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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18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대부분 ‘평화’는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계 평화를 이루는 일에 모든 종교가 나서서 해야 할 중요한 일로 인식되어 있다. 때문에 이 이념으로 많은 종교가 연합하고자 한다. 서로 추구하는 방향과 방법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정상은 같은 곳에서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런데 정말로 기독교가, 복음이 추구하는 것이 세상의 평화인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
오늘날 교인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 자기가 예수 믿으려고 하는데 식구들이 반대하면 원수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이단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 믿으려고 하는 사람을 반대하면 식구들조차도 상종하지 말아야 할 존재로 말한다. 그러나 “검을 주러 왔노라”라든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제 나누어지는 관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말씀이 주어지면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누어지기에 말씀이 검이 되어 서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평화는 기독교의 목표나 교회의 사명이 아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평화, 화평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는 다르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절). 직역하면 ‘복이 있다. 화평을 만드는 자들은, 그들이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워질 것이다’라는 말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의 헬라어 ‘에이레노포이오스’는 ‘에이레네’(평화, 화평, 화목, 평강, 평안, 복지, 안전, 안식, 번영)와 ‘포이에오’(만들다, 행하다)의 합성어로 ‘화해시키는 자, 화평하게 하는 자, 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뜻으로 신약 성경에서 단 한 번 나온다.
‘에이레네’는 우리 성경에 ‘평화, 화평, 평강’이라는 말로 번역되었는데 70인역에서는 대부분 ‘샬롬’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나 간혹 ‘샤카트’(~로부터 안식을 얻다)나 ‘베타흐’(안전, 믿을만하다), ‘할라크’(가다, 걷다, 동행하다)의 역어로 쓰이기도 하였다. ‘샬롬’은 전도서 3:8에 보면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여 전쟁에 대비되어 사랑으로 온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언약을 맺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출 24:5-11)
24:2에 보면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지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언약의 피를 뿌린 후 11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라고 말씀한다. 즉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언약의 피가 뿌려지기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전쟁하는 관계였는데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평화의 언약”(민 25:12) 혹은 “화평의 언약”(사 54:10, 겔 34:25, 37:26)을 세우신다고 말씀하셨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하나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이루시는데 인간의 열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친히 “여호와의 열심”으로 이루신다. 그런데 평강의 왕은 고난과 죽음으로 평화를 주신다고 밝힌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사 53:5-9)
죽음으로 평화를 이루시는 평강의 왕에 대하여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라고 다윗의 왕권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눅 19:38)
결국 “화평하게 하는 자”, 즉 화평을 만드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죄인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였던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을 때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대적자로서 죄인이라는 증거이다. 끊임없이 율법을 행하여 자기 의로 하나님의 의를 취하려고 한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덮어주심으로 대속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심으로 이루어진 화평이요 화목, 평안, 구원이라고 에베소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3-18)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의 헬라어 ‘칼레오’는 ‘부르다, 이름 짓다, 초대하다’라는 뜻인데 미래 수동태 3인칭 복수로 표현되었으니 ‘불리워지다, 이름 지음을 받다, 초대되다’라는 의미이다. 즉 화평을 만드시는 분에 의해 받는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름지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본래 정체성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동등’이라는 개념이다(요 5:18). 그렇다면 아버지가 마귀였다는 것은 내가 마귀라는 뜻이다. 즉 진리와는 상관없는 상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였다는 뜻이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호세아 선지서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였다.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9:23-26)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사랑을 입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으니(갈 3:25-2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그러므로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의미이다(시 82:6, 요 10:34-35).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화평을 누리는 상태가 되었다. 계속 진리의 성령께서 이끌어 주셔야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워진다(롬 8:14). 아니 진리의 영이 매일매일 이끌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됨을 증거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8)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자기 의를 내세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율법을 행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교회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은혜를 입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지만 진리의 영이 말씀으로 나를 십자가에 죽여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로 만드신다. 그 은혜에 사로잡힌 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2024052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