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 연중 제4주일, 해외 원조 주일
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또한 연중 제4주일입니다.
교회는 오늘 해외 원조 주일을 지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한국교회도 초대 교회 시대부터 지금까지 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선교사가 고국을 등지고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를 하시다가 순교도 하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교육과 의료에서,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임실 치즈 같은 지역 경제를 위한 봉사를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외국에서 받은 물질적 도움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공부한 서울 신학교 건물도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6,25사변 이후에 미국교회를 통해 들어온 원조도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었습니다. 이처럼 말씀과 함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는 외국에서 많이 받았습디다.
우리나라도 외국으로 선교사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을 파견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수원교구를 비롯한 많은 교구들이 외국에 도움을 주고 있고, 또한 우리 본당에서 많이 후원하고 있는 한국 외방 선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수도 공동체와 평신도 공동체가 외국 특히 아프리카와 남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았던 도움인 신앙과 경제적인 도움을 다시 나눠 드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나눔의 연속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힘을 모으는 날입니다.
저는 복음에서 두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첫째는 권위라는 단어입니다. 권력은 어떤 사람이 어떤 직분을 가졌을 때, 그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갖게 되는 실행을 위한 힘입니다. 예를 들어 선출직 공무원이 선출되었을 때 그에게 공권력이 주어집니다. 이처럼 권력은 사람이 아니라 직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권위는 어떤 사람이 분명하고 숭고한 이상과 가치를 가지고 말과 행동을 일치하게 하여 그 이상과 가치의 중요성을 입증할 때 사람들이 가지는 존경심입니다. 권위는 결국 사람들의 존경심에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권력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새로운 차원 즉 영원한 사랑이라는 차원에서 알려주셨고, 삶으로 증언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완성하심으로, 하느님 나라를 증언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권위는 그분께서 가지신 일관성, 하느님과 사람 사랑의 일관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조금 더 잘 알아서 그분께 참으로 존경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분을 배우고, 묵상하고, 맛 들이면 그분께 권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중심이 되도록 모셔드립니다. 그런 차원에서 다시 한번 우리 신자들께 부탁드립니다. 혹자는 어려서 세례를 받아서, 혹자는 호기심으로, 혹자는 종교를 갖다보니, 혹자는 예수님이 정말 좋아서, 혹자는 교회가 좋아서 신자가 됩니다. 그 모든 경우가 다 부르심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분께 합당한 존경을 드리고 있을까요? 주님을 깊게 만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께 말씀드립니다. 주님과 깊게 만날 기회를 의지적으로 가집시다. 특히, 긴 시간을 주님과 마주 대하며 대화할 수 있는 피정을, 또한 성체조배를 자주 합시다.
둘째는 마귀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한 표현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마르 1,24)입니다. 이 표현은 초대교회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드렸던 여러 칭호 중의 하나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칭호가 그리스도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대척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악이 최고의 선을 자기도 모르게 신앙 고백을 하듯이 소리 질러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따르려면 악과 결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악을 저지를 때 느끼는 그 아픔과 가책은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 복음서에서 만난 악령과 같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 외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마르 1,23) 즉, 단절을 요구합니다. 간섭하지 말라고 절규합니다. 실제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거룩한 분을 따라 거룩하게 살기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니 우리의 정체성을 늘 잘 보존합시다.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 1,27)
(비전동성당 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