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학생의 하루는 입력으로 가득하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간다. 집에 돌아오면 숙제와 문제집을 푼다. 주말에는 보충수업과 특강이 기다린다. 쉬는 시간에도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학생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내용이 계속 들어온다.
학부모는 아이에게 빈 시간이 생기면 불안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학원을 하나 더 알아본다. 문제집을 한 권 더 사준다. 다른 아이가 선행학습을 한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더 급해진다. 결국 아이의 일주일을 공부로 가득 채운다.
우리나라의 입시교육은 공부보다 일정 채우기 경쟁에 가까워지고 있다. 얼마나 제대로 배웠는지보다 얼마나 많은 수업을 들었는지가 중요해졌다. 아이가 무엇을 이해했는지보다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가 먼저 언급된다. 진짜 실력보다 선행학습의 진도가 실력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성적은 들은 수업의 수만큼 오르지 않는다. 문제집을 많이 푼다고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 남는 것도 아니다. 공부에는 입력과 저장이 모두 필요하다. 수업을 듣고 책을 읽는 것은 입력이다. 배운 내용을 떠올리고 설명하는 것은 저장이다.
많은 학생이 입력만 반복한다. 책을 보고 있을 때는 내용을 알고 있다고 느낀다. 강사의 설명을 들을 때는 문제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시험에서는 배운 내용을 꺼내지 못한다. 아는 것 같은 느낌과 실제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학원 중심의 공부도 이 문제를 키운다. 일부 학원은 더 빠른 진도와 더 어려운 문제를 경쟁적으로 내세운다. 학생은 생각할 틈도 없이 설명을 듣고 필기한다. 숙제를 끝내면 다음 진도가 시작된다. 배운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고 연결할 시간은 없다. 책상에는 오래 앉아 있지만 실제로 자신의 머리를 사용하는 시간은 짧다.
공부한 내용을 오래 기억하려면 머릿속에서 직접 꺼내야 한다. 책을 덮고 배운 내용을 백지에 써보는 것이 좋다. 부모나 친구에게 설명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새롭게 배운 내용을 전에 배운 내용과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지식을 꺼내고 연결하는 과정에서 진짜 실력이 만들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하다. 잠시 걷거나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배운 내용이 머릿속에서 정리된다. 조용히 쉬는 시간에 서로 떨어져 있던 지식이 연결되기도 한다. 휴식은 공부를 방해하는 시간이 아니다. 공부를 완성하는 시간이다.
물론 스마트폰과 유튜브를 계속 보는 것은 제대로 된 휴식이 아니다. 강한 자극을 계속 받으면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자극이 없는 시간이다. 걷고 쉬고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이다.
부모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공부 시간을 계속 늘리는 것만이 관리가 아니다. 아이가 배운 내용을 스스로 설명하게 해야 한다. 틀린 문제의 원인을 생각하게 해야 한다. 주말 일정의 일부를 비워둘 필요도 있다. 부모의 불안을 줄이고 아이의 생각을 기다려야 한다.
계속 밀어 넣기만 한 뒤 기억하지 못한다고 아이를 탓하는 것은 부당하다. 공부할 의지가 부족해서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아이의 능력이 아니라 공부 방식에 있을 수 있다.
입시에서 공부량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공부량만으로 성적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제대로 저장되지 않은 공부는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진다. 많이 배우는 학생보다 배운 것을 꺼내고 연결할 수 있는 학생이 강하다.
공부는 책상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책을 덮고 배운 내용을 떠올리는 순간에도 공부는 계속된다.
아이의 뇌에도 입력을 멈추고 저장할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