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65년 50년 지기 귀한 친구 둘이 있다
한 친구는 역삼동에 또 한 친구는 북쪽 숲 속 힐에
내가 60년대 후반부터 겨울 방학이면 빠짐없이 서울을 오가게 되었다
그 당시 만 해도 정치 문화 교욱 경제 사회적인 여건이 서울 과 부산은 30여년의 현격한 차이가 있어 서울을 둘러보고 내려가선 서울 의 변화되는 모습과 새로운 문화를 꼭 들려주곤(그무렵 주로 고학년을 맡았기에 ) 했었다
물론 40여년이 흐른 지금은 시골이나 도시나 농, 어촌이나 전 국토 평준화 시대 세계에서 살기 좋은 우리나라 좋은 나라 !
대한미국이여1
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 까지 만 해도 밤 열 한시 기차를 타면 새벽에 내려서 역삼동을 가게되는데 이친구는 아방궁에 살면서도 언제나 친 형제 처럼 추호도 내색하지 않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두 내외가 맞이 해 주는 정감있어 딸애 유치원생이 되면서 부터는 애들 둘을 데리고 서울 나들이를 종종 하면서 부산과 서울의 문화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시야를 넓혀 주며 공부할 수 있는 꿈을 심어 주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으며 지금까지도 두터운 우정의 죽마고우 잔뼈가 굵어온 70년 지기로 변함 없이 잘 지내고 있다
88년도 의 올림픽을 개최한 그 해 겨울 방학엔 강남 역삼동 친구의 자택에서 며칠을 머물며 많은 구경을 시켜주고 올림픽 경기장을 구경하고 나오다 교통 사고가 났다 그때의 시련은 경제적 시련보다 몇 십 배의아픔을 가져다 주었다
귀한 생명을 잘 길러 이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나의 신념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병원에 갔을땐 다행이 뇌에 큰 손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현대 중앙 병원에서 일주일 간 치료를 잘 받은 후 퇴원하였다
부산에서 퇴임( 2005, 8,30)후
그해 9월 15일 서울 올라와 하루가 멀다고 불러 재치는 역삼동의 아방궁!
이 친구는 지금까지 여중 3년때 경여고 시험을 같이 본 친구로 역시 나보다 한해 먼저 고향에서 고교를 마치고 그 당시 부산 사범대학 음대에 들어 와 우리의 한해 위에 졸업하여 중학교에 발령 받아 4년 후 그 당시(60년대후반) 영동의 잠실 벌 (현재의강남구 )도시설계를 맡아 토목 기사로 (우리나라 다섯 손가락안에 꼽히는 유능한 분) 일하시는 분과 결혼하여 강남하고도 역삼동에 테헤란 도로를 끼고 전철역 3번 출구 부근 중심부에 아방궁을 지어 그 곳에서 만 40년여를 살고 있는 아주 절친한 친우며 방학때마다 올라오면 내방까지 마련해 주는 배려심도 감사하였다
숲 속 힐에 사는 친구는 (70년 대 후반~80년대중반까지로 기억한다) 김해에서 목장(농장)을 하며 우리 집에 들러 하루를 지내게 되었다
그 다음 날 나는 출근하게 되어 (당시 딸 애가 대 여섯살로 기억한다)애를 데리고 학교 가야 한다니 깜짝 놀라며 목장에 데려가서 놀다 오겠다며(하루라도 너의 힘을 들어 줘야 되지 않겠니하며 ) 데려가 오후에 올 땐 단감을 많이 가져 왔었다 그래서 지금도 "목장 이모야"로 불리며 그 후 로얄 승용차를 운전하며 경부 고속도로 그 먼~ 길을 얼마나 오갔는지 슈퍼우먼의 뛰어난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 하다(물론 지금은 bmw를 몰고 다니지만 )
90년대 중반에 힐 친구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그 후 몇 년이 지나보니 워커 힐에 옮겨 살고 있었다 아파트의 규모는 말할 것도 없지만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산 자락의 환경이 너무 아름다워 완전 숲 속의 공주라 명명하지 않을 수 없었고 봄이되면 여의도 벗꽃 놀이를 방불케하는 왕 벗꽃의 축제야 말로 어느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리라
볼품없고 모든면에 견줄나이 없이 나 못난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 주위 아는 분에게 나눔과 사랑의 크리스챤 정신을 실천하는 그모습 나아가 바느질, 뜨게질 솜씨 하며, 간장 된장 고추장 까지 담아먹는 그 여성스러움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마음씨가 내 마음을 사로 잡는 친구다
게다가 성악의 격조 높은 소프라노를 부르면 신영옥 조수미를 방불케한다 더욱 미술계의 그림 솜씨는 나이 50넘어시작한 작가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인사동 겔러리의 10여회 이상의 전시회 더 나아가 일본 3회,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 각지에서 국제적인 전시회를 마치고 돌아온 재원의 젊음을 방불케하는 팔방미인의 휘귀족 이라고나 할까?
그 후 2000년대 초 반엔 양평 친구의 별장엘 가는데 봄날에 양평가는 길목의 물안개 피어나는 그 아련한 호수의 절경!
천상이 따로 없으리라
워커 힐 가정도 참 잘 꾸며 이게 "사람사는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정이구나 " 하고 놀랐는데 양평 별장은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로 잘 꾸며 천국에 온 기분 이었다 실내의 집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500평 되는 뜰을 가꾼 나무하며 그 주변 친 환경 또한 아름다운 산새를 감상할 수 있는 운치야 말로 내 마음까지 풍요로와 지게했다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두 친구의 삶을 들여다보며 역삼동과 워커힐을 오가며 서울 에의 꿈을 키우며 오늘에 이르렀다
나에겐 서울에 피 붙이라곤 아무도 없었으나 두 친구의 물심양면 도움으로 이곳에 올라올 수 있는 티켓을 빋았으니 또한 귀한 공주의 결혼도 시키고 아들도 외국 현지 근무 마치고 돌아온다는 낭보와 함께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이자리를 빌어 간단히 딸애 자랑이 하고 싶으나 다음기회에 여행기를 적었으면한다
잘 쓰는글도 아닌데 흥미없는 글 이해바라며 약속대로 여기까지는 마무리 를 해야 겠기에...
날씨가 매우 무덥죠 검은 콩 많이 드시고 어쩌든지 건강에 유의하셔서 가을 야유회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기대합니다
13, 7, 31
남해
첫댓글 남해 님의 그토록 절친한 두 친구가 있었고, 오랜세월 자매처럼 지내게 된것은 남해 님께서 몸소
깊고 따뜻한 우정을 베풀었기에 서로의 정이 두터워 졌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래토록 우정을 잘 간직하시고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북쪽 힐과 양평 별장을 한번 구경하고 싶은데, 가실때 한번 같이 갈 수 있는지
연락 바랍니다
남해 선배님! 우정도 나무와 같다더니 참으로 잘 가꾸신 우정입니다. 많은 친구가 뭐 그리 필요하겠습니까?
피를 나누 듯 우정을 키우신 선배님 인생이 참으로 행복하십니다.
몇번 들었던 이야기지만 지면으로 읽으니 새롭게 느껴지네. 서울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해 준다.
정년 후 서울 왔으니 별로 아는 사람도 없을텐데 돈독한 우정이 있어 다행으로 여기며 북쪽 힐(양평 별장) 친구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
이동문은 활달함을 느껴요. 자신감에 차 있고, 매사 적극적인 인상에 자상함, 섬사람의 끈기와 인내심에 추진력 있고. 박진감 넘칠 삶의 꿈을 실현하려한다. 좋아요.
인생의 동반자인 절친한 친구를 둘이나 가졌다니 남해동문은 마음의 부자입니다..
남해님, 언제나 열정이 넘쳐나는 그 마음이 항상 배우고 싶습니다. 변함없는 그 우정 길이 길이 간직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