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4편
하나님을 찬양하는 종들, 종들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
(찬송 38장)
2023-3-17, 금
맥락과 의미
시편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131-133편은 성전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며 누리는 복을 노래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거하며 평안을 누리고, 성도들과 연합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마지막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출발하는 성도가 성전을 바라보며 떠나는 심정을 노래합니다.
1. 사역자들은 밤에도 여호와를 찬양(1절)
2. 사역자와 성도가 함께 성소를 향해 손을 들고 여호와를 찬양(2절)
3. 사역자가 성도들에게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을 선포(3절)
1. 사역자들은 밤에도 여호와를 찬양(1절)
시인은 여호와의 종들에게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서 있는 여호와의 종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을 행하는 레위인들을 의미합니다. 레위인들은 여호와 앞에 서서 그분을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신 10:8). 이들이 맡은 직무 중 중요한 것이 밤낮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입니다(대상 9:33, 23:30).
아마도 시인은 절기를 다 마치고 고향으로 떠나려고 새벽에 일어나 예루살렘을 출발했던 것 같습니다. 밤새 성전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그곳에서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길에 성전에 들러서 레위인들에게 찬송드리는 일을 계속 하라고 격려합니다.
레위인들은 반차를 나누어 낮과 밤에도 쉬지 않고 찬송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밤낮으로 찬송드리는 것을 떠올립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하늘에서 천사들이 밤낮 쉬지 않고 거룩, 거룩, 거룩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 그대로 땅의 성전에서도 밤낮 찬송하도록 정하셨습니다(대상 25:9-31).
하나님께서 땅의 성전과 하늘의 성전을 긴밀하게 연결시키셨습니다. 우리가 땅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찬송을 하늘에서 받으십니다.
2. 사역자와 성도가 함께 성소를 향해 손을 들고 여호와를 찬양(2절)
시인은 레위인들에게 성소로 손을 들고 찬양하라고 합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 말은 시인 또한 장차 고향에 내려가 생업에 종사할 때에도 레위인과 같은 심정으로 성소를 생각하며 살아갈 것임을 나타냅니다. 비록 자신들은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밤낮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레위인과 같이 성소를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과 레위인은 서로 직분이 다를 뿐 각자 위치에서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시인 자신을 대신하여 레위인이 찬송하는 일에 전무하고 있으니, 시인 또한 자신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십일조와 제물로 레위인의 생활을 책임질 것입니다.
시편 133편에서 노래한 것과 같이, 참으로 직분자를 중심으로 예배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함께 누리며 연합한 성도만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3. 사역자가 성도들에게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을 선포(3절)
1-2절은 ‘너희(복수)’에게 말을 하는데, 3절은 ‘너(단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1-2절에서는 레위인과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내용을 노래했습니다. 이제 3절에서는 레위인이 여호와의 복을 성도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에 화답하여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 응답하시며 복 주시며 대화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은 천지를 지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계신 것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성도들과도 함께 하시며 일상 생활에서 계속해서 복 주시는 분입니다. 예배를 잘 드린 성도는 세상으로 힘차게 나가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 갑니다.
한편 이 복은 시온에서부터 흘러 나옵니다. 시인과 성도들은 세상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계속해서 성전으로 나와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성도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다음 절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입니다. 때가 되면 다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러 나아올 것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신약 교회에서도 목사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단지 목사들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과 한 마음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기도와 말씀과 심방에 힘쓰도록 함께 기도하며 도웁시다. 또한 이 일이 계속되도록 다음 세대의 목사가 세워지도록 기도합시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일상 생활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며 복 주시는 분이심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삶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구합시다.
예배에서 받은 복을 세상에서 누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사모하며 다시 예배로 나아오길 반복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매 주일마다 똑같은 순서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지루한 반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계속해서 자라고,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갑니다.
매 주일 드리는 예배가 겉으로는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날마다 새롭기에 똑같은 예배는 하나도 없습니다. 항상 예배가 새롭고, 다음 예배가 기다려집니다.
하나님의 복은 시온에서 나옵니다. 예배를 중심으로 우리의 삶이 꾸려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을 예배를 사모하고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예배를 기다리며 힘껏 일하고, 주일이 되면 기쁜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아옵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립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일상 가운데서도 예배를 사모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갑니까? 목사와 내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을 섬긴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목사가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헌신하도록 기도하며 도웁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2절, “송축하라(바라크)”, 3절, “복 주실지어다(바라크)”
동일한 히브리어 “바라크”가 1-2절에서는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로 번역되었고, 3절에서는 “여호와께서……복을 주실지어다”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바라크”의 영어 번역 “블레스(bless)”도 여호와께 대해서 사용하면 “여호와를 찬송하라”(Blessed be the Lord)가 되지만 여호와를 주어로 사용하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다”가 됩니다.
내용적으로도 ‘찬송’과 ‘축복’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는 것, 즉 복을 돌리는 것은 우리가 누리는 복이 다른 데서 온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에게서 왔음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주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이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찬송”입니다.
<참고> 성전 제사장과 레위인의 24반차 - 요한계시록 4장의 24장로의 찬송
역대상 23:30을 보면, “새벽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축사하며 찬송하며……” 하고 말합니다. 또 역대상 9:33을 보면,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합니다. 레위인은 성전의 옆에 있는 방에 묵으면서 낮에도 밤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만 하고 다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절기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매일 밤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참조. 사 30:29).
밤에 레위인이 찬송하도록 한 것은 다윗의 때에 확정된 제도였습니다. 다윗은 제사장들을 이십사 대(隊)로 나누어서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였고(대상 24:7-19), 여호와를 찬양하는 레위인도 이십사 대로 나누어서 봉사하게 하였습니다(대상 25:9-31). 밤에 성전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였고, 또한 여호와를 찬송하는 일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도록 하였습니다.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제도를 두고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는, 네 생물이 밤낮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송할 때에 이십사 장로들도 그 찬송에 화답합니다. 장로들은 면류관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지면서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계 4:10-11) 하고 찬송합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그들의 머리에 있는 면류관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지는 행위는 주님께서 내려 주신 영광을 다시 주님께 돌려드리는 일입니다(참조. 계 3:21).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바로 찬송입니다. 여호와의 복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늘에서 찬송하는 장로가 이십사 명이라는 것과 구약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각각 이십사 대(隊)로 나뉜 것 사이에는 강한 유사성이 있습니다. 하늘의 성전에서 이십사 장로의 봉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형으로 세운 이 땅의 성전에서도 이십사 대로 나누어서 밤과 낮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봉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