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여행16 - 중산릉을 보고는 관광차로 혁명열사관을 지나 영곡사 절에 가다!
10월 20일 난징 지하철 2호선 무쑤위안 苜蓿园站 역에 내려 언덕길을 걸어 올라 매표소에서 1인당
10원 하는 표를 끊어 관광차를 타고 중산릉남역에 내려 10분을 걸어 손문의 중산릉 을 봅니다.
그러고는 중산릉 을 나와 명효릉 을 갈까 영곡사를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영곡사 를
먼저 보기로 하고 5분을 걸어 중산릉동역 에서 고풍스러운 관광차 에 오릅니다.
관광차는 숲속에 난 길을 달리는데 연못을 지나고 10분만에 영곡사 정류소 에 서니 내려서
다시 산길을 걸어 매표소에서 35원(학생과 60세 이상은 18원) 하는 입장권을 삽니다.
다시 연못을 지나고 호젓한 길을 걸어 "패방" 이라 불리는 문을 지나 오른쪽에 엄청
큰 돌거북 이 서 있는데 한글로는 “돌거부기” 라고 적혀 있어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그러고는 “무량전”이라 적힌 건물로 들어가는데 이건 영곡사 절이라고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 “국민혁명열사지영위” 라.....
절에서 무슨 위패를 봉안하고 있나 싶어 둘러보니 청나라 황제의 그림
옆에 저 여인은 얼핏 보아도 당시 실력자인 “서태후” 인 것 같은데?
그리고 다른 그림에는 배 갑판에 탄 중국인과 서양여자 셋인데 “중산출양”
이라.... 그럼 "손문" 이 일본과 미국이며 영국에 건너가는 그림 일러나?
옆 그림은 독립지사들을 잡아 고문하는 일본군이라.... 이거 영곡사 절 에 간다는게
잘못 들어왔나 싶어 밖으로 나와서 관광객에게 물으니..... "절" 이 맞답니다???
다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니 여긴 “혁명열사관” 이고..... 그참 이상타???
뒤로 돌아가니 거기 건물 뒷문으로 해서 영곡사로 가는 길이 나 있습니다.
다시 10여분을 걸어 영곡사 절 에 도착하니 향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불경소리 가
크게 울려 퍼지는게..... 어떤 중국인 가족이 "재" 를 올리러 왔나 보네요?
여기 靈谷寺(영곡사) 는 514년에 창건한 개선사 절을 1,381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는데
60m 9층 8각 영곡탑 에 오르면 중산릉이 보이며 입구에 벽돌로 된 무량전이 볼만하다나요!
공산당 정부가 "종교는 아편" 이라고 탄압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중국에서는 가는 절 마다
으리으리하게 치장하고 "BMW 등 고급 외제차" 가 줄지어 늘어선데 "상전벽해" 를 느낍니다.
좀 전에 “혁명열사관”을 거쳐 왔거니와 그들이 무덤에서 일어난다면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호화로운 절의 모습을 보노라면 "사회주의" 를 위해 싸운게 허망하리라?
"혁명열사" 들이란 중국 건설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인데 손문이 2차례나 봉기에 실패
하니 많이 죽었고.... 이후 1911년 신해혁명 성공후 손문이 대총통 에 오릅니다.
하지만 무력이 약하니 청조 타도를 위해 원세개 에게 대총통을 양보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원세개는 황제 가 되었다가 들끓는 여론과 부하의 반대로 하야하고 죽습니다.
그러자 부하 군벌들은 이홍장의 회군에 뿌리를 둔 안휘파 와 원세개의 신군에 뿌리를 둔
직례파, 만주를 배경으로 등장한 봉천파 등으로 갈려 피터지는 싸움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