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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private translation |
개요 |
처녀 25 처녀에 대해서는 내가 주님의 명령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님에 의해 자비를 받아서 충성된 자로서 권고를 준다. 26 따라서 이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환란 때문에. 즉,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 것이 좋다. 27 네가 아내에게 매인 상태에 있어 왔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라. 아내로부터 놓인 상태에 있어왔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런데 만약 네가 결혼한다고 해도, 죄짓는 것은 아니다. 또 처녀가 결혼해도, 죄 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그 육체에 고난이 있으리라. 나는 너희를 아낀다.
종말을 바라보며 29 그런데 형제들아 이것을 내가 말한다 (fhmi). 때가 짧게 되어 졌다. 결론을 말하면, 아내들을 가진 자들은 가지지 않은 자들 처럼 되라.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들 처럼하고,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들 처럼, 구매하는 자들은 가지지 않은 것 처럼, 31 세상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들 처럼 되라. 왜냐하면 이 세상의 질서는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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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이 세상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
2. 결혼을 포함하여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 깨끗한 삶이다.
3. 거룩하게 즐기자. 1) 거룩하게 즐기는 즐기는 삶이란?
2) 거룩하게 즐기는 지혜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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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외식하고는, 약간은 죄지은 듯한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있으세요? 오래만에 예쁜 드레스를 산 다음에 생활이 힘든 친구가 생각나서 미안한 느낌이 든 적이 있으세요? 친구하고 스포츠 하고 이겨 놓고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드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이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즐기고는 웬지 못할 일 했다는 듯한 그런 느낌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되는데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서 될까? 그런 고민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민에 대해 오늘 고린도전서 7:25-31에서 대답해 줍니다. 결혼을 해도 되는가 고민하는 성도들에게 “결혼해도 죄는 아니다”고 이 세상의 여러 일에서 즐기는 것이 죄가 아니다고 말합니다. 죄책감 가지지 말라, 미안해 하지 말라. 그러나, 거룩하게 즐겨라. 성도로서 기
쁘게 살아가라.
“거룩하게 즐기기” 세가지 말씀을 듣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이 세상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계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둘째, 결혼을 포함하여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 깨끗한 삶입니다. 셋째, 이 세상의 것들은 천국을 향해 나가는 거룩함으로 즐기라고 합니다.
1. 하나님은 이 세상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 삶을 거룩하고 복되게 살 수 있도록 교회와 성령님을 통해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25 처녀에 대해서는 내가 주님의 명령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님에 의해 자비를 받아서 충성된 자로서 권고를 준다.
우리 성경에는 “처녀딸에 대해서는”라는 것은, 전체 문맥을 보면, 약혼한 처녀를 말합니다. NIV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지요.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서, 성령님의 특별한 은사를 체험한 사람들 중에서, 세상의 결혼생활은 영적인 삶에 방해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혼을 파혼하려 하면서 이 질문을 사도에게 해 왔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결혼한 사람은 이혼하지 말하는 말씀은 하셨지만, 약혼한 여성의 결혼 분명한 답을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25절에서 “내가 주님의 명령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명령”은 예수님이 직접 남겨 주신 말이나 구약성경에서 계시해 준 말씀을 말합니다. 그러나, 권고란, “주님의 자비를 받아서 충성된 자로서 판단내려 준다.”
이 판단은, 주님이 주신 자비로서 주신 사도적 직분자로서, 성령님의 인도로 판단을 내립니다. 딤전 1:12,13은 말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주심이라. 내가 긍휼 (자비)를 입은 것은”. 고전 4:1,2 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충성된 청지기”. 아무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의 직분을 맡은 충성된 자로서 판단을 내려 줍니다. 사도의 말이나 판단이 다 성령님의 말은 아니지요. “나 배고파”그런 말은 성령님의 말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하신 말씀은 잘 적어서 이렇게 성경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의 어떤 지혜가 필요할 때,사도가 전해준 성경 말씀에 감추인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계시의 말씀을 찾으려 방언이나 예언을 찾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언이나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대해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러나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이 시간입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해 줍니다.
하나님은 사도시대가 끝난 후에는 더 이상 새로운 계시를 주시지 않습니다. 사도 시대 뒤로 모든 목사들은 사도들이 전해준 계시의 말씀을 (딤후 2:2)을 가르칩니다. 마치 은행에 예금한 돈을 찾아서 음식을 사듯이, 목사는 이 계시의 말씀을 전달해 줍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성경의 내용을 새롭게 깨달은 내용은, 계시라고 하지 않고, 딤후 2:7은 “총명, 혹은 지혜”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조명”이라고 합니다. 지금 형광들 불빛이 비치고 있지요? 구약의 말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사도들의 가르침은 계시의 빛입니다. 계시의 빛이 잘 비치게 해 주는 것을 조명이라 합니다.
사도시대가 지난 다음에는 더 이상 새로운 계시가 없습니다. 만약 사도들이 죽은 후에 지금 온 세계에 교회가 발전되고 있는데, 아직도 여기 저기서 계속하여 새로운 계시가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계시의 말씀이 다르고 따라서 온 세계 교회는 분열됩니다. 하나님은 수백만 명을 창조할 수 있었지만 오직 아담 한 명만 창조하여 그로부터 온 인류가 나오게 하여 인류는 한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새로운 창조 구원을 위해서도, 사도들이 한 곳에 모여서 서로 알고 지낼 때 까지만 새로운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 뒤로 성경말씀은 닫혔습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같은 계시의 말씀을 가지서 온 세계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됩니다. 기록된 성경 아닌 다른 계시를 더하는 자에게는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계시록 22:18은 예언합니다.
한 달전에 집 뒤에 산책하다, 십계명선교회라는 이단 집단에 출석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선교회의 목사는 너무 순수하여 하나님이 계속 예언 말씀을 해 주셔서, 그것을 녹음하여 10권의 책으로 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 저도 목사인데 어떻게 그 사람에게만 계시를 줍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목사님에게만, “하나님의 본체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것 아주 무식한 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의 본체를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교회사 2천 년동안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그 분이 자신을 나타내 주신 인격만 만나지, 그 본체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은 계시의 위기입니다. 사람들이 나서서 내가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지요? 방언 받았다, 예언 받았다 해서, 교회를 분열시켰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한 것은 무엇입니까? “유대인은 기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지만 나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바로 성령을 받았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자, 즉 사도가 분별할 수 있다. 너희들이 나를 판단할 수 없다”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구원에 필요한 지혜와 총명을 성경의 계시가 말해 줍니다. 일상의 일에 대한 지혜도 줍니다.
그런데, 왜 결혼 문제에 대해서도 계시를 주셨을가요?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자비하심으로 판단을 내린다” 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쓸데 없는 두려움이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이리 저리 방황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거룩하게 살면서 영광스런 천국을 향해 나가도록 자비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짐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주시기 위해서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달게 받아서 복된 인생을 바랍니다. 이 말씀을 따라,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앞에서 즐겁고 거룩하게 살아갑시다.
2. 결혼을 포함하여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 깨끗한 삶이다.
둘째, 하나님은 결혼을 포함하여 이 세상의 삶을 즐기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삶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약혼을 파혼하려는 사람들에게 결혼으로 나가라고 말합니다.
26 따라서 이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환란 때문에. 즉,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 것이 좋다. 27 네가 아내/여자에게 매인 상태에 있어 왔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라. 아내/여자로부터 놓인 상태에 있어왔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여기 문맥상, “아내 여자에게 매인 사람”으로서 “놓이기를 구하지 말라”는 것은, 약혼을 통해 약혼녀에게 매인 사람을 말합니다. 약혼을 파약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8 그런데 만약 네가 결혼한다고 해도, 죄짓는 것은 아니다. 또 처녀가 결혼해도, 죄 짓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 죄가 아니라는 것은 “깨끗한 삶”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깨끗한 마음으로 결혼을 할 자유가 있습니다.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칼빈목사님은 구원론의 한 부분으로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용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님을 통해 거룩하게 되어, 회개하며 새운 삶을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한 삶에는, 이 세상의 결혼, 여러 물건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죄의식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선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꼭 영양만을 위해서 먹는 것은 아니라 맛을 즐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름 다운 창조의 동산에서 봄이면 꽃들이 피어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의 눈으로 그것을 보고 즐기도록 하셨습니다.
30절에,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들 처럼 하고 기쁜 자는 기쁘지 않은 자 처럼 하고” 그리스도인들 울수 있고, 기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울지 않는 것 처럼, 기쁘지 않은 것 처럼”, 즉 거룩하게 즐기라고 합니다. 즐거워 할 때 즐거워 하고 슬퍼할 때 슬퍼하는 인간미 넘치는 인간이 되십시오. 이렇게 하면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 그런 죄책감이 꼬리를 무는 것은, 성령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미신적 생각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에 막연한 죄책감에서 눌린 분들은 성령님 안에서 자유함과 편안함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온 몸으로 주님이 주신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누립시다.
3. 거룩하게 즐기라.
1) 거룩하게 즐기는 즐기는 삶이란?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을 자유롭게, 그러나 거룩하게 즐기기를 원합니다. 거룩한 즐김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첫째, 이 세상에 환란과 고난 (26, 28절) 이 있다는 것을 알고 즐겨야 합니다. 결혼해도 환란이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환란이 있습니다. 대학가도 환란이 있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고생이 있습니다. 아담의 주님 때문에 우리 인생은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즐기지만, 완전히 즐거움이 있는 그런 인생은 없습니다. 결혼에 대해 28절에 육체에 고난이 있으리라고 해서, 결혼하면 더 힘이 듭니다. 결혼은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이므로, 더 힘든 일이 생깁니다.사도는 결혼에서 당할 힘든 일이 있음을 알고서도, 약혼한 사람은 파혼하지 말고 결혼하라고 조언합니다. 우리 모두는 “눈물골짜기 같은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무 어려움 없이 즐거움만이 있을 것이라고 헛된 추구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헛된 기대 때문에 실망하지 맙시다.
둘째, 거룩한 즐김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면서 이 세상을 즐기는 것입니다.
26절, 약혼한 사람이 결혼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사도는, “그대로 있는 것이 좋다.” 결혼하지 않으면 좋다는 말로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약혼한 사람을 결혼으로 나가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대로 있는 것은, 24절에서는, “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 남아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 하나님과 함께 남아 있는 것을 성도는 추구해야 합니다. 따라서, 27절에서, “결혼 했다면 더 행복할 텐데, 결혼하지 않았다면, 더 행복할 테인데” 결혼 생활 혹은 독신생활에 모든 행복이 있는 것 처럼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훨씬 더 행복할 텐데, 다른 학교에 가면 더 행복할 텐데.” 우리에게 없는 어떤 것, 그것이 생기면 내 인생의 모든 행복이 주어질 텐데 생각하면서, “구하지는 맙시다” 마태복음 6:33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힘든 것은 내가 구하는 것 그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불행이 있는 것은, 첫째는, 인생이 원래 힘들고 고통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구하십시오. “하나님 줄려면 주고 말려면 마세요” 그런 자세가 아니라, “그것이 없으면 저는 끝장입니다.” 그렇게 거지같이 간절히 구합시다. 나의 죄를 슬퍼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더 의롭게, 거룩하게 성장하기를 갈망합시다. 본질적인 것을 먼저 추구합시다. 인생에 당연히 있는 그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나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의의 길을 따라 나갑시다.
셋째로, 거룩한 즐김은 세상의 것들을 즐기면서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삶입니다.
29 그런데 형제들아 이것을 내가 말한다.
때가 짧게 되어 졌다.
“때가 짧아 졌다” 이것은 “접혔다”는 뜻입니다. 시간적으로 가까워 졌지만, 심리적으로 천국이 우리에게 더 가까워 졌습니다. 믿은 우리의 눈 앞에 천국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듯이 있습니다.
29 결론을 말하면, 아내들을 가진 자들은 가지지 않은 자들 처럼 되라.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들 처럼 하고,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들 처럼, 구매하는 자들은 가지지 않은 것 처럼,
31 세상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들 처럼 되라. 왜냐하면 이 세상의 질서는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같이 사는 것은 행복하지만, 천국에서 행복이 더 큰 것을 알고 행복해 합니다. 울며 슬퍼할 때도, 천국에서는 이 슬픔은 없다는 것을 알고 슬퍼합니다. 기쁨도, 새 물건 사고, 좋은 것을 쓸 때, “이것 없어도 내 인생 끝나는 것은 아니야”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큰 상 받아서 좋지만, “이것 없어도 내 인생은 괜찮아”그런 자세를 가집니다. 3 1절에, 이 세상의 질서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좋은 모양들은 지나갑니다. 힘든 것, 지나갑니다.
31절의 이 세상의 것을 쓰지 않는 것 처럼 쓴다는 표현은9:12, 15, 18 세 번 나옵니다. 무엇을 쓰지 않는다고요. 사도가 선교사의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천국을 향하여 다 쓰지 않는 자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복음 전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쓰지 않습니다.
고전 9:16,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득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득이” 는 당시 스토아 철학에서 쓰던 용어를 사도가 빌려서 쓰고 있는데, “숙명과 같이 필수적인 의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숙명적 소명이라는 뜻입니다. 선교사로서 후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 거짓으로 가르치며 먹고 사는 거짓 교사들이 많아서, 그런 사람과 분리하기 위해 후원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부득이”가는 같은 단어가, 7:26절에, “임박한 환란”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지금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환란이 있지만, 거기 머물러 있으라고 합니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한 대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대로 사명을 머물러 있으라 합니다. 선교의 의무을 다하기 위해, 남편과 아내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의 자유와 권리를 좀 포기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세상의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향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이 세상의 것을 즐기고 필요할 때는 절제하는 그런 거룩한 즐김이 있기를 바랍니다.
2) 거룩하게 즐기는 지혜 네 가지
이제 우리가 거룩하게 즐기는 지혜, 칼빈 목사님이 말한 네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즐기면서도, 탐욕에 빠지지 않고 사치에 빠지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벧후 3:14 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둘째, 가난하고 힘들 때, 불평하지 않고 참아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복입니다. 힘들 때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부유하면 탐욕적으로 삽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용하며 즐깁니다. 고전 7:17에서, “오직 주께서 나누어 주신대로…행하라” 그렇게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지요.돈이나 시간이나 좋은 것을 아끼고 효과적으로 잘 관리하여, 가난한 사람, 장애인, 선교사업 사람과 함께 나눕시다. 지구의 에너지와 자원을 우리 뿐 아니라 저개발 국가, 다음 세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아껴서 남겨 둡시다. 하나님이 주신 결혼의 행복, 내가 가진 지위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 모든 것을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면서 잘 사용합시다.
넷째, 주신 좋은 모든 것을 “내게 주신 소명”을 위해 사용합니다. 우리 마음은 안정감 없이 떠다니고 야망을 찾아 떠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체적인 자리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자신 만의 독특한 삶을 살아가도록 개인적인 부르심이 있습니다. 고전 7:17은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의 부르심에 충성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 좋은 직업을 가지고, 교회와 국가에 큰 기여를 하고 칭찬을 받더라도 소명의 길이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소명이 아닌 길은 삶의 여러 부분들이 조화롭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생이 고달파도, 주님이 맡기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면 수고에 큰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맡은 직장의 일, 또 아버지나 어머니로서의 직무를 더 기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명으로 맡겨 주신 삶의 스타일은 바로 우리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자리입니다. 소명을 따르는 사람들의 각 삶의 스타일에는, 원래 불편함과 염려, 어려움, 초조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짐을 지우셨다는 것을 알기에 참아냅니다. 각자의 소명이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영광과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세상의 것을 즐기면서, 거룩하게 즐기는 성도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구약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또 성령님과 사도를 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즐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거룩하게 누립시오. 이 세상은 원래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즐깁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즐깁니다. 오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즐깁니다. 우리가 공부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못하면 못 하는 대로, 거룩한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절제하고, 참고, 청지기로서, 그리고 힘들더라도 소명을 위해 이 세상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를 정말 아끼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거룩한 즐김입니다.
말씀 430 고전 28회
거룩하게 즐기기 (고전 7:25-31)
2010년 3월 7일 (일) 주일오전 예배
· 설교문을 요약하고 우리가 순종할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1. 하나님은 이 세상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계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2. 결혼을 포함하여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 깨끗한 삶이다.
3. 거룩하게 즐깁시다.
1) 거룩하게 즐기는 즐기는 삶이란?
2) 거룩하게 즐기는 지혜 네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