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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0월 13일 주일
[(녹) 연중 제28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한국 교회는 1968년부터 군 사목에 종사하고 있는 군종 사제를 비롯하여 군인 성당과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돕고자 해마다 10월 첫 주일을 ‘군인 주일’로 지내 왔으며, 2023년부터는 10월 둘째 주일에 지내기로 하였다(주교회의 2022년 추계 정기 총회). 오늘 전국 각 본당에서는 군의 복음화를 위한 특별 헌금을 봉헌한다.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이며 군인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속셈을 헤아리시니 그 무엇도 아버지 앞에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을 말씀의 칼로 꿰뚫으시어, 거룩한 지혜의 빛으로 지상의 것과 천상의 것을 분별하고,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가난하고 자유롭게 살게 하여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또한 군인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합시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진흙처럼 여겨진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7,7-11
7 내가 기도하자 나에게 예지가 주어지고
간청을 올리자 지혜의 영이 나에게 왔다.
8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하고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9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10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
11 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이 들려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2-13
12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13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30
그때에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주 오래전에 본당에서 주일 학교 교사를 하던 시절의 일이 생각납니다. 초등부 고학년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들어오라고 하시는 분이시라고 자주 이야기하였습니다. 세리들과 죄인들도 받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하늘 나라를 그려 보라고 하였더니 꽤 많은 아이가 열린 문 앞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마치 제가 교리 교육에 성공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마르 10,23)라고 하십니다. 자주 눈에 띄는 말씀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 예수님의 선포에 들어 있는 한 측면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은 열려 있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시지만, 모든 이가 그 초대에 응답하지는 못합니다. 문이 열려 있어도, 응답해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있습니다. 양다리를 걸칠 수 없고, 다른 어떤 것을 하느님 나라보다 더 앞세워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왕홀과 왕좌나 재산보다 낫게 여겼듯이, 하느님 나라를 선택하려면 다른 모든 것은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부자가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포기하여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우리의 집착이 우리를 하느님 나라의 문 앞에서 멈추게 하고, 슬퍼하며 떠나가게 합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지혜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갖게 되는 확신입니다. 나이든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인생의 지혜로구나, 하는 확신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이 먹어서도 어리석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거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시하지, 정작 더 중요한 보이지 않는 것들, 예를 들면 영혼, 정신, 마음, 영원한 생명을 개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첫 번째 독서로 봉독되는 지혜서는 얼마나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지 모릅니다.
지혜서의 보다 완전한 이름은 ‘솔로몬의 지혜서’입니다. 지혜서의 본문 안에는 독자가 누구인지 암시되어 있습니다. 본문이 지칭하는 독자는 ‘세상의 통치자들’이지만, 내용상 독자층은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로 확장됩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지혜는 다정한 영, 사람에게 우호적이며 사람을 사랑하는 영입니다. 결국 지혜는 하느님의 영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에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조금 더 깊이 있게 다섯 가지 측면에 걸쳐 지혜를 소개합니다.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입니다. 지혜는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입니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입니다. 지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입니다. 지혜는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입니다.
솔로몬은 살아 생전 언제나 지혜를 추구했고 그리워했습니다. 지혜를 사랑했고 존중했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지혜를 찬미했고, 지혜를 얻기 위해 간절히 하느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는 지혜를 평생의 동반자로 삼았습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하고,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지혜 7, 8-10)
솔로몬은 세상의 통치자들을 향해 지혜를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라고, 그래야 자신의 손에 맡겨진 백성들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고, 구원에로 이끌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7장 말미에서 솔로몬은 장엄한 어조로 지혜의 본성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솔로몬의 지혜 찬미’입니다. 그는 지혜가 지니고 있는 스무가지 이상의 속성을 쭉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나 하나 짚어보니 오늘 우리 지도자들과 우리 각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지혜는 명석합니다. 거룩합니다. 유일합니다. 다양합니다. 섬세합니다. 민첩합니다. 명료합니다. 청절합니다. 티없이 맑다는 말입니다. 분명합니다. 손상될 수 없습니다. 선을 사랑합니다. 예리합니다. 자유롭습니다. 인자합니다. 항구합니다. 확고합니다. 평온합니다. 전능합니다. 모든 것을 살핍니다. 명석합니다. 깨끗합니다. 빠릅니다.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합니다.
인류역사상 지혜롭기로 따지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솔로몬이었지만, 놀랍게도 하느님 앞에 자신을 완전히 낮춥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무지를 고백하면서 겸손되이 하느님께 지혜를 청합니다.
“저는 정녕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연약하고 덧없는 인간으로서 재판과 법을 아주 조금밖에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사람들 가운데 누가 완전하다 하더라도 당신에게서 오는 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다.”(지혜 9,5-6)
요즘 정계나 학계에서 국민들 인내력 테스트라도 하는 듯, 정말이지 참아주기 힘든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폼이란 폼은 다 잡으면서, 아주 고압적이고 교만한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양, 따져대고 가르치는 안하무인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참된 지혜의 덕이 겸비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참된 지혜를 갖춘 사람은, 주님의 성령 안에 살아가기에 교만하거나 무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지를 늘 기억합니다. 그래서 지극히 겸손합니다.
결국 지혜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참된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오고, 그 하느님께서 지니신 가장 우세한 속성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삶은 사랑의 삶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울증의 시작: 가질 수 있다는 착각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영국의 유명한 부자인 컨글튼 경이 어느 날 집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다 말고 한숨을 쉬며 “아이고, 5파운드만 있으면…. 5파운드만….”이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컨글튼 경은 그 하녀에게 5파운드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데 더 큰 한숨 소리가 들리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10파운드라고 할걸. 10파운드라고 할걸….”
오늘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은 부유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십계명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를 용기는 없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을 때 우울해질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진 것이 많으면 우울해진다고 하십니다.
황창연 신부의 ‘화가 나십니까?’ 강의 중 이런 예가 있습니다. 신부님이 20년 전에 알던 분의 시동생이라고 합니다. 이 분이 성탄절 전날 불법 유턴을 하다가 전경에게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안 했다고 끝까지 우겼습니다. 물론 전경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너희 경찰 서장이 누구야?”라고 소리쳤고, 경찰 서장의 이름을 들으니 자기 친구였고, 그걸 믿고 전경의 뺨을 강하게 쳤습니다. 그래서 전경은 그 사람을 공무집행 방해로 철창에 집어넣었고, 그 사람은 철창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며 분을 참지 못하다가 그 자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을까요? 바로 명예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정말 명예를 가졌을까요? 인간은 무언가 가질 능력이 있는 존재일까요? 조선시대 때 쓰이던 동전을 길에서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누군가는 ‘이건 내 돈이야!’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죽음 앞에서 소유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소유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명절 때 받은 돈을 어머니에게 다 빼앗겼습니다. 빼앗겼다기보다는 어머니가 맡기라고 해서 맡겼지만, 되돌려 받은 건 없습니다. 그런데 매번 그랬지만, 지금 어머니께 맡긴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부모 앞에서 자기 소유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아이는 부모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 아이는 슬플 일이 없습니다. 내 것이 없어서 빼앗길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욥은 자녀들과 재산,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잃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 주신 것, 하느님께서 가져가시니 하느님을 찬미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즐거울 수 있는 이유입니다.
저도 군대에 갈 때 한 자매가 밤새 편지를 써서 출근도 안 하고 기차역까지 나왔습니다. 훈련소에 가서 시간 날 때마다 그 자매에게 편지를 썼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걱정되었습니다. 7개월 만에 휴가를 나갔는데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분은 자대에 복귀에서 사라졌습니다. 어차피 나가서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겨울에 뜨거운 목욕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만약 밖에 있었고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집착을 끊기가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우리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믿게 만드는 군대와 같은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어머니 품이나 군대와 같은 곳에 머물려면 머물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자기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증거로 돈을 맡깁니다. 군대에서 요구하는 것도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머물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봉헌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십일조입니다.
도미노 피자를 만든 톰 모나한(Tom Monaghan)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그에게 돈이 전부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엄청난 부를 일궜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공허함이 찾아왔습니다. 가진 것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십일조를 하고 돈을 사회와 종교에 환원합니다. 그제야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것을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그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십일조는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는 존재이고 하느님께 속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기쁨은 십일조의 열매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조재형가브리엘 신부님
어릴 때, ‘숨은그림찾기’라는 것을 해 보았습니다. 신문에는 옛날이야기의 한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안에는 또 다른 물건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제가 찾았던 그림들은 ‘주걱, 신발, 곰방대, 복주머니’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어쩌다 숨겨진 숨은 그림을 찾으면 보물을 찾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숨은 그림을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다른 방향에서 보는 것입니다.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참된 지혜라는 그림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랑, 나눔, 봉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세상은 아름답고,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보석이 많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경쟁과 승리를 위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퇴근길에 아내를 위해서 장미꽃을 사 가는 남편, 부모님의 생일을 기억하고 깜짝 파티를 준비하는 자녀들, 남편의 바지 주머니에 ‘여보! 사랑해 우리 가족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할게요. 오늘도 힘내세요!’라는 편지를 넣어 주는 아내는 각박한 세상에서도 하느님께서 숨겨두신 아름다운 그림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날 높이 오르는 작은 공을 보면서 두려움은 담대함으로 바뀌게 됩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봅니다. 전태일이라는 젊은이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쏘아 올린 공이 있었습니다. 근로 기준법은 책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한 기준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골프의 변방에 있던 대한민국이었습니다. 박세리 선수가 US 여자 오픈 우승이라는 공을 쏘아 올렸습니다. 당시 IMF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은 위로받았습니다. 많은 학생이 박세리 선수를 보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박인비, 유소연, 최나연과 같은 선수가 등장했고, 대한민국의 여자 골프는 LPGA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저는 수녀원과 사제관 신축이라는 공을 쏘아 올렸습니다. 수녀원과 사제관이 성당 밖에 있습니다. 기존의 수녀원과 사제관을 매각하면 성당 내에 수녀원과 사제관을 신축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건축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건축위원회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자고 합니다. ‘친교실 확장, 실내체육관 신축, 추모관 건립’과 함께 수녀원과 사제관을 신축하자고 하였습니다. 2027년은 본당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직 3년이 남았으니, 지혜를 모으면 숨은 그림을 찾듯이,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숨은그림찾기의 원조는 누구일까요? 저는 2000년 전에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등장했던 젊은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라는 공을 높이 쏘아 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첫 번째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가진 것을 팔아 밭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은 세상 사람들이 찾는 보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명예, 권력, 성공, 건강이라는 보물을 찾습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 양심을 팔기도 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친구를 배신하기도 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은 ‘사람’입니다. 지금 절망하고 있는 사람,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사람,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하느님 나라에서는 더 기뻐한다.’ 착한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밤을 새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굶주리고, 가장 헐벗고,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진 것을 팔아 이런 보물을 찾는 사람, 이런 보물과 함께하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공을 높이 쏘아 올리면 좋겠습니다. 나눔과 희생 그리고 겸손의 눈으로 하느님께서 숨겨 놓으신 보물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에드워드 국왕 St.EDWARD
the Confessor St. Eduardus Ⅱ, C 1003 at Islip, Oxford, England -5 January 1066; interred at the Abbey of Saint Thomas Becket; body incorrupt
성인은 영국의 에드워드(에드와르도) 왕이었다.이 왕은 ’착하신 왕’ 로 별명이 붙을 정도로 좋은 일을 많이 했다.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수도원을 재건하였다.
현재까지도 국왕 성 에드와르도무덤은 그 사원안에 있다.
성인은 웨스트민스터의 주보성인이며 고아들과 방랑자들의 주보성인이다.
그는 에텔레드 왕과 왕후 엠마의아들로 잉글랜드의 이슬립에서 태어났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에 덴마크 군이불법 침입해 왕의 일족을 추방했고,교회와 수도원을 불사르며 약탈을 가행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를 학살하며 국민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에드와르도는 어머니와 더불어 어머니 고향인 프랑스의 노르만디에 피신했는데,신심이 두터운 어머니는 왕자의 마음속에 신덕을 심어 주는 것에 전념했으므로,그는 어려서부터 경건하게 자라나서 측근자의 입에서 궁중의 천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가 어떤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던 가는 다음 일화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신하들이 "전하는 언젠가는 칼을 빼서저 몹쓸 덴마크인들을 소탕하고 신성한 조국을 회복하시지 않으면 안됩니다."하니,왕자의 대답은"아니다. 나는 피를 흘려서까지 왕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즉 그는 그런 국난(國難)도하느님의 섭리인 줄 알고일체를 하느님의 뜻에 맡기며,그분 뜻이 계시면 나라의 회복이있을 줄 알고 기도했던 것이다.
부친인 국왕은 불행한 가운데세상을 떠났는데,얼마 안 되어 영국 국민은 덴마트의 학정에 총궐기해 그들을 소탕하고태자 에드와르도를 국왕으로 모셨다.
그 장엄 화려한 즉위식이 거행된 때는 바로 1042년 예수 부활 대축일이었다.
젊은 명군(明君)은 신앙은 만선의 원천이라는 신념으로 신하로부터모든 국민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을 공경하는 정신을 함양하도록 지도, 노력했다.
이리하여 전에 폭도들에게 파괴된 교회와 수도원은 복구되고 성스러운 예식은 엄숙히 거행되었으며,주교를 고문으로 두어 법전 편찬과빈민 고아들의 구호사업을 추진하고, 무엇보다도 가혹한 세금에 시달린 국민의 생활안정을 위해감세(減稅)의 대 영단을 내렸다.
에드와르도는 그때까지 왕비를 맞아들이지 않았고, 또 결혼할 의사도 갖지 않았으나, 중신들의 권유로
독실한 신자 에디타를왕비로 맞았다.
그들은 서로 합의해 표면상으로는 부부지간이나 사실인즉 남매지간같이 동정생활을 계속했다.
노르만디에 피신하고 있을때, 에드와르도는 하느님께서 다시 조국을 회복시키고 자신을 왕위에 올려 주시면 꼭 로마를 순례할 것을 서원했는데, 지금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므로 그는 서약대로 로마로 출발하려 했다.
그러나 국정이 안정되지 못했으니 외유를 할 수 없다는 중신들의 권고에 그는 난처하게 되어,그 처지를교황 레오 9세께 전구했던 바,로마 순례 예산으로 수도원을 세우고 빈민을 구제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회답을 받고, 즉시 웅대한 성당 부속 대수도원을 건립해 왕실의 안식처로 삼았다. 즉 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치세는 하느님께서 축복하셨음인지 지극히 평화로웠다.사실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에드와르도가 무기(武器)를 든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것은 스코틀랜드 왕 말콤이 역적에게 포위되었을 때이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에드와르도는 위로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아래로 국민을 사랑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을짓는 등 그의 신심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대한 큰 사랑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영명한 군주로 그를 흠모했으며, 1066년 1월 5일 서거했다.
영국이 가톨릭국이었을 동안은 그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하여, 역대 왕들은 즉위식 때 이 성인의 왕관과 망토를 사용함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에드와르도의 유해는 1220년 10월 13일에 웨스트민스터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그래서 이 날을 그의 축일로 지낸다.
그는 1161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문장은 반지이다.
성 그레고리오(Gregory)
신분 : 수도승, 시인, 교회학자
활동지역 : 나렉(Narek)
활동연도 : 950?-1003년경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오늘날에는 터키에 속한 아르메니아(Armenia)의 나렉에서 950년경 학구적인 성직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매우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래서 그 지역에 수도원과 학교를 설립한 사촌 나렉의 아나니아(Anania)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사제였던 아버지 코스로프(Khosrov)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사제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의 부친은 후에 대주교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나렉의 수도원에 들어가 철저한 수도생활과 신학교육을 받은 그는 25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나렉의 수도원에서 수도사제로서 평생을 보내며 수도원 학교에서 가르쳤던 그는 신학과 전례학은 물론 음악, 천문학, 지리학, 수학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그는 수많은 강연과 다양한 저술, 많은 서한과 담화, 시와 노래 등 후대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아가서 주해”(commentary on the Song of Songs)와 “애가”(Book of Lamentations)는 걸작으로 꼽힌다. 그가 직접 쓴 95개의 기도문으로 구성된 ‘애가’는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과 그분과의 재결합을 위한 인간의 탐구’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이미 1673년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에서 출판되어 30개 언어로 번역된 바 있으며, 현재도 아르메니아 교회 전례에서 사용되고 있다.
나렉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이미 성인으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그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의 2월 27일자 성인 목록에 올라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31항에서 그를 뛰어난 아르메니아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언급하며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찬미 중에서 강렬한 시적 영감으로 강생 신비의 여러 다른 면들을 고찰하고 있으며 이 다른 면들 하나하나가 그에게 있어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의 특별한 품위와 놀라운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기회가 된다.”고 하였다.
또한 아르메니아인 세례 1700주년을 기념한 사도적 서한뿐만 아니라 몇 차례의 연설에서도 그를 언급하였다. 그의 이름은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78항에서 성모송이나 성모 찬미가 등의 기도 전통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첫 번째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받는 그는 동방교회, 특별히 아르메니아 교회 전례와 사상, 문학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수도사제로 그가 남긴 기도문 대부분은 지금도 아르메니아 정교회 전례에서 사용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2월 21일 재임 중 처음으로 수도사제이자, 시인, 신비주의적 철학자, 신학자, 성인으로서 존경받던 나렉의 성 그레고리우스를 교회학자(교회박사)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가톨릭교회의 교회학자는 모두 36명이 되었다. 아르메니아 교회는 그의 축일을 10월 13일에 기념하고 있다.
성 에두아르도 (Edward)
활동년도 : 1003-1066년
신분 : 왕, 증거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애드워드,
에두아르두스,에드아르도,에드아르두스,에드와드,에드와르도,에드워드,에드워즈
영국의 왕 에텔레드 2세(Ethelred II)와 그의 아내 노르망디(Normandie)의 리카르두스 1세(Richardus I)의 딸인 엠마(Emma)의 아들로 태어난 성 에두아르두스(Eduardus, 또는 에두아르도)는 영국 옥스퍼드(Oxford)의 이슬립(Islip)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덴마크의 스벤(Svend)과 그의 아들 카누트(Canute)가 영국을 침공했을 때 그는 어머니와 함께 노르망디에 있는 그의 형제 알프레드(Alfred)에게 가서 머물렀다. 전쟁이 끝나 어머니 엠마는 영국으로 돌아왔으나, 그는 노르망디에 그대로 남아서 노르만인으로 성장하였다.
그 후 1042년 크누트 3세가 갑자기 사망하자, 성 에두아르두스는 왕위에 오르라는 부름을 받고 영국으로 돌아가서 왕위를 물려받고, 야심적이며 세도가이던 얼 고드윈(Earl Godwin)의 딸 에디트(Edith)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는 에디트와 결혼할 당시 자신은 정결을 서약했으므로 자신과 오누이처럼 동정을 지키며 살겠다는 동의하에서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의 재임 기간에는 참으로 평화스러웠다. 사실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드윈의 강력한 반대를 비롯하여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였다. 싸움의 불씨가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노르만인들을 좋아했고, 또 그가 노르망디에서 데리고 온 사람을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로 임명한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그는 장인인 고드윈의 무력 봉기를 분쇄하여 평정을 되찾았다. 성 에두아르두스에게는 자식이 없었는데, 고드윈의 두 아들이 왕위에 눈독을 들이고 또 다시 반기를 들자, 그는 그들도 유럽으로 추방하였다.
이 사건 후부터 그는 신앙생활에 깊이 빠져들었고,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 성 베드로(Petrus) 대수도원을 짓는 등 그의 신심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대한 큰 사랑으로 나타났다. 왕과 왕후는 매우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하였으며, 마치 오누이처럼 지냈다는 것이다. 자식이 없다는 사실로 많은 고통을 받았으나, 이것이 오히려 그들의 신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증거자’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얻었다. 그는 런던에서 서거하여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 내에 있는 성 베드로 수도원에 안장되었고, 1161년 2월 7일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성 에두아르두스는 앵글로 색슨족의 마지막 왕으로, 중세 시대 영국의 성인들 중에서 가장 공경받는 성인 가운데 한 명이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는 10월 13일을 보편 교회에서 기념하는 성 에두아르두스의 축일로 제정하였다. 그의 문장은 반지이다.
성 콜만노 (Colman)
활동년도 : +1012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스톡케로(Stockerau)
같은 이름 : 꼴로만, 꼴로만노, 꼴로만누스, 꼴만, 꼴만노, 꼴만누스, 콜로만, 콜로만노, 콜로만누스, 콜만, 콜만누스, 콜먼
11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인접 국가인 모라비아(Moravia)와 보헤미아(Bohemia)는 전쟁 중이었다. 스코틀랜드 사람인 성 콜만누스(Colmannus, 또는 콜만노)는 예루살렘 순례 중에 스톡케로(Stockerau)라는 도시에 당도했다. 주민들은 그를 스파이로 간주하고 교수형을 시켰다. 콜만누스의 성덕은 교수형을 받은 뒤에도 그의 유해가 부패되지 않음으로써 증명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거룩한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유해는 3년 뒤에 멜크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사실 성 콜만누스는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콜로만누스(Colomannus)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