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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짜 계열사 과감한 매각 등 자구노력 혼신
건빵 회사로 출발한 유진그룹이 40대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유경선 회장의 ‘철인(鐵人) 경영’이 제대로 통했기 때문이다. 중견기업 때부터 그는 10대 그룹 진입을 꿈꾸며 경쟁사들의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40대 고지까지 도달했다. “한계를 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는 그는 철인 중의 철인, 칭기즈칸을 닮았다.
2007년 말 유경선(54) 유진그룹 회장은 또 한 차례 화려한 기업 쇼핑에 성공했다. 하이마트를 무려 1조9500억원에 인수하는 빅딜을 성공시켰다. 당시 국내 가전유통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업계 1위 하이마트를 통째로 삼키며 유진그룹은 일약 재계 30위권으로 급부상했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2004년 고려시멘트를 인수한 이래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과 로젠택배까지 먹은 유 회장은 이미 국내 인수합병(M&A)의 ‘무서운 손’으로 주목 받고 있었다. 비록 금호아시아나에 밀리긴 했지만,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6조원대 자금 동원력을 과시하며 ‘고래잡이’에 나섰던 그였다.
유진이 짧은 기간에 덩치를 가리지 않고 기업들을 사들이긴 했지만,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잡식성’은 아니다. 유 회장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이뤄진 계산된 베팅으로 보는 것이 맞다. 레미콘 회사가 시멘트에 관심을 갖는 것이야 이상할 게 없고, 내친김에 건설사, 기왕이면 종합건설사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당연지사. 또 한 축으로는 레미콘트럭을 운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물류 쪽으로 눈을 돌려 택배 회사를 인수했고, 가전유통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레미콘 전문기업 유진은 갖고 있는 트럭이 4000대다. 물류비가 연간 수천억원 들어간다. 로젠택배를 인수하면서 유진은 이미 규모나 능력 면에서 물류 전문업체로 부상했다. 물류 기업 진출은 미래를 내다본 것이기도 하다. 유 회장은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의 모퉁이 땅인데, 모퉁이 땅은 장사도 잘되는 금싸라기다. 통일까지 내다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물류 중심지가 된다.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때를 대비해 물류 산업에 진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래 산에서 사금 캐듯 인재 발굴
서울증권 인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조업만으로는 경쟁이 어렵다는 게 유 회장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금융업에 뛰어들었고, 인수한 것이 서울증권이었다. 물류·유통을 하려면 금융이 필수적으로 받쳐줘야 하고, M&A로 사업을 계속 확장하려면 자금의 뒷심이 중요하다. 영토를 넓히는 속도가 빠르다고는 해도 무분별한 투자나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하이마트 인수를 계기로 금융·물류·유통 3개축을 완성해 아직은 작지만, 나름대로 그룹사의 틀을 짠 것만은 분명하다.
M&A가 일어난 것은 최근 4~5년이지만, 유 회장이 준비한 것은 훨씬 오래 전부터다. 그가 유진종합개발 대표를 맡은 1985년 이래 지금까지 중요한 회의는 오전 6시에 시작된다. 회사 안팎에서 “무슨 레미콘 회사가 새벽부터 회의할 게 그리 많으냐”고 말들이 많았지만, 유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까지 레미콘만 할 건 아니니까, 세계적인 회사가 되려면 지금부터 확실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조기회의를 강행했다.
직원 채용도 남달랐다. 유 회장은 인재제일주의 원칙에 따라 당시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던 레미콘 업계에 처음으로 대졸자 공채를 실시했다. 다른 레미콘 회사들과는 달리 대기업 수준의 조건을 내걸고 명문대 출신들을 ‘모셔’왔다. 대기업, 그룹사로 회사를 키우려면 그들 못지않은 인력을 미리 확보해둬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유 회장은 “모래 산에서 사금 알갱이를 모으듯 인재를 찾고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직원 교육에 드는 돈은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아 왔다. 이런 원칙은 직원 상호 간 신뢰와 능력에 따른 인사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적잖은 기업을 인수했지만 피인수 기업의 임직원도 전혀 차별을 두지 않고 능력에 따라 요직에 두루 배치했다.
선견지명으로 정면 돌파
그를 오래 전부터 잘 아는 한 인사는 “초창기 회사 규모는 중견기업에도 한참 못 미쳤지만, 유 회장의 스케일은 10대 그룹 총수에 뒤지지 않았다”며 “언제나 미리 내다보고 남보다 한발 앞서야 한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고 전했다.
유진그룹은 1969년 건빵 회사로 출발해 1984년 레미콘 회사로 변신했다. 이듬해인 1985년 창업주인 부친 유재필 전 회장의 뜻을 이어 경영을 맡은 유 회장은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신사업을 개척해 유진을 지금의 그룹으로 키웠다. 초기부터 유 회장은 레미콘 1위를 목표로 과감한 혁신에 나섰다. 경쟁사와 차별화한 대표적인 조치가 바로 고객 카드제다. 이전까지 레미콘 업계에서 알음알음으로 영업하던 관행을 깨고 확실한 고객 관계를 만들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시스템으로 고객관리가 이뤄지면서 유진의 실적은 지속 상승해 업계 1위에 등극했다.
남보다 앞서 치고 나간 탓에 시련도 적지 않았지만, 유 회장은 그때마다 승부수를 두었다. 외환위기 땐 경쟁사와 협력사들의 구조조정 틈을 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엿보기도 했다. 당시 레미콘 업체에 시멘트를 공급하던 업체들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납품가를 올리려고 했다. 그때까지 주재료인 시멘트에 의존해야만 하는 레미콘 업체들은 고객이면서도 시멘트 업체들에 ‘을’처럼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나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유진은 시멘트 업체들의 가격 인상 요구를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에 시멘트 업체들은 적잖이 비위가 상했다. 유 회장이 계속 버티자 유진은 시멘트 업계의 공적처럼 돼 버렸다. 급기야 이들은 유진에 시멘트 공급량을 대폭 줄여가며 압박해 왔다.
유 회장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대신 중국 등 해외 시멘트 공급사를 개척하며 부족한 양을 채워나갔다. 동시에 당시 매물로 나온 전국 곳곳의 레미콘 공장을 하나 둘 사들였다. 위기관리 차원에서 실탄을 비축해 둔 유 회장의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느덧 유진은 시멘트 업계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오히려 시멘트 업체들의 체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유 회장은 시멘트 업체들이 공급량을 줄이면 유진만 힘든 게 아니라 공급사도 같이 힘들다는 것을 간파하고 끝까지 버텼다. 여세를 몰아 유 회장은 2004년 굴지의 고려시멘트를 인수해버렸다.
유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은 로또 사업에 진출할 때도 돋보였다. 당시 매출액 2조4700억원에 수수료 수익이 777억원에 이르는 ‘대박 비즈니스’를 차지하려 달려든 그룹사, 대기업들은 유진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었을 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곳은 유진이었다. 당락을 결정지은 것은 수수료율이었다. 유 회장은 경쟁 업체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낮은 수수료율로 베팅했다. 복권위원회가 원했던 수수료율은 2.5% 전후였다. 그런데 유 회장은 복권위원회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낮췄다. 순간 경쟁자들은 허를 찔렸다. 경쟁업체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수료율로는 남는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의아해했다. 심지어 “유진이 혹시 로또 사업에서 꼼수를 부리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가졌다.
경쟁자 허를 찌르는 승부사
여기저기서 유진의 재무 상태를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치자 결국 심사가 이뤄졌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유진의 손을 들어준 계기가 됐다. 유진의 현금 유동성은 어느 경쟁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훌륭했다. 당시 대우건설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드림씨티를 매각한 대금만 4000억원이었다.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유 회장은 로또 사업권을 따내는 대박을 터뜨렸다. 과감하게 수수료율을 최저로 써낸 것이나, 오해 받을 것을 대비해 자금을 확보해 둔 것 모두 수를 미리 읽는 승부사의 면모가 엿보인다.
로또 사업자로 선정됐을 때 유 회장은 로또를 ‘대박’이나 ‘인생역전’이 아닌 철저하게 공익사업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수수료율을 낮춰 수익금 자체도 적지만 그나마 상당액을 학술재단이나 사회복지, 환경보호에 쓰기로 했다. 로또복권 구입자는 대박을 노리는 사람이 아닌 사회에 기부를 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쟁쟁한 대기업들을 제치고 그 때만 해도 중견기업에 불과한 유진이 사업권을 따낸 비결도 ‘복권 사업의 공익화’였다. 그것은 정부가 원하는 것이었다. 유 회장은 돈을 벌기 위해 복권 사업에 뛰어든 게 아님을 강조했다. 그리고 공익성을 담보하는 우량한 재무구조로 쐐기를 박았다. “재무 상태가 나빠지면 아무래도 수익을 우선시하지 않겠느냐”며 그룹의 모기업인 유진기업의 부채비율은 103%이며 서울증권은 부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진이 제시한 수수료율로 올리는 연간 수수료 수익은 500억~600억원 수준. 운영비와 컨소시엄 참여업체들 몫을 빼면 유진이 가져가는 돈은 연간 30억~40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중 상당액을 공공재원으로 쓰겠다고 약속했다. 유 회장은 그래도 얻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룹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니 적자만 보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대신 향후 수익성을 보고 있다. 복권 사업 경험을 쌓아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정부는 복권의 사행성보다 공익성을 추구할 테니 공익성으로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면 외국 정부도 관심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행사업으로 치부돼 오던 로또 사업을 국내 대표적인 공익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는 유 회장의 경영철학에 따른 것이다. 유 회장은 유진복지재단을 세워 맞벌이 부부를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안당학술장학재단을 설립해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야망의 끝은 어디인가
로젠택배, 서울증권에 이어 하이마트 인수까지 거침없이 이뤄낸 유진그룹의 자산 규모는 2006년 1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4조900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유 회장에겐 몇 가지 M&A 성공원칙이 있다. 우선 경제성을 따지는 것이다. 실제 가치보다 값이 싸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실제 가치보다 비싸면 절대 사지 않는다. 다음은 기존 기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빨리 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가능성이 적어도 사지 않는다. 세 번째는 실패를 가정하는 것이다. 인수 뒤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 재무·인력 측면에서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밖에 준비는 철저하게,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하는 것이나 추진팀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유 회장의 M&A 스타일이다.
칭기즈칸은 성을 쌓지 않는다
하이마트 인수 이후 최근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유 회장은 이 위기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하이마트의 영업이익이 연 1000억원대로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데다 유진기업이 건설자재 시장에서 지배력이 여전히 높고, 유휴 부동산과 계열사 매각 등 자구책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
유진그룹은 올 들어 유진투자증권 지분 8.6%를 500억원에 한국종합캐피탈에 매각하고, 최근 골프장 운영업체인 동화기업도 팔았다. 지난해에는 메트로PFV, 미분양 아파트 등을 매각해 상당한 자산을 현금화했다. 덕분에 유진기업의 올 1분기 부채 비율은 180%대로 크게 줄었다. 유 회장은 늘 ‘최악’을 가정한다. 최악이란 인수에 들어간 돈을 다 까먹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모기업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유 회장의 철칙이다.
하이마트 인수 후 공격 경영에 나선 유 회장은 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중국에도 하이마트 점포를 오픈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 유 회장은 로젠택배, 한국GW물류, 한국통운 등 기존 물류회사가 전국적인 물류망을 확보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 하이마트의 24시간 배송 시스템을 강화했다. 하이마트가 전국 252개 지점 외에도 매년 40여 개의 신규 매장을 개장해 리모델링하고 있는 만큼 유진기업 건설 부문에서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추가 매출도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동성 문제가 해소되면, 그룹의 성장 동력이 되고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인수할 생각이다. 그에게 M&A는 확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돌파구다. 늘 매물을 찾아다니는 그에게 누가 “왜 그렇게 서둘러 회사들을 사들여 그룹을 키우려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업은 레미콘 같은 것이다. 돌지 않고 멈추면 돌이킬 수 없게 굳어버리고 말 것이다. 끊임없이 확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철인 3종(수영·자전거·마라톤) 경기에 도전해 2시간50분대에 주파한 유 회장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한다. 재개발로 지금은 허물었지만 청진동 유진기업 본사엔 담장이 없었다. 유 회장이 마당을 개방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런 친근함의 이면에는 정복자의 야망이 숨어있다. 칭기즈칸도 성을 쌓지 않았다.
tip 철인 3종으로 단련한 경영정신
좀처럼 언론에 노출되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라는 소리도 듣지만 유 회장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소탈한 성격이다. 평소 노타이 차림에 부드러운 말투와 웃음으로 말단 직원과도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의 활달한 성격과 활동적인 경영 스타일은 철인 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라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수영 1.5㎞, 사이클 40㎞, 마라톤 10㎞를 3시간30분 내에 완주해야 하는 철인 3종 경기에서 유 회장은 2시간58분의 기록을 세운 ‘철인(鐵人)’이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기도 한 철인 3종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의 전형이다. 유 회장이 철인 3종에 입문한 것은 10년쯤 전이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엄청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단적인 스포츠를 찾게 된 것이다. 극한을 체험하는 철인 3종을 완주하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
이후 매년 철인 3종에 도전해 기록을 경신했다. 2000년 대한철인3종경기연맹 회장, 2003년 아시아트라이애슬론연맹 회장에 이어 최근에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lympic Council of Asia)의 ‘스포츠와 환경분과’ 위원장 겸 집행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유 회장은 아시안게임 때 “철인 3종에서 동메달만 따도 아파트를 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유 회장은 거의 매일 달리기와 수영으로 체력을 보강하며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 스포츠와 경영은 모두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는 “두 가지 모두 여기가 한계인가 생각할 때가 있지만 좀 더 가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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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기사는 이코노미플러스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