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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일제강점기의 저항시인으로 <서시><별 헤는 밤> 등의 숱한 작품을 남긴 민족시인 윤동주.40분 정도 걸리는 용정(龍井)의 조선족 기독교인 공동묘지에는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그의 묘가 있다.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바닥의 요철이 심해서 일반 승용차는 접근하기 어려우며 지프차로 겨우 갈 수 있다. 용정에서 연길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대성중학교에는 윤동주의 시비가 서 있으며, 한국에는 모교인 연희전문학교의 후신인 연세대학교 교내에 윤동주 시비가 서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송정 푸른 솔은...'으로 시작되는 노래와 항일독립운동을 그린 동일의 영화가 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는 길에 보면 길 오른쪽의 야산 위에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눈에 띄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일송정'이다.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은 소나무 한그루와 정자가 있다. 또 이곳에서 혜란강의 물줄기를 볼 수 있지만 지금은 물줄기가 말라 모습이 미흡하다.
용정 시민들의 말을 빌리면, 오래 전 이 곳에는 정자 모양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리고 이 소나무 밑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항일의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고 한다. 이를 미워한 일제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품을 넣어 일송정을 고사시켰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후반 중국정부 당국에서 이곳에 '일송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해란강(海蘭江)
두만강 지류로 선구자에서 언급된 용정지역의 강이다. 이 강이 선구자에 언급된 이유는 우리 민족이 간도 지방에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해란강 주변의 들판이었고, 그 중심 젖줄이 해란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가본 해란강은 거의 매말라버렸고..
작은 실개천 정도의 모습이었다..
두만강변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들려본..
윤동주 생가...
북한 땅 회령이 보이는 곳..
저 다리를 건너면..
바로 북한 함북, 회령군이다
바로 그 코 앞에 까지 내가 다녀온것인데..
정녕...내가 북한 땅 국경에 오기는 한모양이다..
드디어 도문..두만강에 도착..
연길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문은 길림성 동부의 중요한 철도교통요충지로 길림시,장춘,하얼빈, 단동강,심양,북경 등지로 가는 여객열차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65년도에 시로 승격되었으며, 현재는 중국, 북한의 국경으로 길림성 최대 변경도시이다. 중국과 북한은 도문대교로 연결되어 그 절반으로 국경을 나누고 있어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중국,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북한으로 정하고 있다. 중국쪽 다리 입구에서 약간의 돈을 내면 다리의 붉은색 끝까지 갈 수 있다. 다리 아래로 두만강과 강건너편의 북한의 산하와 건너편에 지어진 북한의 도시를 볼 수 있다.
1920년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독립군이 일본군 1개 대대를 격파한 봉오동 전투의 전적지가 주변에 있다
두만강에서 뗏목도 함 타보고..
두만강,,푸른물에,,,,
근데,절대로 푸른물은 아니던데..
연길시 야경 동영상
중국속의 작은 한국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길림성 동부에 위치하여 러시아,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이 4만 3547㎢, 인구가 219만 5000명 정도로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40%가 조선족이다. 조선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이곳을 개척하였고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렀다. 이후 1952년 9월 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어 1955년에는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연길(延吉)·도문(圖們)·돈화(敦化)·화룡(和龍)·용정(龍井)·훈춘(琿春)의 6개시와 왕칭(汪淸)·안도(安圖)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도문강·송화강(松花江)·목단강(牡丹江)·소분강[綏芬江] 등이 있고, 도문강 유역에는 '동북아 금삼각주(東北亞金三角州)'라고 불리는 국제개발지, 훈춘경제개발지가 있다.
조선 말기 우리 민족에 이주하면서부터 연변은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으며 그 때문에 청산리 항일전승지(靑山里抗日戰勝地)·봉오동(鳳梧洞) 항일전승지·일송정(一松亭) 등 유적지가 많다.
◈ 한국의 숨결이 살아 있는 도시 연길(延吉 : 이엔지)
연길은 2,0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여년 전부터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이며 중국 조선족 문화의 중심지로 백두산과 가까워 매년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연변에서는 사람들의 옷차림, 집, 길거리를 둘러봐도 전혀 낯설지 않은, 우리 나라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자치주 스스로 그 민족 나름대로의 지역을 가꾸어 나가도록 하는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따라 연변자치주 내의정부기관이나 신문 광고 등에 조선족 자체의 문자를 우선적으로 쓰고 있고, 그 때문에 연변의 거의 모든 옥의광고가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글이 공용어로 되어 있다.
연길은 중온대 반습윤기후에 속해, 여름에는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리며 겨울이 길고 춥고 뚜렷한 대륙성 계절풍 기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5.7℃, 최저 -32.7℃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연길의 면적은 390㎢, 인구는 약 25만 8000명(1993)에 달하며 주변 농업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집산지이다. 이곳은 청(淸)나라 말기에 간무국(墾務局)이 설치된 뒤 발달하였기 때문에 국자가(局子街)라고도 불렀다.
1902년 옌지청[延吉廳]이 설치되고 1909년 부(府)가 되었으며, 1913년 중화민국 수립 후 현(縣)이 되었다. 1909년 간도협약(間島協約:젠다오협약) 이후에 교역주로서 개방되자 많은 한국인 이민이 이주하여 시의 주변지역을 개척하였다. 부근에 석탄·금 등의 광산이 있고 광공업이 발달해 있다. 한국어방송국과 신문사가 있으며, 의과대학·연변대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