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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지역 시민사회 방문기
이 대 수(한일100년평화시민네트워크)
2010년 1월 30-2월 2일 오카다선생 김승국대표와 함께 일본 가와사키시 도쿄 구니다치시 지바현 등 수도권 여러 기관과 단체를 방문하였다.
가와사키NPO와의 교류
1월 30일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오카다선생의 마중을 받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 주차장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와사키 지역시민센터로 향했다. 가와사키는 거의 10년만에 방문하는 것 같았다. 딸 나오코씨가 마중을 나와주었고 NPO페어가 마무리 되고 있는 중이다. 가와사키 지역내에서 활동중인 NPO들의 모임인데 1층에는 장애인들의 작품전이 열린다는 안내 표지판에 눈에 들어왔다. 2층에서 후루노 야스요씨가 반갑게 맞아 준다. 그리고 낮익은 얼굴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모임’ 사무국장인 기세씨가 안내를 해 주는데 부천시와 교류하면서 작성한 그림을 전시했다가 철거하던 중이었는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1층에 내려가니 간단한 만찬을 하는 중인데 일종의 친목회 분위기가 느껴진다. 간식도 먹고 사회자가 마이크를 주어서 간단히 일본말로 인사를 하니 반갑게 맞아 준다.
나오코는 연세대 한국어 학당에서 배웠는데 아주 서툴러서 쩔쩔매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후루노 야스요씨가 "배가 고파요"라는 말을 하는데 왠일인가 싶어 진의를 확인해 보니 '보고 싶었어요' 라는 말인데 한글이 서툴러 그렇게 표현한 것이어서 모두 한참 웃었다. 후루노 야스요선생은 한국강제병합100년 한일공동행동 실무회의를 위해 떠났고 우리는 잠시 후 다시 모여 전철역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회과 교사인 사또선생은 자신의 반 아이들이 한국의 고등학교 학생들과 교류를 하던 중 독도문제로 한일간의 갈등이 생기자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교류를 중단시켰다고 하면서 아쉬워 했다. 그래서 가능한 방법을 알려 주었다. 잠시 후 마중나갔던 오카다 선생과 김승국대표가 돌아와 우리들의 토론자리는 더욱 풍성해 졌다. 10시경 일어나 오카다 선생이 준비해 둔 숙소로 이동했다. 작은 2층집인데 1층 다다미방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맥주 한잔을 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전후보상네트워크 아리미스 캔 대표와 쇼와관
아침에 일어나 근처 작은 목욕탕으로 향했다. 어릴 적 동네 목욕탕을 연상하게 되는 모습이었는데 싸우나를 이용하려면 2백엔을 더 내야 했다. 더욱이 목욕 후 헤어드라이기를 사용하려면 2십엔 동전을 넣어야 했다. 한편으로는 선택의 폭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목욕비에 모두 포함되는 모습에 익숙한 탓에 야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 근처의 구단시다 회관으로 가서 아리미스 캔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를 만났다. 그는 우리가 아소 탄광과 지쿠호지역 강제동원문제를 제기하는 피해 증언자 집회를 개최하려는 것을 지지해 주면서 결국 전후 결산을 위해 독일처럼 정부와 기업이 책임을 지는 입법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는 적극 동의해 주었다.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전문가다운 안목에 감탄했고 활동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각자의 할 일 때문에 우리 셋은 헤어졌고 혼자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쇼와관을 방문했다. 일본의 전쟁 중의 생활상을 시기별로 전시해 두고 있었다. 인상적인 장면은 미군의 본토 공습으로 인한 피해자 현황을 일본지도와 함께 자세히 표해두고 있는 벽면 지도였다. 일본의 피해자로서의 의식은 분명한데 전쟁을 유발한 책임과 식민지배와 전쟁을 통해 아시아 여러 나라 특히 조선민중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 과거사 청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현주소 특히 이것이 바로 일본의 현대사 특히 쇼와일왕이 지배했던 시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옆에 있는 기타노마루공원을 잠시 돌아본 후 야스쿠니신사로 향했는데 입구에서 입본해체저지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외국인 지방 참정권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하는 모습이었다. 외국인에 참정권을 주는 것은 특혜이며 일본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참정권을 공약했던 민주당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말로만 듣던 우익그룹들의 활동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줘준 유인물도 살펴보고 마침 신사 내에서 열린 벼룩시장들 둘러보고 사진도 찍어 두었다.
한국강제병합100년한일공동행동 실행위 발족집회 참석
다시 지하철로 약속장소인 와세다봉사원으로 향했다. 1983년에 처음으로 방문했던 일본기독교센터 빌딩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봉사원 강당에 들어서니 낮익은 100년네트 회원들의 얼굴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가끔 낮익은 얼굴들이 보이고 인사도 나눴다. 1부는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만들어 가자는 슬로건과 함께 한일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가 발족되는 행사였고 2부에는 국치100년공동사업추진위에서는 이이화선생의 인사말과 이석태 변호사가 주제 강연을 했다. 그리고 분야별로 과제를 발표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나도 마지막 시간에 6월 말 아소탄광과 지쿠호지역 강제동원피해자 증언집회가 예정되어 있음을 알리고 8월에는 1백명의 평화통신사 방한을 추진하고 있으니 관심가져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양국에서 공동으로 개최되는 한국강제합병100년 한일시민공동선언대회에도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근처 식당에서 뒷풀이가 시작되었다. 각자 소개를 하고 간간히 노래도 부르는 시간 그리고 흥겨운 분위로 이어지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가 되었다. 몇 명 시의원들은 위안부문제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도시의 의회도 있는데 평소 관심갖고 활동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밤 10시를 훌쩍 넘기고서 지하철로 집으로 돌아왔다.
가와사키 시의회를 방문하다
2월 1일 아침 지하철로 이동해 가와사키 시의회를 방문했다. 가와사키 시의회는 모두 63명의 시의원이 활동중이고 그 중에서 세 명의 여성의원이 맞아 주었는데 가나가와네트워크 山口和子 佐々木ゆみこ 의원 무소속 시민파를 표방한 いのまた美恵의원과 간담회를 가졌다. 가나가와네트워크는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어 익숙했고 시민파 의원과는 녹색당 이야기로 통해서 반갑기도 했다. 그들은 자민당이나 민주당 등 정당에 소속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시민들의 요구를 정당의 논리로 받아들이는데 자신들은 시민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실행한다고 했다. 즉 정당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성 정당에 대한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생각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국강제병합 100년과 관련한 여러 가지 청산되어야 할 과제들과 관련해 일본의 제일 큰 민주당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민족문제보다 인권문제 동아시아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조언을 주었다. 그리 이제는 시민뿐 아니라 경제인 정치인 모두 동아시아에 대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김승국대표가 YMCA에서 평화운동으로 철원을 방문할 때 갔던 적이 있다. 올해가 한국전쟁 60주년 이기에 이제는 평화와 마을만들기를 통합해서 ‘평화의 마을만들기’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야마구치현의 미군기지 주둔에 대해 주민투표로 바꾸게 된 첫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들어 설명해 주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비서직원 책상이 놓여있다. 개인별로 보좌관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어 있는 각 당파별 사무실이 인상적이다. 공산당 가나가와네트워크 무소속 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전철을 타고 구니다치로 향했다.
구니다치의 로칼거버넌스에 박수를
구니다치시는 오래전부터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역에 내리니 공사중이었는데 문교도시 지정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우에하라 히로코 전 시장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그녀는 생활자네트워크 출신의 첫 시의원으로서 고층 맨션아파트를 지으려는 움직임에 맞서 경관운동을 전개하였고 1999년 무소속연합후보라는 독특한 방식의 선거를 통해 시장으로 당선되어 2기 8년을 연임하였다. 2000년 6월 한신대학교 개교 60주년 국제학술회의 행사에서 함께 발표자로 만난 적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거리 곳곳을 돌며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소개 도중 인사를 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경관운동을 시작한 작은 의원앞에 도착해 보니 10층높이의 맨션아파트가 시야를 가리고 있다. 경관조례를 제정하여 고층 빌딩이 들어서지 않도록 제한하는 활동을 했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건설업자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부분적으로 승소해 맨션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리는 폭 48미터인데 차도 보다는 양측에 넓은 녹지와 인도를 확보해 아름다운 거리라는 인상을 주었고 길 주변의 건축물도 저층으로 짓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특히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데 유치원부터 초중고 학생들이 관리하도록 했다고 한다. 직접 쓴 관리자의 작은 간판이 붙어 있고 관리했던 사진도 함께 나무판에 붙어 있다. 그리고 나무마다 번호판을 붙여 전체적으로 구니다치시의 관리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길가에는 수많은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대학 입구 주변이 자전거 주차장인 셈이다. 히도츠바시대학 캠퍼스에 들어가니 로마네스크형식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캠퍼스다. 2차세계대전 중에는 이곳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창업해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고 이어서 NPO지원실 옆 강의실에서 간담회가 이루어졌다. 시청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층 아파트단지와 붙어 있는 상가 건물 내에 자리잡고 있어 접근성이 좋아 보였다. 로칼파티를 표방하는 도교생활자네트워크 소속 이타야 노리코, 아베 미치코 여성의원 녹색당 소속 시게마츠 도모히로 의원 그리고 2년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시민의 눈높이에서 예산분석결과를 내 놓은 ‘마을예산을 배우는 회’라는 시민단체 임원 2명이 함께 참석했다. 예산분석을 하면서 최종 목표는 시민이 예산(지출)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 직원은 소속 부서의 일부만 알고 있어 전체를 보는 것은 시민의 몫이라는 것이고 일종의 시민권력 실현이라고 이해 되었다. 예산이 들지 않지만 생활상의 필요에서 출발한 목욕탕에서의 건강체조 배우기 가로수 시민관리 등 다양한 사업을 소개해 주었다. 시민운동과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과 토의도 진지했다. 아베의원은 교사였는데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에 관해 행정적으로 알아야 했고 또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 일을 계기로 교사를 사임하고 의원으로 나서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49만엔의 월급을 받는데 10만원을 생활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무실 얻고 활동하는데 교사보다 월급이 적어 모금을 해서 활동을 한다고 했다. 안정적인 직업인 교사를 그만두려는 용기에 감동을 받았다. 두차례나 실패했지만 생활클럽 조합원들이 물건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에 참여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점 특히 생활안전 물의 안전 등을 제안할 수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생활에서 출발해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실현하고 있는 구니다치의 '로컬거버넌스(지역협치)'를 실감하게 하는 아주 모범적인 사례였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구니다치시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시정과 관련한 많은 정보가 공개되고 있는데 시장의 업무추진비가 지역 단체 행사에 격려금 5천엔 지출 등으로 상세히 공개되어 있으니 투명시정의 상징으로 보였다. 돌아와 자료를 찾던 중 구니다치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선생이 일제시대 이 곳 구니다치 음악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일한시민자치교류회에서 준비되는 평화의 미래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기차역으로 이동해 도쿄 시나가와역으로 향했다. 지난 해 5월 사회복지관에서 발표와 토론모임을 가졌던 곳이기도 해서 익숙하다. ‘시민에 의한 마을만들기와 지역으로부터의 평화만들기’를 주제로 한 교류회는 오카다선생과 가와모토의원 일본희망제작소 깃카와 준코 사무국장 일본100년네트 간토지역 사무국의 가메다 선생이 공동으로 제안하고 준비해서 이루어진 자리였다. 낮익은 얼굴을 포함해 20명 정도 인원이 모였고 나와 김승국대표의 발표가 있었고 이어서 소개와 토론도 진행되었다. 이미 발표문을 급히 작성해 오카다 선생편에 전달했기에 간략하게 소개 했다. 천황제문제가 21세기 일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점을 여왕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는 식민지 모국 영국과의 비교를 통해 설명했다. 그리고 글로벌화 되고 있는 시대에 정보통신의 발달을 통해 손쉽게 국제적 교류가 가능해 졌기 때문에 이러한 장점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준비중인 여행자협동조합에 관해 설명하면서 글로벌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으니 함께 하자는 제안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자리교류회를 한일간에 번갈아 개최하면 다양한 분야와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함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활동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도 힘주어 설명했다. 김승국대표는 최근의 한국 정치 상황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뒷풀이 장소로 이동해 통역자인 이양수선생의 도움으로 좀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에 두 번째로 만났는데 한일회담 문서 공개촉구 활동을 하시면서 맹 활약 중이시다. 한국어 번역자기이도 한 엠네스티 지부 대표인 아오야기선생은 한일공동행동실행위 발족식 뒷풀이 자리에서 인사를 나눈 덕분에 다시 반갑게 만났는데 곧 한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며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 아쉬운 작별을 하고서 거의 마지막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쿄만 갯벌을 지키려는 모임과 지역통화 피넛츠
아침 7시에 짐을 챙겨 지하철로 치바현으로 이동했다. 도쿄역에서 환승을 위해 허겁지겁 달려 기차를 타고 약속대호 8시 40분에 전철역에 도착해 승용차로 가와모토의원과 치바마을만들기 서포터 센터 구리하라 유지 부대표와 함께 도쿄만으로 갔다. 산반제(三番瀬)라는 해안 갯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해 온 분들을 만났다. 일본의 해안은 대부분 매립으로 인해 자연갯벌이 사라지지고 있다고 했다. 산반제는 도쿄만에 남은 거의 마지막 갯벌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키려는 노력이 더 소중하게 여겨 졌다. 꽤 오래전에 도쿄만의 야조공원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 올랐다. 주변의 공업지역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갯벌이 어렵게 보존되고 있는 곳이었다. 지난 해 5월 나고야의 리싸이클링 단체를 방문했을 때 그 곳에서도 후지마에 갯벌의 쓰레기 매립장을 건설을 저지시켰던 사례도 주목할만하다. 여기는 주민들이 수십년간 싸워서 갯벌을 지켰다고 하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령이 많은 분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는데 한참을 돌아보고 또 필드스코프로 철새를 살펴보는데 참 아름답게 여겨졌다.
이어서 가와모토의원의 승용차로 치바대학교로 이동했다. 마을만들기를 하는 후쿠가와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시간에 쫒겨 제대로 이야기도 못했는데 대신 4권자리 자신의 책을 선물로 주었다. 쉽게 그림을 통해 설명해 주는 수준인데 오카다 선생이 번역을 검토해 보기로 하였다. 이어서 지역통화를 하는 피넛츠(치비현의 대표 농산물) 대표를 치바대학 앞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10년이 되었는데 1천 8백명의 회원과 60개 가게가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지불 금액의 10%내에서 지역통화로 지급하고 있다니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비행기 시간에 쫒겨 혼자 가와모토의원의 승용차로 기차역에 도착해 리무진버스를 타고 1시간 거리의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다. 가와모토의원, 그리고 오카다선생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친절과 수고 덕분에 좋은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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