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73 63 53 43 33 23 13 03 ― 00 07 04 03
甲 癸 壬 辛 庚 己 戊 丁 丙 --- 壬 庚 乙 庚 : 50세 乾命 (화신 명조)
午 巳 辰 卯 寅 丑 子 亥 戌 --- 午 午 酉 午
=> 묘한 점은 건륭황제와 똑같이 양인격에 庚午일주라는 점이다. 특이할만한 점은 庚午년 庚午일로 연일동 전지살을 놓은 점이다. 전지살의 특징은 하극상이라고 하는데, 연일동 전지살은 라이벌 의식이 아주 강하다.
=> 두 명조 모두 土가 기신인 명조에 水木이 필요한 명조인데, 건륭황제는 지지에 子水와 卯木이 있고, 화신은 천간에 壬水와 乙木이 있어서 서로 보완하고 있다.
두산백과
건륭제 [乾隆帝]
중국 청나라 제6대 황제(재위 1735∼95). 조부 강희제에 이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강희 ·건륭 시대’라는 청나라 최성기를 이룩하였으며, 이 시기에 중국 문화가 유럽 사회에도 널리 알려졌다.
출생-사망 : 1711.9.25 ~ 1799.2.7
국적/왕조 : 청(淸)
재위기간 : 1735년∼95년
본명 : 홍력(弘曆)
별칭 : 시호 순황제(純皇帝), 묘호 고종(高宗), 십전노인(十全老人)
활동분야 : 정치
이름 홍력(弘曆). 시호 순황제(純皇帝). 묘호 고종(高宗). 옹정제(雍正帝)의 넷째 아들로, 모후는 유호록(鈕祜祿: 弘毅公額亦都의 曾孫女)이고 황후는 부찰(富察: 察哈爾總管李榮保의 딸)이며 아들 17명, 딸 10명을 두었다. 옹정제가 제정한 태자밀건법(太子密建法)에 따라 1735년 황태자를 거치지 않고 바로 즉위하였다. 조부 강희제(康熙帝)의 재위기간(61년)을 넘는 것을 꺼려 재위 60년에 퇴위하고 태상황제가 되었는데, 이 태상황제의 3년을 합하면 중국 역대황제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다.
조부 때부터의 재정적 축적을 계승하여 안정되고 문화적으로도 난숙한 ‘강희 ·건륭 시대’라는 청나라 최성기를 이룩하였다. 초기에는 민중을 계도하고, 만인(滿人) ·한인(漢人) 간의 반목을 막고, 붕당의 싸움과 황족의 결당을 금하는 등 내치에 전념하였으며, 만년에는 중가르 평정 2회(1754 ·1757), 위구르 평정(1759), 대금천(大金川) 평정(1749), 대 ·소금천(大小金川) 평정(1776), 타이완(1788) ·미얀마(1778) ·베트남(1789) ·네팔(1790 ·1792) 등의 원정과 평정 등 10회에 걸친 무공을 세워 스스로 십전노인(十全老人)이라 불렀다.
또 조부 강희제를 본떠 남순(南巡) 6회, 동순(東巡) 5회, 서순(西巡) 4회의 내지 순회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외정(外征)과 내순(內巡), 천수연(千叟宴) 등의 사치로 막대한 경비를 낭비하여 만년에는 쇠운을 가져왔다. 정치적으로도 그가 총애하던 화신(和珅)의 전횡과 관리의 독직(瀆職), 만주인 ·무관들의 타락 등이 1796년 백련교(白蓮敎)의 난 때 표면화되었고, 각지에 반란이 일어나자 1795년 가경제(嘉慶帝)에게 양위했다.
문화적으로도 융성하였다.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의 학문·기술이 전래되고, 중국 문화가 유럽에 널리 알려지는 등 국제 교류도 확대되었다. 한편 고증학의 번영을 배경으로 《사고전서(四庫全書)》가 편집되고 《명사(明史)》가 완성되는 등 수사사업(修史事業)도 활발하였다.
화신[和珅]
중국 청나라 중기의 정치가. 건륭제의 총애를 받아 숭문문 세무감독(崇文門稅務監督) 등의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모으는 등 횡포가 극에 달하였다. 건륭제가 퇴위한 후 가경제(嘉慶帝)는 그를 체포하였고, 대죄 20조를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출생-사망 : ? ~ 1799
자 : 치제(致齊)
국적 : 중국 청(淸)
활동분야 : 정치
자 치제(致齊). 정홍기만주기인(正紅旗滿洲旗人)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입신양명하여 건륭제(乾隆帝)의 총애를 받고, 1769년 3등경거도위(三等輕車都尉) ·3등시위(三等侍衛)가 된 후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776년 군기대신(軍機大臣), 이어 호부상서(戶部尙書) ·의정대신(議政大臣)에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건륭조의 번영하는 시류를 타고, 숭문문 세무감독(崇文門稅務監督) 등의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모으는 등 횡포가 극에 달하였다. 건륭제가 퇴위한 후 가경제(嘉慶帝)는 그를 체포하였고, 대죄 20조를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그의 전재산은 몰수되었는데, 황제의 재산보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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