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서울도시형중등대안[단재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대표교사박준규
prologue : 우주가 내러티브다
우리의 삶은 이야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모두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된다. 그들은 서로 협력하거나 갈등하면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야기의 구성은 다가올 미래에 뿌리를 두고 만들어지며 순간의 현재를 거쳐 과거에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렇게 이야기를 생성하며 사람들은 시간을 소비한다.
사람만이 등장인물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동식물은 물론이고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분자와 원자는 원로배우가 됐다. 언제나 무대에는 혈기왕성한 청년배우들이 올라온다. 양성자, 중성자, 전자들이 활약하더니 쿼크와 글루온이 새로운 피라고 등장했다. 힉스입자는 다음에 무대에 올라온다고 예고편 포스터를 붙여놓은 상태다.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의 작가가 궁금했다. 모든 무대 위 배우가 공동작가라는 걸 알고 나서 이번엔 연출가가 궁금하다. 과연 연출가는 어디에 숨은 것인가.
7월에 민들레출판사에서 출간한 『스승은 있다』를 쓴 우치다 타츠루는 연출가가 누구인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지난 6월25일 일본 고베로 그를 찾아갔다. 3시간의 만남은 많은 이야기의 비밀을 들려줬다. 모두가 연출가일 수 없지만 누구나 연출가가 될 수 있다. 우치다 선생님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이다.
이야기의 매력은 각기 다른 이야기가 만나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재밌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만들기 전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 내가 연출을 해보는 거야!”
-----------------------------
자 여러분, C룸으로 모이세요. 팀 미팅과 기획회의 들어갑니다.
김PD, 출연섭외자들 출석체크 해줘. 막내PD는 어디갔나? 빨리 오라고 해.
이번 대담은 최EP가 신신당부를 했다. 사장님 관심이 대단한 기획이니까 시청률에 눈치 보지 말고 제대로 만들라는 거야. 우리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거야.
뭐라고, 사회자가 펑크야? 사회자는 권 작가가 섭외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
답답하기는…. 할 수 없다. 사회자로 내가 들어갈 테니까 서브오퍼레이팅룸은 김PD가 맡아.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니 스릴 만점이겠구만. 자자, 카메라와 FD 각자 위치로. 3분 후에 슛 들어갑니다.
박PD 없으니 더 정신차려야 해. 자, 자막 어시, 출연자 자막 In. 1번 카메라 Cut. FD, 5초 카운팅. 메인 BGM Insert.......
오늘의 출연자 : 우치다 타츠루 박선생 유준 장선생
박PD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희 「이야기와 이야기가 만나는 네거리」프로그램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앉은 위치를 보아 박선생이 먼저 얘기를 시작해주세요.
박선생 안녕하십니까. 저는 비인가 중등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치다 선생님이 나온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출연한다고 했습니다.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하류지향』을 언급 안할 수 없습니다. 공교육 교사인 저를 대안학교 교사로 태(態)를 바꾸게 한 일등 공신이니까요. 『하류지향』은 읽을 때마다 무릎을 치게 됩니다. 덕분에 관절에 무리가 생겨 파스를 붙이고 다닙니다만 직업상 열 번 이상 읽었습니다.
제 독서스타일이 원래 그렇지만 우치다 책은 일부러 비판적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철저히 검증되지 않는다면 내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과연 그래?' '억지 주장은 없나?' '도그마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한건주의로 책을 쓴 것은 아닌가?'
이런 검증을 통해 수없이 되뇌었지만 아무래도 맞는 말입니다.
우치다 안녕하세요. 우치다 타츠루입니다. 박 선생님 무릎이 정말 걱정됩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점이 무릎을 연타하게 만들었나요?
박선생 “아이들은 선생님과 조우할 때나 수업 장면에서 왜 이렇게 불쾌함을 가득 담고 있을까?" 이것이 오래된 제 고민이었습니다. 수업 장면이 아니거나 교사가 없을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니까요.
아이들이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성격에 따라 달라집니다. 명랑 쾌활한 아이라도 자기 장래에 대한 토픽과 관련된 사항이 도출되면-이를테면 학교생활, 성적, 숙제 이행 유무, 학원수업, 생활태도, 장래희망, 친인척의 평판, 부모의 걱정 등- 불쾌함을 가득 담습니다.
거기까지 이미 오래 전 알고 있었는데, 우치다 선생님이 『하류지향』에서 그 불쾌함의 기원을 여러 철학자의 이야기를 동원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박PD 우치다 선생님, 그런 불쾌함의 기원이 궁금합니다.
우치다 일본에서는 오레사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억지로 만든 말인데, 자기를 높여부르는 말입니다. ‘오레'는 자기자신이고 '사마'는 욘사마처럼 극존칭입니다. 이것은 핵가족화한 가족 형태의 변화와 관계가 없습니다.
학교가 ‘근대’를 가르치고자 ‘생활주체’나 ‘노동주체’로서의 자립의 의미를 설명하기 전에 이미 아이들은 어엿한 ‘소비주체’로서의 자기를 확립하고 있습니다. 이미 경제적인 주체인데 학교에 들어가서 새삼스레 교육에 ‘객체’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 내키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관계에 들어갈 때 제일 먼저 노동을 통해 들어갈 것인가, 소비를 통해 들어갈 것인가의 차이를 말합니다. 80년 대 까지만 해도 가사노동의 어린 분담자로서 사회관계 속에 등록을 함으로써 아이들은 노동주체로 자기를 세웠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노동주체라는 형태로 사회적인 승인을 받아서 스스로를 내세우는 일을 못합니다.
오히려 지금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가능하면 그들에게 할당된 공간 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공헌이지요.
박PD 저희 집 아이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말씀을 들으니 희미한 사진에 초점이 맞는 느낌입니다. 흥미롭네요. 더 풀어 말씀해주세요.
우치다 지금 아이들은 아마도 거의 절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사회경험이 물건 사기(구매)였을 것입니다. 저는 이 첫 경험의 차이가 결정적이고 봅니다.
편의점 계산대에 돈을 내면 점원은 “어서 오십시오”라는 앵무새 같은 인사말과 함께 사는 사람이 네 살짜리 꼬마든, 스무 살 청년이든, 여든 살 노인이든 구별 없이 그에 상응한 상품이나 서비스로 교환해 줍니다. 돈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왔을 때는 그 사람의 나이나 식견, 사회적 능력 따위는 기본적으로 아무도 따지지 않습니다. 사회적 능력이 거의 없는 어린아이가 여기저기서 쥐어주는 용돈을 가지고 소비주체로 시장에 등장했을 때 그 아이들이 처음으로 느꼈을 소감은 법 밖의 전능성이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한번 이 쾌감을 맛보았다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지요. 아이들은 이때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사는 사람’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무엇보다 상대와 대면하는 상황에서는 자기를 소비주체로 내세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겁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교육서비스를 사는 사람’이라는 위치를 무의식중에 선점하고자 합니다.
“당신은 뭘 팔 건데? 마음에 들면 사주지.”
“이 상품을 사서 쓰면 뭐가 좋은가?”라고 묻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니겠어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그 상품이 어디에 소용되는지-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라는 식의 말이 등가교환이 이루어지는 거래 장소에서 최대의 이익을 올릴 수 있는 협상술임을 어린 소비주체는 이미 완전히 터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위태로운 점은 아이들의 눈으로 봤을 때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 중에서 그 의미와 유용성으로 납득할 수 있는 상품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원래 교육이 제공하는 이익은 자기가 어떤 이익을 받고 있는지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교육과정이 끝날 때까지 말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박PD 그런 아이들은 소비하기 위해 돈을 내야하지 않나요? 아이들에게 충분히 소비 가능한 돈이 있는 것은 아닐 텐데요.
우치다 그렇지요. 학교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대가를 지불해야 할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폐를 물 쓰듯 쓸 수 없는 이상 교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불쾌함입니다. 바로 아이들은 학교에 불쾌함을 견디기 위해 옵니다. 교육 서비스는 자신의 불쾌함과 맞바꾸어 제공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실은 불쾌함과 교육 서비스의 등가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는 것이죠. 학생들이 지각하거나 수업을 빼먹으면서 나태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나 그것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거나 수업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한 거래입니다.
“엄정한 협상을 통해서 적정한 가격으로 등가교환을 하려는 현명한 소비자의 노력을 어째서 인정하지 않는가?”
아이들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소비자 마인드로 학교 교육과 대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배움의 과정에 놓일 수 없습니다.
박선생 저는 우치다 선생님의 이러한 진단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청소년 문제의 핵심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박PD 몇 가지 질문거리가 떠오르지만 공감 가는 분석입니다. 솔직히 저는 우치다 선생님이 쓴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제목을 보고 즉각적으로 느낀 점이 겹쳐집니다.
유준 제가 얘기하고 싶은 지점입니다. 저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선 제 소개가 필요하겠군요. 저는 황석영 선생의 작품 『개밥바라기별』의 주인공 유준입니다. 곧 베트남 전쟁에 차출돼 떠날 23살 청년이지만 저는 우치다 선생님보다 7살 많은 양 띠입니다.
박PD 반갑습니다. 유준 씨. 지금은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4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해방동이 전후 세대로써 유준 씨는 바로 작가 황석영 선생님의 아바타가 아닐 런지요. 그러고 보니 황석영 작가님이 양 띠인데, 제 심증이 맞습니까?
유준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는 유준이지 황석영 작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23살 이후를 살아보지 않았으니까요. 우치다 선생님께 묻는데, 선생님은 마르크스주의자인가요?
우치다 재밌는 질문이군요. 마르크스를 말하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르크시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크시안'입니다. 마르크시스트는 마르크스의 말을 그대로 마르크스의 말로 설명하고 주장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반면에 마르크시안은 마르크스의 말을 자기 말로 재해석해 설명하고 주장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나는 후자에 해당하지요. 게다가 나는 마르크스 뿐만 아니고 여러 사람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혁명사상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외친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었지, 부르주아지들의 타도를 외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마르크스 샘에서 물을 떠먹을 수 있는 조롱박입니다. 반면에 함께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를 쓴 이시가와 교수는 마르크시스트입니다.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분이고 일본 공산당원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그 분과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메일로 의견을 주고받고 공저자로 책을 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유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씀입니다. 우치다 선생님은 90년 대 이후 청소년의 문제를 등가교환을 지향하는 소비주체로서 자리매김 된 아이를 언급했는데 반세기 이전 상황과 지금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제가 4.19 혁명 직후에 고등학교 자퇴를 하면서 담임선생님께 편지로 보낸 자퇴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박PD 50년 전 자퇴서를 지금도 보관하시나요? 궁금합니다.
유준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기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학교는 부모들과 공모하여 유년기 소년기를 나누어놓고 성년으로 인정할 때까지 보호대상으로 묶어놓겠다는 제도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등교시간부터 하교시간까지 일정한 시간을 규율에 묶여서 견디어야 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법입니다. 규율을 어긴 자는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쫓겨나야 합니다. 쫓겨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회는 규율을 유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규율을 어기면 학교에서 퇴학당함으로써 더 좋은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누릴 기회를 박탈당할 우려가 있지요.
독감이라도 걸려서 하루나 또는 이틀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던 날 우리는 은근히 놀라게 됩니다. 다른 아이들이 차가운 아침공기 속에 입김을 하얗게 뿜어대며 종종걸음으로 등교하는 모습을 창 너머로 훔쳐보며 저것이 내 꼴일 텐데, 하며 놀라지요.
정오경에 동네 근처 네거리에라도 나서면 초등학교 꼬마들에서부터 우리또래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거의 남김없이 자취를 감춘 처음 보는 시간과 거리의 풍경에 또 한 번 놀랍니다. 아줌마들 노인들 행상들 그리고 시장 상인들만이 어슬렁거리며 오후의 분주할 때를 준비하고 있지요. 말하자면 행세할 만한 사람들은 이 시간에 여기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하루 온종일을 보내고 나니까 자기 시간을 스스로 운행할 수가 있었지요. 가령, 책을 읽었어요. 그 내용과 나의 느낌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정리가 되어서 저녁녘에 책장을 닫을 때쯤에는 갖가지 신선한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또 어떤 날에는 어려서 멱 감으러 다니던 여의도의 빈 풀밭에 나가 거닐었지요. 강아지풀,부들,갈대,나리꽃,제비꽃,자운영,얼레지 같은 풀꽃 등이며, 논두렁 밭두렁의 메꽃 무리와, 풀숲에 기적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주황색 원추리 한 송이, 그리고 작은 시냇물 속의 자갈 사이로 헤집고 다니는 생생한 송사리 떼를 보고 눈물이 날 뻔했거든요. 눈썹을 건드리는 바람결의 잔잔한 느낌과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는 구름의 행렬, 햇빛이 지상에 내려앉는 여러 가지 색과 밀도며 빛과 그늘. 그러한 시간은 학교에서 오전 오후 수업 여섯 시간을 앉아 있던 때보다 내 삶을 더욱 충족하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이 이런 충족된 시간들이 아니라 제도를 재생산 하는 규율의 시간 속에서 영향 받고 형성된다는 것에 저는 놀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성장기라니요. 어느 책에 보니까 감옥이나 정신병원은 그러한 기구를 통하여 교정하려고 했던 바로 그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십년 이상이나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가 거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던 정신이상자들이 정상적인 환경에 놓인 지 불과 몇 달 만에 대부분이 완치되었다지요. 자연스럽게 그냥 놓아두는 것의 힘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저는 월말 학력고사의 피해자가 저 한 사람이 아니리라 믿고 있습니다. 석차와 점수가 공개되어 붙을 때마다 수치심이나 모욕감은커녕 모두 부질없다는 비웃음이 입가에 떠오르지요. 숫자 몇 개나 부호 또는 단어 몇 마디를 적어나가던 시험지의 빈칸을 기억하고 있거든요. 이것은 적응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훈련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장기에 얼마나 잘 순응하는가에 따라서 직업의 적성이 결정되고 어느 등급의 학교를 어느 때까지 다녔는가에 따라 사회적 힘이 결정되겠지요. 이러한 위계질서가 권력과 재산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저는 고등수학을 배우는 대신 일상생활에서의 셈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주입해주는 지식 대신에 창조적인 가치를 터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인식은 통일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며 이것저것으로 나눌 수 없다고 하던데요, 자유로운 독서와 학습 가운데서 창의성이 살아난다고도 합니다. 결국 학교교육은 모든 창의적 지성 대신에 획일적인 체제 내 인간을 요구하고 그 안에서 지배력을 재생산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모두가 신사의 직업을 우리들 앞에 미끼로 내세우지만 빵 굽는 사람이나 요리사가 되는 길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독 짓는 이는, 목수는, 정원사는, 또는 아무 일도 택하지 않는 것은. 피아노 배우기에서 여러 단계의 기계적인 손동작을 강조하는 교본들 대신에 예를 들면 처음부터 직접 `등대지기`라든가 슈베르트의 `연가곡`같은 노래를 연습하면 안 되는 것인지. 굳어져버린 코 큰 외국인의 석고상을 그리기보다는 학급 친구나 아우의 얼굴 또는 늙으신 고향의 할머니를 그리면 안 되는 것인지. 이것들은 제도 안의 최소한의 변화인데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선택의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기도 하지만 미지의 자유에 대하여 벅찬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스스로 만든 시간을 나누어 쓰면서 창조적인 자신을 형성해나갈 것입니다.
저는 결국 제도와 학교가 공모한 틀에서 빠져나갈 것이며, 세상에 나가서도 옆으로 비켜서서 저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해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자퇴 이유입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여러 가지 좋은 영향을 주셨고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박선생 놀라움을 넘어 웃음이 납니다. 금방 읽은 글이 50년 전 자퇴서란 말입니까?
유준 한국 사회에서 50년 전 상황이 그대로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지 않나요. 적어도 학교에서는 말입니다.
박선생 그렇지만 분명히 확인되는 지점이 있군요. 유준 씨 자퇴의 변은 오레사마된 지금의 아이들과 확연한 차이가 보입니다. 등가교환을 추구하는 아이들이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유준 씨는 미래에 작가로 성장하게 되지 않습니까.
박PD 우치다 선생님도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치다 저는 68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온 일본사회가 데모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지금이 수험 공부할 때냐'라고 생각해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데모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유준 우치다 선생님과 저는 많이 다릅니다. 제 친구가 4.19 때 경찰 총에 죽었습니다. 친구 장례를 치러주면서 저는 그냥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베트남으로 모레 떠나는데, 저도 제 어머니도 살아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입니다.
박PD 유준 씨의 생각은 나중에 달라집니다. 당신은 모르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요.(웃음) 유준 씨는 자퇴 이후에 어떻게 지냈나요?
유준 저는 전국의 공사판을 돌아다녔습니다. 그저 노동으로 땀을 흘리고 세상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목격하고 스스로 겪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자퇴 전에 신춘문예 당선됐지만 글쓰기를 접은 지 오래됐습니다. 이제 떠나야 하겠습니다. 어머니께 인사라도 드리고 먼 길을 가야죠.
우치다 유준 씨가 베트남에 용병으로 참전한다고 하니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1930년대 이후엔 미국의 청년들이 마르크스를 읽지 않기 시작했고, 일본의 청년들 역시 마르크스를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일본에서 마르크스를 읽다는 것의 의미는 마치 기독교인들이 성서를 읽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저 청년 필수 도서였던 것이죠. 마르크스를 읽음으로써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느끼고 지식인의 높은 윤리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엘리트들의 '통과의례적' 읽기였던 것입니다.
박선생 그런데 언제부터 마르크스를 읽지 않게 되었는지?
우치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르크스 사상을 제창하는 '좌익반대파'라고 여겨졌던 일본 공산당과 사회당이 정치계에서 당파 싸움을 일으키는 것이 쌓이고 쌓여, 마르크스는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가 형성됐습니다. 그 밖에도 국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테러리즘 등도 영향이 있었지요. 윤리, 인간성으로 상징되던 마르크스가 이로 인해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바로 1975년의 베트남 전쟁 종결에 의한 것입니다.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한 전후 일본 사회에서 마지막 '약자'는 군사 강대국인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북베트남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일본도 미국과 전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북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하는 마음, 그리고 일종의 그들을 도와주지 못한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마르크스를 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고 버블 경제가 시작되면서 마르크스를 읽는 사회적 분위기는 사라져버리게 됐습니다. 더 이상 약자는 없다, 라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박PD 한국도 있는데 말입니다. 한국을 향해선 연민과 동정의 정의감이 생기지 않았던가요? (웃음)
박선생 60년대 후반 동경대학교 사태에 관한 건데, 왜 데모를 한 건지요?
우치다 처음엔 사소한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학교 재정 관리가 불투명하다든가와 같은 문제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반미주의로 발전한 것이죠. 60년대 일미안보조약의 체결 등으로 인해 국가의 주권을 둘러싸고 반미 감정이 크게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박선생 저는 80년대에 대학생이었고 거리시위를 많이 겪었는데, 60년 대 말 일본 데모에 대한 자료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해 못하는 것이 있어요. 당시 동경 대학생들의 데모는 경찰에 맞서 맞춤형으로 헬멧과 방패, 군화, 각목 등을 제작했다는데, 이것을 보고 '정의를 위한 데모일지 모르지만, 너무 부르주아적 퍼포먼스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사회 변혁을 위한 데모였나요?
우치다 맞춤형으로 데모 도구를 제작했다는 것은 매스컴의 오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데모는 매우 상징적인 데모로 약자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테러와 같이 무언가를 파괴하고 부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극히 적었습니다. 오히려 데모에 참가해 한 대 얻어맞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았다고 보는 게 더 바른 이해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타도의 대상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도 아니었고, 뭣도 아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미국의 속국이 되는 일본에 대한 저항이랄까, 그런 성격의 매우 추상적인 데모였던 것이죠.
박선생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지식인적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지식인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의 지식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과연 지금 내가 가진 기득권을 버릴 수 있겠는가? 이를테면 한국의 데모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일어났던 데모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데모를 했던 사람들이 다시 기득권을 쥐고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상황이지요.
우치다 안타깝게도 그 부분에 대해선 일본은 한국과 이야기 자체가 다릅니다. 일본의 데모는 자기 징벌, 자기 처벌의 퍼포먼스 의미가 컸던 것이죠. 당시의 동경 대학이 대표적이지만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의 학생들은 ‘어차피 1~2년 뒤 대학을 졸업하면 정부기관이나 유명기업의 간부가 되어 기득권을 휘두를게 뻔하니까’라고 생각하고 데모를 한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자기가 그렇게 될 걸 아니까 그것을 자기 처벌적인 의미로 한 것이 그들의 데모였던 것입니다. 일종의 기간한정 데모랄까요.
박PD 거참, 윤리적으로 비난 받아야 마땅한 발상 같은데 도대체 그런 비난은 없었는지요?
우치다 딱히 그럴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전체의 95%였으니까. 그들은 왜 데모를 하는지도, 왜 데모를 그만두는지도 모른 채, 취업 시기가 오면 취업 준비를 해 대학을 졸업해 나갔습니다. 물론 나머지 5% 정도는 아니지만.
박선생 우치다 선생님은 그 5%에 해당된 거라고 말해도 좋은 건지요?
우치다 물론 나는 5%안에 들어갔습니다.
박선생 5%안에 들어가게 한 계기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렸을 때 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게 영향이라도?
우치다 정말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입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냥'. 이 무의식이 형성된 것조차도 '그냥'입니다.
박PD 의외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한국 상황과 많이 다르다고 느낍니다. 이쯤에서 장 선생을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장 선생님,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참,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장 선생님은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출간된 우치다 선생님의 저서 『스승은 있다』를 읽은 분은 아시겠지만 인간이 아닌 장어(鰻)입니다.
장선생 반갑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 메뉴 우나기(장어의 일본말)입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본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저를 찾는다는 것을 아시나요? 아직도 제가 어떻게 산란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제 자부심이죠.
아까부터 계속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치다 선생도 유준 씨처럼 노동 현장을 전전했는데 어떻게 동경대학교 학생이 될 수 있었죠?
우치다 고등학교 중퇴 이후 노동 시장을 둘러본 결과 너무 혹독한 환경인 것 같아 수험 공부가 낫다고 판단해서 죽어라 시험공부를 해서 동경대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고졸 검정고시도 봤습니다.
박선생 어떤 면에서는 아주 솔직한 사람이군요. (혼잣말)
장선생 『스승은 있다』에서 일본의 대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평가할 때, 그의 '알듯 모를듯' 한 글쓰기 기법이 아주 훌륭하다고 평가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우치다 선생님은 이렇게 잘근잘근 씹어서 최대한 쉽게 설명하는 건지? 일종의 자기 모순 아닙니까? 대중야합의 모습도 보입니다만…
우치다 하하하. 최대한 쉽게 설명해도 이런 불만을 듣게 되는군요. 일본에서는 보다 넓은 지식의 공유를 항상 강조합니다. 이것은 일본 지식인들의 사명입니다. 근대화기 일본은 외래문화를 급격하게 많이 수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외래문화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이 일본 지식인들의 역할이자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나츠메 소세키는 영국 문물을 소개한 분이었고 그 밖에도 독일, 프랑스 문물을 전파한 사람들이 있어서 일본의 근대화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나츠메 소세키는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그것마저 그만두고 소설가로 직업을 바꿨습니다. 대학 강의보다 소설이 훨씬 더 대중적이고 보급이 쉽기 때문이었죠.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의 내용을 보면 3명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한 명은 지식을 모두와 공유하고 전파하는 사람, 한 명은 지식을 썩히는 사람, 나머지 한 명은 지식을 자기를 위해 쓰는 사람이 나옵니다. 결국 지식을 모두와 공유하고 전파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하기 위한 작품입니다.
장선생 늘 선생님이 칭송하고 존경하는 레비나스, 레비스트로스, 라캉, 바르트의 나라 프랑스는 진보적인 사회학자도 많이 배출하고 학문적으로 매우 발달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국가는 보수적 성향을 띠는 겁니까? 미제국주의에 동조하거나 원자력 발전소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 중 하나라는 점이 이해할 수 없군요.
우치다 그러한 진보적인 지식들이 급속히 쇠퇴했기 때문이다. 5~60년대의 프랑스의 인문사회과학은 세계 제일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 후대의 사람들, 당시의 대중들에게 전파되지 못한 채 거기서 끝나버렸던 것입니다. 자기들끼리만 공유하고 유통시키는 지식은 이러한 문제를 낳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일본은 지식인들의 사명 자체가 대중에게의 보급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경우와는 매우 대조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선생 (듣기 편하지 않군! 지금의 일본 모습이 본받을만하다는 것인가? 쳇)
지금 이 시대에도 '지식'이라는 건 경제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지? 경제력에 따라 지식이 계층화되고 재생산되는 현상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치다 일본은 비교적 그렇지 않은 편입니다. 사람들의 인식자체가 지식만큼은 경제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지식의 유동성이 높고 지식 계층화를 최대한 피하려는 사회 풍조가 있어요. 이것, 지식의 공유와 보급은 인류 역사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인간은 그 시대에 더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여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유태인이 바로 그렇습니다. 서구 사회에서 유태인들은 보다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지식을 알기 쉽게 써서 보편화 시키려고 노력했고 공유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서구 사회에서 유태인들만이 유일합니다.
장선생 문자와 우치다와의 만남은 마치 물과 물고기의 만남이 아닐까요. 어찌보면 선생님은 문자시대에 잘 적응한 기득권층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무나 탈 수 없는 BMW와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집을 새로 짓고 살잖아요. 앞으로 탈문자의 시대가 조금씩 도래하고 있다고 여러 사람이 주장하는데 그에 대한 우치다 선생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우치다 아무리 획기적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조차도 활자를 기반으로 되어있습니다. 인터넷의 보급에 의해 많은 사람들의 리터러시(literacy)가 향상되었습니다.
장선생 활자가 쇠퇴하고 비주얼 이미지, 영상으로 대표되는 탈문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온다고는 생각하시지 않나요?
우치다 현재 내 생각으로 ‘오지 않는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비주얼이라는 것은 전력 공급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그것이 사라지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취약한 것이지요. 또한 문자 정보는 그것을 자기에게 내면화 시킬 여지를 제공하지만, 비주얼 정보는 항상 화면 저편에 있는 정보로 '내가 만든 것'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선생 탈텍스트라는 것이 꼭 텍스트의 완전한 폐기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갔다고 해서 농업이 없어졌나요?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갔다고 해서 산업이 없어졌나요? 패러다임의 변화는 무엇은 쇠퇴하고 무엇이 득세한다는 것이 아니라 변화발전의 방향성을 의미합니다. 하류지향하는 아이들의 리터러시 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그냥 ‘한심하다’, ‘바보 같다’고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등가교환의 컨셉보다는 텍스트 절대주의에 대한 반성부터 출발하면 어떨까요?
우치다 솔직히 탈텍스트의 이미지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텍스트 없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나 할까요? 문자는 인류역사상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정보가 저장 가능하고 관리 가능합니다. 리터러시의 저하 문제는 리터러시 저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 경험치의 문제에 있습니다. 개인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의 문제입니다.
박PD 장선생은 여기서 퇴장하셔야겠습니다. 좀 과열의 조짐이 보입니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기는커녕 불통의 느낌입니다. 이제 장선생은 부디 선한 사람의 식탁에서 행복을 나눠주고 먼 길 떠나시길 바랍니다.
박선생 비록 장선생의 이야기 방식이 서툴지만 화두를 하나 던지고 간 느낌입니다. 옳다는 신념으로 용광로의 쇳물처럼 이글이글 타오를 때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화난 원숭이 실험”이 미국의 미시건대학의 게리 하멜 교수가 70년대에 쓴 「시대를 앞서는 미래 경쟁 전략」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실험입니다.
4마리의 원숭이들이 한 방에 있다. 그리고 긴 장대의 꼭대기에 바나나를 매달아 두었다. 배고픈 한 마리 원숭이가 그것을 먹으려고 장대를 타고 올라가 바나나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천장에서 찬물이 뿌려진다. 깜짝 놀란 원숭이는 바닥에 떨어졌다. 나머지 원숭이들도 바나나를 먹으려고 시도를 했지만 장대를 오를 때마다 번번히 찬물 세례를 받는다. 여러 번 반복되자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먹으려는 시도를 아예 포기하게 된다. 이제 기존 네 마리 중 한 마리를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하였다. 신참 원숭이가 바나나를 보고 장대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자 고참 원숭이(Angry Monkey)들이 다가가 소리를 질렀다. 고참들의 외침에 위축된 신참은 결국 포기를 하게 되고, 그 이후부터 차례로 한 마리씩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되었는데도 포기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 후 모든 원숭이가 교체되고 샤워기가 제거된 후에도 어느 누구도 감히 장대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새 장대 위의 바나나는 만져서는 안 되는 금기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경직된 조직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흥미로운 실험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번 더 고민해야하는 점이 있는데 화난 원숭이 실험은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실험의 출처를 물어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멜 교수는 알 수 없다는 대답만 했습니다. 심증으로는 거의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이 실험이 지어낸 것이라면 화난 원숭이 실험을 듣고 관료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에 한탄하는 우리가 바로 화난 원숭이가 되는 것입니다.
박PD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자, 우리 프로그램을 마쳐야하겠습니다.
우치다 선생님, 화난 원숭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우치다 박선생의 이야기에 이번에 제가 무릎을 칩니다. 화난 원숭이의 문제는 자신의 위치를 고정한 것에 있습니다.
눈앞에 외국어 텍스트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사전을 찾으면 하나하나씩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단어를 나열해 봐도 문장의 의미는 전혀 모릅니다. 그대로 책을 닫고 다음날 열어 보아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음 날 열어 보아도 역시 모릅니다.
계속 쳐다보고 있다 보면 “아 그렇다”라고 자각하게 됩니다. 개개의 단어의 의미는 알고 있는데도 자신이 이대로 자신인 한 이 텍스트는 영원히 읽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아마도 이런 것이 써져 있음에 틀림없다”라고 해석의 가능성을 한정짓고 있는 자기 자신의 지적인 협소함을 부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내 안에서 과거 한 번도 상을 맺은 적이 없는 형상과 한 번도 감지되지 않은 정서와 한 번도 언어화되지 않는 명제가 이 세상에는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러한 종류의 텍스트는 읽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배우고 있을 때에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된 겁니다. 그 무지와 불능의 자각에 기초해서야 비로소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아는 시좌’라는 것을 상상적으로 설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상적인 시좌로부터 자신이 있는 곳을 조감하는 그것이 ‘매핑’입니다. 자신을 맵하는 지도는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지도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즉 지도에 기초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이미 풍경 속에 있고 그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움직이면 풍경이 변화합니다.
그 변화를 계산에 넣고 저편에 보이는 산의 고도와 거기까지의 거리를 계측하는 자신이 움직이기 때문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 조감됩니다. 자기자신을 포함한 풍경을 일망조감하는 힘 그것을 저는 ‘매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매핑은 정지 상태로는 불가능합니다. GPS가 아니니까요? 우주공간으로부터 인공위성이 내려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력으로 포지션을 짐작해서 알아맞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적인 지성의 훈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PD 아, 울림이 큽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아는 시좌’를 상상으로 확보하는 시청자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상 「이야기와 이야기가 만나는 네거리」를 마칩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pilogue : 내가 이야기이다
우치다 선생님의 말씀은 직접 인터뷰한 것과 우치다 선생님 저서를 인용하여 혼합 조제하였다. 그래서 이 글은 내가 정리했지만 수많은 앞의 선배들과 함께 만들어낸 내러티브다.
일본으로 우치다 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 신라대 박동섭 교수가 동행했다. 『스승은 있다』번역자다. 그 분이 없었다면 인터뷰 자체가 불가능했다.
우치다 선생님은 1950년 생, 황석영 선생님은 1943년 생이다. 두 분의 청소년 시기가 너무 비슷해서 대담 프로그램에 유준을 초청했다. 황석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의 주인공이자 황석영 자신이다. 이렇게라도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스승은 있다』61쪽에 다음의 글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저는 언제나 소설이라는 것은 3자 협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시바타 모토유키: 3자 협의?
무라카미: 네 3자 협의. 저는 ‘장어설’이라는 것을 갖고 있습니다. ‘나’라는 글쓴이가 있고 독자가 있죠. 하지만 그 두 사람만으로는 소설이라는 것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장어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우렁각시 같은 것 말이죠.
시바타: ?
무라카미: 그렇다고 해서 굳이 장어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웃음). 저의 경우는 우연히 그냥 장어입니다. 무엇이든 상관없는데 장어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저는 저 자신과 독자와의 관계에서 장어를 적절하게 불러와서 저와 장어 독자 즉 3명이서 무릎을 맞대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셈이죠. 그렇게 하면 소설이라는 것이 제대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장선생도 출연했다. 양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중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동물의 왕국>이 제국주의 논리를 전파하는데 사용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평생 잊히지 않는다. 그 말씀 이후로 <동물의 왕국>을 보지 않았다. 어쩌다 보더라도 재미가 없다. 그리고 관심이 사라졌다.
그러다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새롭게 <동물의 왕국>이 생각났다. <동물의 왕국> 문제점을 스스로 깨닫는, 우치다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새롭게 오해하는 일이 생겼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논리가 아니라 동물 세계에서 보이는 일이 사람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새로운 깨달음이다. 퍼스트 펭귄에 대해 우호적으로 인용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든 생각이다.
퍼스트 펭귄은 인지사회학 용어로서, 겨울의 강추위를 견디고 알을 수컷에게 맡긴 암컷은 자신과 남편의 생계를 위해 바다로 나간다. 그러나 바다는 이맘 때 찾아오는 펭귄을 잡아먹으려는 물범이 많다. 펭귄들은 그런 상황을 알고 있기에 선뜻 바다로 뛰어들지 못한다. 이때 퍼스트 펭귄이 바다로 뛰어들고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나머지 펭귄들이 뛰어든다는 개념이다. 조직에서 퍼스트 펭귄의 희생이 얼마나 숭고하게 다루어지겠는가. 누군가는 퍼스트 펭귄이 돼야하므로 그의 희생은 보험 제도처럼 조직에서 보상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겉으로는 퍼스트 펭귄이 되라고 분위기를 조성한다.
주류 담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범주에서 퍼스트 펭귄의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내게 이익을 줄 때 퍼스트 펭귄은 위대해진다. 하지만 배움의 환경에서 모두가, 언제나 퍼스트 펭귄이다. 옆 사람의 성취와 실패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퍼스트 펭귄이 되는 수밖에 없다. 철저히 배움 상황에서 탈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우치다 선생님과 만남을 통해 나는 그렇게 오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