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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배 교수의 논문으로 시작된 <돈오돈수 돈오점수> 특별기획이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호에는 박교수의 논문에 대한 김호성 교수의 평을 '김지견박사 화갑기념 논문집'에서 옮겨 실었다. 이에 대한 박교수의 글은 1992년 1월호에 실을 예정이다. 독자 제현의 뜨거운 애독을 바란다. <편집자 주>
돈오돈수적 점수설의 문제점
김호성/ 대전대학교 강사
1. 머리말
"어떻게 깨닫고 어떻게 닦을 것이가?"
깨달음과 닦음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이론인 수증론(soteriology)은 불교사상사 전체를 통하여 문제되었으며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찌기 인도불교에 있어서는 돈수와 점수, 티벳에 있어서는 돈오와 점오, 중국에 있어서는 돈오와 점수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1)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는 수증론의 문제가 오늘날 한국의 불교계와 불교학계에서는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의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논쟁은 인도, 티벳,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같은 頓門(頓宗)안에서 깨달음과 닦음의 결합양식에 대한 대립적 인식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2)
1981년 당시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이 ‘선문정로’를 출간함으로써 표면화된 이 논쟁(3)은 그동안 속으로 내연되어 오다가 <보고사상연구원>에서 <국제불교학술회의>(4)를 개최하여 재검토함으로써 비로소 학술적 차원의 본격적 검증을 갖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생각된다. 필자 역시 이 연구원의 간사로서 <국제불교학술회의>를 준비하는 동안 '돈오점수의 새로운 해석-돈오를 중심으로-'이라는 제하에 <선문정로>의 보조 (1158~1210)비판을 반비판한 논문을 탈고하였다.
위의 <국제불교학술회의>에서 박성배 교수는 <성철스님의 돈오점수설 비판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5)두번에 걸쳐서 쓰여진 박교수 논문의 논지중에서 성철스님의 보조관에 대하여 비판한 부분은 대부분 필자의 논지와 어긋나지 않아서, 후학의 한 사람인 필자는 前揭 拙稿를 발표하는 데에 큰 용기를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 구체적으로 돈오돈수를 받아들이는 부분과 보조를 이해하는 부분에서는 필자와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한 부분들은 모두 본질적인 문제로서 간과될 수 없다고 생각되어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본고를 집필하게 된 것이다. (6)
필자가 이해하는 한 박교수의 논지는 보조의 돈오점수설과 <선문정로>의 돈오돈수설을 그 나름대로의 사회적 상황과 사상사적 필연성 때문에 나온 사상인 것으로 각기 그 존재의의를 인정하고, 이들 돈오점수설과 돈오돈수설을 조화, 회통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돈오돈수설 점수설>(7)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 전제 아래에서 보조의 돈오점수설에 대하여 禪門內的 의의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선문정로>의 비판이 <아무래도 좀 지나친 것 같다>(8)고 의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교판론과 회통론의 상호대립과 상호작용의 역사로 불교사를 이해하면서, 그 중에서 회통론의 흐름이 보다 주류이며 정당한 것으로 보는 필자의 사관에 비추어보더라도 돈오점수설과 돈오돈수설의 조화,회통을 시도하는 박교수의 그 같은 노력은 대단히 뜻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리 회통이 요청된다고 하더라도 '일종의 혼합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논리의 내적 정합성을 띠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런 입장에서 박교수의 <돈오돈수적 점수설>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쳇째, 박교수는 한국 禪傳統의 현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아마도 <선문정로>의 입장에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겉은 임제고 속은 종밀이라>고 진단하고 임제와 종밀이 상호 모순하고 있기 때문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과연 그럴까? 종밀선과 임제선은 하나로 조화되거나 회통될 수 없는가?
둘째, 필자가 이해하는 한 보조의 도오점수설에 대한 <선문정로>의 비판논리는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으로 정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9)
대전제-보조의 돈오점수의 돈오는 해오(解悟)이다.
소전제-해오는 지해(知解)이며 지해는 敎이다.
결 론-그러므로 돈오점수는 선이 아니라 교이다. 따라서 보조는 선사가 아니라 , 교가(敎家), 구체적으로는 화엄선(華嚴禪)이다.
박교수는 이러한 삼단논법에서 대전제와 소전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대전제는 보조 스스로도 명언한 바(10)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전제는 즉 돈오점수의 돈오 즉 해오는 과연 지해인가? 필자의 견해로는 해오는 지해가 아니라고 본다(11)
대전제와 소전제를 긍정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그 결과까지 긍정해야 하는데(12), 박교수는 위의 소전제는 받아들이면서도 그 결론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므로 모순에 빠지고 있다. 지해의 수용을 상황논리에 의해서 정당화하고자 하나 설득력이 약하다.
세 째, 박교수는 <깨침에 대하서 말하는 한 돈오돈수라는 말보다 더 정확한 말은 없다. 돈오면 돈수라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13)라고 하였다.
이 부분도 <선문정로>의 설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돈오면 돈수인가? 돈오는 반드시 돈수와만 조합이 가능한가? 돈오와 돈수의 조합에 문제는 없는가?
이들 문제들을 이하에서 상론해 본다.
2. 임제와 종밀
한국 선의 현실에 대한 비평에서 박교수는 어디까지가 <선문정로>의 견해이고 어디까지가 박교수 자신의 견해인지를 구별하지 아니하고 언급하고 있는데, 필자에게는 <선문정로>의 견해에 대해서 박교수가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그 文證을 인용해 본다.
요즈음의 한국 참선은 거개가 마조, 황벽, 임제, 대혜로 이어지는 공안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가 신회, 종밀, 보조로 이어지는 돈오점수설을 신봉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겉보기엔 분명한 임제인데, 속은 종밀인 셈이다. 겉보기에 화두를 들고 있는 것 같으나, 속은 돈오점수 사상이므로 겉과 속이 안맞는다는 것이다. 실천은 임제식이고, 이론은 종밀식이니 모두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셈이다.
성철 스님은 이 혼란을 바로잡고 싶은 것이다. 임제식으로 정진하려면 임제사상을 속에 지녀야 하고, 종밀사상을 속에 지녔으면 그 식으로 살아야 마땅하지, 양자를 섞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설익은 거짓 도인을 만들어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라 말에 한국에 들어온 마조의 조사선이 고려말에 들어온 같은 계통의 임제선과 함께 널리 보급되어 요즈음엔 참선이라 하면 의레 임제선을 생각 할만큼 한국의 선풍토는 온통 임제풍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성철스님 처럼 한국의 선풍토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겉 다르고 속 다른 병리>를 진단하면서 대안을 제시한 일은 없었다.
<선문정로>의 입장에 동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박교수의 이러한 이해를 분석해 보면 첫째, 선의 사상사적 계보는 마조(709~788), 황벽(?~848), 임제(?~867), 대혜(1088~1163), 계통의 선과 신회(765~760), 종밀(780~841)의 선으로 구분을 하고 있으면서 보조를 후자에 속하는 선사로 규정하고 있다. 둘째, 전자의 선과 후자의 선은 조화, 회통이 불가능한 모순관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 선의 사상사에서 가풍의 차이에 근거하여 마조, 황벽, 임제, 대혜의 선(임제선)과 신회, 종밀의 선(화엄선)으로 대별하는 것은 다소 소략한 감도 없지는 않으나 그것이 한국의 선전통에 적용될 때에는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보조를 하택과 종밀을 잇고 있는 것으로 계보를 그리면서 마조, 황벽, 임제, 대혜계의 임제선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은 올바른 이해라고 할 수 없다. 결코 그렇지 않다.
보조는 하택, 종밀과는 다르다. 그들에게 없었던 임제종의 간화선을 대혜종고로부터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15) 한국 선불교에 있어서 오늘날 참선하면 의레 간화선을 하게 된 것은 임제종이 언제 처음으로 들어왔느냐(16) 하는 기원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보조가 ‘간화결의론’과 ‘절요’에서 간화선을 제시하고 그의 제자 진각국사 (1178~1234) 혜심이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看病論 )과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을 지은 후 부터 널리 성행하게 되었다(17)는 점은 결코 망각되거나 외면 되어서는 안된다.
이 점에 대하여 길희성 교수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매우 적절한 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점에 있어서 성철 스님의 비판이 지니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돈오점수는 지눌선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눌 자신이 임제선의 간화문을 중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버스웰(Buswell) 교수도 지적하고 있듯이 지눌이 한국 선 전통에 간화선을 보급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선사임을 감안할 때 성철스님의 비판은 매우 일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에 는 지눌의 간화선에 대한 언급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둘째, 보조선의 체계 속에서 위의 두 계통의 선 사상은 각기 하나의 체계로 회통되고 있다. 보조는 화엄선과 임제선을 하나로 회통시키면서 체꼐화한 점에서 그의 선이 화엄선과도 다르고 임제선과도 다르며, <보조선>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보조를 임제선이나 화엄선의 어느 한 계보에만 소속시키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조선은 화엄선이 아니라고 한 吉津宣英교수의 견해(20)는 그가 보조선을 그의 이른바 제2의 흐름(선종)에 소속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 불만이기는 하지만 역시 어느 한 측면에서틑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또 결코 그들 선 이론이 중국에서는 어떠했든 한국의 선전통 속에서는 모순된 것으로 전해져 온 것이 아니다. 만약 모순된 것이라면 같은 저술 속에 같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보조의 <절요>에는 종밀계의 선사상과 임제계의 선사상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후술하게 될 것이지만 화엄선에서 임제선으로의 전향이거나 후자에 의한 전자의 부정이 아니다. (21)
하나로 회통된 한국선의 이론과 실천의 전통 속에서 유독 <선문정로>에서 처음으로 <겉다르고 속다른 병리>라고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이같은 보조선의 회통성을 오해한 나머지 보조선의 체계대로 수행하지 못한 데 있어던 것이지, 애초에 종밀과 임제가 함께 수용된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물론 보조에게 그 책임이 돌려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종밀식과 임제식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택하라고 하는 돈오돈수설의 견해는 올바른 불교사 이해가 아닐 뿐 더러, 그러한 논리를 수용하고 있는 박교수의 견해에도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박교수 스스로 <보조에게는 종밀과 계승해야 되겠다는 의식이 없었다>(22)고 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정녕 그렇다면 한국선을 화엄선과 임제선의 혼돈으로 보는 역사의식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3. 해오(解悟)와 지해(知海)
돈오점수의 돈오는 해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오가 곧 지해라고 하는 연역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필자는 논한 바 있다. (23)
지해는 선문의 최대의 금기라는 점은 어떠한 선이든지 이의가 있을 수 없는 대원칙이다. 따라서 해오가 지해라고 한다면 지해는 버려야 할 것이지 수용이나 회통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의 차원(入禪)은 교화는 다르기 (捨敎 )때문이다. 적어도 선의 체험 그 자체는 이언절로( 離言絶慮)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교수는 <선문정로>의 소전제인 '해오=지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서 다시 지해를 상황논리에 의해서 정당화하고자 한다. 물론 박교수가 역설하는 지해와 反지해의 변증법은 그 자체만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교와 선의 회통논리로서 동의하지 못할 것은 아니나, 보조의 해오를 지해로 이해하는 차원에서 그같은 논리를 전개하여 다시 정당화시키려는 것은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구체적으로 박교수가 보조의 해오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보조 스님은 불경을 읽음으로써 깨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그는 그것이 궁극적인 깨침 즉 증오라고 주장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불경을 읽고서 얻는 깨침을 궁극적으로 증오와 구별하기 위해서 종밀은 해오라는 다른 이름을 붙었다. 아직도 지해적인 요소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24)
이러한 이야기는 보조자신의 진술이 아니라 박교수의 비량(比量)(anumana)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논문의 도처에서 보조 저술에 근거한 성언량(聖言量.sabda)과 자신의 비량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밝혀두지 않아서 이해에 어려움이 많다.- 위의 인용구를 통하여 볼 때 해오를 '불경을 읽음으로써 얻는 지적인 깨달음'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조는 해오 즉 돈오돈수의 지해가 아닌 견성(見自本性)으로 보고있다. (25)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해오 즉 돈오점수의 돈오에 대한 보조 자신의 정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수심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돈오는 범부가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사대로 몸을 삼고 망상으로 마음을 삼아서 자성이 참다운 법신이며 자기의 영지(靈知)가 참다운 부처인줄 모르고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이리저리 쫒아다녔으나, 선지식의 지시에 힘입어 한 생각에 빛을 돌이켜 스스로의 본성을 보는 것이다. 이 성품은 본래 번뇌가 없고 무루 (無漏 )의 지해가 구족되어 여러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으므로 이라고 했다. (26)
또 절요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있다.
돈오는 비롯함이 없는 옛부터 어리석고 뒤바뀐 생각 때문에 사대로 몸을 삼고 망상으로 마음을 삼아 그것을 나라고 알았으나, 선지식을 만나서 위에서 설한 바와 같은 불변과 수연, 性과相, 체와용 의 뜻을 뜯고서 영명한 성품(지견)이 자기의 마음임을 홀연히 깨닫는 것이다. 이 마음이 항상 고쵸하며 가이 없고 相이 없는 법신이며 心身이 둘이 아니어서 여러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으므로 頓이라고 한다. (27)
또 박교수는 1963년에 발표한 논문 <悟의 문제>에서 <절요>의 '私曰 於比不生怯弱 的信自心 略借廻光 親嘗法味者 是謂修心人解悟處也. 若無親切返照之功 徒自點頭道 現今了了能知 是佛心者 甚非得意者也 '(28) 라는 문장을 인용하고서 '그러므로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인다면 이는 悟가 아니다. 목우자는 이들에 대해서 식오<識悟>라는 말은 쓴다(29)' 라고 하였는데, 이 때에도 해오를 누구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앎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30)
그러나 위의 문장은 佛卽心을 믿지 못하는 대, 소승의 방편설(法相) 및 人天敎등 着相之人의 소견에 대해서 종밀이 비판함에 대하여(31), 오히려 종밀처럼 佛卽是心이라고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해오 이후 親切反照之功 즉 漸修를 해야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32)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보조의 證悟觀이다. <선문정로>나 박교수처럼 해오와 증오를 동일차원에 놓고서 그 중에서 해오보다 증오를 더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볼 수 있을까?
증오를 궁극적으로 보는 것은 돈오돈수설의 이해하고 보조는 증오를 궁극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청량淸凉(738~839)의 정의에 따라 깨닫는 양식(悟相)에 두 차원이 있음을 구별하였을 뿐이다. 후술할 자세한 논증을 위하여 <절요>에 인용된 청량의 소(疏)원문을 간추려서 인용해 본다.
疏云 若明悟相 不出二種. 一者解悟, 謂明了性相. 二者證悟, 謂心造玄極. 若明漸頓者, 乃有多門.
· 若云頓悟漸修, 此約解悟.
· 若云漸修頓悟, 此約證名悟.
· 若云漸修頓悟 亦是證悟
· 若云漸修頓悟 此通三義 若先悟
後修 謂廓然頓了 名之爲悟-此卽解悟-.
若云先修後悟-此爲證悟-
若云先悟一時-悟通解證-(33)
이를 수증론과 悟相의 관계를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돈오점수-해오
2) 점수돈오-증오
3) 점수점오-증오
4) 돈오돈수:선오후수-해오,
선수후오-증오,
수시일시-해오.증오
이를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보조는 해오와 증오를 다른 차원에 속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보조 저술의 그 어디에서고 박교수가 정리하고 있듯이<돈오점수:해오-점수:만행겸수-증오>(34)의 공식은 나오지 않는다.
돈오점수, 선오후수에서는 오직 해오만 나오고 점수돈오, 점수점오, 선수후오 등에서는 증오만 나온다. 後悟一時는 해오와 증오에 다 통한다고 하나 그것은 돈오점수가 아닐 뿐 아니라 깨달음과 닦음이 <일시>에 얻어진다는 것이므로 역시 박교수의 공식대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구조로 이해하는 것은 해오를 견성이 아니라 지적인 차원의 앎 즉 지해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교수는 이번의 논문에서는 <해오=지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Buddhist Faith and sudden Enlightment>에서는 해오를 <성숙하지 못한 깨달음>이라고도 하지만 <해요=삼매>로도 이해하고 있다. (35)
그러나 해오를 삼매로 보는 것은 돈오선의 역사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다. 여러 대승경전에서는 삼매에 차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神會는 좌선관심의 대승선을 무념의 근저에 있는 自心(本性)의 자각(見性)의 돈오선으로 전환한 것이며(36) 현금의 돈오점수, 돈오돈수의 논쟁도 신회의 그 같은 돈오선 안에서의 일일진대 다시 <해오=삼매>로 이해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않고, 보조의 저술 어디에도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
앞에서도 같이 현금의 돈점논쟁을 돈오와 점수의 대립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히려 보조의 돈오점수는 <해오:점수->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점수 이후에 증오가 다시 없는 것은 해오와 증오가 다른 차원임을 나타내는 것과 함께 해오의 절대성, 완전성을 의미하고 점수 뒤에 <->가 있는 것은 점수의 영원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해오의 절대성, 완전성, 즉 해오가 깨달음이라는 것은 동소(同疏)에서 (약약해오 시성구문 비공행돈필야. 약증오 시현행문 돈수변사) 若約解悟 是性具門 非功行頓畢也. 約證悟 是現行門 頓修辨事也.(37)라고 했다는 데에서도 분명하다 하겠다. 위의 문장에서 해오는 性具門이고 증오는 現行門이라고 하였다.
性具라는 것은 불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본래 부처라고 하는 本來成佛論과 맥락을 같이 하고(38) 현행문은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불성을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성구문은 체적(理的)측면에서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현행문은 용적(事的)측면에서 닦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같은 이해는 보조 스스로<若約性具門 初悟時 十度萬行 一念具足 度生已周 若現行門 豈無生熟 ( 일념구족 도생이주 약현행문 기무생숙>(39)이라고 했다는 점에서도 분명하다 할 수 있다. 따라서 해오는 단순한 지해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둘째, 보조는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는다고 하는 수증론(先悟後修)에서의 깨달음을 해오로 보고 먼저 닦고 나중에 깨닫는 수증론(先修後悟)에서의 깨달음을 증오라고 한다. (40)
비록 해오와 증오는 다른 차원에 속하는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보조는 해오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그러한 점은 닦음과 관련하여 알 수 있다. 보조는 해오는 초시간적 무차별적인 깨달음인 선오후수로 보고 있으며 증오를 시간적 차별적인 깨달음인 선수후오로 보고 있음은 앞에서 살핀 바 있다. 보조에게 있어서 증오의 수 즉 선수후오는 悟前修로서 이는 眞修로 평가되지 않는다. (41)
따라서 시간적 범주가 아닌 논리적 범주(42)에서 먼저 깨닫고 나서 닦아야 眞修로 인정하고 그러한 의미의 깨달음을 법칙으로 삼았던 것이다. 以悟爲則이란 말도 이와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
세째, 해오가 아닌 증오를 추구하는 돈오돈수설에 있어서는 깨닫기 전의 修가 있기 때문에 시간적인 수증론 즉 점수돈오로 보이게 되기도 한다.
이를 길희성교수는 <이른바 돈오돈수의 실제상에 있어서는 점수돈오의 길과 같이 훨씬 오랜세월을 요할른지 모른다>(43)고 하였던 것이다. 전치수 선생이 돈오점수를 시간적 차별적이라고 보고 돈오돈수를 무시간적 무차별적이라(44)고 본것도 역시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논쟁을 점수와 돈오의 대립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며 오히려 돈오점수가 무시간적, 무차별적이고 돈오돈수가 시간적, 차별적인 점수돈오로 전략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계속)
註
1) 인도 티벳 중국에서의 돈오논쟁에 대해서는 보조사상 제4집(서울:보조사상연구원, 1990)에 실린 최봉수,山口瑞鳳, 정성본의 논문을 각기 참조바람.
2) 현재의 돈오점수설에 대한 비판들은 모두'돈오돈수=돈오, 돈오점수=점수'의 구조로 이해하고 행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박성배 교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점은 후술할 것이다.
3) 논쟁의 전개에 대해서는 졸고 "돈오점수의 새로운 해석---돈오를 중심으로---"<한국불교학 제15집>머리말의 '<선문정로> 이후 논쟁의 전개'
4) 1990년 10월 13~14일 송광사에서 개최된 이 학술회의는 '불교사상의 깨달음과 닦음---돈점문제를 중심으로--->라는 주제하에 발표자 12명, 토론자 10명의 국내외 학자가 참여하였다. 이때 제기된 의 돈점론의 주된 입장에 대해서는 , 졸고 <돈점론을 둘러싼 다섯가지 입장>{(구도) [서울:한국불교연구원, 1990] 11월호(67호)} 참조.
5) 박교수는 같은 제목의 논문을 2번에 걸쳐서 쓴 셈이다. 초고는 <보조사상> 제 4집에 실렸으며, 초고를 증보 개정한 改稿를 학술회의 당시에 별쇄본으로 배부하였다. 그러나 논지의 변동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 박교수는 개고를 준비하면서 필자의 전개논문을 검토하셨다. 그러나 분명한 논지의 차이에 대하여 아무런 견해도 밝히지 않으셨다.
6) 본고를 집필하기 전에 필자는 본고의 요지에 대해서 박교수와 의견을 나누었다. 그때 박교수는 후학인 필자의 이의에 대해서---그 타당성 여부에 대한 동의는 차치하고라도---열린 마음으로 기꺼워해 주셨고 본고의 집필을 앙해해 주셨다. 이에 깊이 감사드리고 많은 질정(叱正)을 빈다. 또 초고를 읽고 비평해주신 동국대 불교학과 해주교수 스님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러나 본고에 대해서는 필자만이 책임을 진다.
7) <돈오돈수적 점수설>이라는 새로운 술어는 결론에서 비로소 보인다. 따라서 논문의 본문 내용, 즉 본고의 비판대상이 되는 것은 '돈오돈수적 점수설'의 내용이라기 보다는 돈오돈수적 점수설이 요청되는 당위를 설하기 위한 전제에 대해서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돈점문제에 대한 박교수의 철학을 '돈오돈수적 점수설'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되어 제목으로 삼았음을 밝혀둔다. 물론 필자는 위의 논문 이외에도 박교수의 다른 저술과 논문을 참조할 것이다.
8) 박성배, <성철스님의 돈오돈수설 비판에 대하여> 미주현대불교 8,9,10호
9) 성철 <선문정로>(서울:박성배, 불광출판부, 1981), pp154~155, pp.209.
10)<若云 頓悟漸修 比約 解悟 >[보조전서] (서울:보조사상연구원, 1989), p.123.이하[보조전서]는 [전서]로 약칭함.
11)졸고, <돈오점수의 새로운 해석---돈오를 중심으로--->, 앞의 책<解悟와 知解>참조
12) 앨런 차머스, 신일철, 신중섭 옮김 <현대의 과학철학>(서울:서광사, 1990), pp34~35 참조.
13), 박성배, 앞의 논문, 별쇄, p11.
14), 박성배 앞의 논문, <보조사상>제4집, p.506.
15) 여기서 우리는 보조가'學無常師 惟道之從 '(全書, p.419)했다는 점을 주목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교수였던 고 朴殷穆 선생은 위의 구절과 관련지으면서 '어느 하나의 계보 속에 소속되지 않은 그의 치열한 진리에의 추구가 그의 회통불교를 가능케 한것으로 보인다'라고 필자에게 말한적이 있다.
16) 임제 가풍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대감 탄연(大鑑 坦然) )의 스승인혜소국사(慧炤國師) 때라고 김영태교수는 보고있다. (<보조사상 제3집>(서울:보조사상연구원, 1990),p.122.)
17)위의 책, p.128.
18)Robert Buswell, 졸역<간화선에 대한 지눌의 양자택일적 관점과 돈오돈수와의 관련성> 보조사상 pp.448-449 참조.
19)길희성 , 'Chinul's Alternative Vision of Kanhaw Seon and its Lmplications for Sudden Awakening/Sudden Cultivation'에 대한 논평(<보조사상 pp.466~467).
20) 吉津宣英, 전해주 역 , <화엄선과 보조선>(보조사상 제4집 p.315.). '지눌도 조문과 교문을 준별함에 의해서 화엄선은 아니고, 조사선의 입장을 견지한 것이었다.' 선교관에 대해서는 吉津의 말은 재검토되어야 할 소지가 있으나(전해주, <화엄선과 보조선에 대한 논평>, 위의 책, p320참조) 보조선을 종밀의 화엄선으로만 동일시할 수 없다는 측면은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吉津이나 <선문정로>와 같이 규봉의 선사상을 <화엄선>이라고 부른다면, 결코 보조선은 화엄선일 수 없으며 <선과 화엄의 일치>라는 측면에서 필자는 보조선의 한 특징을 <선문일치>로 부르고 있다. [졸고, <보조의 정토 수용에 대한 재고찰>(한국철학종교사상사> 이리원광대, 1990,p.448)
21) 이에 대해서 졸고, <돈오점수의 새로운 해석-돈오를 중심으로->, 참조, <선문정로>에서는 전향으로 보고 부정으로 보나 그러한 견해는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다.
22) 박성배, 앞의 논문, 별쇄 p6.
23) 졸고, <돈오점수의 새로운 해석-돈오를 중심으로->참조, 보조가 <절요>에서 '신회는 지해종사'리고 한 점은 문헌학적 이해가 있을 수 없었던 시대를 살다간 보조의 역사적 한계임과 더불어 그러한 이해는 역사적인 이해가 이나리 신화적인 편견이며, 신회는 혜능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사람이라는 점 등을 논증하였다.
24) 박교수는 그의 저서 Buddhist Faith & Sudden Enlightment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3), p.83에서 기신론의 입장은 '우리 마음의 본래 상태를 자각함으로써 그의 깨달음이 구경각으로 불린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보조의 견해를 강화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26)<전서>p.34.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信 妄想爲心 不知自性 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 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元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27) 위의 책, p.116. ‘頓悟者 謂無始迷倒 認此四大爲信 妄想爲心 通認爲我 若遇善友 爲說如上不變隨緣 性相體用之義 忽悟靈明知見 是自眞心. 心本空寂, 無邊無相, 卽是法身. 身心不二, 是爲眞我.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也. <보조사상연구원>주최의 <국제불교학술회의>의 토론 시간에 이종익 박사는 '해오는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하고 길희성 교수도 '해오는 교리적 이해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28) 박성배, ‘悟의 問題’ 동국사상 2집. (서울:동국대,1963), p61,<전서> P.111.
29) 上同
30) Sung Bae Park, 앞의 책, p.106.에서도 해오를 <성숙되지 못한, immature>깨달음이라고 하였다.
31) 宗密 頻遇如此之類 向道 汝今了了能知 現是佛心 灼然不信 直不肯照察,但言:某乙鈍根,實不能入。此是大小乘法相,及人天教中著相之人,意見如此。pp.110-111 (전서)
32) 위 인용문에 대하여 김달진은 다음과 같이 번역함으로써 필자의 논리를 보장해주고 있다. "여기서 겁내거나 약한 마음을 내지않고 제 마음을 확실히 믿어 조금이나마 심성을 비추어 보고 법의 맛을 보면, 그것이 마음을 닦는 사람들의 깨닫는 곳이니라..." [김달진, <보조국사전서>] (서울:고려원,p.231
33)전서, pp.123~124.
34)박성배, 앞의 논문(<보조사상 제4집> p.521). ‘悟의 問題’p 63. 해오와 증오를 동일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은 박교수만의 아니라 전치수선생의 논평에서도 범주착오(範疇錯誤)가 행해지고 있다.
35) Sung Bae Park, 앞의 책, p.107
36) 정성본, <초기 중국선종사에 있어서의 돈점의 문제((보조사상 제4집>p.131)
37) 박성배, <오의 문제>, 앞의 책, p.63.
38) "이 본래성불론은 불성이나 여래장을 설하는 교학과 동일하며-(吉津宣英, 전해주 역, 앞의 논문, p.302) 박성배 교수는 이 불성을 돈오의 근거로 파악하고 Sung Bae Park, 앞의 책, p.28
40) 위의 책, pp.123~124
41)<修在悟前 非眞修也>(위의 책, p.42), < 약무오처 수기칭진재 若無悟處 修豈稱眞哉>(위의 책, p.117)
42) 돈점론에 있어서의 논리적 차원에 대하여 성본스님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一念相應하여 진리에 몰록 계합하게 하는 돈오의 구조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시간적인 개념은 전연 없다. 이는 또한 돈오(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정성본, 앞의 논문, <보조사상 제4집>, p.153)
43)길희성 , 앞의 글, <보조사상 제4집>,p.467.또 이점은 졸고, <돈오점수의 새로운 해석>의 <해오와 증오>에서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또 Buswell교수도 이를 암시하고 있다. (Robert Buswell, 졸역, 앞의 논문, <보조사상 제4집>, p.463.참조).
1991년 11월.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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