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주인
허 열 웅
테베의 왕인 오이디푸스에게 스핑크스가 3가지 수수께끼를 내는 데 그 중 하나가 ‘아침엔 네발, 점심엔 두발, 저녁엔 세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있다. 답은 인간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린애는 기어 다니고 다음엔 서서다니고, 늙어서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다닌다는 뜻이다. 지팡이는 사용용도에 따라 다양하다. 나이든 노인들이나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몸의 무게를 지탱하며 의지하는 지팡이가 있다. 상제가 초상을 치를 때 사용하는 대나무 지팡이가 있고, 등산이나 먼 길을 갈 때 활용되는 지팡이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홍해를 가르고 백성을 탈출시킨 모세의 지팡이가 있다. 또 한 움이 돋고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 해리포터의 마법의 지팡이도 있다. 전직 대통령 DJ는 지팡이를 오른 손으로 짚었을까, 왼손으로 짚었을까? 내기를 하는 지팡이도 있다.
나도 지팡이를 사용한 적이 몇 번 있다. 한 번은 험한 산을 오랜 시간 등산하고 하산할 때 너무 힘이 들어서였다, 두 번째는 테니스 운동을 하다가 다리의 근육 인대가 파열 되어 병원에서 치료하고 퇴원 후 한 달이 넘는 기간이었다. 지팡이를 사용해 본 결과 지팡이를 짚게 되면 행동이 느려지는 대신에 생각이 많아지고 건강 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지팡이는 보행이 불편한 노인들의 경로당 나들이 길에 동반자요 안내자이다. 때로는 노인들에게 하찮은 막대기가 열 자식 못하는 효도를 하고 있는 지팡이도 있다. 나도 이제 머지않아 지팡이에 의지하여 느릿느릿 산책길에 나설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내 생각도 깊어지고 행동이 신중해졌으면 하는 소망이지만 나는 철이 덜 들어 어떤 때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면 어린애만도 못할 때가 많다. 혹시 지팡이를 짚고 다닐 나이가 되면 좀 철이 들기를 바라며 아래 글을 몇 번 음미해 보았다.
어느 고을에 아주 똑똑하고 많은 재산이 있는 양반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 많은 하인들 중 아주 미련하고 어리석은 종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칠뜨기, 주인에게 아첨할 줄도 모르고 일하는 요령도 몰라 그저 시키는 일만 우직하게 할 뿐이었다. 그런데다 덩치가 남보다 크다보니 먹는 것 입히는 것이 훨씬 많이 들어 주인에겐 탐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내 보내려고 힘든 일만 시키고 어떤 때는 이유도 없이 꾸중을 하며 싫은 내색을 보여도 칠뜨기 그런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미련한 종 이었다.
주인은 할 수 없이 어느 날 칠뜨기를 불러 지팡이 하나를 내 주며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다가 너 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면 그 지팡이를 전해주고 돌아오너라’ 이렇게 당부하며 몇 푼의 노자 돈을 내주며 쫒아냈다. 칠뜨기는 방방곡곡 온 마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러나 모두가 약삭빠르고 꾀들만 많아 자기보다 어리석은 사람을 찾지 못해 3년이 넘게 구걸하며 미련스럽게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을 떠 돌다보니 어느덧 자기가 살던 마을 근처까지 오게 되었는데 들리는 소문은 주인집 양반이 중병에 걸려 심한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련한 칠뜨기였지만 한 번 찾아가 문병인사나 드리고 다시 지팡이 주인을 찾아 떠나려는 순진한 생각을 하며 주인집을 찾아갔다. 아주 건강하고 재물에 인색했던 주인은 중병에 걸려 피골이 상접한 채 누워 있었다.
주인 어른, 어찌 이리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만 계십니까? 인사를 올리자
‘나 이제 먼 길을 떠나야 할 것 같구나! ’ 눈을 감은 채 마른입술만 들먹거렸다.
아니 저 넓은 전답의 농사는 누가 짓고 그 많은 소작료는 어떻게 받으시려고 먼 길을 떠나시옵니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가시면 언제 쯤 돌아오시며 어느 하인을 데리고 가십니까?
‘아무도 데리고 갈 수 없으며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단다.
그러시면 큰 곳간에 쟁여있는 금은보화를 싣고 갈 짐은 다 꾸리셨는지요? 또
여러 광에 산처럼 쌓아놓았던 고기며 기름진 음식은 얼마나 챙겨 갖고 가십니까?
치~칠뜩~아 !
금은보화 한 잎은 고사하고 맛있는 음식 한 종지도 갖고 갈 수가 없느니라.
두 눈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칠뜨기 의 얼굴에 갑자기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더니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불쑥 내밀며 “주인어른 이제야 찾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 보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을 지금 여기서 3년 만에 찾았습니다, 하며 낡고 때 묻은 지팡이를 주인의 손에 꼭 쥐어주는 것이었다.
만약 칠뜨기에게 지팡이가 몇 개 더 있었으면 그 지팡이를 나에게 제일 먼저 쥐어주고 그 다음은 그대에게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