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투가 끼면 토박이말이 일그러집니다.
일본은 한국을 점령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돌섬’을 ‘독도’라 바꾸었듯, 땅 이름과 배달말을 모두 중국글자말로 바꿔치기 하고, 거기에 일본 가나글자로 토 달은 말이 우리 말이라 다잡았습니다.
일본말 ‘せんたく(洗濯)’를 ‘세탁’으로 옮기면서→‘빨래’가 밀려나고.
けいらん(鷄卵)을 ‘계란’으로 옮기면서→‘달걀’이 밀려나고.
べんじょ(便所)를 ‘변소’로 옮기면서→‘뒷간’이 밀려나고,
‘우리는 사람답게 산다. 사람답지 못하게 산다.’했습니다. 일본이 ‘인간적인 생활(人間的な生活)’이라 쓰고, ‘にんげんてきなせいかつ’라 읽게 했으니, 우리 말은 없어지고 ‘にんげんてきなせいかつ’란 말을 쓰다가 해방이 되었습니다. 마땅히 우리 말을 찾아야 할텐 데, 가나글자로 달은 토만 벗겨냈으니, 오늘날까지 ‘인간적인 생활’이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 가나글자로 토 달면 토씨까지 똑 같은 일본말이 됩니다. 그런 꼴로 살아남은 일본 토씨는
-적(的), 등(等), -화(化), -성(性), -당(當) -물(物) -하(下), -상(上), -감(感), -시(視), -리(裡), 재(再)-, 제(諸)-, 미(未)-, 대(大)-, 소(小)-, 신(新)-, 고(古)-, 현(現)-, 초(超)-, 탈(脫)-, 불(不)-. 합(合)-. 대(對)-. 매(每)-. -무(無)들들 중국글자 26 ‘한' '자'말투가 중국글자 앞뒤로 붙어 다니며 우리말을 어지럽힙니다.
또 ① <‘の’를 ‘의’>로 뒤쳐 쓸 필요가 없는 자리에 쓰고, 써서는 안 되는 자리에 쓰고, 다른 토씨에 군더더기로 부쳐서 괴상한 말을 만듭니다.
② <との→-와의, 과의>. ③ <への→-에의> ④ <への→-로의/의로의> ⑤ <からの→-에서의> ⑥ <としての→-로서의/으로서의> ⑦ <からの, よりの→-로부터의, 으로부터의> ⑧ <への→-에로의> ⑨ <-에게로의> ⑪ <-만으로의> ⑫ <-나름대로의> ⑬ <-마다의> ⑭ <-때마다의> ⑮ <-に於て→-에 있어서>들들이 배달말을 어지럽히고,
※ 입음도움움직씨를 아무데나 함부로 쓰는 것은 일본 말글의 영향임에 틀림없습니다.
㉮ <진다>. おとうさんのことをきかれるたびに. ‘아버지의 일을 ✔물어질 때마다’→{아버지 일을 물을 때마다}.
㉯ <된다> ‘✔시정돼야’→{시정해야/바로잡아야}.
㉰ <되어진다> ‘이러한 점은 ✔극복되어져야 합니다.’→{이런 점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되다’와 ‘지다’는 같은 남움직씨끼리라 포개 쓸 수 없습니다.
㉱ <불린다. 불리운다> ‘5공비리라 ✔불리는’→{5공비리라 부르는/말하는}.
※ <서양말이 우리말본을 허무는 곳>.
ㄱ. 서양 때매김을 흉내 내는 것으로, ‘의지를 ✔불태웠었다’.→{불태웠다}. 우리말의 때매김은, 이적(현재) ‘-고 있다.’· 지난적(과거) ‘-고 있었다’· 올적(미레) ‘-고 있겠다’가 있을 뿐이지, 지난적끝남때(과거완료시)라 하여 ‘-고 있었었다’고 쓰는 법이 없습니다. ‘가고 ✔있었었다.’라는 ‘지난적나아가기끝남때’도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꼭 ‘✔가고 있었었다’로 쓸 일이 있다면 {간 일이 있었다./간 바가 있었다.}고 씁니다.
ㄴ. 가지다, 우리 조상은 스스로 하늘이 주신 백성이라 생각하고, 이 세상 온갖 것을 끔찍이 여겨 제게 따른 것 조차 '가졌다'고 하지 않고, 나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내게 땅마지기나 '있다.' 말하며 살았는데, 서양말이 들어오고,
거주나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자유가 있다.' 의사들이 연극 공연을 '갖는다.'→'공연한다.'
ㄷ. 낱말 차례를 바꾼 보기, 타고난 '저마다의 재능'→'저마다 타고난' 재능.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주말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들들
모르는 남의 말이 끼는 것도 문제인데 위와 같이 남의 말투(말본)가 끼면 말이 헛갈려 가리타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대로 말이 굳어지면 우리 말이 없어지고 짝퉁말이 됩니다.
만주는 제나라 글을 가지고 청나라를 세워 300년 넘게 중국 땅을 다스렸습니다. 청나라는 만주글자와 중국글자를 섞어 쓰다가 나중에는 중국말에 만주말을 다 먹혀버리고, 끝내는 제 말과 글이 사라지면서 나라도 없어졌습니다. 이와 다르게 이스라엘은 몇 천 년 동안 세계를 떠돌아다녔지만 제 나라 말과 글을 지킨 끝에 나라를 다시 세웠습니다. 이와 같이 말과 글은 나라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 글말을 쓰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삶을 사는 겨레는 남의 글말을 빌려 쓰는 겨레들입니다. 입말로는 제 겨레의 말을 하지만 학교에 가서 남의 글말을 배우고는, 그것만으로 사람다운 모듬살이는 할 수 없습니다. 제 겨레의 입말로만 사는 사람과, 남의 글말을 배워서 두세 가지 말을 쓰는 잘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신분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이 살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답게 산다는 잘난 사람들은 제 겨레의 입말까지 잊어버리고 남의 글말만을 온전히 쓰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잘났다고 지껄이던 남의 나라 말조차 본토 말과는 거리가 먼 퇴색한 짝퉁 말이 되면서, 설 곳 없는 신세가 됩니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본디 주인들이 거의 그렇고, 인도 대륙과 필립핀이나, 중화인민공화국에 싸잡힌 겨레들이 그런 겨레들입니다.
우선 쓰기 편하다고 남의 말과 글을 빌려 섞어 쓰면, 배달말은 점점 힘을 잃게 되고, 따라서 나라의 힘도 점점 없어집니다. 말이란 세월이 갈수록 굳어져 도리키기 어렵습니다. 말의 예속은 곧 주권 예속입니다.
고조선 시대에는 우리 겨레가 동아시아의 주인 노릇했던 것으로 봐 우리겨레가 입말만으로 살 때도 배달겨레 입말은 서로 주고받기에 어렵지 않을 만큼 한 동아리 말로 자라났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우리 입말을 우리글자로 적지 못하고 신라가 중국글자를 끌어들이면서 우리 입말이 흩어지고 나라의 힘도 흩어져 일본의 침략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남의 나라말을 똗똑히 익혀 문명을 받아들이는 한 편, 토박이말을 살려야할 까닭은 토박이말은 애초에 생겨나면서 겨레의 느낌과 생각과 뜻과 얼이 어울리는 것이라, 사람 사이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겨레의 힘이며 나라의 힘이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아야하겠습니다.
4348. 6. 15. 문영이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