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한 아이가 있었다. 일찍이 만나보지 못했던 유형의 아이였다. 아이는 수도권에 살았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힘들었고, 인터넷으로 우리학교를 검색해 전학을 왔다. 남도의 끝 강진에. 통 말이 없었다. 말을 걸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빙그레 웃었다.
독후감 숙제를 내면 책을 아예 베껴 쓰듯 정리하거나, 책과 상관없는 자기 얘기를 쓰기도 했다. 아이가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의심이 들었다. 난독증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았다. 평소에도 4차원식의 농담을 달고 다니니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아이로 통했다.
경쟁을 극도로 싫어하고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변죽 두드리기를 좋아하고 개그맨같았다. 축구를 할 때도 공을 잘 차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느냐가 더 관심이었다. 러시아식 개털모자를 쓰고 다니든가 수업시간에도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살고 콧수염을 까맣게 길렀다. 머리는 눈이 안보이게 다스베이더의 헬멧 같이 덮이게 하고 다녔다. 나도 수시로 별명을 바꿔 불렀다. 주로는 포르뚜나 다스베이더라고 불렀다. 늘 느긋했고 유쾌했던 아이다. 아이는 졸업할 때까지 논리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만의 사유구조와 자의식이 뚜렷한 글을 썼다.
하지만 아이가 떠나고 아이의 글을 다시 읽다가 새삼 감탄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이의 글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을 그대로 보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자부했으면서 오히려 내가 독서와 글쓰기의 전통적이고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평가하고 조급해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이 아이는 내가 만난 새로운 인류의 한 모습이었다. 책에 의존하는 아날로그인으로서 나는 스마트폰을 쥔 디지털세대의 소통방식에 낯설었다. 하지만 객관적 논리가 아니라 주관적 경험과 연상에 충실하여 자동기술법같이 느껴지는 아이의 글쓰기는 얼마나 명료한 것인가? 그 안에서 아이의 주체성은 능동적이었다. 나는 아이가 이상한 스타일로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이에게 이상한 스타일의 세상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의 세계에 대해 아이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시 세편을 싣는다.
하늘
하늘을 봐 하늘이 보여
하늘이 5000천 년 전 거울이야
하늘을 봐 땅이 보이네
땅을 불러봐 땅이 하늘을 마주 보고 있어
하늘이 하늘색으로 땅이 갈색으로
이건 기적이야 영어로 미라클 아기는 미라클을 착용해
아기는 기저귀를 입어 어른이 되기 전에 하나의 과정
아기는 하늘이야 눈에 넣어도 안 아파 하늘은 아기
아기는 하늘 아기는 손아귀 힘을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을 잡는데 쓰지 않아 위험한 것을 잡는데 사용해
악의 없이
나 스스로
세바시양준일,박재연을보고나는생각했다.포기하지말자하늘이쪼개져도솟을구멍있다.나는내가할수있는것이무엇인가그것은의자에앉아이비에스강의를키는것그리고듣는것그것이내가할수있는것.이비에스강의를듣는것이중요하다.얼마남지않은고등학교졸업곧사회로나가기직전아직남은시간이많지는않지만이것을잘보내야된다이중요한시기에나는이비에스강의를듣고한걸음사회로가까워지는것을느꼈다.정보의홍수시대나는유튜브를보는시간을늘가졌었다.분명한것은유튜브로는내가성장하기힘들다는것을알았다.일단투탑수학을풀고이비에스강의를듣고늘사진화시켜야한다.그것은훈련이겠지.그것을위한사진들을모으고모아야한다.그리고생각한다.사람은같은생각위주로하겠지.나는다른생각을하기위해경험이중요하다고생각한다.초등학생시절등교길에어떤아주머니가학교에태워주신다고했다.나는바로차에탔다.그리고그아줌마는나를학교에데려다주셨다.그리고나는생각했다.만약그아줌마가유괴범이었으면아마나는지금쯤.그렇게나는경험이라는것을통해다른생각을할수있었다.하지만한번가지고는힘들겠지.만약그이후에누군가또그런식으로했더라면아마똑같이했을것이다.무엇이나를나로만들어줄까.주변환경이중요한건중2겨울까지다지금나는고3이다.이제슬슬내스스로가되어야한다.
2918년 2월 9일 18시 00분
김개미라는 아이가 있었다.
김개미는 잠에서 일어나서 일을 한다.
김개미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놀러간다.
김개미는 놀다가 힘들어서 하던 놀이를 멈추고 자러간다.
김개미는 자다가 꿈을 꾸는데 김개미가 잠자는 모습이 보였다.
김개미는 자는 김개미를 깨우는데 일어나질 않는다.
김개미는 영원히 잠자는 게 무섭고 두려워서 일단 눈물을 흘렸다. 꿈에서 깬 김개미는 어제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쉼 없이 일을 한 후에 어제보다 열심히 놀이를 하고 집에 가서 잠에 들기 전 상추가루를 치약에 뿌리고 99초 동안 양치질을 하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