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51〉내 부덕의 소치요, 내 탓이외다
왜 원망을 밖으로만 돌리는 걸까?
역경을 전화위복할 지혜위해
누구에게나 산통의 시간필요
일전에 불교계를 대표하는 어느 학술원에서 연구원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며칠 후 상대편에서 또 다른 주장의 기자회견을 하였다.
양편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다보니, 당연히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은 신문지상을 통해서 아는 내용이 아니다. 20년간 한 자리에 있다 보니, 앞뒤 상황들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제3자가 말할 것은 못되지만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것이다.
이런 시기에 <법구경> 구절을 읽었다. 마침 앞에서 언급한 사건들과 관련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부분이 있어 고개를 연신 끄떡였다.
“적이 나에게 주는 피해보다, 또 원수가 나에게 주는 피해보다, 자신의 그릇된 마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가 훨씬 크다.”(#42)
“부모님이 주는 어떤 이익보다도, 또 친척들이 내게 이로운 일을 베풀지라도, 자신의 바른 마음으로 인해 생기는 행복이 가장 크다.”(#43)
극락세계도 지옥세계도 다 자신이 만든다.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결국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곧 ‘내 탓’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들은 불미스런 문제가 발생하면 대부분 상대방 탓으로 돌린다. 더 나아가 상대에 원망만 깊어간다.
살다보면 내 뜻과는 무관하게 원치 않는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소납도 10여년전 개인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발견해 낸 것이 있었다. 내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내 복덕의 부재(不在)라는 것을….
그래서 당시 만든 발원문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원인을 먼저 살펴보고, 모두가 ‘내 탓’이라는 겸허한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늘 평온한 몸과 마음 지니옵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경전에서 마음 닦는 내용을 수백여 차례 독송해도 내 삶속에서 용해되는 데는 생살을 비집고 만들어지는 진주처럼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역경을 순경으로 전화위복할 줄 아는 지혜도 어느 누구에게나 산통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요 근래 어느 모임에 재위임에서 제외된 사람이 있었다. 제외된 원인은 당사자가 모임에서 정해놓은 자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제도를 탓하고, 그 모임의 문제성만을 탓하고 있었다. 왜 원망을 밖으로만 돌리는 걸까?
공자는 자신의 과오를 쿨(cool)하게 인정할 줄 아는 군자를 활 쏘는 사람에 비유하였다. “활쏘기를 하는 것은 군자다운 면이 있다.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나면 자기 자신에 돌이켜서 자신의 잘못된 점을 찾기 때문이다.” 즉 과녁은 원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활을 쐈는데, 화살이 과녁에 적중되지 못할 경우, ‘내가 잘못 쏘았소’라고 바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높이 쏘았다면 지나치게 화살을 높이 쏘았다고 인정하는 것이오, 과녁 아래로 떨어지면 화살을 낮게 쏘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되면 내 덕이오,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잘못을 상대에게 전가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보이고, 자기 눈에 박힌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했나 보다.
남에게 화살을 돌리지 말자. 상대와 힘들면 나의 부덕함을 살펴야 할 것이오. 자신에게 화살을 돌린다면 더 이상 진흙탕 세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법구경> 구절을 하나 더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남의 그릇됨이나 잘못된 행실을 탓하지 말고, 먼저 자신이 이치에 맞게 행동했는지,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라.”(#50)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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