하는 작품을 기피하는 제작사의 풍토도 엄연히 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제작하는 것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래도 개념있고 진정 영화자체를 중요시하는 영화인들이 많이 있다. 훌륭한 시나리오가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이제...시작이다.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시나리오의 활자들이 동영상으로 꿈틀대는 그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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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시나리오로 증인 신도들에게 도움을 구했다니..당연히 그곳 충성신자들은 찍소리 안했겠죠..
그 감독님이 정말 제대로 잘 찾아오신것 같네요..
그나저나 블루스카이님의 영화소양이 인상적입니다.^^
21세기가 되니..이 말도 안되는 종교도 객관적 시선으로서 해부될 토양이 비로소 이곳저곳서 마련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작품이 어느정도의 결과를 거둘수 있을까요..
수혈거부를 둘러싼 내외부의 진실들..의외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될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역시 설레이고 기대되네요. ^^
양병거도 그 영화에서 언급되면 임펙트가 더 강할거 같은데요.
블루스카이님^^ 훌륭한 일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시나리오가 몹시 궁금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증인들의 위선과 비윤리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마녀사냥 식의 전개는 큰 공감을 얻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우려됩니다.
협회에서는 이런 공격을 당하는 자신을 박해받는 순교자의 이미지로 덧씌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내부 단속을 강화하고 외부 세계에 대해서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자기 결정의 정당함을 부르짖으면서 동정을 얻으려고 할 기회를 포착하려고 할 것입니다.
'사상통제에의한 집단병역거부'를 '개인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미화하는데도 비슷한 전략으로 성공하였다고 봅니다.
어쩌면 증인들 개인이 이러한 비합리적 반사회적 비양심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애환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어둠의 세력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동시대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영화 감독님께서도 이러한 상황 전개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제 걱정이 기우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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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독립영화는 3달안에 후반작업까지 끝납니다. 하지만,..장편이라 하면..여러 변수가 있고 오래 걸리죠.
우선은 장편으로 간다면, 시나리오가 좋아야 하고.. 제작사도 잘 만나야 합니다.
영화하나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죠. 그러나...우리 카페의 자료실이 그러하듯...하나 하나..밀알이 될 겁니다.
이런 영화나, 인터넷카페, 인터넷방송, 유투브..그리고 홈페이지 같은 것들이 모이다 보면....
상업영화가 아니라서 큰 이슈가 되지는 않겠지만 증인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클거라 봅니다. 증인들 궁금해서라도 분명히 볼거구요. 아마도 협회에서는 화중편지나 비공식적으로 장로들통해 영화 보지못하게 하려고 지침 내려올수도 있고...영화출품되면 일어날 일들을 상상해봅니다
신기하네요. 하긴 부모가 증인이었으니까....
방문자 같은 경우는 반대로 증인에 호의적이던데 그건 별개로 이 감독 분도 뭔가 잘 알고 있는 것이 증인 쪽에 지인이 있든지 한 거 같았어요.
한국도 이제는 서서히 눈을 깨어가는 시기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영화가 성공적이 되기를 기원드리며, 잘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제작비가문제군요 종교를다룬영화는 흥행한기록이없어서말이지요
아쉽게도 이 시나리오는 공모전 심사에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작들이 모여서 큰 일을 하는때가 있겟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