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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쌩떽쥐베리
죽염, 새롭게 만나다 | ||||
[사람 사는 이야기-홍승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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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보던 사물이 달리 보일 때가 있다. 우리 집 부엌에 놓여 있는 죽염이 그랬다. 며칠 전 그날도 잇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죽염이 우리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무심하게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잇몸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낮부터 잇몸이 아팠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하지만 밤이 되니 더욱 욱신거리고 아픈 게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내는 피곤해서 먼저 잠이 들었는데 나는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내가 독일 친구한테서 선물 받은 치료용 불소치약도 사용해 보고 잇몸 마사지도 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제는 할 수 없이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옛날에 자주 보던 책이 한 권 떠올랐다. 얼른 서재로 쓰는 방으로 가 불을 켜고 책꽂이를 살펴보니 그 책이 있다. <민족생활의학>. 목차에서 잇몸에 관한 부분을 찾아보니 다행히 잇몸이 나와 있다. 찾아서 읽으니 죽염을 찻숟갈로 반 정도 떠서 입에 물고 10분쯤 있다가 헹구어 내면 좋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부엌으로 가 여기저기를 살펴보는데 양념통 가운데 죽염이 있다. 얼마나 반갑든지 나는 얼른 책에서 시키는 대로 죽염을 입속에 넣었다. 그랬더니 금방 통증이 좀 가라앉는 느낌이 오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바로 침이 고이며 입안에 있는 독소를 빼주고 잇몸을 진정시켜 주는 것 같았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책에서 읽은 대로 10분 동안 죽염을 입속에 넣고 앉아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몸이 건장하거나 아주 튼튼한 편이 못되는 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자연의학을 읽으며 그 속에 나오는 여러 가지 가르침대로 몸을 달래며 생활해 왔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면서는 자연스레 그런 가르침들을 따라 할 수 있었는데 도시로 나오며 이런 저런 일에 쫓기다 보니 어느새 그런 삶을 많이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죽염도 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내가 음식 간을 맞추는 데 사용하고 있었으니 다행인긴 하지만 내 의식에서는 멀어져 있었던 것이다. 한때는 죽염을 비상약이요, 친구처럼 가까이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 하다. 이제는 삶의 변화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이 되어서 죽염을 뱉은 뒤 입안을 헹구고 나서 비로소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일어나서 나는 날마다 해야 할 생활습관 몇 가지를 정했다. 이름 하여 나의 목표다. 첫째, 아침과 저녁으로 허리와 목을 좌우로 18회씩 돌린다. 아울러 피를 잘 돌게 하는 간단한 행법을 아침과 저녁으로 3회씩 실시한다. 둘째, 하루 한 차례 죽염을 입에 물고 입안을 헹구어 준다. 셋째 하루 한차례 20분 정도 시간을 내서 명상을 한다. 그렇게 하여 몸과 마음을 챙기지 않으면 점점 일상생활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에 내린 결정이다. 이번에 나에게 새롭게 다가온 죽염은 참 고마운 물건이다. 잇몸이 아파서 고생하다 죽염을 입속에 넣었을 때 첫 느낌은 죽염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동물처럼 움직이진 않지만 그것이 살아서 나와 교류하며, 잇몸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하는 나를 구해 준 것이다. 그 뿐인가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죽염을 물고 있으면서 짧지만 명상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명상은 나에게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났을 때 종종 ‘건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건강은 몸과 마음 모두의 튼튼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우리 민족은 그렇게 서로에게 인사말을 나누며 몸과 마음 모두가 튼실하기를 빌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건강을 육체의 건강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정신 또는 마음이 바르고 굳세지 않으면 몸 또한 튼튼하기 어렵고, 설사 몸이 튼튼하다 해도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이번에 정한 생활 습관이 그렇게 나를 건강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죽염을 새롭게 만나니 체조(행법)를 다시 만나고, 그 만남은 명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잇몸이 아팠던 것이 나한테는 행운이었다. 나한테 오는 모든 것이 천사가 보낸 것이라는 말씀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이번 잇몸 아픈 일을 겪으면서 보니 책에 나온 그 말이 맞는 말 같다. 몸은 고통스러웠지만 삶을 변화시켜줄 새로운 만남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이나 사물을 잘 새길 수만 있다면 그것들은 우리네 삶을 깊어지게 해 줄 것 같다. 이 가을에 나도 조금만 더 깊어지고 싶다. 홍승표 /목사, 길벗교회, 청주에서 아내와 함께 천연비누 만드는 공방을 하면서 작은도서관 '지혜의 등대> 지킴이를 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