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재회"(작가 이지현), 단종과 정순왕후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천상재회를 통해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이루고 영원한 영면에 들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영월 군민들이 세운 동상
청령포(국가 명승 50호)는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동남북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는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섬과도 같은 곳이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 해인 145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었다. 이후
첨지 중추원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1457년 윤 6월 22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7일 후인 윤6월 28일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고, 그 해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어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단종어소'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
단종이 머물던 본채
단종어소 담장 안에 있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 1763년 영조는 단종이 유배 당시
기거하였던 옛 집터가 이곳에 있었음을 표시하여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내용을
기록한 비를 세울 것을 명했고, 당시 원주 관아에서 이 비와 비각을 세웠다.
비의 높이는 162cm로, 화강석 기단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우고 비 전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
(端廟在本府時遺址: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 터이다)’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다.
단종어소 담장을 넘어 어소를 향하여 엎드린 자세의 소나무
'청령포수림지(산림청 지정 천년의 숲)', 청령포에 위치한 수림지는 수십년에서 수백년생의
거송들이 들어 찬 수림지로 단종의 유배지를 중심으로 주위에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관음송(천년기념물)',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단종의 유배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수령은 600년(단종 유배 당시 수령 약 60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나무의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m로,
지상 1.2m 높이에서 갈라진 줄기의 밑 둘레는 각각 3.3m, 2.95m이며, 수관 폭은 동서 23.3m, 남북 20m이다.
'노산대(魯山臺)'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라 하여 노산대(魯山臺)라 부르고 있다.
'금표비(禁標碑)' 단종이 유배되어 계시던 이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2년(1726년)에 세운 비석이다. 금표비 앞면에는 ‘청령포금표(淸泠浦禁標)’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 泥生亦在當禁」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 라고 쓰여있다.
1. 일자 : 2024. 5. 28 대구 매화산악회
2. 일정
대구 서구청 육교옆(08:00) → 김삿갓유적지(11:08~12:45, 중식) → 청령포(13:20~14:20)
→ 장릉(14:30~15:10) → 대구로 출발 (15:10)
3. 탐방 코스
○ 김삿갓유적지
주차장 → 김삿갓문화공원 → 김삿갓 묘역 → 주차장(중식) → 난고 김삿갓문학관
○ 청령포
매표소 → 나루터(나룻배) → 단종어소, 단묘유지비 → 관음송 → 망향탑 → 노산대
→ 금표비 → 나루터 (나룻배) → 주차장
○ 장릉
주차장 → 단종역사관 → 능 올라가는 길 → 정령송 → 장릉(단종릉)
→ 능 내려가는 길 → 장판옥, 배식단, 수복실,단종비각 → 홍살문, 참도, 정자각,
수라간, 영천 → 엄홍도정려각, 재실,박충원 낙촌비각, 배견정 →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