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카페지기 서봉석(소선)의 블로그
"소선의 음악이야기" blog.naver.com/bongarr 에서 옮긴 것입니다.
지난 2023년2월에 해병대사령부 정훈실에 근무하는 ㅎ중령이 "해병대곤조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느냐고 문의가 왔다.
그래서 내가 아는 내용과 내가 확인한 내용 등을 적어서 보내드렸다.
그런데 여기에서 분명히 수정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생겼다.
지난 6월에 본 카페지기는 유뷰브를 뒤적이다가 군썰 이주석(해병대 예비역 대위)이란 유튜버께서 해병대곤조가의 원형을 찾아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2022년)말경에 올리신 것인데 1939년에 김능자가 부른 "그리운 그대"를 올려주셨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
"해병대곤조가"의 원곡은 "그리운 그대"(1939년 박시춘 작곡 조명암 작사 김능자 노래)
해병대에는 다른 군대와는 다른 특이한 병영 사가인 "해병대곤조가"가 있다.
이곡은 멜로디도 재미있고 신나며 특히 가사가 흥미로워서 훈련소에서 빼놓지않고 제일 많이 부르는 군가이며 이 노래를 부를때
는 모두 신이 나서 웃으며 행진을 한다. 육해공군에도 이 곡이 알려져 있는 정도다.
곡목에서 곤조 란 근성의 일본어이다. 해병대 근성의 노래 란 뜻이 되겠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어가 습관이 된 우리나라 어른들은 곤조라는 말을 자주 쓰곤 했다. 말을 잘 안 듣거나 사고를 자주 일으키는 사
람을 가리켜 곤조통이라고 했고 심통을 부리고 일을 제대로 안 하고 매사에 삐딱하게 나가는 사람에게는 곤조가 있는 사람이라고
도 했다.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에는 1년 전에 해병대가 창설되어 타군에서 흉내도 못낼 정도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전쟁에 참전하여 해
병대는 정말로 대단한 전과를 세웠다. 미국의 뉴욕헤랄드트리뷴의 종군여기자 마거릿 히긴스는 후에 해병대사령관이 되고 또 국
방장관을 역임하신 "김성은부대"의 통영상륙작전 전투에서 적은 병력과 부족한 무기로 수많은 인민군부대를 무찌르는 것을 보고
They might even capture the devil (한국의 해병대는 귀신도 때려잡는 해병대)라고 본국 신문사에 송고하면서 우리나라 해병대가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러면서 국내에서도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이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전투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로 휴전 후에는 해병대원들이 외출하거나 휴가를 가면 그 지역 여기저기서 사고를 내는 일들
이 간혹 발생 했다. 사람들은 그런 해병대를 보고 해병대곤조 부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네 건달들도 당시에는 빨간 명찰의 해병대 복장을 한 군인이 지나가면 옆으로 슬슬 피해 다니고는 했다.
우스운 일이지만 그 시절 서울에서는 해병대가 버스를 타면 차장이 아예 돈 받을 생각을 포기하고 시선을 돌리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 근성(곤조)이란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성이 강해야 무슨 일이든지 잘 해 낼수 있는 것이기 때문
이다. 해병대에서는 훈련과정에서부터 해병대의 강인한 근성을 강조하고 필요로 하고 있다.
곤조가는 그런 의미에서 노래 제목으로 쓰여졌으리라고 생각된다.
해병대곤조가가 어떤 경로로 해병대훈련소에 유입됬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해병대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던 1961년에도
이 노래를 조교를 통해 배워서 훈련 3개월동안 거의 매일 이 노래를 다른 군가와 함께 부르곤 했다.
하지만 당시 필자가 근무하던 진해기지사령부군악대에서는 이 곡을 정식으로 연주하지는 않았다.
(진해기지는 교육기지로서 1973년 사령부 해체시 해군에 이관되고 교육기지는 포항으로 이전함)
본 카페지기는 음악인이기에 평소에도 이곡의 원곡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해병대곤조가를 1961년 필자가 훈련소에서 조교로부터 배우고 불렀지만 언제부터 이 노래를 해병대에서 부르기 시작했는지
몰라서 내가 아는 선배들께 여쭈어 보았다.
1951년에 입대한 군악대창설기 선배 시절에는 없었고
1954년에 입대한 병27기 선배시절에도 없었고
1957년에 입대한 병74기 선배시절에는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추리해 보면 1955~56년 사이에서 부터 이 노래가 구전된 것 같은데 어떤 경로로 무슨 노래가 해병대훈련소로 유입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2023.06.14.에 우연히 You Tube를 보다가 해병대곤조가의 원곡이라고 하면서 유튜버 "군썰 이주
석 " 님이 올리신 "그리운 그대" (1939년 박시춘 작곡,조명암 작사,김능자노래)라는 곡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이
곡이 원곡이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여기에서 작사가 조명암은 1948년 월북한 작사가 조영철(1913~1993)이 예명으로 사용한 이름이다. 조명암은 또 다른 이름
으로도 대중음악 작사를 많이 해서 히트시켰던 인물이고 그의 월북으로 1992년 금지가요 해제될 때 까지 방송과 음반제작,
공연 등에서 그의 작품을 연주할 수 없었다.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본 카페지기의 입장에서 보니 가사는 흐름이 거의 같고 멜로디는 음정은 약간 다르지만 그
흐름은 같은 곡이기에 해병대곤조가의 원곡임에 틀림없는 곡이었다.
1962년에 이봉조,현 미 콤비의 히트곡 "밤안개" 가 미국의 팝송 "It's a lonesome old town"을 우리나라 분위기에 맞게 작곡가 이봉조님이 개작(改作) 한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이 "그리운 그대"가 발표된 1939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곡인 목포의 눈물(1935년 발표)이 발표된 4년 뒤였다.
이 곡을 작곡하신 박시춘선생은 우리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히트곡을 많이 만드신 작곡가로도 유명하시고 기타리스트로도 당시에 유명했던 악단장이셨으며 1948년 KBS경음악단 창단시 손목인님과 함께 악단 공동지휘자이셨다. 당시에는 미국의 재즈 역사
도 초기였던 시절이고 우리나라에는 재즈 음악 듣는것도 쉽지않은 시절이었었는데 박시춘선생은 당시에 대단히 앞서가는 재즈분
위기의 곡을 작곡하셨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이 곡의 리듬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Swing 음악 직전 단계인 Fox Trot
의 빠른 템포(Fast Fox Trot)의 곡인데 노래를 부른 김능자님께서 무용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당시로서는 그 빠르고 어려운 리듬을
잘 이해하고 노래를 잘 부르신 것이 특이하게 느껴진다.
이 곡을 유튜브에 올려주신 군썰 이주석(해병대 예비역 대위)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https://youtu.be/JZUN808WQ3s
그리운 그대 동영상
아래의 두 곡을 비교해 보면 멜로디 전체의 흐름은 같고 매 음절마다 약간씩 변화를 주었고 끝부분 가사인 "오늘은 어느
곳에서"부터 13소절은 추가로 붙인 것이다. 가사도 거의 흡사하게 개사했고 전체적인 곡과 끝부분 13소절 추가한 것도 음
악재능이 뛰어난 분이 정리한 것 같다.
또 추리해 보면 이 곡의 작곡자인 박시춘선생께서 해병대 누군가의 의뢰로 1950년대 중반에 다시한번 손을 대서 원곡과 다르게 부대 전체가 부르기 좋게 행진용 템포로 바꾸어 제창용으로 하기 편하게 다시 정리한 것이 아닐까 추리해 본다.
곡 흐름으로 보면 1939과 1950년대 중반의 약 15~6년이란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음악분위기의 변화를 잘 조정하여 멜로디 전개를 대단히 잘 처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위의 "그리운 그대"를 원형으로 멋있게 각색을 해서 그럴듯한 해병대 사가가 생긴 것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해병대곤조가 와 부라보해병
짧게 말해서 이 두 곡은 같은 곡이다. "해병대곤조가"가 해병대에서 가장 인기있는 군가인데 그동안 작사 작곡자가 미상이고 가사가 저속한 부분이 있어서 양성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곡이 "부라보 해병"이란 곡목으로 수정되어서1967년에 처음으로 출반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해병대사령부에서 당시에 유망한 젊은 신인 작사가,작곡가에게 의뢰하여 음반제작을 하기로 했던 것 같다. 음반과 군가 악보에는 작사 이인선 작곡 정민섭으로 되어있다.
작사가 이인선 1941년생 - 1965년부터 작사가로 활동
작곡가 정민섭 1940년생 - 1966년부터 작곡가로 활동
가사는 많이 수정되었지만 멜로디는 거의 다 그대로이고 몇소절만 보충 및 삭제했고 채보정리한 것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분의 수고에 누가 되는 일이긴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이런 것이기에 마음이 답답하다.
이런 군가들은 훈련소 중심으로 구전되어 왔기에 어떤 기수의 조교가 노래를 잘못 가르치면 그 기수는 모두 틀리게 노래를 부르고 기억할 것이다. 하긴 훈련소 조교가 음악전문가가 아니니까 노래를 정확히 가르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그 시기의 현실이다.
이 노래가 1967년 "부라보해병"으로 건전하게 바뀐 후에 이 곡을 알게 된 해병들은 이곡을 이인선 작사 정민섭 작곡의 창작곡으로 알고 있고 이 "부라보해병" 곡을 해병대 병영에서 누군가가 가사를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
"해병대곤조가"라고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한다.
좀 넌센스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이 곡이 해병대 병영에서 인기곡인 것 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역사 바로 세우기" 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이제는 "해병대곤조가"(개칭:부라보 해병)의 원작자라고 할 수 있는 1939년에 발표한 "그리운 그대"(작사 조명
암, 작곡 박시춘 노래 김능자)의 곡을 재차 개작해서 1950년대 중반부터 불리워지던 것을 재정리 한 것이 확실한 만큼 "부라보 해병"의 작곡자 ,작사자 문제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작곡이 아니라 선율수정에 맞는 적합한 단어로 기재한다든가~~~
지금은 영어의 Bravo를 브라보라고 표기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이 바뀌기 이전에는 부라보라고 했었다.
https://youtu.be/S-k3UkKOL3E
브라보해병의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