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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특별한 공간체험(추억만들기) |
여행에 대한 소중한 기억. 디자이너 유정한은 모텔을 디자인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감성에 차곡차곡 쌓인 오래된 흔적들을 곱씹어 보고 이를 디자인 모티브로 끌어들인다. 각 나라의 일정한 풍물을 그대로 흉내 내어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미니어쳐와는 사뭇 다르다. 나라마다 간직하고 있는 고유의 토속성, 색채와 향기를 시각적·감성적으로 끌어들이고 어느 정도 여과를 통해 이를 디자인에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중국(화양연화), 일본(게이샤), 프랑스(물랑루즈), 지중해(카프리), 모로코(페즈), 아프리카(마사이), 인도(카마수트라)의 일곱 나라 일곱 컨셉룸 애니텔인 셈이다. 애니텔은 어줍지 않은 여느 모텔들과 달리 그만의 특별한 향기가 풍겨진다. 각각의 컨셉룸은 나름대로 완성도가 높고 깔끔하게 정제되어 있다. 요란하지도 군더더기도 많지 않다. 비록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모텔이란 극도의 제한된 공간 내에서 여행객들이 직접 보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는 공간색을 발하고 있다. 마치 길지 않은 하룻밤이지만 피곤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잠시나마 이국정취를 느껴보도록 하는 것이다. 금빛 액자틀로 처리된 객실 입구의 프레임을 통해 애니텔의 공간체험은 동화 속 그림같이 시작된다. 흡사 이국적인 향연으로 초대를 의미하는 듯. 모텔의 기능성에 따라 처리된 육중하고 화려한 원색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시 한번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듯 내부로 통하는 여닫이문이 객실로의 시선을 걸러준다. |
예술과 패션의 중심지 프랑스를 모티브로 한 프랑스방은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침실과 레벨차를 둔 욕실은 개방감이 한층 강조되어 있다. 욕조가 실 밖으로 나와 있고 침대 라운드형 헤드보드 반대편이 세면대가 자리한다. 침실은 가히 도발적이다. 원형의 침대 천장에는 금색 테두리의 볼록거울이 매달려 있어 침실의 은밀한 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천정면에는 침대헤드보드 상부에서 업라이트된 조명등과 욕실을 비추는 브래킷, 침실을 비추는 촛불모양의 스탠드조명이 한껏 운치를 더한다. 욕실의 흰색 타일과 꽃무늬 문양의 실크벽지도 밝고 화사한 공간색을 추구한다. 지중해의 파란 하늘과 농도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지중해방은 파란색 여닫이문을 통해 시작된다. 내부는 파란색과 흰색의 색채 대비로 시원스럽기까지 하다. 흰색의 회벽마감 벽체에는 4개의 유리장식을 걸친 촛불모양 브래킷이 공간전체를 밝게 비춘다. 침실 머리맡의 파란색 이미지월과 욕실공간의 파란색 타일이 화이트한 공간과 대비되어 산뜻한 느낌을 연출한다. 침대의 갈색 스틸프레임 상부에 걸쳐진 흰색의 천개는 짙은 황토색의 타일바닥으로 싱그럽게 흘러내린다. 각 나라마다 처한 기후와 토양색을 통해 이끌어 낸 황토색의 타일바닥은 모로코방에서도 연한 색채에로도 이어진다. 마스지드(이슬람교 사원)의 건축양식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모로코방은 아치형틀, 회벽으로 마감된 벽면의 아트페인팅으로 처리되어 아랍문화의 공간색을 느낄 수 있다. 레드풍의 강렬한 유혹으로 표현된 중국방은 애초부터 특실로 계획된 공간이다. |
침실 이미지월은 붉은 색의 장식벽지가 시선을 자극하고 중국 전통등을 형상화한 브래킷이 내부공간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욕실과 접한 벽면 또한 붉은색 장식유리로 처리되어 분위기를 더하고 침실 맞은편에는 붉은 색상의 쇼파와 현대적인 중국여인의 그림이 공간을 풍성하게 한다. 레드포인트는 욕실벽면에서도 연속되어 에로틱한 공간색에 일조한다. 그 방 한가운데는 양면을 통해 TV장과 화장대로 이용할 수 있는 가구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가구만으로도 공간을 적절히 분할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방은 다다미식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침대를 없앤 점이 특징이다. 침대 이미지월에는 전통의상을 입고 악기를 타는 요염한 이미지가 실사로 부착되어 있고 바닥에서 우러나오는 빛에 의해 조도를 부드럽게 유지한다. 벽면 한쪽에 부착된 베개모양의 패브릭 조명 은 에어콘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며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거리는 조명색을 통해 공간의 역동감이 연출된다. 인도방은 글래스 위 이슬람건축 문양과 카마수투라 그림을 실사하여 장식한 이미지월이 유독 눈길을 끈다. 고대 인도인의 성애에 관한 경전을 담은 카마수트라를 통해 은밀하고 즐거운 유희와 성애의 길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성애의 기교, 소녀와의 교접, 아내의 의무, 남의 아내와의 통정, 유녀, 미약 등에 관해 논술한 카마수트라. 그 노골적인 그림을 통해 이 공간이 바로 성의 공간임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사막과 열대우림 사이의 열대초원을 컨셉으로 끌어들인 아프리카방은 원시적이고 자연그대로의 분위기를 선사한다. 침실과 세면대 영역의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호피무늬 벽화는 흡사 사바나지역의 맹수 표범의 무늬를 연상케 한다. 욕실과 침실 사이에는 형형색색의 구술에 구멍을 뚫어 엮은 비즈(Beads)가 상부에서 바닥까지 수직으로 월을 형성한다. 비즈월을 통해 보여지는 움직임은 사뭇 토속성과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듯하고 실내에서 벌어지는 동적 움직임은 더욱 육감적으로 다가온다. |
낯설음에 대한 기억을 설레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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