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산 청룡사
대한불교조계종 2교구 본사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입니다. 1265년(원종 6)명본대사(明本大師)가 창건하여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던 것을 1364년(공민왕 13)나옹왕사(懶翁王師)가 크게 중창할 때 청룡(靑龍)이 서기가 가득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 절 이름을 청룡사, 산 이름을 서운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보물 제82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음전(觀音殿)·명부전(冥府殿)·관음청향각(觀音靑香閣)·대방(大房) 등이 있습니다. 유물로는 사적비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 밖에도 800근이 넘는 범종(梵鐘)이 있는데, 1674년(현종 15)에 밀언(密彦)스님에 의해서 주조된 것입니다. 부속 암자로는 은적암(隱寂庵)·내원암(內院庵)·서운암(瑞雲庵)이 있습니다. 은적암은 약 600년 전에 창건된 암자로서 선수(仙水)라고 불리는 유명한 약수가 있습니다. 내원암은 청룡사 중창 다음해에 창건되어 48명의 강사(講師)가 계승된 유명한 강원(講院)이며, 용허(龍虛)·장호강백(莊昊講伯)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던 선불장(撰佛場)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암자입니다. 서운암은 원래 내원암의 속암이었으며 강원으로서 이름을 떨쳤던 내원암으로 찾아오는 학승(學僧)들이 너무 많아 약 100여 년 전에 내원암 강주(講主)였던 만우(萬雨)스님이 창건한 암자입니다. 이 밖에도 속암으로 은신암(隱神庵)·청련암(靑蓮庵) 등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유지(遺址)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소:경기도 안성시 서움면 청룡리 031)672-9103
칠현산 칠장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입니다.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습니다. 그 뒤 고려 초기에 혜소국사(慧炤國師)가 현재의 비각(碑閣) 자리인 백련암(白蓮庵)에서 수도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7인 모두가 도를 깨달아 칠현(七賢)이 되었으므로 산 이름을 칠현산 이라고 했다고 전하여집니다.
혜소국사는 왕명으로 1014년(현종 5)에 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습니다. 그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내려오다가, 1674년 세도가에게 산을 빼앗겨 승려들이 모두 흩어져서 잠시 빈 절이 되었던 것을 거사(居士) 초견(楚堅)이 다시 찾아 중수하였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원통전(圓通殿)·명부전·응향각(凝香閣)·천왕문(天王門)·요사채 등이 있습니다. 이 중 대웅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웅장한 규모, 우아한 조각미와 채색미가 괄목 할 만합니다. 또한, 천왕문 내의 소조사천왕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중요문화재로는 비각 내에 보존되어 있는 보물 제488호의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가 있습니다. 1060년(문종 14)에 건립된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집니다. 임진왜란 때 적장인 가토(加藤淸正)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크게 꾸짖자, 화가 치민 가토가 칼을 빼서 베니 홀연히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렸으므로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쳤다고 합니다.
현재 국사의 비신(碑身)은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 밖에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를 비롯하여 당간지주, 수많은 부도군(浮屠群)이 있습니다. 이 중 족자는 인목대비가 이 절에 와서 수양할 때 쓴 것입니다. 또한, 절 입구에 있는 14기의 부도와 절 뒤편의 수많은 부도탑은 이 절의 유구한 역사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특히, 절 입구에 있는 철당간 지주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청주 용두사지(龍頭寺址)와 갑사(甲寺)에서만 볼 수 있는 극히 드문 문화재입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칠장사의 풍수적 형국이 행주형(行舟形)이므로 이 당간으로 배의 돛대를 상징한 것이라 합니다.
그 밖에도 고려 말에 왜구의 피해가 극심할 때 충주 개천사(開天寺)에 있던 사서(寺書)를 이 절로 옮겨서 보관하여 소실을 면한 일이 있습니다. 부속 암자로는 명적암(明寂庵)·극락암(極樂庵)·백련암 등이 있습니다. 절 일원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Tel : 031-673-0776
서운산 석남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입니다. 680년(문무왕 20)에 고승 석선(奭善)스님이 창건하였고, 고려 초기에 혜거국사(慧炬國師)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는데 이후 화덕(華德)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영산전을 비롯하여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석탑재(石塔材)와 마애불(磨崖佛) 등이 있습니다.
대웅전 안에는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은 높이 7m, 너비 6.5m 정도의 자연암벽에 양각된 입상(立像)으로서 불상의 크기는 높이 4.5m, 너비 2.8m이며, 얼굴은 암벽의 균열로 인해 마멸이 심합니다.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당대의 고승 석선(奭善)스님이 개산하면서 창건했습니다. 그 후 문성왕 18년(856) 가지산문의 2조인 염거국사(廉居國師)가 주석하면서 중수했고, 고려 광종의 아들 혜거국사(慧炬國師)가 크게 중건하는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석남사를 거쳐 갔습니다. 따라서 이들 스승을 흠모하는 수많은 제자들이 찾아들어 수행지도를 받았으니, 석남사는 당시 수백인의 참선승이 머물렀던 수행도량이었습니다. 이에 세조는 석남사의 전통을 살리고 수행도량의 면모를 지켜나가도록 당부했습니다. "석남사에 적을 둔 모든 승려의 사역을 면제하니 수도에만 전념토록 하라"는 친서교지(親書敎旨)를 내렸던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병화(兵火)를 당하고 영조 때 해원선사(海源禪師)가 중수했으나 본래의 절 모습을 되찾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웅전과 영산전 뿐이지만, 영산전(보물 제823호)은 조선 초기 건물의 특징 양식을 손색없이 지니고 있어 당시의 절 분위기를 짐작케 하고 있습니다. 석남사에는 현재 영산전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8호인 대웅전, 향토유적 제11호인 고려시대 오층석탑 2기가 있고, 절 입구에 향토유적 제28호인 석종형 부도 2기가 있습니다. 절 왼쪽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된 마애여래불상이 있습니다.석남사는 계단식으로 3단의 축대를 쌓아 대웅전과 영산전, 한 채뿐인 요사채가 있지만 넓은 공터가 많습니다. 삼면을 산줄기가 에워싸 다소 답답한 감이 없지 않으나 앞골이 트이고 계곡물이 절 앞으로 흘러 시원스럽습니다. 석남계곡은 특히 승방골,주왕골,험한골,·대밭골,·방아골 등 열두 굽이가 있으며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앞을 가립니다. 그 뒤 산 정상으로는 서운산성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주소 :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촌새말길 3-120 Tel : 031-676-1444
진행 안내
2018년 3월 10일(토) 오전 6시50분까지 승차 - 7시 00분 정시 출발합니다.
동참금은 3만원이오며 점심과 간식은 각자 지참합니다.
순례비 종무소 입금시 몇호 차량 번호와 좌석번호는 메모해 두십시오.
전화 예약은 필히 종무소에 전화를 하시고, 순례비 입금 하시고 ,차량 호수와 좌석 예약번호 확인 요망!
입금계좌 : 농협 301-0100-5998-91 인천불교회관 연화사성지순례단
108사찰 성지순례단 조끼와 금강경 책자, 108대 참회문, 다포등이 없으신 분들은 미리 불교회관 연화사에서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예약 문의 : 인천 불교회관 연화사 032) 442~9910
순례단장 : 010-5873-4485 자광 선혜 김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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