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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진(薪島鎭)과 충청수사 정위(鄭瑋) 공의 대흥별곡(大興別曲)
2021. 2.13. 여천(與天) 정철중(鄭喆重)
Ⅰ. 한시집 「서래만영(西來謾詠)」
퇴직 후, 가전되던 유물을 정리하던 중 「서래만영(西來謾詠)」이란 단권으로 된 평범한 책 한권을 알게 되었다. 저자가 누구인지, 언제 쓴 것인지 알 수 없고, 필사본이기는 하지만 그리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이 수사공(1784~1848)이 쓴 시집이라는 것을 안 것은 본격적으로 「정위·정수현가 유물집」의 발간작업을 진행하면서 해제(解題)를 준비하던 때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시가 ’신도(薪島)‘인데 충청수사공이 신도진수군첨사(薪島鎭水軍僉使)로 근무하신 적이 있고, 글 중에 ’임존성 아래에 나의 집이 있네(임존성하복오려 任存城下卜吾廬)‘ 라는 시구(詩句) 때문이다. 임존성은 충청도 대흥군의 진산으로 흑치상지가 백제부흥운동을 했던 산성이다.
「서래만영」은 ’서쪽에 와서 지은 시‘라는 의미인데, 신도는 우리나라의 최서단으로 황해도 장산곶 보다도 서쪽이다.
2017.12.31. 발간된 「광주정씨총관(光州鄭氏總觀), 장한우·정종환」에 소개는 하였지만, 책의 내용과 구성 등 해제는 소개할 수 없었다. 필사본인지라 초서체의 판독이 어려워 숙제로 미루어졌다.
2019.2.1 「유물집」 가본작업을 마치고, 다시 3.1 만세운동 후 옥고를 치르고 1992년 2월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 받으신 정제신(鄭濟莘 1883~1928) 공의 한시집 「동유기문(東遊記聞), 미발간」의 번역을 2020년 2월에 마쳤다. 다시 고조부 정수현(鄭秀鉉 1813~1877) 공의 스승이자 문인(文人)으로 교유하시던 고령 신응모(申應模 17) 공의 한시집 「금서축(錦西𨋀), 미발간」을 2021년 1월에 잠정 번역 완료하였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난해한 서래만영의 판독이 가능할 것 같아 요즘 그 번역작업에 착수하였다.
「서래만영」은 신도진수군첨사 재임기간의 시와 병이 났을 때 또는 관직을 쉬며 고향 대흥으로 내려와 계시던 시기에 지은 시를 모으니 119수이고, 부록으로 중국 명문선(적벽부, 난정기 등) 15편을 첨가하였다. 이 한시집에는 신도 주변의 풍광과 소회, 지방 문인들과의 화답시 이외에, 눈에 뜨이는 보옥(寶玉) 같은 몇 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명시(名詩) 때문이 아니다. 집안 형제와 조카들의 모습을 회상하며 쓴 시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집안 선대들의 알려진 행력(行歷) 및 기록은 물론 비문(碑文)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한 줄의 기록이라도 갈구해왔으나, 어느 자료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시들은 단편적인 모습에 불과하지만 집안으로 보면 매우 가치가 크다.
Ⅱ. 신도진(薪島鎭)
원래 용천군(龍川郡) 미관(彌串, 미곶)은 의주계(義州界)에서 20리에 있고 용천부(龍川府) 관문(官門)으로부터 서쪽으로 40리로, 편호(編戶)는 141호(戶), 남자 238명, 여자 328명이며, 미관진(彌串鎭)은 부의 서쪽 40리, 첨사(僉使) 1명, 대장(代將) 1명, 병방(兵房) 2명, 선장(船將) 1명, 아전(衙前) 11명, 나졸(羅卒) 16명, 통인(通引) 10명, 둔군(屯軍) 165명이 있었다.
신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숙종 4년 미곶에 소모별장(召募別將)을 설치하였다가 후에 승격시켜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度)로 삼았다. 순조(純祖) 8년에 신도(薪島)로 진(鎭)을 옮겼는데 바람이 잠잠하면 나가서 신도(薪島)에 둔(屯)치고 바람이 강하면 물러나와 미관(彌串)을 지켰다. 본진(本陣)에는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1명, 민호(民戶) 429호, 인구 1,656명이고 그 중 남자 924명, 여자 732명이다. 군사는 총 341명이며, 창고가 3, 양곡이 총 1,920석, 연대(烟台 봉화대) 1, 파수(把守) 1, 배 8척이 있었다고 기재되어있다. 미관이 비었을 때 대장(代將)이 지켰다. < 자료 : 古珥島·薪島를 圍繞한 朝淸國境係爭(김경춘 金炅春) >
역사적으로 보면, 이순신장군이 지켰던 두만강 하류의 녹둔도(鹿屯島)가 러시아 쪽으로 붙어서 지금은 러시아 영토로 편입되어 있는 반면, 신도는 우리나라 영토로 존속되어 있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 신도의 새 이름 비단섬(緋緞島) <네이버 지식백과 등>
◾ 평안북도 신도군(지금의 비단섬노동자구)의 압록강 어귀에 있는 인공섬.
◾ 지리현황
비단섬의 면적은 64.368㎢(여의도 면적의 22배), 동서 길이는 5.76㎞, 남북 길이는 13.76㎞, 둘레는 49.07㎞, 높이는 89m이다. 비단섬은 주위에 있는 크고 작은 마안도(馬鞍島)·양도(洋島)·말도(末島)·축도(杻島)·사자도(獅子島)·구영도(九營島) 등의 섬을 제방으로 이어 만은 인공 섬이다. 한반도의 극서(極西)에 해당한다. 한반도의 극서로 일컬어지는 마안도가 비단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자연환경
비단섬의 북부와 서부는 중국과 국경을 이루며, 남부에는 삼각봉(三角峰, 91m)이 있고 바다에는 양도·장도·사자도·말도 등이 신도열도를 이룬다. 섬 주변에는 해마다 압록강의 퇴적 작용에 의하여 운반되는 흙과 모래가 쌓여 빠른 속도로 확장되면서 삼각주를 이룬다. 이곳은 1965년경에 3개의 섬과 마안도(馬鞍島)·초개도(草介島)의 섬과 얕은 바다를 잇는 간척공사를 하였다. 지명은 섬이지만 실제로는 퇴적작용으로 서쪽부분이 중국과 단둥(丹東)시 관할의 둥강(東港)시와는 1㎞에 불과하다.
◾ 현황
비단섬은 보리·밀·옥수수 등이 생산되며, 넓은 갈대밭이 펼쳐 있는데 화학섬유공업의 원료로 이용되는 갈이 많이 생산되며, 그 밖에도 수산업을 한다. 섬의 남부 신도지역은 신도군의 행정중심지로서 주택과 편의시설, 군급 기관, 기업들, 교육문화기관들이 있다. 북한은 인접해 있는 중국과의 교역이 늘어나면서 무역 적자가 커지자 2002년 ‘신의주 특구’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무산이 되었고, 2007년에 다시 비단섬 개발설의 목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북한이 신의주를 개발해 대외에 개방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 구글 지도로 보는 비단섬 >
Ⅲ. 대흥별곡
□ 신도진수군첨사 교지
재임기간 : 1826년(순조6년) 6. 25 ~ 1828.6.24.
< 교지 : 절충장군행 신도진수군첨절제사겸 방수장, 도광 6년 6월>
ㅇ 절충장군(折衝將軍) : 동반 정3품직
ㅇ 행(行) : 직품은 정3품인데 직책은 종3품직책으로, 이럴 때 행(行)을 쓴다
ㅇ 신도진수군첨절제사(薪島鎭水軍僉節制使) : 압록강 하구에 있는 신도라는 섬에 진을 설치해 중국인의 불법어업 및 침범을
방어하였다. 요충지이므로 근무 상 가점이 주어졌다.
ㅇ 방수장(防守將) : 병권은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방어사에 주어졌으나, 방수장은 직책상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일정부분의
독립적인 병권이 주어졌다.
□ 첫 시, 신도(薪島)
일도탄구소진성(一島殫九小鎭成(주1))
산형위처유잔성(山形圍處有殘城)
요루고각성성장(閙樓鼓角聲聲壯)
박지촌연점점생(撲地村烟點點生)
해수연천삼면백(海水連天三面白)
빈주노월오경명(蘋洲盧月五更明)
장부십재다회감(丈夫十載多懷感)
황야추련격불재(黃夜秋蓮激不再)
하나의 섬에 쓰러져가는 아홉 개 작은 진
산 모양 주위엔 성곽 잔영뿐이네
망루엔 요란스러운 고각소리 웅장하고
적을 무찌른 마을엔 연기만 모락모락 피어오르네
바닷물 하늘에 맞닿아 삼면이 하얗고
개구리밥 뜨는 물가 갈대밭에 달은 오경이 되도록 밝구나
장부의 객지 십년에 감회도 많은데
저녁노을의 가을 연꽃은 파도에 다시 부러지지 않겠지
주1) 진의 방리(坊里)는 도내일방(島內-坊)과 육진일방(陸鎭一坊)이 있다.
< 자료 : 古珥島·薪島를 圍繞한 朝淸國境係爭(김경춘 金炅春) >
* 신도열도(薪島列島) : 평안북도(平安北道) 용천군(龍川郡) 서해(西海)의 해중(海中)에 산재하는 크고 작은 도서·사주를 총칭한
다. 마안도(馬鞍島, 馬島), 유도(杻島, 축도 築島), 사자도(獅子島), 구영도(九營島), 연도(燕島), 영도(永島), 예도(艾島), 양도(羊
島), 초개도(草介島), 달도(達島), 장도(長島), 말도(末島, 고량도 高梁島), 노도(露島), 산도(蒜島)
□ 신도수군첨사 재임 시 시축
1. 화한극제운(和韓克濟韻) 6수 한극제와 함께
④ 한독(閑讀) 한가하게 책을 읽으며
한초신세계(漢樵新世界) 오랑캐를 망보는 것은 새로운 일인데
풍우폐가거(風雨弊家居) 비바람부니 집안에 머물고 있네
유약허오탑(有約虛吾榻) 약속 있어 내 책상을 비워도
무연공자거(無緣共子車) 나에게 자식과 수레는 인연이 없네(주2)
시래변수지(柿來邊戍地) 감나무 있는 곳에 왔는데 변방군진
한독고인서(閑讀古人書) 한가하게 옛 서적이나 읽고 있네
격수상사의(隔水相思意) 멀리 떨어진 섬에서 서로 뜻을 둔다 해도
나감월상초(那堪月上初) 어찌 감히 처음부터 달에 높이 오르겠소
주2) 친생 자식이 없다. 형의 차남인 정수현공으로 계후(繼后)하였다.
2. 사가(思家) 집 생각
가재천산만수향(家在千山萬水鄕)(주3)
몽혼불감도훤당(夢魂不敢到萱堂(주4))
삼시욕투칠칠한(三時欲透桼桼眠)
백련지여촌촌장(百鍊只餘寸寸膓)(주5)
도금문전다괴부(陶今門前多愧父(주6))
옥손여외기노양(玉孫閭外㡬勞孃)
해국우우서신권(海國深深書信夢)
나감효월부남상(那堪曉月府南翔)
고향집은 천개의 산봉우리가 있고 만 갈래의 물길이 흐르는 곳
꿈속의 혼이라도 감히 어머니를 뵐 수가 없네
세 치를 통과하려 해도 캄캄하여 졸리고
수백 번 단련하여 한걸음 남았는데 한 치 한 치 마음뿐이네
지금 기뻐하며 문 앞에 있는데 아버님께 많이 부끄럽네
귀한 자손들이 모두 마을 밖에 있으니 얼마나 어머님 노고가 많으실까
바다 섬은 깊고 깊은 곳이라서 꿈속에 서신을 쓰고
저 새벽달에 기러기는 남쪽으로 날아가네
주3) 대흥(大興)은 현재 충남 예산군 대흥면이다. 넓은 들은 바다와 같은 예당저수지로 바뀌었고, 진산인 봉수산(鳳首山)은
483m로 주변에서 우뚝 솟아있다. 높고 낮은 차령산맥의 봉우리들이 첩첩이 뻗어있다. 이곳 대흥이 고향이 된 것은, 부친
이신 이건(履健 1753~1817) 공이 연풍현감(延豐縣監)을 마치고 예산현감(禮山縣監)으로 부임에 오시면서, 경기도 광주(廣
州)의 자작리(自作里)에서 가향(家鄕)을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주4) 훤당(萱堂) : ①남의 어머니에 대한 경칭(敬稱). 자당(慈堂) ②편지(便紙) 등(等)에서, 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 이 시
를 쓴 때가 1827년이므로 어머니 의령남씨(宜寧南氏, 1758~1837)는 70세이다.
주5) 꿈속에 고향 땅에 가는데, 아직 대흥에 도착하지 못한 듯하다.
주6) 아버지 현감공은 이미 별세하셨으므로 꿈속에 뵙고 있다.
3. 억형주(憶兄主: 규 珪)(주7) 형을 생각하며
취산무상수(聚散無常守) 모이고 흩어지고 항상 집안 지키는 사람이 없네
서남일몽신(西南一夢新) 서남쪽에 꿈 한자리 새로우니
침과신도월(枕戈薪島月) 베개 싸움에 신도의 달빛과 벗을 하고
해후려성춘(解後梠城春) 꿈 깬 후 성의 처마에 봄빛이 드네
정성금소광(定省(주8)何曠) 부모님 살펴드린다는 것이 지금 얼마나 헛된지
정ㅇ구미신(情懷(주9)久未伸) 그리운 정 오래토록 올리지 못했네
유시강상척(有時崗上陟) 시간 내어 언덕에 올라
회수백호빈(回首白雲濱) 돌아보니 흰 구름 물가에 있네
주7) 형 정규(鄭珪 1777~1846)공은 1803년 무과에 급제하고 1824.10.2. 해미현감(海美縣監)을 제수 받아 재직 중이다
주8) 정성온청(定省溫淸) : 아침저녁으로 부모(父母)의 이부자리를 보살펴 안부(安否)를 묻고, 따뜻하고 서늘하게 한다는 뜻으
로, 자식(子息)이 부모(父母)를 섬기는 도리(道理)를 이르는 말
주9) 정회(情懷) : 생각하는 정과 회포(懷抱)
4. 억제주처(憶弟主處 : 구 球)(주10) 아우를 생각하며
십재문위객(十載門爲客) 십년을 집안의 나그네 되어
분금우일년(分襟又一年(주11)) 옷깃이 나뉜 지 또 일 년이네
고홍천북각(孤鴻天北角) 외기러기 하늘 북쪽으로 날아가고
시수해서과(柿樹(주12)海西過) 감나무는 바다 서쪽을 지나가네
유석청춘노(留惜靑春老) 청춘도 늙어가 아쉬움이 남고
도로백일혼(徒勞(주13)白日減) 보람 없이 애만 쓰고 하루가 줄어드네
대서서부도(待書書不到) 소식을 기다려도 편지 오지 않아
기향문래항(㡬向問來船) 몇 번이나 배가 왔는지 묻고 있다네
주10) 아우 정구(鄭球 1787~1849)공은 1815년 무과에 급제하고, 1826.8.1. 6품으로 승급한 후, 1826.12.26. 훈련원주부(訓鍊院 主簿)를 제수 받아 재직 중이다
주11) 신도첨사 제수일이 1826년이므로 이 시를 지은 시기는 1827년이다.
주12) 시수(柿樹, 감나무)는 신도 관사의 앞 뜨락에 있어, 첨사 본인의 상징이다.
주13) 도로(徒勞) : 보람 없이 애씀. 헛되이 수고함
5. 억아자영(憶兒子(주14)營) 아들의 커 감을 생각하며(정수현 鄭秀鉉)
일념우어예(一念偶於藝) 뜻하지 않게 학문에 일념이 있고
구성계자시(構成戒子詩) 스스로 경계하는 시를 지을 줄 아네
수행원효도(修行源孝道) 수행에 힘쓰는 것이 효도의 근본인데
근학탁신기(勤學托身基) 학문에 정진해 스스로 터전을 닦네
조댁화삼계(曹宅花三桂)(주15) 사대부가에 세 그루 계수나무 꽃이 피어
사정수기지(謝庭樹㡬枝) 감사하게도 뜨락에 나무가 몇 가지를 뻗었나
천류여불식(川流如不息) 시내가 흐름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하방간송지(何妨澗松遲) 어느 누가 물가의 소나무를 더디도록 방해할건가
주14) 이제 15세인 난석을 생각하며 쓴 시인데, 그 당시에도 면학과 수행에 힘썼다.
주15) 수사공이 삼형제인데 모두 무과 급제하여 출사중이고, 사내자식들이 모두 네 명이다.
6. 억사질선달(憶舍侄先達 : 주현 周鉉)(주16) 조카 선달을 생각하며
관용흉약해(觀容胸若海) 용모를 보노라면 가슴은 바다와 같고
위중세여산(威重勢如山) 무거운 위엄은 그 기세가 산과 같네
청학기오적(請學奇吾籍) 기특하게도 내 서적의 강학을 청하고
도칭괴숙안(賭秤愧叔顔)(주17) 저울로 내기하면 숙부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네
척장증유편(滌膓曾有扁) 마음을 수양할 때는 일찍이 넉넉한 데가 있고
괄골갱문관(括骨更聞關) 골격을 보노라면 더욱 말문을 막히게 하니
적저서난진(積緖書難盡) 차례로 적다보면 글로 다 쓸 수가 없어
상사즉일반(相思即一般) 보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지네
주16) 정주현(鄭周鉉 1801~1835) : 1826.3.28. 부사용(副司勇), 1832년 첨지중추부사(당상관). 배위 능성구씨(1801~1863) 부 병
사(兵使) 석명(錫明), 동리에서 수차 천거하고 예조에서 임금에 상주하여 특별히 정려의 은전을 내리었다.(향도누천 예위
상주 특몽정포은전 鄕道累薦 禮闈上奏 特蒙旌褒恩典)
* 정포旌褒 : 국가에서 충효(忠孝)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서 효자(孝子)•열녀(烈女)•충신(忠臣)에게 정문(旌門)을 지어 주고 포상
(褒賞)하는 일.
주17) 기골이 장대하여 수사공도 뒤질 바 없지만, 조카 주현이 훨씬 몸무게도 많이 나갔다는 것이다. 내려오는 이야기로, “힘이
장사라서 한 팔로 가래 삽을 꼬나들고, 한 번에 인절미 세 되를 먹었다.”라는데, 수사공이신지 난석공이신지는 모른다.
7. 억술아(憶戌兒 : 노현 魯鉉)(주18) 개띠 아이를 생각하며
구강유면례(久曠省觀禮) 오래토록 헛되이 지내는듯한데 살펴보면 예의가 있고
서래청여조(西來聽汝曹) 여기 와서 듣기에 또래끼리 무리지어 다니네
규모난수졸(規模難守拙) 법식을 보면 어려운 것은 우직하여 고집을 버리지 않고
경둔이도로(驚鈍易徒勞) 놀랍도록 무디어서 쉽게 헛심을 쓰네
이본탄우기(爾本呑牛氣) 이 얘는 본성이 안중에 두지 않고 소 같은 기질을 품어서
오가유봉모(吾家有鳳毛(주19)) 우리 집안에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자질이 있네
항간구극거(須看駒隙(주19-1)去) 모름지기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지나가고
유수내도도(流水乃滔滔) 흐르는 물처럼 철철 넘실대네
주18) 정노현(鄭魯鉉 1814~1838) 1837년 무과(武科), 급제 다음해 조세. 배 전주이씨(1809~1883), 부 부사(府使) 증 병조참의
익(熤), 증조 안은군(安恩君) 은춘(殷春)
주19) 봉모(鳳毛) : ①자식(子息)의 자질이 부조(父祖)에 뒤지지 아니함을 일컫는 말 ②뛰어난 풍채(風采) 또는 뛰어난 글재주
를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주19-1) 구극(駒隙) 백구과극(白駒過隙) :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라는 뜻으로, 세월이 너
무 빨리 지나감을 이르는 말
8. 억차질묘남(憶次侄卯男 : 보현 甫鉉)(주20) 다음 조카 토끼띠 남자 아이를 생각하며
전년금구세(前年今九岁) 전년에 이제 아홉 살인데
두각정최외(頭角正崔嵬) 두각을 보여 바르고 우뚝하다
위념전가법(爲念傳家法(주21)) 생각해 보면 가법을 전할 만하고
허기괄목재(許期刮目才) 약속하건데 괄목할 재능이 있네
안여모야인(眼如貌夜寅) 눈은 모습이 밤의 호랑이 같고
성약진천뢰(聲若震天雷) 목소리는 마치 하늘을 흔드는 우레와 같네
유취번음황(留取繁陰晄(주22)) 기다리고 지켜보면 무성한 나무그늘이 빛나리니
정전종소괴(庭前種小槐) 집의 뜰 앞에 작은 회화나무 심은듯하네
주20) 정보현(鄭甫鉉 1819~1889) 1844년 무과, 양덕현감(陽德縣監), 당상 고령진첨사. 배 문화류씨(1818~1892), 외조 통어사
(統禦使) 허근(許氵+近)
주21) 가법(家法) : ①한 집안의 법도(法度). 또는 규율(規律), 가헌(家憲), 가령(家令) ②한 집안에 대대(代代)로 내려오는 법식
(法式)
주22) 이미 예견을 하셨는지, 보현공의 첫째 셋째 아들이 각각, 수현, 노현공의 계후를 하였다.
9. 억호아종손(憶虎兒從孫)(주23) 호랑이 띠 종손자를 생각하며
숙능모우취(夙能毛羽(주24)就) 일찍이 날 짐승이 모여
계학병군행(鷄鶴竝群行) 닭과 학이 같이 무리지어 있네
구토어하세(口吐魚河勢) 말을 토해내는 모습은 물고기가 강을 만난 형세와 같고
모응관옥정(貌凝冠玉精) 외모는 관옥의 상이 맺혀있네
성종선이식(星從仙李(주25)降) 세월은 흘러 이씨왕조가 다스렸는데
산설이소생(山泄二蘇(주26)生) 산의 신령은 소식 소철이 태어남을 누설하였네
배달수시적(培達隨時適) 잘 길러 세상 통하게 하는 것은 그때 그때 마땅한 것인데
동량자가성(棟樑自可成) 동량이 스스로 앞길을 이루어 나갈 듯 보이네
주23) 호아(虎兒) : 호랑이 띠라면 1818년이다. 주현공이 1801년생이므로 18세에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고, 이미 종손으로서 10
세이다.
주24) 모우(毛羽) : 짐승의 털과 날짐승의 깃. 길짐승과 날짐승
주25) 선리(仙李) : 조선시대, 왕실(王室)의 성(姓)인 이씨(李氏)를 높이어 이르던 말.
주26) 이소(二蘇) : 당(唐)나라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과 송(宋)나라의 구양수(歐陽修),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증공(曾鞏), 왕안석(王安石)의 8명의 뛰어난 문학가를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라 부른다. 이중 으뜸은 소동파(蘇東坡) 소식
이다. 소순은 소식과 소철의 부친이다. 이 세명을 ‘삼소(三蘇)’라 부르고, 소식, 소철 두 형제를 ‘이소(二蘇)’라 부른다. 수사
공이 종손(宗孫)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가? 이 후에 하늘이 무너지듯 단명했음을
짐작케 한다.
10. 억생질사아(憶甥姪巳兒)(주27) 생질 뱀띠 아이를 생각하며
조년체호시(早年遞怙恃(주28)) 젊을 때 아버지 어머니께서 말씀하기를
천지지궁인(天地至窮人) 세상에 사람이 곤궁해지면
일실생동구(一室甥同舅) 한 방에서 사위와 장인과 함께 살았고
쌍형영여린(雙形影與隣) 두 집의 형세가 이웃과 같이 그림자를 이루었다네
외지수반학(外地隨伴學) 외지에 따라와 같이 공부하니
오모시여친(吾母視如親(주29)) 어머니께서 친아들처럼 보살피시네
공부유고탁(恐負遺孤托) 외롭게 맡아 기르니 짐 지우는 것이 걱정인데
융우불감분(隆尤不敢噴) 더욱 극진하여 꾸짖지도 못하시네
주27) 사위 북병사(北兵使) 이민덕(李敏德 1879~?)공의 아들 이승덕(李承德)으로 보인다. 수사공 보다 5년 연하이다. 이 때 임
지는 함경도 고령진첨사(高嶺鎭僉使)이다.
주28) 호시(怙恃) : 「믿고 의지(依支)한다」는 뜻으로 부모(父母)를 이르는 말
주29) 의령남씨는 수사공이 진도군수로 있을 때, 1819년(주현 18세) 및 1822년(21세) 대흥군이 발급한 호구단자에 장손 주현
(周鉉)이 같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제는 외손자도 맡아 키우시고 있다.
□ 귀향 후 시축
11. 임존성하복오려(任存城下卜吾廬) 임존성 아래 나의 집 있네
임존성하복오려(任存城(주30)下卜吾廬)
백수궁경락유여(白首躬耕(주31)樂有餘)
모세상봉개역객(暮歲相逢皆易客)
야총한관총기서(夜牎閒閱摠奇書(주32))
근래시사차환삽(近來詩思羞還渋)
노거풍만나경소(老去風滿懶更疎)
행득잔배급공취(幸得殘盃圾共醉)
촌주하방식무어(村廚何妨食無魚)
임존성 아래에 나의 집이 있는데
흰머리 돋아나 농사일 하다 보니 즐겁고 한가하네
나이 들어 서로 만나니 모두가 나그네로 바뀌고
밤에 창문 빛으로 한가하여 살펴보니 모두가 기서일세
근래에 시 생각하면 부끄럽게도 거북하고
늙어가며 병이 가득하고 게을러지니 다시 멀어지네
다행히 술잔을 기울이니 취하고 위태로워도
시골 주방 식탁에 물고기 없다한들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주30) 임존성(任存城) : 현재 충남 예산군 대흥면의 봉수산성(鳳首山城)을 말한다. 임존성은 백제 멸망 직후부터 663년 말까지
흑치상지(黑齒常之, 630~689)가 백제부흥군으로 활약한 주근거지였다. 흑치는 당나라 유인궤(劉仁軌)에 투항해, 부흥군
을 공격해 임존성을 함락시키고, 당나라의 무장으로 이름을 떨치며 승승장구하여 병부상서까지 올랐다.
주31) 궁경(躬耕) : ①임금이 몸소 적전(籍田)의 행사를 함 ②자기 스스로 농사일을 함
주32) 기서(奇書) : 기이(奇異)한 내용(內容)의 책(冊)
* 사대기서(四大奇書) : 중국 명(明)나라 때의 4편의 걸작(傑作) 소설(小說). 곧 수호전(水滸傳),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서유기
(西遊記), 금병매(金甁梅)를 말함
12. 봉수지동결소려(鳳首之東結小廬) 봉수산 동쪽에 작은 집 짓고
봉수지동결소려(鳳首之東結小廬)
현륵일상기년여(縣仂一病已年餘)(주33)
한재유객귀모주(寒齋有客帰謀酒)
단촉무성연간서(短燭無喊戀看書)
노거치생환저오(老去治生還牴牾(주34))
춘래학단역공소(春來學團亦吉疎)
한총점검평생사(閒牎點檢平生事)
오배영영총선어(吾輩營永摠羨魚)
봉수산 동쪽에 작은 집 짓고
힘써 매달려도 병치레가 벌써 몇 년인가
추운 집에 손님이 있고 고향 돌아오니 술잔 나누다
촛불이 다 닳도록 소리치지 않으니 책이 그리워지네
늙어가니 병이 생기고 물러나니 거슬린 부분도 있고
봄이 오고 같이 모여 공부하는데 역시 좋은 일도 드므네
창문을 막고 점검하는 것은 평생 할 일이지만
우리 인생살이 오래인데 모두 물고기를 부러워하네
주33) 신도첨사 때도 여러 번 언급이 있지만 병이 오래된 것을 알 수 있다.
주34) 저오(牴牾) : ①서로 어긋나 거슬림 ②서로 용납(容納)되지 않음. 원본에는 ‘止+且’, ‘止+吾’로 잘못 옮겨져 있다.
13. 상봉백제성(相逢百濟城) 백제성을 다시 만나다.
분망금반세(奔忙今半世) 지금까지 반세상은 바빴는데
소당시평생(疎擋是平生) 숨은 듯 멀어지니 이것이 평생일세
쇠토간소기(釗吐干宵氣) 밤의 한기를 막던 검을 버리고
시경척지성(詩驚擲地聲) 내던지는 소리가 시를 놀라게 하네
공명승세모(功名乘歲暮(주35)) 공명이란 오르면 저무는 때가 오는 법
담소도천명(談笑到天明) 담소 나누니 새벽이 밝아오네
우이영춘일(偶爾迎春日) 우연히 봄날을 맞아
상봉백제성(相逢百濟城)(주36) 백제성에서 서로 만났네
주35) ‘세모(歲暮)’ 두 글자가 원문(原文)에는 떨어져나가 불분명하다.
주36) 1829년 2.17일 2년 8개월간의 신도진수군첨사 직을 마치고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직책이 없는 대기기간이다.
이 해 봄이 아닐까? 생각한다. 백제성이란 임존성이고 고향땅을 말한다.
Ⅳ. 서래만영 원본사진
Ⅴ. 풍진소회(風塵所懷)
이 글을 엮으며 여러 가지 회포에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 희로애락이 뒤섞임이 인생사이듯 가문과 나라의 흥망성쇠가 참으로 괴기하여 하루아침에 갈리고 영원함은 없다는 것이다. 수사공은 배위 진주류씨 사이에 친 자식이 없다. 형에게 두 아들이 있어 차남 난석을 계후하였으나 아쉬움이 남아있다.
이 시집에 보이는 조카들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기쁨으로 가득 차있다. 장조카 주현(周鉉)은 벌써 32세에 정3품 당상관에 가자(加資)되었으니 얼마나 훌륭한 인재인지 알 수 있다. 시에서 회상하는 장조카의 모습이 그대로이다. 그가 어린 나이에 아들을 두었는데 호랑이 띠이다. 나이를 환산해 보니 18세에 득남하였는데, 막내 삼촌 토끼 띠 보현(甫鉉) 보다 한 살 위이다. 용모의 준수함은 관옥이요, 총명함이 ‘이소(二蘇)’와 같았다고 하니, 아무리 숙부로서 사랑이 경도(傾倒)되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으로 집안의 융기(隆起)와 비상(飛翔)을 꿈꾸던 이때가 1828년이다.
그러나 35세에 종손 장조카 주현(周鉉)이 병마로 조세하고, 장손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이 세상을 떠났다. 족보에 기록이 없으니 이른 나이이다.
이 시집을 통하여 숙부의 조카들에 대한 인물평을 엿볼 수 있었는데 느끼는 바가 있다. 선대의 가족애와 효제의 모습은 당시의 사는 모습이었는데 2백년 후의 후손들 모습은 어떠한가 생각하고 있다. 자식이 부지런해야 부모가 빛나고, 후손이 정성을 다해야 선대의 업적이 살아난다는 것을 족보에서는 ‘극지선미(極趾善美)’라고 말하고 있다.

첫댓글 2021.2.13에, 2017년 12월 말일자로 '광주정씨총관'을 집필 발간하셨던 광암 장한우 선생님께서 78세로 별세하셨다는 부음이 오늘 있었습니다. 대작을 남겨주심에 감사드리고,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2017.12.31 간행된 '광주정씨총관' 발간사에, 난석 정수현공의 저서로 '계해북유일록'이 있다고 소개드렸는데 1803년(계해)의 다른 분 기록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내용을 일부 연구해보니, 당시의 실존 인물들이 증명되었습니다.
가 발간된 '정위 정수현가 유물집'도 추가 번역되고 보완되는 등 전면적으로 수정 보충되고 있습니다. 자꾸 지식이 조금씩 늘어나 번역도 바뀌고 부족한 점도 드러나게 되니, 너무 서둘러 발간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여기 올린 많은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크랩으로 올려진 글들은 수정이 안되어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