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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두의 문화비평 - (앞장에 이어)
숭실대 박물관 '신라 성모 마리아상'의 정체(2)
- 숭실대 '신라 마리아 성모상' 주변의 아홉 얼굴의 정체 -
*카리테이모(訶梨帝母) 모자불상.
성모상 아래쪽에 연화대가 있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이 주장하는 '신라 성모 마리아상'의
주변에 아홉명의 '공주'가 세겨져 있다.
제2장 목차
1. 들어가는 말
2성모상 주변의 아홉 얼굴은과 카리테이모(訶梨帝母) 주변의 아홉 얼굴
3. '성모상 아홉 얼굴'과 허황옥을 맞이하던 구간(九干)
4.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구궁수(九宮數)와 거북 등의 '井'
5. '모자불상'과 인도의 하리티(Hariti) 성모 여신상
6. 전통 토속 여신인 '하리티 성모'를 비하시킨 불교문화
1.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전체 3장으로 이루어진 장문의 글이다. 이 글은 제1장에서 이어진 그 두번째 장이다. 제1장인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의 '신라 성모마리아상이 가짜인 이유(1)>의 글은 다음 주소에 있다.
앞선 글 필자의 <숭실대 박물관 '신라 성모 마리아상'이 가짜인 이유> 에서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했다는 '돌 십자가'와 '통일신라시대 성모 마리아상'이 가짜인 이유를 밝혔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측은 '모자불상은 없다고 보아 성모 마리아상'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실상 불상에도 모자불상은 여러 종류로 다양하다는 사실을 필자가 밝혀냈다.
이른바 '신라시대 마리아 성모상'이라고 주장한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그 문제의 성모상은 기독교의 성모상이 아니라 결국 모자불상이라는 것과 특히 카리테이모 모자불상 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성모상은 '마리아 성모상'이 아니며 '신라 성모 마리아상'이라는 주장은 가짜임이 드러난 셈이다.
그렇다면 그 문제의 '성모상'이 불상이라면 어떤 종류의 불상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체는 무엇인지를 이 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그 '성모상'의 주변에 '아홉 얼굴'의 정체에 대하여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성모상의 아홉 얼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하여 모자불상의 원류인 동아시아의 전통 관음불상으로서 이미 앞선 글에서 송자관음과 자모관음의 모자불상을 보았듯이 고대 인도의 하리티(hariti) 불상을 분석하게 될 것이다. 특히 하리티 불상으로부터 일면 영향을 받고 한반도의 고유 태양의 여신 성모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일본의 카리테이모(訶梨帝母) 모자불상에 얽힌 키시모진(鬼子母神) 신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추적은 이미 나와 있는 이론이 아니라 순전히 필자가 독자적으로 추적해온 전통 모자상의 역사적 배경을 분석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로토(Grotto) 불상의 배경이 된 수월관음의 배경인 암호(巖戶)의 그로토적 성격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지장(地藏)'의 신선도가적 배경을 추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별히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시조신화에 연결된 선도성모(仙桃聖母)가 태양의 여신으로서 석굴암 자리의 전신이 신라의 성모를 모시던 그로토였다는 새로운 주장을 하고자 한다.
인도 고대 종교의 타라(Tara) 여신이 티벳불교에서 '도모(度母)'로 번역된 것은 선도성모(仙桃聖母)의 '도모(桃母)'가 '도모(度母)'로서 그 신선 풍류도의 배경이 된 것은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화랑도적 배경을 가진 대지지모(大地之母)로서 태양을 맞이하는 선도성모의 신화적 배경이 일본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태양의 여신에 영향을 준 것은 상당히 알려져 있다.
더불어 일본의 여신들의 성모상과 더불어 수월관음 앞에 놓이는 선재동자와 태양의 여신(나중에 불교의 수월관음 등으로 변이)과의 관련이 우리나라에서도 불교와 불교 이전에 성모자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추적 예시해 보이게 될 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태양의 여신이 일본으로 건너가 토속적인 신도(神道)의 태양의 어머니신이 된 일본의 다양한 무속적 배경에서 나온 카리테이모(訶梨帝母)와 키시모진(鬼子母神) 외에도 아이시모(愛子母), 칸기모(歓喜母. かんぎも), 미즈노 카미사마(水の神様) 등의 모자상은 물론 불교문화의 지보칸논(慈母観音), 준테이관음(准胝観音), 코야스 칸논(子安観), 코야스지조보사츠(子安地藏菩薩)의 모자상 등을 살펴볼 것이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일본 근대 에도시대의 천주교 카쿠레 성모상 즉 마리아 관음도 포함될 것이다. 결국 성모 마리아 모자상보다 오히려 '모자불상'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존재하는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모자상 주변의 아홉 얼굴'을 분석하기 위한 배경으로 역술 무속의 구궁수(九宮數)와 불교의 댜니(Dhyani) 불상의 주변불은 물론 대일여래(大日如來)와 주변 5소불, 7소불, 9소불 등의 구조가 성모자상 주변의 아홉 얼굴 계통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밝히게 될 것이다.
여신상의 모자상에서 구궁수와 합하여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観音)의 배경이 되었을 개연성과 여신인 모자상이 하나의 남성적 부처로 묘사되면서 불교의 십나한으로 표현된 것이었을 배경을 설명할것이다.
불교의 '십나한'이 그 이전 태양의 여신 숭배시대에는 남자 나한이 아닌 여자 나찰녀(羂刹女)가 그 원형이었다는 것이며, 주라세츠-뇨(十羂刹女, じゅうらせつにょ)의 라세츠(羂刹女)를 추적하여 성모자상 주변의 아홉 얼굴의 배경이 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게 될 것이다.
특히 '모자상의 아홉얼굴'의 의미를 필자는 한국 무속의 굿판 사설로 전해 내려오는 바리데기 신화 즉 바리공주(鉢里公主) 설화의 구조 분석을 통해 석굴암과 불국사를 건축했다는 김대성 재생 설화와의 유사성을 비교하여 불교 이전의 토착 태양숭배시대의 신화적 무속이 어떻게 불교화되어 전이되었는지를 해석해 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온 장승문화가 대지지모(大地之母) 여신이 '地下女將軍'이라는 장승으로 변화된 과정을 추적하여 태양숭배시대의 선도 풍류에서 비롯하는 대지지모와 관련한 신라의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위치가 성모자상의 기원이 될 수 있다는 역사 신화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보일 것이다.
2. 성모상 주변의 아홉 얼굴은과 카리테이모(訶梨帝母) 주변의 아홉 얼굴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에서 주장하는 '신라시대 성모 마리아상'을 필자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성모자상' 주변은 전신광배(거신광) 양쪽 가장자리와 꼭대기 까지 '아홉 명의 공주 얼굴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자상 바닥에는 연화대가 있어 불상임이 분명하고, 그 주변에는 분명 아홉 아이들의 얼굴은 분명 기독교의 7천사가 아니었다. 기독교 천사라면 아기라도 날개를 단 모습을 한다. 그렇다면 이들 아홉 얼굴들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동양 고대의 대지지모(大地之母)의 아기들은 날개를 달지 않는다.
필자는 앞선 글에서 불교의 어머니가 아들을 안고 있는 송자관음상(送子觀音像)이나 자모관음상(慈母觀音像)의 모자불상을 사진과 함께 예시했다. 특히 카리테이모(訶梨帝母) 모자불상은 전통 여신 성모상으로서 아기를 안고 있다는데서 의미를 크게 부여했다.
*카리테이모 좌상(訶梨帝母座像) 일본 滋賀県 園城寺
한 손엔 아기를 다른 한 손엔 길상과(吉祥果)를 들고 있다.
카리테이모상은 모자상 주변에 아이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日光菩薩立像. 薬師寺金堂. 일본
*태양신의 선도-신도적 모자상이 일광보살로 표현되어 있다.
주변 아홉 소불들이 있다.
*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 보물 367호 비암하.
신라 신문왕 9년(689)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세기초 중국의 불상
필자는 키시모진(鬼子母神)으로도 불리는 카리테이모(訶梨帝母)는 모자상으로서 그 주변에 아홉 아이들을 새겨넣을 수 있다는 일본측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성모자상'처럼 아홉 명의 얼굴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를 여기에 제시하고자 일본측 자료의 내용을 필자가 여기에 번역해 둔다.
Kishimojin's image was popularized in the Kamakura period by Nichiren. In the Shingon sect, she is named Kariteimo. She is represented seated on a chair, holding a pomegranate (Japanese zakuro) in the right hand (in Asia as well as Europe, the pomegranate is the symbol of progeniture, perhaps due to its many seeds) and surrounded with naked or semi-naked children (usually three, five, seven or nine). http://www.onmarkproductions.com/html/kariteimo.html
"키시모진(鬼子母神)은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니치렌(日蓮宗)에 의하여 카마쿠라시대에 유행하였다. 신곤(眞言, 真言)파 불교에서는 키시모진(鬼子母神)은 카리테이모(訶梨帝母)라 불렀다. 카리테이모(訶梨帝母)는 오른 손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데, 주변에는 벌거벗거나 반라의 아이들이 셋, 다섯, 일곱, 아홉 명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이다."
아홉 아이 얼굴이 등장하는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의 '모자불상'은 이미 그 정체가 기독교의 것이 아닌 仙 - 佛敎의 모자상 계통임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3. '성모상 아홉 얼굴'과 허황옥을 맞이하던 구간(九干)
동아시아 고대 종교에서 아홉얼굴은 불상과는 또 다른 고유의 전통이 있었다. 아홉은 불교 이전의 태양숭배의 여신을 호위한 선녀들의 숫자와 관련이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다시 보자. 허황옥을 맞이하는 대신들의 숫자가 아홉이다. 그 아홉은 단순한 수가 아닌 중심을 지키는 구궁수에서 비롯한 것으로 구간(九干)이라 했다.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성모자상과 아홉얼굴'은 허황옥 신화의 주변에 구간(九干)과 구조적으로 일치한다.
김수로왕이 신화적인 왕위 등극을 했다면 허황옥 또한 신화적인 여신 이야기에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아유타국 또는 중국의 '보주'를 거쳐왔다는 근거를 들먹이더라도 그것은 후대의 기록을 증명한 것일 뿐이다. 김수로왕의 신화에 나오는 '붉은 보자기'와 허황옥의 배에 달린 '붉은 깃발'은 태양의 여신으로서 허황옥이 그려져 있는 단초가 되어 더 많은 방증들을 찾아내게 하는 열쇠가 된다.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성모자상과 아홉 얼굴'은 허황옥 주변의 구간(九干)과 구조적으로 일치한다. 성모자상에서 성모는 태양의 여신이며 아들은 왕조의 시조신을 묘사한 것이다.
성모자상은 당나라에 경교가 들어온 시기보다 훨씬 이전에 가락국의 시조 신화에 이미 성모자상과 아홉얼굴의 프로토타입이 신화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는 본래 태양의 여신이었던 허황옥을 윤색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필자의 최근 글 <가락국 시조신 허황옥(許黃玉)은 태양의 여신을 윤색한 것>에서 보다 상세히 분석하여 놓았다.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_club_id=dreamview&p_menu_id=61&message_id=548618
허황옥의 배가 붉은 깃발을 달고 북쪽으로 오고 있었다는 것은 태양의 여신을 싣고 온 배를 말한다. 태양의 여신을 싣고 온다는 배는 무슨 배인가? 신화에서 태양은 하늘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넘어가서 밤중에 다시 동쪽으로 실어 날라 아침에 다시 하늘로 돌아오도록 실어나르는 배이다. 이것은 이집트 태양신의 신화는 물론 고대 인도 메소포타미아 태양신이 타는 배이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의 여신(Solar Deity also Sun Goddess)은 '솔라 박' 또는 '솔라 바르크'("solar bark" also "solar barge", "solar barque", "solar boat", "sun boat")라는 배를 타고 낮에 하늘을 가로질러 건너고 다시 밤중에 동쪽으로 그 배를 타고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의 솔라 박. The Solar Barque(Solar Bark)
태양의 여신이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건너가고 밤중에 다시
그 배를 타고 동쪽으로 돌아온다고 믿었다.
허황옥이 타고 온 배는 신화적이다.
기원전 2500년 경의 것으로 기자의 쿠프 대피라미드 옆에서 발굴되었던 43.6m 길이의 배가 발굴된 적이 있다. 그 배는 쿠프 왕의 배로서 쿠프 배(Khufu ship)라고도 불리는 '솔라 박'으로서 파라오가 타고 무덤까지 나일강을 따라 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태양의 여신이 바다나 강의 문명과 연결된 이와같은 '솔라 박'은 나중에 불교 전통에서 '해 수레(sun chariot)'로 표현되기도 했다. 태양이 수레를 타고 하늘을 건너간다는 의미인데 '태양 배'보다 늦게 나온 것으로 개념이다.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박'이 음운상의 연유를 떠나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가 타고 가는 '솔라 박'과 같은 배에 연관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라와 가야의 신화들은 물에서 오는 내용이 많다. 내몽고 지역에서 남자무당을 '박(博)'이라고 한 것은 어쩌면 박달나무 껍질로 만든 카누인 '박(朴 Bark)'과 연관된 음운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구간(九干)은 본래 구선녀였고 그것이 여신과 함께 '십나찰녀'였으나 나중에 남성중심 종교인 불교에 의하여 모자상은 부처 하나로 대치되어 '십나한'으로 변이된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불상이나 모자불상 주변의 아홉 소불 또는 아홉 얼굴들은 그만큼 신화적이며 전대의 종교적인 후예이며 변이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가락국 시조신화에서 허황옥을 횃불을 들고 맞이했다는 구간(九干)은 하도낙서(河圖洛書)가 거북의 등에서 나왔다는 그 구궁수(九宮數)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가야와 거북은 신화적으로 많은 연결을 보여주고 있다.
4.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구궁수(九宮數)와 거북 등의 '井'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의 '성모상 주변 아홉얼굴'에 대한 정체를 파악하기 위하여 아홉에 대한 신화적인 내용은 허황옥(許黃玉)의 신화에서 거북과 연결된 보다 원천적인 신화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살펴보겠다.
중심을 둘러 가호하는 아홉 즉 '九'는 그 자체가 하나의 뭉뚱그러진 독립된 숫자로 태양숭배시대의 중요한 신화적인 숫자이다. 허황옥을 맞이했던 구간(九干)이 횃불을 들고 맞이했다는 것부터가 새벽의 횃불이다. 새벽에 해맞이 굿을 하는 아홉 횃불이다. 허황옥 신화는 해맞이 굿의 원형이 어떠했는지를 추정하게 해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허황옥은 해이고 구간(九干)은 횃불이라는 것은 아홉 횃불이 작은 '아홉 해'를 의미하게 된다.
요임금이 예(羿)를 시켜 열 개의 해 가운데 붉은 화살로 쏘아 아홉 해를 떨어트리고 한 개의 해가 남았다는 신화는 허황옥이 해의 여신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아홉 구간(九干)의 '아홉 횃불'의 의미는 해 또는 해뜨는 곳을 구양(九陽)이라고 하는 연유에서도 보여준다. 그렇다면 아홉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거북이다.
아홉에 대한 신화적 이해는 거북 등의 '井'자 형 구갑 무늬의 구획에 대한 신화적 해석에서 비롯한 것이다. '井'자의 정체에 대하여서 많은 학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북의 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井'자는 우물이기 이전에 '물' 즉 바다를 상징한 것은 바다에서 뜨는 태양과 관련한 바다거북의 등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태양의 여신이 거북 등을 타고 떠오른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井'자는 물이며 육지에서는 '우물' 입구의 방틀 모양으로 그 의미를 더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井'자는 광개토왕의 호우에서 보듯이 고대 정치와 종교 사상적 배경에 영향을 주어왔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의 '성모상 주변의 아홉얼굴'은 물론 우리 역사 문화의 사상적 중심에서 '九'의 독립적 신화의 개념의 기원은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여신과 바다 거북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황룡사 구층목탑이 주변 아홉나라 즉 구이(九夷)를 의미했다고 하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하도낙서(河圖洛書)에서 나온 거북 등에 새겨진 구궁수(九宮數: '구궁쑤'로 발음한다)와 함께 고대 신화적인 신비의 숫자를 바탕하고 있다. 구중궁궐(九重宮闕)이란 이러한 구궁에서 나온 개념이다.
'井'자가 물과 관련되어 있었듯이, 자연에서 구비구비 돌아가는 산 계곡을 구곡간장(九曲肝腸), 또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 했고 폭포도 구곡폭포(九曲瀑布)를 명승으로 신비하게 보았다.
여신숭배시대에서 아홉은 중요한 호위 숫자였으나, 나중에 나온 종교들이 전통 여신숭배를 격하하는 과정에서 구미호(九尾狐)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구우일모(九牛一毛)가 많은 수 중의 적은 수를 표현된 것처럼 九란 '모든 것'을 의미했다.
'井'자의 구획 모양을 따라 나라의 영토도 구주(九州)로 나누어 오늘날 우리나라의 서울을 중심으로 주변 팔도(八道) 개념의 기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죽어서 가는 저승도 아홉 하늘 즉 구천(九天 또는 九原)이라 했다. 구천은 본래 아홉 우물(바다)인 구천(九泉)에서 나온 개념이 천상화한 것이다.
구천(九泉)은 태양숭배시대의 대지지모의 나라, 지하의 이상세계를 의미했다. 구룡(九龍)이란 사실상 바다의 태양 주변의 아홉 용을 말했다. 용궁이란 사실상 구궁수의 구궁(九宮)을 의미했다. 구천(九泉)은 나중에 구소(九宵)라고도 했는데, 땅속을 의미하면서 저승을 의미했고 오늘날까지 동서양이 묘소를 지하에 쓰는 배경이 되었다.
경전도 구경(九經)으로 나누었다. 특별한 집을 지을 때도 보(도리)를 아홉개를 쓴 구량각(九樑閣)으로 지었며, 불탑의 노반 위에 세우는 기둥의 숫자도 아홉 기둥 즉 구륜(九輪)이라고 했다.
온돌의 구들장도 사실은 '井'자의 구궁수를 바탕한 아홉 돌판의 '돌'에서 '들'이 나왔을 개연성이 높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돌 중에도 넙적한 돌을 들어올리는 돌판처럼 '들'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구들의 '들'은 불어의 'dell'의 의미와 같은 납짝한 구들장 돌을 의미한다. 방 구들은 이러한 '들'을 아홉구획으로 만들었던 것이 그 원형으로서 '구들'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가락국기에 나오는 구간(九干)과 주나라 때의 아홉 벼슬인 구명(九命)의 관원 등급의 9등급제는 조선시대의 구경(九卿: 육조판서에 좌우참찬, 한성판윤)에 이어 오늘날까지 9급 공무원제도에 이어져 있을 정도이다. 그 이유는 '九' 수는 태양 중심(여신 - 왕 - 대통령)에 대한 주변의 '횃불' 수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태양이 뜨면 사방이 생기고 팔방이 생기면서 중심의 해와 함께 아홉 칸이 된다.
임금의 의복에 산, 용 등의 아홉 가지 수를 놓는 구장(九章),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아홉 가지 은전을 구석(九錫)이라 했다. 36명이 메는 가마 또는 상여를 구정(九井: )이라 한 것은 구궁수의 '井'자를 상여와 가마에 대입한 것이며, 공간적 구궁수를 시간적인 세대에 대입한 구족(九族)은 고조에서 현손까지 9대를 말한다.
흔히 '죽장짚고 풍월 읊는다'고 할 때의 그 죽장은 아홉 마디로 된 대나무 지팡이로 구절죽장(九節竹杖)의 준말이다. 스님의 옷인 가사도 아홉 가지 헝겊을 댄 헌 옷의 의미가 있는 구조가사(九條袈裟)를 의미있게 생각했다.
9측목탑이 제왕을 받들거나 부처를 받드는 의미로 쓰였듯이, 무속에서 '九'는 그래서 중요한 신을 받드는 수이다. 떡을 만들어도 신에게 바치는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라는 구선왕도떡을 만들었다. 칠성님도 본래는 북두칠성(北斗七星)과 존성(尊星), 제성(帝星)을 합한 구성(九星)의 부분에서 나온 것이며, 구요성(九曜星)이 그 원형이었다. '曜'는 빛난다는 의미로 아홉별이 빛이나면 그 별들도 작은 태양이 되어 '九曜日'이 보다 원형이었다.
우주를 9로 구분하듯이 사람의 몸의 아홉 구멍을 구규(九竅) 또는 구혈(九穴)이라 했으듯이 '구멍'이란 말 자체가 구혈, 구규에서 나온 우리말이다. 심지어 몸 속의 벌레도 구충(九蟲)이라 했다. 그 외에도 구관 신하들처럼 여러 말을 따라한다 해서 구관조(구官鳥), 음식의 산해진미를 모두 모은 구절판(九折坂) 등 우리 생활 속에도 '九'가 가지는 그 우주-신화적 의미는 수많이 남아 있다.
여신을 보위하는 구선녀였던 것이 남성화된 신화의 영향으로 구룡의 이름으로 바뀌어 황제를 보위하는 제후 아홉을 의미하게 되었다. 제왕들이 첩을 아홉을 둘 수 있다는 것도 이러한 배경을 가진다.
선녀탕으로 남아진 곳에 구룡폭포가 있는 것은 구선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룡폭포'의 구룡이 본래는 여신을 가호하는 구선녀에서 남성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곡폭포(九曲瀑布)란 구룡폭포를 의미하며 본래는 선녀의 구절 몸매와 연관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S'자형 '팔등신'이란 구절 몸매에 연관된 말에서 비롯한것이다.
금강산에 구룡폭포가 있다는 것은 금강산에 여산신을 모시는 구룡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구룡폭포 자체가 이미 여산신을 호위하는 말로 존재하는 것이다. 구룡폭포는 여산신을 호위하는 구선녀 개념의 다른 표현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산신과 구선녀를 합해 나중에 남성적인 불교가 강화되면서 이러한 산신과 구선녀를 '십나찰녀(일본에서는 쥬라세츠녀)'로 격하시키면서 부처를 호위하는 십나한으로 변이시킨 것이다. 불상이나 모자불상 주변의 아홉 소불 또는 아홉 얼굴들은 그만큼 신화적이며 전대의 종교적인 후예이며 변이된 모습이다.
나는 여기에서 '九'의 글자가 본래 거북이 龜(구)에서 나왔다는 의견을 덧붙여 제시해놓고자 한다. '龜'자를 축약하면 '九'자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구궁수(九宮數)가 거북이 등에서 나왔다는 것은 '龜'가 가지는 그 '九'의 수를 강조한 것으로 필자는 해석한다. 바다 거북의 등 사진을 구글에서 찾아보았다. '井'자와 같이 구획들이 나 있다.
고대 인도신화에서 우주는 거북의 등 위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바다거북 등은 여러 다양한 등 구획 구조를 가지지만, 특히 그 숫자가 아홉 개로 나뉘어졌다는 생각은 한자로 '井'자로 표현하는 것이 아홉 구획이 되기 때문이리라. 그것을 바다 속의 수궁의 아홉 궁으로 보았던 것이다.
구이사상은 그렇게 거북등에서 비롯되었으며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구궁수(九宮數)는 구궁수(龜宮數)로 볼 수 있다는 필자의 주장은 하도낙서(河圖洛書)에 대한 보다 확실한 이해와 더불어 우리의 비석 받침대에 대한 이해는 물론 가락국 허황옥 신화에 대한 이해에도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었다고 자부한다.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구궁수(九宮數)는 구궁수(龜宮數)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구궁수(九宮數)란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바다 거북의 단순한 등 갈라진 구획의 모습에서 나라의 중심과 그 주변을 의미하려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비석 받침돌이 거북등으로 되어 있는 것은 구이를 거느리는 중심국가가 된다는 거북등 '구궁(九宮)'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호우 '井'라는 것도 신라 황룡사 구층목탑의 '九'와 같은 '제국주의' 구궁수(九宮數)의 의미를 말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수로왕 신화에 나오는 구지봉(龜旨峰)의 '龜旨(거북의 윤지)'는 아홉 신하 즉 구간(九干)을 의미한다고 필자는 해석한다. 즉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수로왕을 구간(九干)이 맞이한다는 것 자체가 '龜'를 의미하여 상서로운 '井'이 나왔다는 또다른 자체가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구궁수(九宮數)의 거북 '九 = 龜)를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때 구간(九干)이 불렀다는 노래인 '구지봉연신가迎神歌龜旨峰迎神歌) 즉 '구지가(龜旨歌)'는 그래서 '九干의 노래' 그 자체를 의미할 수 있는 것이다.
아홉중신들이 나아가서 무당 김수로왕이 휘장을 세우고 산신제를 지내면서 바다의 태양신을 맞이하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허황옥에 대한 내용은 신화적으로 허황옥 여신의 아들인 수로왕이 스스로 산신이 되었음을 자처하여 태양의 여신을 바다에서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이때는 수로왕이 승천한 내용을 의미한다.
'산신'은 제왕들이 죽어 된 모습을 의미한다는 것은 단군이 1908세를 살다 구월산 산신이 되었다는데서도 알 수 있다. 즉 김수로왕은 죽어서 산신이 되었으며 태양의 여신 앞으로 혼인하여 돌아간 것이다. 어머니와 결혼한 사르미테스 여신처럼 그녀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죽은 제왕을 태양의 여신에게 결혼시키는 것이 해맞이 굿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구월산(九月山)의 '九月'은 8월 다음의 9월이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달이 아홉인 구월(九月)이다. 단군이 보름달 또는 태양이고 달이 아홉이 단군을 호위하는 그런 허황옥의 구간(九干)과 같은 것이 '구월(九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나는 본래는 '웅녀성모'에 관한 신화였던 것을 불교적인 윤색에서 남성화되고 제왕화되어 단군신화로 되었다는 것을 피력한 바 있다. 단군이 왜 격에 맞지 않게 '구월(九月)'의 구월산(九月山)으로 들어가야 했을까? 구월산(九月山)의 구월(九月)은 웅녀성모를 호위하는 아홉 달(딸)들이었지는 않았을까?
앞서 논한대로 카리테이모 모자불상 주변에 아홉 명의 아이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불교의 댜니(Dhyani) 불상에서도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아홉 소불 또는 탄트라 문자 아홉 자를 새겨넣기도 한다.
소위 '신라 성모마리아상'이라고 주장해온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의 모자불상은 원천적으로 그 구조가 모자불상을 중심으로 주변 9소불이 여성적인 표현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분석이다.
특히 불상 중에서도 선도(仙桃) 여신 영향이 남아 있는 '아홉 딸'이 강조된 하리티(Hariti) 불상 계통의 모자불상이라고 필자는 감정한다. 일본의 카리테이모(訶梨帝母)의 카리테이(訶梨帝)는 인도의 '하리티(Hariti)' 모자불상의 음운을 그대로 차용한 이름이다.
성모상 주변에 작은 얼굴들이 배치되는 카리테이모 모자불상은 일반적인 댜니불상 계통의 주변 소불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주변의 소불을 배치한 광배 스타일의 불상의 대표적인 것은 국보 185호인 금동신묘명삼존불(金銅辛卯銘三尊佛)이나 중국 북위(北魏) 시대의 금동미륵불입상(金銅弥勒仏立像)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국보 제85호 금동신묘명삼존불(金銅辛卯銘三尊佛). 삼국시대
'삼존불' 아닌 '오존불'이라야 옳을 이름이 될 것이다.
1930년 황해도 곡산군 화촌면 봉산리 출토. 호암미술관 소장
*中国 北魏「金銅弥勒仏立像」
*일본 長谷寺式 十一面観音立像
http://shunjudo.cocolog-nifty.com/blog/2008/12/post-d44e.html
*주변에 아홉 만트라를 새긴 일본 長榮寺 十一面観音
*일본 総白檀八角座天光背座釈迦如来
* 주변 소불을 배치한 댜니 불상
Dhyani Buddhas.
*7소불
*약사칠불
*일본 薬師寺金堂 薬師三尊像
*日光菩薩立像. 薬師寺金堂. 일본
薬師寺東院堂 聖観音立像. 일본
*하리티 관음보살 좌상. 인도 비하르 팔라시대 10세기 석조
동아시아의 고대 태양의 여신 영향과 인도불교적 배경으로 볼 때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성모자상은 불상인 동시에 그것은 선도성모에서 건너간 아마테라스 (천조대신) 태양의 여신 모자상의 계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불교의 종파에 따라 키시모진(鬼子母神)으로도 불리는 카리테이모(訶梨帝母) 모자불상의 전통이나 그 이미지에서 볼 때,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이 주장하는 그 '신라 성모마리아상'은 기독교 마리아상이 아니며, 머리 위를 포함하여 주변에 아홉 명의 아이(공주)들의 얼굴들이 새겨져 있는 카리테이모(訶梨帝母) 모자불상인 것이다.
셋, 다섯, 일곱 또는 아홉 명의 아이들이 주변에 배치된다는 일본의 카리테이모(訶梨帝母)와 불상에서 보이는 아홉 만트라의 표시는 우리나라의 전통 무속의 제왕맞이 굿의 무가로서 일곱 공주 이야기인 '바리데기'는 아이들의 수호 여신인 인도의 하리티(Hariti) 신에서 그 프로토타입이 있다.
5. '모자불상'과 인도의 하리티(Hariti) 성모 여신상
인도의 '하리티(Hariti)' 여신이 일본의 '카리테이(訶梨帝)' 명칭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우리의 전통 무속 가운데 '바리데기' 발음은 '하리 - 바리'라는 면에서 오히려 '하리티(Hariti)'에 더 가깝게 들린다. 바리공주가 여성적 '댁'으로 표현되어 '바리댁'이 되었을 수가 있다.
그 이유는 바리공주가 설화 속에서 저승에 가서 저승의 수문장과 결혼한 주부가 되어 명약을 가지고 지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무당들이 불러내는 그녀는 이제 '공주'가 아니라 결혼한 '바리 댁(宅)'으로 '바리대기 - 바리데기'로 와전되었을 것이다. 공주를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저승에 가서 명약을 구해가지고 현세상으로 오는 일곱 아들의 어머니가 된 '성모' 바리댁을 불러내는 것이 무당이 부르는 바리데기 신이기 때문이다.
바리데기와 카리데이모의 인도 원류의 프로토타입인 하리티 여신상에도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에서 주장하는 '성모상의 아홉 얼굴들'처럼 그 모자상 주변에 일곱 또는 아홉 등의 여러 아기상들이 배치된다. 아래 사진을 보라. 과연 하리티 성모상을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은 '기독교 성모 마리아상'이라고 할 것인가?
http://darkwing.uoregon.edu/~jrowan/hariti/haritipics.html
Hariti with children."House of Naradakha," Trench B4 (2),
no.2211; Shaikhan Dheri, Charsada.
Early second century C.E. Dark gray, homogenous schist. H. 11".
Peshawar, Sir Sahibzada Abdul Qayyum Museum
of Archaeology and Ethnology, University of Peshawar.
*하리티(Hariti) '성모' 여신
http://www.himal.kr/1-himal/2004Garhwal/garhwal-022.htm
*다른 아기들이 주변에 있고 아기를 안고 있는 하리티 여신
Hariti nursing a baby. 2-3rd century, Gandhara. British Museum.
*인도 욕자카르타의 아이들의 수호신인 다산의 성모상.
the Goddess of fertility & Protectress of children. Menduk Temple, Yogjakarta
http://www.borobudur.tv/mendut_vestibule.htm
*아이들의 여왕 숭배상. 인도 뱅갈 지역. 기원전 2-1세기
WORSHIPPING THE CHILD KING
*인도 굽타왕조시대의 엘로라 케이브의 불상
주변의 소불들이 배치되어 있다.
*굽타 왕조시대의 유산인 인도의 엘로라 케이브의 '그로토' 석굴의 여신 성모상
*카리테이모(訶梨帝母), 일본 13세기 카마쿠라시대의 성모자상
키시보진, 또는 키시모진(鬼子母神)으로도 불린다.
訶梨帝母倚像(かりていもいぞう)
・重要文化財 鎌倉時代(十三世紀前半)
・木造 彩色 玉眼 像高43.9cm
http://www.shiga-miidera.or.jp/treasure/bi/04.htm
Kamakura Era (Early 13th Century), Painted Wood, Height 43.9 cm
Treasure of Onjouji Temple (園城寺, also called Miidera 三井寺)
in Shiga Prefecture (Designated an Important Cultural Property)
Photo Courtesy The Hidden Buddha of Japan (Page 16)
2002, Corono Books
Kariteimo, Late Heian Era
Todaiji Temple, Nara
Holds pomegranate in right hand
(pomegranate missing due to damage/destruction)
*Same photo as above.
Closeup of babe in arms.
*일본국보 카리테이모(訶梨帝母)
Modern reproduction of above painting
of Kariteimo at Daigoji Temple
6. 전통 토속 여신인 '하리티 성모'를 비하시킨 불교문화
일본 불교는 전통 카리테이모 성모 여신인 키시모진(鬼子母神) 여신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고 불교로 교화시킨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불교를 받아들이기 전의 키시모진 여신을 '악마'로 규정하려는 종교적 왜곡된 선전을 했던 잔재가 있다. 우선 하리티(키시모진) 여신은 보살로서는 기본적으로 평화의 여신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하리티(Hārītī)는 산스크리트어이며 여신불상(Buddhist goddess)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순산을 도우며 부부간의 금슬을 돈독히 해주고 사랑, 안락 및 가족의 안전을 보살펴주는 보살이다. 아이가 없는 여자들에게는 임신을 기원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Hārītī, also known as Kishimojin in Japanese:鬼子母神, is a Buddhist goddess for the protection of children, easy delivery, happy child rearing and parenting, harmony between husband and wife, love, and the well-being and safety of the family. Women without children also pray to Kishimojin to help them become pregnant.
그러나 카리테이모(키시모진) 여신은 비하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 1>에서도 일부 보여주고 있듯이 수많은 어린이들이 '칼리 여신'에게 잡혀가 혹사당하는 것을 구해주는 내용은 불교 이전의 하리티 여신에 대한 왜곡으로 볼 수 있다. 인도의 고대 '성모'인 하리티 여신에 비하여 칼리(Kaki) 여신은 보다 더 악마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결과 오늘날까지 불교에서는 하리티 여신에 대하여 나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기독교만 배타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불교의 제도권 진입은 전래의 여신숭배 종교들에 대하여 배척적 왜곡을 서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모든 과거의 토속 여신들은 악마였으나 불교를 받아들여 선한 신이 되었다'는 식이다.
키시모진(하리티)도 그런 식으로 불교로 교화된 캐릭터로 전이시킨 모습으로 표현하려 한다. 예를 들어서 하리티 여신이 불교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다음과 같이 악마였던 것처럼 묘사한다.
"하리티(키시모진)는 본래는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었다. 그녀는 남의 아이들 수백 명을 잡아다가 키우는척 때리며 잡아먹었다. 그리하여 피해를 본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석가모니 부처에게 기원하여 그 아이들을 구해냈다."
Originally, Kishimojin/ Hariti was a cannibalistic demon. She had hundreds of children whom she loved and doted upon, but to feed them, she abducted and killed the children of others. The bereaved mothers of her victims pleaded to Śākyamuni Buddha to save them.
그래서 결국 석가모니의 자비로 하리티(키시모진) 여신은 교화된다는 포장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석가모니의 자비가 아니라 속임수로 하리티를 정복한 것을 볼 수 있다. 종교전쟁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자비는 커녕 속임수를 부리거나 아이를 훔치는 일로 교화를 시킨다는 스토리 구조는 결코 자비가 아닌 것이다.
"석가모니는 키시모진(하리티) 여신의 아들들 중 막내 아들인 아이지(Aiji)를 훔쳐내어 석가모니의 밥그릇 아래에 숨겼다. 키시모진 여신은 잃어버린 그녀의 막내 아들을 찾아 정신없이 온 우주를 돌아다녔다. 결국 그녀는 석가모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석가모니는 그래서 키시모진이 그녀의 수백명 아이들 중의 하나를 잃어버린 것으로 그토록 그녀가 고통스러워하게 된 이류를 지적하면서 아이들을 잃어버린 수많은 부모들 중에 사랑하는 외동아들을 잃었을 때의 그 부모의 고통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키시보진은 그렇게 하여 그녀 자신보다도 그렇게 외동아들을 잃어버린 부모들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모든 아이들을 이제부터 보호하도록 하겠다고 부처님 앞에 맹새했다. 그런 결과 키시모진(하리티) 여신은 순산과 아이들의 수호 여신이 되었다."
Śākyamuni stole Aiji, youngest of Kishimojin's sons, and hid him under his rice bowl. Kishimojin desperately searched for her missing son throughout the universe. Finally, she pleaded with Shakyamuni for help. The Buddha pointed out that she was suffering because she lost one of hundreds of children, and asked if she could imagine the suffering of parents whose only child had been devoured. She replied contritely that their suffering must be many times greater than hers, and vowed to protect all children. Kishimojin became the goddess of easy birthing and the protection and parenting of children.
석가모니가 하이티 여신을 교화시켰다는 것부터가 불교적 윤색을 드러내고 있다. 어떤 학설에서는 관음보살이 본래 하리티였다고 본다. 기존의 하리티 여신의 광범위하고 강력했던 태양의 여신 또는 성모 숭배 문화를 제거하지 못하여 불교에서 그 여신 숭배를 '교화시켰다'는 이름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Some stories describe her as an aspect of Kannon. She is also sometimes identified with the Hindu goddess Kali.
카리테이모가 하리티(hariti) 여신에게서 이름 영향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발음상 힌두교의 칼리(Kali) 여신을 일본말로 바꾸어 '카리테이모(키시보진)'라는 이름에 가까운 것 또한 중동의 하리티 여신보다 더 무서운 악마적 여신이 칼리 여신이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리티 여신을 이어받았다면 그 이름을 '하리테이모'라고 하지 않고 '카리테이모(칼리테이모)'라고 표현한 것은 칼리 여신이 더 악한 존재로 보아 카리테이모(키시모진) 이름으로 번역하여 석가모니에 결국 굴복했다는 식으로 더 극적인 효과를 노리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불교가 국가적 힘을 얻자 그 이전의 태양숭배시대의 여신들을 격하 표현할 때 쓰는 두 가지 주된 방법이 동원되었다. 전래의 여신이 가졌던 '성모(聖母)' 또는 '신모(神모)' 또는 '모주(母主)'라는 위치에서 '공주(公主)'로 표현하여 그녀가 가졌던 본래의 여신적 위치보다 더 강한 남성적 아버지를 은근히 강조하는 방법이 그 하나이다. '바리공주' 또는 '바리데기(宅)'은 본래는 '바리성모' 또는 바리신모' 등으로 표현되었을 텐데 비하된 표현의 결과로 생각된다.
성모에 대한 또 다른 비하 방법은 창조주 여신을 다른 작은 남성 신(인위적으로 하위적 위치에 있는 남신)을 동원하여 '00신의 부인'라는 식으로 여신의 절대적 숭배와 위엄을 평가절하시켜버리는 것이다. 신화에서 대부분의 여신들은 그러한 제도화된 종교의 파워를 피하여 무속적으로 그 잠재적인 흔적을 남겨 전승되어 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태양숭배시대의 '성모 하리티'도 결혼이 된 여신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리티의 남편은 판치카(Pancika 般闍迦)로 불리는 남자로 '하리티 아이들의 아버지'로 묘사된다. 판치카는 불교 교리에서 '바이스라바나' 군대의 수장이며 '28 약사(28 Yaksa 夜叉)' 신들 가운데 우두머리로서 5백명 아이들의 아버지로 묘사된다.
불교로 교화된 신이 되어 있는 판치카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28 약사'란 분명 하늘의 28숙 별자리를 의미하고 있다. 별자리란 태양숭배시대 신들의 잔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약사(야차) 신을 불교에서 귀화시켜 전혀 관련이 없는 '약을 담당하는 약사여래(藥師如來)'로 표현되고 있다. 본래는 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발음이 '약사(Yaksa 夜叉)'였기 때문에 불교에서 그렇게 갑자기 약사여래(藥師如來)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의 대부분 신들은 태양숭배시대의 신들을 다른 모습으로 변이시켜 수용해 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약사여래(藥師如來)가 그렇듯이 부처가 아닌 '여래(如來)'로 표현된 존자들은 불교 이전에 숭배를 강하게 받았던 여신들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Pancika (Chinese:般闍迦) was the consort of the Buddhist goddess of children, Hariti. He is himself a Buddhist god, and is said to have fathered 500 children. He was the commander-in-chief of the Yakṣa(夜叉) army of Vaiśravaṇa (Bishamonten), and had another 27 Yakṣa generals under his orders. The term also refers to the twelve heavenly generals who guard the Buddha of Medicine (Sanskrit: Bhaiṣajya; Tibetan: sangs-rgyas sman-bla; Chinese and Japanese: 藥師如來, 薬師如来)
야차(夜叉) 즉 약사신은 초기 인도불교에서 볼 수 있으며 간다라 불교에서 등장한다. 판치카와 하리티는 그리이스 불교에서는 석가가 개입하여 둘이서 결혼한 존재로 함께 나타난다는 것은 모든 여신들이 남성중심 종교들에 의하여 악마들 가운데 선택하여 '억지로 결혼당한' 내용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Pancika was often represented together with Hariti in the Greco-Buddhist art of Gandhara, where they illustrated marital love following the intervention of the Buddha.
초기 인도 불교의 하리티 여신은 그리이스에서는 티케(Tyche)라는 이름의 행운의 여신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이스 - 간다라 불교가 퇴색하자 올림푸스의 신들과 함께 점차 옛 태양숭배시대의 신들이 살아남은 결과라 하겠다. 그러한 티케(하리티) 여신상이 바티칸 뮤지엄에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미드라교 태양신의 유산을 물려받은 바티칸의 배려일까 아니면 불교처럼 하리티를 기독교로 순화시켰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풍요 뿔 코르누코피아(cornucopia)를 들고 있는 티케(하리티) 여신. 바티칸 박물관
The Tyche of Antioch,
Roman copy of a bronze by Eutychides (Galleria dei Candelabri, Vatican Museums).
*계속 이어지는 제3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다루어질 것이다.
<숭실대 박물관 '신라 성모 마리아상'의 정체(3)>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age_num=1&p_club_id=dreamview&p_menu_id=2&message_id=549384
7. 바리데기 여신과 '칠공주' '아홉공주'
8. 타라(Tara) 도모(度母)-도모(桃母)선도성모(仙桃聖母)
9. 바우덕이와 바리데기의 유래는 그로토(Grotto)의 바위 동굴 여신
10. 카리테이모와 일본의 성모 마리아상
11. 카리테이모(訶梨帝母)의 축제는 동지 해돋이 축제
12. 열 나찰녀(十羂刹女)로 비하된 태양의 여신과 아홉 얼굴들
13. 원효의 해골 바가지와 토굴(그로토) 속의 '성모의 오줌'
14. 석굴암 창건한 김대성의 설화는 바리데기 설화를 윤색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