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둘은 정신질환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마조히스트는 남에게 사기당하고, 억압됨으로서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부류들이다.
세디스트는 남 위에 군림하고 사기 치면서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두 부류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종교집단을 관찰 해보면
처음 그 집단에 입문하면서 마조히스트성격을 띤다.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집단일 수록 잘 참는 인간들만 모여든다. 잘 참는 다는 건 마조히스트적 성격을 이미 가진 사람들이다. 인내심이 강한 자 들이다. (억압에 잘 버티는 기질로서 마음의 지극한 안정과는 거리가 먼 인격체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할 것이다)
인내심을 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 집단에서 잘 버틴다. 수행(명상)과는 상관없다. 어쨌든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면 집단에서 위치가 어느 정도 높아지는데, 아랫사람에게 역시 강한 인내심을 요구하게 된다. 즉 세디스트 또는 나르시스트적 성격장애자의 길을 걷게 된다.
나는 이런 중들을 많이 봐왔다.
어떤 주지가 속가의 끄나풀에게 절의 총무를 맡겼다. 총무와 주지가 이야기 하는데,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하니 주지가 “밑의 똘마니들에게 시키면 된다”고 했다. 똘마니는 물론 자기 사제들이었다. 아무리 못나도 자기의 사제들인데 똘마니라니....
또한 인내력만으로 그 집단에서 버티는 자들은 수행에 대해서는 시기질투를 한다. 내가 행자 때이다. 깊은 산중에서 큰 스님을 모시면서, 거해스님의 비파나사를 태이프를 통해서 듣고 수행에 매진했다. 한 때, 큰 스님이 “너 뭐하냐?”라고 했다. “수행 합니다”라고 하니 “이놈아, 니가 뭘 안다고” 라고 비아냥거렸다. 나는 그때 수행의 18단계 중(아잔브람이 말하는) 9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수년전 나는 승복을 입고 일요일마다 장로교회에 다녀본 적이 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니 어쩌면 그렇게도 불교와 같을 수 있는가하고 감탄한 적이 있다.
"당신의 생각을 모두 내려 놓으십시요. 그래야 성경이 당신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믿으십시요"라고 했다.
절에 출가를 하면 "너를 버려라. 낮추어라, 아상을 버려라, 니 생각은 모두 망상니....."라고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듣는다.
그렇다고 내가 내 아상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자존감이 강해야 진리를 자기식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남의 식대로 이해를 하게 됩니다. 경운기를 운전하는데 경운기 운전모드로 운전해야지, 승용차 운전모드로 운전하면 얼마못가서 또랑에 쳐박는다.
심리학에서
자존감이란 대단히 중요한 심리학적 매뉴다. 이것이 정립되지 않는 사람은 모든 시스템(종교집단은 제외한)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가정에서 가족의 불완전한 자존감 성립은 문제 있는 인간을 배출한다.
상담과 정신치료의 주 개념은 자존감 세우기가 어떤 것 보다 첫번째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그렇다.
잘 아는 목사님의 명언이다."수준이 낮은 쪽에서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 수준은 자존감이 확립되지 않은 인격체를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사회적응도가 낮아 특정집단으로 몰려들게 된다. 그 집단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인간은 역시 불완전한 자존감의 소유자들이다. 또한 이 불완전은 대부분 유아 때 심각한 트라우마나 그 부모가 자신에 대한 그릇된 자아형성으로 인한 자식의 그릇된 이해에 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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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그림자 부처는 시원, 본질, 존재로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한국불교와 같이 그런식으로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천도제는 중세때의 기독교의 면죄부와 같죠.
입시기도때 기도비 받아 먹는건 순전히 .... 이건 아니죠.
한국불교는 기독교와 왜 그렇게나 흡사한지..
저는 심리학 프로그래머인데 어떤 프로그램도 불교의 본질적인 프로그램에 미치지 못하죠.
@바람그림자 비슷하다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정확히..
@바람그림자 쪼개고 통합하고, 다르게 쪼개고 다르게 통합하고를 잘하죠.
그러면 다른 결론을 얻죠.
같이 사는 사람 있죠? 매일 똑같은 소리만 해보세요. 돌아버리죠?
매일 똑같은 반찬만 먹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