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탁발승의 발원
윤명수
추적추적 비를 젖던 어느 저녁 무렵이였다
두꺼비 한 마리가
느릿느릿 부엌문 앞으로 탁발을 하러 왔다
어느 절에서 온 스님일까
걸망도 바리때도 없는 맨몸에다 빈손이었다
주름감퇴기 찌든 얼굴에
눈만 끔벅끔벅 도통 말이 없었다
무자(無字)진경을 깔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세속에 젖은 옷을 입고 있는 나를 읽고 있는 듯
소리 없는 설법을 시작 했다
벗어라 벗어라 홀랑 벗어라
나는 한순간 홀딱 벗긴 채 서 있었다
스님은 파리 몇 마리를 공양받은 후
마음속으로 깊은 합장을 하고
어디론가 시나브로 떠나버렸다
나는 다시 세속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우매한 중생이 되어
고해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첫댓글 선생님 귀한 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