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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개하는 이 글은
잠괸 꽁툴 로되 타예님의 오대법장 중에서--
총지보장(The treasury of knowledge) 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은 불교 우주론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세상을 바라보는 네 가지 견해를 보여줍니다..
붓다께서는 가르침을 세 가지로 설하셨습니다.
그 세가지는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네가지 우주가 있다는 것은..세상을 바라보는 네가지 안목이 있다는 것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네가지 방법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안목은 살아가면서 변하기도 합니다...
그에따라.우리는 한생에서 네가지 다른 우주를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바쑤반두(世親)께서 지으신 아비달마구사론에 나오는 설명을 토대로 그려진 것입니다..
아비달마구사론은 닝마의 셰드라(불교대학)에서 배우는 13논전 중 하나입니다..
13논전은..율에 관한 2권.. 논에 관한 2권..중관에 관한 4권.. 그리고 미륵 5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비달마구사론은 논에 관한 2권 중 하나이죠..
셰드라에서 배우는 13논전은 절대필수불가결이라는 원칙아래 선정된 것입니다..
모든 불법을 다 공부할 수는 없지만... 절대 배우지 아니할 수 없는 열세권이라는 뜻입니다..
어떻습니까..?
정 가운데에는 쑤메루..수미산이 서있고.. 그 주위 대양에는 4대륙이 떠 있습니다...
피라미드처럼 수미산을 감싸고 있는 것은 일곱개의 산입니다...
표면 아래 깊이로 들어가면.. 먼저 황금의 땅이 있고..그 다음 중간에는 물로 된 층이..
더 아래는 공기로 된 층이 나타납니다...
티벳불교를 하는 우리는 상상속의 우주를 만달라로 지어 올립니다..
기초적이기는 하지만..이 우주는 익히 보았던 그 만달라와 흡사합니다...
이제 이 첫번째 우주를 잠시 살펴볼 겁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 한장을 추가합니다...
위의 그림과 비교해보십시오...
쑤메루 위로 떠있는 것은 쑤메루의 연장선으로 보면 됩니다..
위의 그림과 아래 그림이 다른 것은.. 아래그림에서는 공기의 층을 더 넓게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림은 보는대로 이해하실 수 있고..
네개의 대륙 가운데... Jambudvipa(잠부디빠)로 표기된 것이 우리가 사는 남섬부주입니다..
동승신주(Purvavideha).남섬부주(Jambudvipa).서우화주(Aparagodaniya).북구로주(Uttarakuru)..
마지막으로 숫자는 거리를 재는 어떤 척도입니다...
`요자나`라고 하고... 1요자나는 약 7km 정도의 거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아비달마구사론에서 얘기하는 우주입니다..
첫 번째 우주는 성문, 연각이 바라보는 견해이다..
오감으로 보고, 측량할 수 있고, 파악할 수 있는 우주이다.
그 것은 정확한 수리와 질서, 체계 속에서 움직인다.
예측도 가능하다...
이 우주 안에서..인간은 ‘나는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신도 존재하고, 악마도 존재한다.
‘나’는 여기에서 열반을 갈망하고, 세속의 더러움을 저버리려 한다.
길을 보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아추구의 이러한 진지한 노력은 무산이 되고..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새로운 우주의 지평이 그 앞에 열려 온다.
인무아는 이 첫 번째 우주의 끝이다..
그 끝은 새로운 다른 우주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우주는 붓다의 초전법륜에 설명되어 있다.
붓다께서 제자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
이 우주와 나라는 주체는 영원한가..영원하지 않은가?
이 것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한가?
이 것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닌가?
이 말에 붓다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우주의 창조와 종말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사유에 대해 침묵했던 것은
우주와 자아에 관하여,
그 것이 존재한다는 `실존`과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의 두 가지 극단을 피하기위해서였다.
붓다의 말에 의하면,인도 상키야 철학이 말하는 것처럼,
세상은 원초질료인 `쁘라끄리띠`가 변형되어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을 창조한 창조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세상을 창조하였는가?
그 것은 `이쉬바라`와 같은 강력한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세상과의 관계속에서 `나`라는 믿음안으로 끌고온...
집단적인 어떤 힘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 인간은.. 모든 순간에 세상의 창조 과정에 개입되어 있다.
근본무지에서 비롯된 자아라는 뿌리 깊은 관념에 바탕을 두고..
행위와 말과 사고의 과정에 의해 자리 잡은 자신의 사물에 대한 태도가
일정한 패턴을 갖게 되고, 마음의 흐름으로 남게된다.
이 심상속은...이와 같이 굳게 자리 잡은 잠재적인 영역을 말한다.
인과의 법칙에 따라 이러한 잠재적인 성향, 혹은 심상속은
각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심상속에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결과를 만들 수 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역시 만들어 낼 수가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인과에 따라 주변환경과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세상의 원인인 이 인간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
마음과 물리적 질료사이의 창조적인 관계가 인간을 만들어 낸다.
풍기(風氣) 혹은 에너지는 이 사이의 매개물이다.
이 에너지는 상속되어 있는 잠재적 성향, 심상속에서 일어난다.
이 것은 어떤 체를 가지고,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살도록 설정되어 있는 프로그램과 같다.
이 에너지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육신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자발적으로 전개되는 이 행위의 에너지 행동 패턴은.. 마음과 물질사이의 연결고리가 된다.
어떻게 심상속의 잠재적 성향이 창조 과정을 돕는 에너지가 될 수 있을까?
이에 관한 문제를 푸는 것이.. 마음,세상, 몸의 창조에 관한 문제를 푸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우주 전의 우주가 붕괴된 뒤에
공간에 흩어져 남아 있는 물질의 기본 입자, 원초의 물이 거대한 덩어리로 응집되고..
새로운 혹성과 별을 만드는 ‘은하의 씨앗’을 이룬다.
과거 시대의 마지막 시기에, 우주 공간의 모든 현상이 사라진 뒤에
기본 입자를 한곳에 모으는 에너지가 모든방향에서 일어났고..십자 형태로 서로 교차하게되었다..
공간에 큰 구름의 응집이 일어나.. 중심으로 향하는 압력과 마찰에 의해 물의 층이 발생하였다.
이 원초의 물은 견고한 물체가 형성되기 위한 기본 입자, 씨앗을 지니고 있었기에,
회전에너지의 운동이 일어나 무거운 것은 중심으로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위로 떠올라 분리가 되었으며..
중심에는 천의 황금연꽃을 한 구체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심상속에 남아있는 잠재성이 이 새로운 우주에 새롭게 전개되고..
형상에너지가 발생하고...최상, 중간, 기초를 이루는 세 가지 물질이 나타나게 되었다.
최상의 것은 정 중심의 수미산을 이루고, 중간의 것은 일곱의 황금 산을 이루었으며,
기초의 것은 네 가지 대륙을 이루게되었다.
그리고 우주 최외각의 경계를 철위산이 둘러싸고 있다.
아랫물을 이루고 있는 황금산과 대륙과 철위산은 아래로 깊숙이 가라앉아버리고..
윗물을 이루는 수미산은 위로 높이 솟구쳐 올랐다.
세상에 여러 존재의 세계(육도 환생계)가 나타났다.
지하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지옥계와 아귀계이며,
축생계 또한 대체적으로 큰 바다 속 깊은 곳에 형성되었다.
업이 무거울수록 더 깊은 곳에 살고, 가장 타락한 세계는 지구 중심까지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창조의 과정은 한 개인의 환경에서 뿐 아니라, 우주 전체를 통해 일어난다.
이 것이 사실이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창조는
강력한 우주의 주재자가 먼 과거 한 순간에 만들어 놓은 고정된 한 점이 아닌 것이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전개되는 창조의 흐름 속에 있다.
이 것은 마음과 물질입자가 끊임없이 상호작용함으로서 순간순간 나타나게 되며,
한생명에서 다른 생명으로 변형된 모습을 나타내면서..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세상은.. 무한 시공 속에서 끊임없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사실상 공간의 한계라든가 시간의 시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힘으로...무한하게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가?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입장에서는..
색계 4선정 중 4선정에 도달한 자가 만든 세계는..어떤 물리적인 힘에도 결코 파괴되지 않으며,
여기에 있는 풍기 에너지는 새로운 세상, 우주를 창조하는 도구가 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식이 진보하는 과정에서 창조되는 우주는.. 언젠가는 파괴될 것이다.
성문 연각의 견해에서 볼 때.. 이 세상은 세가지 조건에 의해 창조된다.
자아라는 개념,
그 개념에서 일어나는 악한 감정에 바탕을 둔 행위,
심상속의 패턴이 전개하는 흐름..
.........
그러므로 첫 번째 이 우주는 달아나려 애써야 하는 감옥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은 어둡고 비툴어져 있다..
이 세상에 형상을 쓰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어나는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이 첫번째 우주론은 왜 인간이 윤회의 드라마를 계속 연출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거기에서 구원된다는 것.. 해방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첫번째 우주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윤회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현상세계에 대한 집착을 넘어선다는 것이고,
다시는 고통의 세계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 것을 두고 열반적정이라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 첫번째 세계는...
영적인 삶을 살고..모든 번뇌를 없애고 아라한이 되어야 하는 곳이다...
자신을 소멸하여 무아를 이루어야 하는 곳이다...
이 첫 번째 우주의 관점에서..
저속한 지옥, 아귀 축생은 큰 고통을 겪고..고상한 아수라와 천신은 즐거움을 누린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도 그 삶에서 해탈하려는 수행자가 되기에는 적당치 않다.
오직 잠부링이라 하는 남섬부주에 사는 자들만이 희귀한 그 기회를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 우주론에서는 이 잠부링이 선택받은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사캬무니 붓다께서 깨달음을 이룬 곳이 이 곳이고..
현겁의 1천 붓다가 나타날 곳도... 여기 잠부링이다.
그래서 잠부링은 세상에서 태어나기에 가장 적절한 곳인셈이다.
세상을 존재하게 한 모든 원인이 결과를 맞이하여..모두 소멸되는 시기가 되었을 때,
먼저 원인을 다한 지옥계의 모든 중생들은.. 자신들보다 높은 세계로 옮겨가고,
그렇지 못한 지옥계 중생들은.. 이 세계가 소멸될 때 남아서 고통을 경험한다.
하지만 결국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우주에 있는 지옥계에서 몸을 받게 된다.
이제 다시는 이 우주에서 지옥계에 태어나는 자는 없고.. 그 세계 자체는 텅 비워진다.
이것은...우주라는 하나의 대 깔파가 소멸하는 시기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귀계가 비게 되고, 다시 축생계가 비게 된다.
이때..잠부링에 있는 어떤 인간이 색계 4선정 중 2선정에 도달하였다면...
그는 선정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은 모든 대상이 소멸된 경계에서 오는 지복이구나!”
이 말은 동시에 잠부링 전체에 퍼지게 된다.
이 말이 우주에 울림과 동시에 다른 존재들도 같은 상태에 도달하고..천계에 태어나게 된다.
잠부링의 모든 인간들이 비워지는 것과 동시에 모든 다른 인간계 역시 텅 비게 된다.
이와 같이 아수라와 천상계도 텅 비게 된다...
그 때 지구는 불 속에 휘감기고,
일곱 개의 태양이 작열하여.. 모든 것은 날름거리는 불의 혀만 남기고 모두 사라지게 된다.
색계 4선정 가운데 초선정과 그 이하의 세계는 모두 사라지고 텅 빈 공간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이전처럼 새로운 세상이 탄생한다..
이렇게 탄생한 세상은 다시 유사한 방식으로 불에 의해 소멸된다.
일곱 번 생겨나고 소멸되기를 반복하다가..여덟 번째 세계가 끝났을 때,
정광명의 천계에 원초의 물이 범람하게 되고...
물에 소금이 녹듯이 제 2선정 이하의 모든 세계는 녹아 없어진다.
다시 강한바람이 불어와 수미산마저 가루처럼 흩어버리고, 3선정 이하의 세계는 모두 소멸된다.
그러나 4선정은 원초의 공기, 물, 불에 의해 소멸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구경의 깨달음을 이룬 자리나 붓다가 큰 설법을 한 자리...
열반을 한 자리 등은 파괴되지 않고 남게 된다...
이렇게 우주는 발생, 유지, 소멸, 진공의 네 가지 큰 주기를 거치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의 우주 깔파(겁)라고 하게 된다.
이 첫번째 우주는 시공의 한계가 있고..
끊임없이 나타나서 전개되고 소멸되며...
나라는 존재와 분리되어.. 실재로 존재하는 세계이고,
붓다는 일개의 선한 인간에 지나지 않고...
유한한 시공 속에 나타나서...정해진 틀속에서 살다가 떠나는 자로 보인다.
이 첫번째 우주는 공성을 자각하는 보살의 우주가 나타나면, 그 의미를 잃는다.
새로운 우주는 그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간다.
인간의 다양한 바램이 붓다의 자비와 만났을 때 부처의 법륜은 구른다.
그러므로.. 인간이 붓다의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우주는 모두 네 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