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건이 알려진 지 올해로 16년이 되었다. 광주시에서는 인화학교 부지에 전국 최초로 장애인 수련시설과 장애인권 기념관과 양산동에 청각언어장애인복지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주된 피해자들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도가니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광주시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
광주농아인협회가 지난 2005년 이후 도가니 피해자들과 인화대책위와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자리가 있었다. 나는 작년 말 도가니 사건 관련 자료집을 만들면서 광주농아인협회의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광주지역 농사회가 극심한 분열과 갈등의 이면에는 도가니 사건 이후 인화대책위 참여 여부를 놓고 갈라지고 나서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골은 깊게 남아있다.
일본의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대응을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반성과 사과는 상대방이 그 정도면 되었다고 인정해야 끝이 난다. 그런데 이번 광주농아인협회의 반성과 사과에 대하여 아직도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농인들이 있다. 이것은 피해자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와 치열했던 대책위 활동을 몸으로 겪어낸 이들이 체감하는 온도의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2005년 당시 인화학교총동문회장인 김봉진 씨와 몇몇 농인들이 아쉬움을 표명해왔다. 만약 인화대책위에서 함께 활동했던 강복원, 조점래 씨가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면 나는 그 자리에 가지 않았거나 사과의 자리를 연기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김봉진 씨는 친구이기 때문에 다른 오해를 받기 싫어서 참석했다.
광주농아인협회의 도가니 사건에 대한 반성과 다짐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광주농아인협회는 반성과 사과의 진정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만약 이것마저 일회성 이벤트나 보여주기 위한 쇼로 끝난다면 광주지역 농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나는 도가니 사건을 통해 농인들을 만나면서 장애인권을 배웠다. 농인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음성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농인으로서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문화와 수어에 대한 자부심(pride Deaf)을 가지고 살아가는 농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청인과 농인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농사회 내부에서도 차별이 심하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농인들 스스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농사회의 또 하나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수어통역사들과도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수련시설, 청각언어장애인복지관 등 중요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소수의 이권(利權)이 아니라 농사회 전체의 인권과 공공성을 신장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2021.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