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참된 가치와 사랑
-정두리 동시집 “마중물 마중불”
이준섭
정두리 시인의 9번째 동시집 “마중물 마중불”을 읽으며 이렇게도 사소한 소재들도 좋은 동시가 될 수 있음에 놀랬다. 우리 주변엔 아주 사소하지만 큰 힘을 쓰거나 큰 것보다 더 가치 있고 고귀한 것들이 더러 있음에 놀라는 이치와 같은가 보다.
덴마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소년이 해질무렵에 혼자 제방길을 걸어가다 물소리를 듣게 된다. 제방 중간쯤에서 물이 세어나오고 있음을 발견한 소년은 물길을 처음엔 손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팔뚝으로 막아내야 했다 또 얼마의 사간이 흘러가니 팔뚝으로는 안 되어 온몸으로 물을 막아낸다. 물과 밤을 새워 그렇게 사투를 벌이다 죽게 되었다.
소년의 집에선 집 나간 소년이 안 돌아오자 어둔 밤에 불을 밝혀 마을을 구석구석 찾다 못 찾고 혹시나 해서 제방길을 찾아 보다 제방에 박혀 죽어 있는 소년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년의 희생으로 제방 밑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안전할 수 있었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동상을 세워주었다. 만약 그대로 방치하여 그 둑이 터져 무너졌더라면 마을 전체는 물론 많은 덴마크 땅이 물에 잠겼을 것이다. 한 어린 소년은 그렇게 목숨을 바쳐 제방 무너짐을 막고 마을 사람들의 많은 목숨을 구해 주었다.
보이지 않는 사소한 일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아 역사에 남은 한 소년의 예화이다. 정두리 시인의 이번 동시집은 우리 동시단에서 이처럼 사소한 것 같지만 아주 중대한 교훈을 주거나 진한 사랑을 전해주는 감동적인 작품집으로 생각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예술 작품은 좀더 웅장하고 규모가 큰 작품을 추구해오고 있다. 고전음악을 들을 때도 헨델의 “메시아”, 챠이콥스키의 “1812년서곡”,“교향곡 6번(비창)”, 사나이들이 운명과 맞서 씩씩하게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들려주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운명)”이나, 기악곡과 성악곡의 웅장한 하모니의 울림을 들려주는 불후의 명작 “교향곡 9번(합창)” 같은 작품을 좋아하며 즐겨 감상(鑑賞)해왔다.
소설 작품도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이병주의 “지리산”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 김주영의 “객주” 홍성원의 “남과 북” 이기영의 “두만강”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이문열의 “변경” 황석영의 “장길산” 최명희의 “혼불”등 장편 대하 소설이라야 문학사에 남을 것이고 길이길이 후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시(詩에)서도 서정적인 소품도 좋지만 좀더 규모가 크고 웅장한 연작시-이상의 “오감도” 구상의 “강(江) ” 김춘수의 “무의미의 시” 고은의 “만인보” 황동규의 “풍장” 성찬경의 “나사” 오세영의 “그릇 ” 이성부의 “전라도” 김명인의 “동두천” 전원책의 “동해단장” 등이라야 후세에도 감동을 주게 될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시에서도 연작동시- 박경용의 “음악 둘레 내 둘레” “파도” 문삼석의 “산골물” “이슬” 최춘해의 “흙” 김구연의 “ 빨간댕기 산새” 윤이현의 “ 푸른 하늘” 정용원의 “어머니” 이준관의 “골목길 이야기” 전병호의 “아 명량대첩” 권영상의 “동트는 하늘” 손동연의 4행동시 “뻐꾹리의 아이들” 김미혜의 “풀꽃” 한귀복의 “ 꽃 시”등이 후대에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들이 늘 추구하는 나의 행복이 거대한 땅이나 건물, 많은 돈에 있다고 생각하고 말과 행동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 행복은 아주 작은 일, 사소한 말과 행동, 그리고 자신의 마음가짐 속에 있다고 많은 성현(聖賢)들이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동시도 가장 동시 다운 동시는 아주 사소하여서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노래한 작품들이 아닐까? 이런 작고 귀여운 동시(童詩)들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
펌프질할 때/ 한 바가지 물 미리 부어/ 뻑뻑한 펌프 목구멍 적시게 하는 물을/ 예쁘게도 ‘마중물’이라 부르지.
어두운 길/손전등으로 동그랗게 불 밝히며/ 날 기다리는 엄마/ 고마운 그 불을 나는 ‘마중불’이라 부를 거야.
이 동시집의 제목으로 정한 대표작이다. 펌프에서 물이 계속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의 고귀함을 알게 하고 있다. 2연에서는 손전등을 들고 밤늦게 돌아오는 아들 딸을 위해 기다리는 엄마의 밝은 불빛은 그 어떤 사랑보다 밝고 환하게 비치고 있다.이처럼 사소한 일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랑을 달빛보다 밝게 전해주고 있다. 펌프질로 물을 긷는 일은 우리 나라에서는 1960년대- 1980년대까지의 샘물 긷는 전통이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에서 전해오는 사랑의 정신을 전해주어서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
탁자 모서리에 이마를 찧은/ 아기는 와아앙 크게 웁니다/ 울음 소리 따라/ 이마에 단추 크기 만큼 분홍빛 혹이 돋았습니다.
엄마는 아기를 안고 이마를 쓰다듬으며/ “아이고, 우리 아기/ 이게 그랬지! 우리 아기 아프게 한 게”/ 탁자 모서리를 잡고/ 소리나게 때려 줍니다(뒷부분 생략)
“모서리” 에서도 겨우 걸어다니고 있는 아기가 걸어가다 탁자에 찧어 울음을 터뜨리자 엄마가 아기 앞에서 탁자를 혼내주는 것은 아주 사소한 동작이다. 이런 사랑의 작은 동작은 아기를 달래쥬고 있는 모성애의 감동이다. 참된 사랑은 이처럼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나 보다. 엄마의 손으로 딱소리나게 맞고도 아기를 위해 참고 있는 탁자는 시인이 생명체로 인정해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엄마와 동일시 되고 있다. 탁자에 인격 형성의 부여를 통해 엄마의 사랑을 더욱 진하게 전해 주고 있다.
까슬까슬/ 우리 할머니 손바닥/ 그래도 따스하다
까슬까슬/ 금새 깎은 내 손톱/ 그 손톱 세워/ 할머니 등 긁어드리면/ “아이고야, 시원해라”
까슬까슬/ 햇볕에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 까슬하면서 깨끗한/ 햇볕의 기운이 느껴진다. (까슬까슬 전문 )
1연에서는 오랫동안 농사일에 거칠어진 까슬한 손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 2연에서는 금새 깎은 손톱으로 할머니 등을 긁어드리니 시원해서 고마워하는 모습에서 넘쳐 흐르고 있는 사랑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3연에서는 세수하고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햇볕에 잘 말라 까슬까슬해진 것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사소한 것 같지만 아주 따스한 자연의 온기를 느끼게 하고 있다.
작아서 땅콩이랬지?/ 봐, 봐/ 이래 봐도 정확히 두 쪽으로/ 나눌 수 있는 몸이야
심심풀이 땅콩이랬지?/ 먹어 봐/ 옆까지 폴폴 번지는/ 고소한 긴 내음
“땅콩만큼”이란 작품을 보자. 땅콩 하나는 작아도 두 쪽으로 나눌 수 있어 동무와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가 되어 준다. 그 한쪽을 먹을 때 풍기는 고소한 내음은 그 어떤 풍성하고 큰 간식거리보다 오랫동안 풍겨주고 있다.이 작품 역시 작고 사소한 것의 가치와 그 중대함을 감동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그 감동처럼 고소한 땅콩 한쪽의 내음이 오래 오래 진하게 풍겨주고 있다.
가볍게 일렁이는/ 푸른 손, 손/그 속에 발을 감추고//높다란 벽을 타고/ 발발발 부지런히 오른다.// 너희들은 절대로/ 내 작은 발/ 볼 수 없을 걸/ 보이는 것만 가졌다면// 담쟁이가 하늘 향해 흔드는/ 손바닥의 푸른 손금은/ 더욱 모르지?
“담쟁이 벽 타기” 이 작품에서는 담쟁이가 높디 높은 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잎에 푸른 손이 있고 그 속에 발을 감추고 있어 잘 오른다고 재미있게 상상하고 있다. 이런 상상의 세계는 어린이들에게 아주 기발한 상상력을 자극해줄 것이다. 담쟁이가 감춰둔 발이나 푸른 손금은 시인이 아니면 찾아내기 어려운 일이다. 이 동시를 읽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이런 동시야말로 어린이들에게 상상력을 기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주는 가치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런 종류의 동시들이 많이 창작되었으면 좋겠다.
짬짬이 차가 다니는/ 큰크리트 길/ 가래로 밀어 가르마 탄/ 벼알들끼리 누워/몸을 말린다// 햇볕에 천천히 데워진 몸/ 여무는 햅쌀을 품고/ 차 소리쯤/ 귓바퀴로 흘리며/ 벼알은 느긋이 잠이 들었다.
“벼알의 잠”에서는 벼를 말리고 있는 한가로운 농촌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놓고 있다.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쯤이야 흘려버리고 햅쌀이 되려는 꿈을 꾸며 잠들어 있는 벼알 하나 하나는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 없지만 큰크리트 바닥에 누워 사람들의 배고품을 해소해주려고 꿈을 꾸며 잠든 햅쌀은 아주 고귀하고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재미 있게 감동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의 고귀함과 아주 큰것 못지 않은 아주 작은 것들의 거대한 힘을 정두리 시인의 동시집 “마중물 마중불”에서 몇 편의 작품들을 통해 살펴 보았다. 아무리 키 작은 사람도 키 큰 사람 못지 않게 잘 하는 게 있고 가치가 있음을 들어 왔고 배워 왔지만 자칫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의 교훈을 전달해 주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작은 고추가 맵다 ’는 금언도 전해 오는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도 작고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을 감동적으로 전하기에는 역시 동시로 표현되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탑을 쌓을 때나 돌담을 쌓을 때 아주 커다란 돌 사이에 보이지도 않게 끼어서 커다란 돌을 받쳐주고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의 중요함을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동시는 규모가 크고 웅장한 작품도 좋지만 아주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소재들도 잘만 형상화하면 앞의 것들보다 더 큰 울림의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9번째 동시집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열린아동문학 2011년 봄호 발표 >
* 전화: 010-8467-9915, 02-2687-8729
첫댓글 죄송합니다. 회장님, 최인숙님, 윤수아국장님, 소중한 댓글 올려주셔서 답글 쓰다가 잘못 실수히야 원문 글까지 사라져버려 다시 올립니다. 다음부턴 그런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3분 모두 늘 건강과 건필을 빌며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한 나날이시길 빕니다. 이준섭 드림
그 모두 부지런히 하라는 신의 게시가 아니겠습니까? 달리 보면 댓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의로 지운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조금 수상쩍기도 합니다. 다음에 도 그러면 읽고 느낌이 좋아도 침묵할 겁니다.
회장님, 댓글이 마음에 안 들어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이준섭드림
그렇지요 사소한 것에서 시심을 끌어내는 일이 무엇 보다 중요합니다. 그의 철학이 어떤 것이건 간에...구체성으로부터 촉발 된 것이 공감대를 넓혀가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것의 의미를 축소시킬 필요는 굳이 없겠지만...
이은심님,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 건필을 빌면서 준섭 드림
평설속 준섭, 선생님의 여정--- 날로 변해가는 그 모습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