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를 사과하다
이양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나는 모차르트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그 이유를 말하라면 부드럽고
로맨틱하면서도 애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장르의 음악이 좋지만 특히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G장조와 제5번 A장조를 좋아한다. 나는 늘 그의 음악을 즐겨 들었으며 아이들을
키울 때도 정서적으로 부드러운 감성이 성숙하도록 자주 들려주곤 했다.
모차르트는 1781년 25세 때 몰이해한 대사교와 충돌한 후 잘츠부르크를 떠날 결심을 굳히고 이후
빈에정주하게 되는데 이시기의 주요 작품으로 "바이올린 제5번" 이 만들어졌다. 음악적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궁핍하고 불행했던 35년간의 그의 인생 역정 때문인지 모차르트의 음악은 경쾌하면서도
언제나 아련한 슬픔을 내포하고 있다. 그 멜로디는 너무나 애잔하고 달콤한 귀족의 슬픔의 선율
이다. 부드럽고 로맨틱하면서도 애조를띤다.
나는 25살의 나이로 대학원 수료 후 결혼을 했다. 당시 남편은 가난한 무급 조교였던 백면서생이
었다. 결혼 후 연달아 세 아이를 낳았다. 환경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양가의 허락을 받아 힘들게
가정을 꾸린 뒤 나에게 부딪쳐온 또 하나의 문제는 그의 주벽이였다. 워낙이 주량이 많고 술이 세기
도 했지만 술을 먹기 시작하면 밤세 잠을 자지 않고 마셨다. 그리고 자는 애들을 깨워서 '얼차려'를
시키면서 어린 아이들을 마치 훈련병 다루듯 했다. 사내는 씩씩해야 된다면서,
그이가 저녁 회식 모임으로 늦어진다는 얘기를 하는 날이면 나는 일찌부터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인
후 씻겨서재웠다. 초저녁부터 이불을 펴고 눕혀 놓고는 그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모차르트 바이
올린 협주곡을 자장가 삼아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어서 자라고 재촉하였다. 왜냐하면 애들이
한숨이라도 푹 자두어야만 아빠가 들어와서 깨워도 칭얼대지않을 것이고 그러면 야다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아이 셋이 모두 성장하여 결혼을 했다. 이제 안정과 편안함이 우리를
감쌌다. 그런데 그이는 정녕 퇴직을 한지 10년이 되던 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결국 과다한 주량
때문이였는지 식도암이 원인이였다.
그 뒤 어느 날 우리 남은 식구들이 모두 한데 모여서 술을 한 잔씩 하면서 회포를 풀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얼큰해진 기분으로 나는 예의 그 모차르트 음악을 틀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작은
며느리가 한마디 하는 게아닌가, "어머니 이 사람 모차를트 음악 안 좋아합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불안해진대요" 옆에 함깨 있던 큰며느리까지 "어머니 이 사람도 한때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서요" 한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5살. 9살. 11살의
아이들에게는 모차르트음악을 들려주고일찌감치 잠을 재촉하는 날은 언제나 아빠가 술 취해 들어와서
자기들을 힘들게 한다는 트라우마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멋진 모차르트 음악이
사랑스런 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했다니...
트라우마(trauma) 는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 을뜻하나,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충격(정신 장애를 남기는) 을 말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힘들었던 일들과 연관되어서
생겨난 트라우마는 인간 개개인에게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엄마만 좋아서 곱고 아련한 슬픔을
즐기며 들려주었던 아름다운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이 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에
나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너무 놀랍고 미안해서 한참동안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수 십 년이
지나서야 이 사건의 장본이이 엄마라는 사람이 이제야 이 같은 사실을 알다니,
그 이후 쉰이 내일 모래인 막내한테 조용히 다시 한 번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고등학교 졸업 전후
해서 많이 완화되었고 군대 갔다 온 이후로는 괜찮아졌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 음악은 언제나 그런
기억을 되살렸다고 했다.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였다. 내 자식의 힘든 시간을 엄마라는
사람이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니 착잡한 마음마저 들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힘들었던 일들과 연관되어서 생겨난 트라우마는 이렇게 인간 개개인에게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엄마만 좋아서 곱고 아련한 슬픔을 즐기며 들려주었던 그 아름다운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이 내 아이들에 그러한 상처를 주었다니...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이 내가 살아오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좋은 선생님은 열심히 공부해서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잘 가르치면 된다. 그러나 엄마라는 존재는 나 자신보다 더 중
요한 내 자식에게는 감정이이입되어 이성적이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욕심이라는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정말 멋지고 정말 이성적인 좋은 엄마가 되기가 쉽지가 않았다.
거기에다 직장 생활하면서 공부도 병행해야 하고 별난 남편 뒷바라지에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의
일상이였다. 그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며 애 셋을 잘 건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
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변명이 되겠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이제부터라도 남은 세월 좋은 엄마 훌륭한
엄마가 되고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살아온 날들을 가만히 돌아본다. 어디 자식에게만 그랬을까? 좀 더 아름답게 좀 더 친절하게 다른
이들에게 내가 베플려고 했거나 베플었던 어떤 일들이 내 호의와 상관없이 상대에게 불편함으로
전해졌던 일이 없을 거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이처럼 전혀 다른. 역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
겠다는 생각에 삶이 다시 한 번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 후 어느 날 자리를 마련하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용서해 주기 바란다. 그래도 모두 훌륭하게 잘 자라주어서 정말 고맙다."라고 간곡하게 사과를했다.
그리고 그날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을 틀지 않았다.
Mozart: Violin Concerto No. 3 - Hilary 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