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1일 주일예배 설교문 / 눅 5:1-39 / 패러독스(역설적인)의 교회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해도 겨울에는 아이들이 새총을 만들어서 참새를 잡아다가 구워먹는 것이 재미였습니다. 그래서 참새시리즈도 참 많았습니다.
ex1) ①참새 두 마리가 나란히 전기 줄 위에 있었는데 포수가 한 마리를 쏘아 맞추니 그 새가 떨어지면서 “왜 나만 쏴요? 쟤도 쏴요.”라고 했단다. 그러니 총에 맞지 않는 새가하는 말 “아저씨, 쟤 아직 안 죽었어요. 한 발 더 쏴요.” ②어느 날 사냥꾼이 길을 가다가 참새가 똥을 머리에 쐈다. 사냥꾼이 참새를 보면서 “야 너는 팬티도 안 입냐?” 그랬더니 참새가 하는 말 “너는 팬티 입고 똥 싸냐?”
어떤 한 어린아이가 새총 하나를 만들었답니다. 그런데 참새가 쉽게 잡히겠습니까? 쏘면 날아가고, 쏘면 날아가고... 이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아버지가 집에서 기르는 거위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쏠까 말까 망설이다가 시험 삼아 호기심으로 한번 쏴 봤는데 아주 정통으로 맞아 그만 거위가 죽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거위를 쏴 죽인 것이 죄일까요? 이것은 단순한 호기심이고 실수지 죄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자기가 아끼던 거위가 죽었으니 마음은 아프지만 그렇다고 자식인 아들을 죄인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두렵습니다. ‘오늘 매 좀 맞겠는데...’ 그래서 아들이 꾀를 냈는데 죽은 거위를 마당에 파묻었던 것입니다. 이제 거위를 파묻은 것은 실수일까요, 죄일까요? 죄지요. 죄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실수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지 못하고 감추거나 숨겨버리는 것. 이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하나님을 피해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지 않습니까?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밤새도록 고기잡이에 실패한 어부 베드로를 찾아온 예수님에게 베드로가 엎드리면서 하는 말 “주여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와 죄인임을 고백하는 회개가 가장 큰 용기입니다. 회개가 죄를 용서받고 은혜로 들어가는 첫 문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 거위를 찾았습니다. “아들아 거위 못 봤니?” “몰라요.” 아이는 시침을 떼었습니다. 이제 죄가 장성하여 더욱 큰 죄를 낳는 것입니다. 없는 것처럼 숨겨버리고 거짓말하고... 죄의 특징은 반복성, 전염성, 확장성. 이 모든 것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화평이 깨지는 것입니다. 아들이 죄를 지어 놓고도 아버지에게 가서 “아빠!” 하면서 매달릴 수 있겠습니까? 슬금슬금 눈치만 보고 피해 다녔습니다. 가능하면 아버지하고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와의 화평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마음씨가 아주 고약한 농사일 전담하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아이를 부릅니다. “아무개야!” “왜요?” “너 우물에 가서 물 좀 길어 와라.” “그것은 아저씨가 할 일인데 왜 날 시켜요?” “너 거위 죽이고 땅에 파묻었지.” 아저씨가 거위 파묻는 장면을 목격했던 것입니다. 그 직원은 아이의 약점을 이용해서 추운 겨울날 우물가에 물을 길러 보냈습니다. 아이는 물을 길어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아이 부모가 없으면 그 사람은 이 아이를 불러서 돼지우리도 치게 하고, 소똥도 치게 했습니다. 자기는 앉아서 쉬면서.... 아이는 이제 꼼짝 없이 발목이 잡혔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이 끊어진 이 결과가 결국 죄와 사탄의 종노릇하는 결과까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 솔직히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사야 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따라합시다.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어느 날 아이는 이제 너무 힘이 들어서 아버지께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아빠, 아빠가 애지중지하던 그 거위 제가 죽였어요. 새총으로요... 아빠한테 혼날까봐. 그리고 미안해서 땅에 파묻었어요.”
만약 이 아이가 좀 더 일찍 아버지에게 나아갔다면 이미 죽은 거위, 잡아서 요리도 해먹을 수 있었을텐데... 여러분, 이 시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온다는 것 이 자체가 사단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일입니다.
4장 18절을 읽어봅시다. 지난주에 나눈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예수님의 사역은 이것이라고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①영의 양식을 먹이는 말씀전파 – 영을 살려서 생명을 살림.
②해방 – 귀신과 사탄에게서의 승리(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는데 주님이 이겨주심)
③치료 – 원래 상태로의 회복
18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한 중풍병자가 예수님에게 나아가고 싶었지만 중한 뇌졸중환자여서 도대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모든 회로가 망가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자기 이웃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이 환자를 고치고자 침상채로 들고 예수님에게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와 보니,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많은 인파에 막혀 사람구경만 하다 돌아가게 생겼습니다. 그중 한사람이 말합니다. “여기서 돌아가면 안 되지. 어찌하든지 예수님께 보여 주여야 할 것 아니냐”
이스라엘은 일 년 강우량이 200미리 미만입니다. 몇 년 동안 비 한 방울도 안 올 때도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다보니 지붕을 튼튼하게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 집은 아예 지붕이 없습니다. 비가 오면 오히려 감사할 정도니까요. 보통 나무와 짚으로 대충 얼기설기해서 거기다 진흙을 발라 놓은 것이 그들의 지붕입니다. 이 지붕이 요긴하게 쓰이는 데, 날씨가 선선한 새벽과 저녁에 사다리로 올라가서 지붕 위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그들의 영성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말합니다. “우리가 이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주러 왔으니 지붕에 올라가서 뚫고 침상을 내리자!” 이 말에 나머지 동료들이 “미친놈 정신차려. 어떻게 남의 집 지붕을 뚫어!”라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면 합력해서 지붕이라도 뚫어서 예수님께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첫째는 무리들입니다.(19절)
이렇게 중풍병 중환자를 보면 길을 비켜서 먼저 예수님 만나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자기가 무얼 해야 옳은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을 “무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리들은 구경꾼이요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훼방꾼인 것입니다. 오늘 사람 몇 명 교회에 왔나? 이 교회는 무슨 장점과 단점이 있는 가 조사하러 예배당에 왔다면 예배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빨리 무리에서 예배자로 제자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영성생활의 시작인 것입니다.
둘째, 지붕을 뚫자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영적인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목사만 영적인 지도자가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자녀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삼아 기름 부으셔서 왕으로, 제사장으로 예언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영적인 지도자인 것입니다. 불신자들을 잘 인도해서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문제가 많거나 가난한 사람을 보면 할렐루야! 저 사람 이제 예수님 믿어서 부자되겠네. 환자를 보면 할렐루야! 오늘 또 환자 한명 낫겠네! 예수님께 데리고 가야지. 이런 긍정적이고 살려주는 마음으로 대하십시오. 그러면 막힌 것들이 뚫어지는 영적인 안목, 혜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인 지도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든든히 세우시는 것입니다.
셋째, 이 환자를 데리고 간 네 명의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성경이 반지라면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 로마서입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의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로마서 8장입니다. 구원론의 최고봉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8장에서 하는 말씀이 합력인 것입니다. 교회는 합력할 때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나는 것입니다.
20절을 읽어봅시다.
중풍병 환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 환자의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환자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온 그 사람들... 그 믿음이 환자를 낫게 한 것입니다.
ex2) 섬 전도사역에서 최초로 한 아주머니를 전도했더니 그 시간에 아버지도 전도된 이야기
여러분, 믿음은 그 사람 개인의 책임이지만 그를 믿게 하도록 침상채로, 지붕을 뚫어서라도 인도하는 인도자의 믿음을 주님은 참으로 기뻐하시고, 그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26절 말씀을 읽읍시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란 희랍어로 패러독사인데 이는 영어의 패러독스의 어원이 됩니다. 패러독스는 역설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역설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십시오. 코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비대면일지라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분 예수님 앞으로 나도 나아가야 하고, 누구든 예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침상채 들어서라도... 지붕을 뚫어서라도... 어찌하든지 예배당에 나와야 하고요, 오지 못하면 유튜브 생중계라던지 가정예배를 드려서라도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3대사역처럼 말씀으로 생명이 살아나며, 모든 귀신이 떠나가며 질병이 치료될줄 믿습니다. 이러한 패러독스의 능력.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한 참으로 복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