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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엄마 품으로 돌아간 동화작가 정채봉,
그와 함께 동심찾기>>
글 : 권 창 순
<동화작가 정채봉>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을 물이라 합니다. 몸을 옷으로 감추지도 드러내 보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물음표도 많고 느낌표도 많습니다. 사금파리 하나도 업신여기지 않고 흙과도 즐거이 맨 손으로 만납니다.
높은 하늘의 별을 우러르기도 하지만 청마루 밑 같은 낮은 데에도 곧잘 시선이 머뭅니다. 마른 풀잎 하나가 기우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옹달샘에 번지는 메아리결 한 금도 헛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그 기대로 가슴이 늘 두근거립니다.
'우선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해 놓고 위 글처럼 그 특징을 말하고 '이것은 지나온 세월 속에서 잃었습니다. 찾아 주시는 분은 제 행복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구요? 흔히 이렇게들 부릅니다. '동심' 이라고
동화작가 정채봉은 그의 잠언집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첫번째 글 「찾습니다」에서 '동심'에 대한 생각을 들려 줍니다. (국어사전에서 '동심'을 찾아 보니 '어린이의 마음, 또는 어린이의 마음처럼 순진한 마음')
아직 세상에 때묻지 않아 거짓을 모르고, 호기심에 물음표도 많고, 아주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귀를 기울이는 어린이들! 그들이야 말로 이 지구별의 밝은 미래가 아닌가.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말을 빌려 오지 않더라도 어른들은 누구든지 한때는 분명 지구별의 미래인 어린이였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때의 순수함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가.
언제부턴가 '빨리 빨리, 많이 많이, 나 먼저, 나 먼저'의 주문에 걸려 물음표와 느낌표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반드시 그 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가 내 물음표와 내 느낌표를 찾아야만 한다. 건강한 우리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동심찾기다.
누구나 다 그랬겠지만 속상하면 책상에 금 그어놓고 필통의 귀퉁이조차도 걸치지 못하게 하고, 선생님 몰래 책상 밑으로 발싸움을 곧잘 벌이던 짝꿍 가시내가 있었지요.
한번은 화단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데 내가 쇠비름이라고 뽑은 것 중에서 "바보야, 이건 채송화야" 하고선 풀 하나를 빼앗아 가서 다시 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잡초 같은 풀에서 진자주 꽃이 피어났을 때 그 가시내가 나를 불러내서는 "니 꽃이 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게 왜 내 꽃이냐며 어리둥절해 하자 그 가시내가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니 이름이 채송화 채, 봉숭아 봉 아니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채송화 채, 봉숭아 봉, 정채봉 동화작가와 함께 잃어버린 우리 '동심'을 찾아 떠나자. 필자는 정채봉 동화작가 쓴 책(홈페이지에 소개된 29권) 중 17권 정도를 읽고 이 글을 쓴다. 정채봉 작가와 그의 작품의 독후감이다. 여기에 감히, 졸작이지만 아동문학의 선배를 기리는 마음으로 추모동시도 썼고, 편지글도 세편, 그리고 독후감 동화, 동요로 부르는 동화(노래말 바꾸기) 등 다양한 형식으로 '동심'을 찾고자 했다. 내 동심도 함께 담아. 이 글이 여러분께 동화작가 정채봉과 그의 동화를 사랑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엄마께 한 가지 감사드릴 일이 있어요. 그것은 하얀 눈이 소복 소복이 내리는 음력 동짓달에 저를 낳아 주신 것입니다. 엄마,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엄마를 만나러 그 쪽 별로 가는 때도 눈 내리는 달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스무 살 어머니 . 2 >에서
동화작가 정채봉은 2001년 1월 9일 -그의 소망대로 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 - 스무 살 어머니 곁으로 떠났다. 너무도 불러보고 싶은 이름, 엄마! 그 엄마 품에서 실컷 엉엉 울기 위하여. 실컷 엉엉 울고 나야 그 크고 슬픈 눈망울에 비로소 햇살처럼 밝은 웃음이 필 테니까요. 지금은 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추모동시
정채봉 선생님! 선생님의 고향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바다는 내 그리움의 총체'라고 하시며 '난 바닷가에 서 있어야 할 한 그루 소나무가 아닐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젠 둑을 막아 바다는 멀리 물러나 있다지만 선생님의 그리움이 녹아 있을 갯밭과 출렁일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문학기행을 준비하며 늦게나마 (졸작으로) 추모함을 용서바랍니다.
동심, 엄마 품으로 돌아갔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던 날
슬퍼하는 마음마다 동심의 발자국을 찍어 놓고
엄마! 엄마 품으로 돌아갔네
우리, 외로울 때나 그리울 때 그 발자국을 따라가면
흰구름이 떠 있는 샘터에서 다시 만나리
엄마 사랑으로 비로소 터진 그 크고 슬픈 눈망울에 웃음
우리 풀잎처럼 어깨를 걸고 노래도 부르리라
별과 함께 새들과 함께 샘물을 마시리라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던 날
슬퍼하는 마음마다 동심의 발자국 소리를 담아 놓고
엄마! 엄마 품으로 돌아갔네
◆편지글
정채봉 선생님께 쓴 이 편지는 선생님께서 오래 몸담아 그립고 반가울 회사 샘터. 샘터 8월호와 함께 신성리 '갯밭 우체국'에서 부쳐 드리겠습니다.
★편지 하나 -어린 왕자를 좋아한 정채봉 선생님께
프랑스의 작가 생 텍쥐페리가 친구 '레옹 베르뜨에게' 헌사한 책『어린 왕자』
너무 감동적이어서 끝내 무릎을 꿇고 읽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충격적인 감동이 '동화작가로 승부를 걸어봐야 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했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어린 왕자가 자기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발목께를 물리고 -너무 멀어 몸뚱이를 가지고 갈 수는 없으므로- 모래 위에 소리도 없이 쓰러지는 마지막 부분이 너무 신선했다고 하시면서 그런 신선한 동화를 쓸 것을 다짐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두고 온 한 송이의 장미를 책임지기 위해 기꺼이 자기의 모든 걸 내 맡길 줄 아는 어린 왕자.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만 보인다'는 소박한 진리. 껍질만 반지르르한 현대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줍니다.
저는 몇 해 전, 몸도 아픈데다 갑자기 폭풍으로 밀어닥친 외환위기로 그만 실직해서 답답하고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어린 왕자를 만났습니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막막한 시간을 어린 왕자와 함께 여행을 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밤새 뒤척이다 쓰레기 봉투를 골목 모퉁이에 내놓으며 바라보던 새벽녘의 별들. '돈, 무담보 즉시 대출'이란 광고지가 바람에 떨고 있는 담장에 기대어 한참을 바라다 보면 반딧불이처럼 내 가슴으로 날아오는 별 하나. 어린 왕자의 소혹성이었습니다.
정채봉 선생님!
저는 요즘 일하면서 가톨릭성가를 부르곤 합니다. 그러면 골짜기에 머뭇거리는 하얀 안개처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여린 날개를 파닥거리며 비행연습을 하는 고추잠자리를 보면서 21층 아파트 베란다에 잠시 공구를 놓고 장갑을 벗고 이런 생각을 문득 해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이 곳 지구별에 계실 때 '스무 살 어머니가 계신 별나라에 가기 위해서' 라면 어린 왕자와 같이 뱀에게 발목께를 선뜻 내맡겼을 것이란 생각! 순결하고 애틋한 그 사랑처럼 선생님의 동화가 우리 곁에 있어 감사한데, 또 한 생각! 두고 온 자식들 때문에 울진 않으시는지? (울더라도 어머니 몰래 우시길-)
저는 생각합니다. 이웃에 어린 왕자의 별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우리 지구별에서 전쟁 때 출격했다가 실종된 그러나 우리는 어린 왕자를 찾아 갔다고 확신하는 생 텍쮜페리! 그가 살고 있는 별이 있으리니 어머니와 함께 하는 해질 무렵의 별 산책은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그리고 가끔 이 곳이 그리울 땐 '귀천' 주막에 가 천상시인과 술 한잔 하며 지구별 소풍이야기를 하실 거라고.
저는 이제 밤하늘을 보면 두 배로 아니 몇 배로 더 행복합니다. 제 어머님도 그 곳에 계시고, 어린 왕자가 흔드는 별 방울소리도 듣고 또 선생님이 계시니 파도소리도 듣고 갯밭 냄새도 맡습니다.
보내 드리는 그림은 선생님이 우리 지구별을 떠나기 한 해 전에 해운대 모래밭에 온 어린 왕자의 모습입니다. (모래조각가 친구의 손길로 가끔 우리 지구별에 오는 어린 왕자! 선생님이 보자고 하면 우리들 그림도 보여 줄 거예요)
그 때, 어린 왕자에게 우리 옷을 선물했는데 참으로 어울리지 않습니까? 한 번 만져 보세요. 해운대 금빛 모래도 묻어 있을 테고, 갈매기의 노래도,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의 고동소리도 들릴 것입니다.
이 편지는 선생님의 고향인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갯밭에 놓여지고 생 텍쥐페리가 우편비행기로 가져갈 것입니다. 어린 왕자가 해운대 모래밭에 다시 올 때 선생님께서 쓰고 있는 아름다운 동화 몇 편 꼭 보내 주시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별나라에 알림 : 올 여름 지구별 '방송대 문학기행반'에서 동화작가 정채봉 문학기행을 갑니다.
★2004년 여름. 선생님의 고향별 지구에서
★편지 둘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어머니께 일러 바쳤나요?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 형한테 엉덩이를 꼬집혔으니 형을 때려 주라고 울면서 일러 바칩니다. 형한테 꼬집힌 그 곳을 자기 손으로 꼬집어 보이며.
우는 모습도 귀엽고 해서 저도 "형이 이렇게 꼬집었다고?" 하며 아픈 그 곳을 꼬집었더니 국어사전의 동심이란 글자와 원고지 위의 연필이 한동안 쩔쩔매도록 울어 댑니다. 결국은 큰아이의 엉덩이를 때려 주는 걸로 울음을 그쳤지만.
정채봉 선생님!
선생님은 어머니를 만나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 바치고 엉엉 울었겠지요?
하늘 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이라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데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 바치고
엉엉 울겠다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이런 詩를 쓰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제 마음에도 눈물방울이 맺힙니다. 하느님께 더 열심히 기도를 드려 <<엄마가 휴가를 나오면>> '엉엉 울어' 마음속 그리움의 응어리를 풀고 가셨으면…
사람들은 왜 잊고 사는지요.
보고 싶을 때 어머니를 뵐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그리울 때 전화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외로울 때 어머니의 백지편지라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리운 친구를 만나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행복한지를.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시집『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에 나오는 <<슬픈지도>>를 갖겠지요.
사랑하는가?// 눈물의 강이/ 어디로 흐르는지// 슬픈 지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편지.셋 -풀잎 하나라도 축을 낸다면
이렇게 편지를 쓰는 책상 위 투명 유리판에는 케익 불을 켤 때 사용하는 성냥 머리통 만한 생강나무 열매가 한 알 놓여 있습니다. 일요일인 오늘 도봉산으로 '김수영 시인 문학등산'을 가 따온 것입니다.
힘으로 버티는 직업을 가졌으므로 다리에 힘을 붙히려고 일요일이면 도봉산을 갑니다. 혼자하는 산행이지만 그래도 제목은 있어야 하겠고 해서 -도봉서원 아래에 '김수영 시인 묘와 시비'가 있으므로 - '김수영 시인 문학등산'이라 하고 배낭에는 오이 두 개와 그의 전집 중 1권(시집)을 넣고 갑니다.
'어린이대공원역'에서 7호선 전철을 타고 시집을 읽다 보면 금방 '도봉산역'입니다. 오늘은 기상청에서 발표한 장마의 끝 날. 흐린 하늘에선 바람 가슴에 하얀 빗금을 그으며 느낌표로 떨어지는 빗방울 몇 알이 달맞이꽃 얼굴을 때립니다. 노란 달맞이꽃은 숙인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꾹 참았던 간지러움을 호호호 합니다.
산은 오늘도 출근길 전철처럼 만원입니다. 그 동안 내린 비로 계곡의 물은 더 맑고 더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며 흐릅니다. 잠시 '김수영 시비' 앞에서 기도하듯 <<풀>>의 둘째 연을 읽습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조그만 구름다리를 건너 물가로 내려가 얼굴도 씻고 안경도 씻고 그들을 봅니다. 우리들은 친구의 등을 밟고라도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는데, 비켜서지 않는 큰 바위는 돌아서 정답게 흐르는 그들. 그러나 그들은 곧 그 무엇도 거칠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만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고 가장 넓다는 것을 자신들의 이름도 버리고 바다가 되어 우리에게 증명해 보입니다.
사찰 '천축사'로 가는 계곡을 오르다 쉴 양으로 바위에 앉았습니다. 목이 말라 오이를 꺼내어 먹고 있는데 까마귀가 두 마리가 울며 날아가고 무언가 '툭' 하고 바위위로 떨어집니다. 동시에 까만 무엇은 바위 밑으로 굴러갑니다.
열매를 주워서 충치이빨로 깨무니 신맛에 몸이 오싹합니다. 물 건너 작은 바위 위에서 이 모양을 바라보던 다람쥐가 앞발을 내밀고 어깨를 올렸다 내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어떤 나무 밑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그 때 한 알의 열매가 '툭'하고 또 내가 앉은 바위에 떨어졌습니다.
안경을 벗고 시집을 꺼내어 물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와 새들의 울음을 배경음악 삼아 시를 읽는데 자꾸만 낯익은 흔들림이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안경을 쓰고 보니 다람쥐가 달아난 그 나무였습니다.
알싸하고 향긋한 생강나무. 가지를 꺾어 코에 대면 생강냄새가 나는데 이 나무를 강원도 사람들은 '노란 동백꽃'이라 부릅니다.
이 생강나무 열매로 그 유명한 동백기름을 짜지요. 작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바로 그 꽃. 점순이의 심술이 묻어 나는 그 꽃. 생강나무!
나도 모르게 생강나무의 열매 한 알을 또옥! 따가지고 왔는데 걱정입니다. 죄송스럽게도 흉내를 내자면 또옥! 따온 그 열매 한 알 때문에 도봉산의 균형이 깨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계곡 물이 산정상으로 솟구쳐 발싸심만 하는 분수가 되면 어떡하지요?
선생님의 詩 중에서 <들녘>을 옮겨 적습니다.
냉이 한 포기까지 들어찰 것은 다 들어찼구나
네잎클로버 한 이파리를 발견했으나 차마 못 따겠구나
지금 이 들녘에서 풀잎 하나라도 축을 낸다면
들의 수평이 기울어질 것이므로
첫째아이가 성당 여름캠프를 서해안으로 다녀 왔습니다. 신부님이랑 줄에 묶여 순교자들처럼 한티재를 넘어도 보았다 합니다. "배교합니다" 한마디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을까요? 얼마나 큰 사랑이길래! 전 그 사랑으로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부끄럽지만.
정채봉 선생님!
아내가 빨래를 개키다가 투덜댑니다. 무슨 모래냐고-. 아들녀석이 캠프 때 해수욕장에서 친구들이랑 파도랑 조개껍질이랑 뒹굴다 저도 모르게 바지주머니에 넣어 온 모래인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저 모래 한줌 때문에 바다가 모래밭을 전부 삼켰겠다!"
"왜요?"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는 녀석에게 위의 선생님 詩를 들려주었습니다.
"너와 네 친구들이 모래 한줌씩을 가져 왔으니까 수평이 깨졌지. 모래밭이 가벼워졌을 테니까 바다가 기울어 모래밭을 삼켰을지도 모른다고."
"아, 대단한 상상력이네요? 정채봉 선생님도"
"그래- 그런 마음과 눈으로 자연도 사랑하고 사람도 사랑해야 한단다. 그런 세상을 그 분도 원하고 계시지"
아들의 검게 탄 얼굴에 두 개의 별이 반짝입니다.
◆독후감 동화
갈수록 독자들이 해야 할 몫은 커간다. 작가의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면, 그 감동으로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말 축복이 아닌가.
그러기 위한 한 방법을 이야기 하려 한다. 이름하여 '독후 뒷이야기 직접 만들어 보기"다. 나는 정채봉 작가의 성장소설 『초승달과 밤배』를 읽고 주인공 '난나'를 만나러 여수를 다녀왔다.
물론 원양어선 어부시절 전후로 두어번 다녀온 오동도를 기억하며 쓴 것이지만 어린시절의 '난나'를 만나면서 작가의 어린 시절 그리움도 만나고 나의 어린 시절 그리움도 만났다.
물론 이런 작업이 원작에 손상을 주어선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고개만 끄덕이는 감동에서 머물게 아니라 그 감동에 직접 뛰어드는 게 우리 문학을 더 살찌울 것이라 생각한다.
비오는 날, 작품의 등장인물과 분홍 우산을 같이 받고 걸으며 대화를 해 보라. 해질 무렵 등장인물 중 누구와 바위에 앉아 바다?보라.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노래를 하고, 함께 울고… 그리고 편지를 보내고 받아 보라. 이제 우리 문학 발전을 위해 독자들의 해야 할 몫을 실천해 보자.
정채봉의 동화 『초승달과 밤배』의 난나를 만나다
-여수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의 난나
(1)
"난나야, 너 선장이 되고 싶다고 했지? 금태줄을 두른 모자를 쓴."
"기선 선장이나 고래잡이배 선장이 되고 싶어요."
난나는 배달을 마치고 남은 지방신문을 깔고 앉으라고 내밀며 말했다.
"바다가 좋아서 겠지?"
역시 파도소리는 이렇게 만조가 된 밤에 들여야 제격이라고 고개를 방아깨비 방아 찧듯 하며 서울 아저씨가 물었다. 오동도 등대불빛은 파도와 함께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동묵이 아저씨처럼 아저씨도 저 바다를 좋아하세요?"
"그래서 배를 탔지…"
서울 아저씨는 하모니카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추억에 잠기는 듯 조용히 말했다.
"정말이세요? 어떤 배를 탔어요? 선장이었어요?"
난나는 동묵이 아저씨를 만난 것처럼 기쁨과 설렘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동그란 두 눈이 등대 불처럼 반짝였다.
"아냐, 선장은 아니였고 먼 바다인 인도양에서 고기를 잡았어. 원양어선 선원이었거든. 참치를 잡았지. 난나야, 네 꿈인 선장출신이 아니라서 실망했지?"
"아니예요."
난나는 실망한 마음과 눈빛을 슬그머니 거두어 들이고 서울 아저씨 곁으로 바짝 다가 앉으며 물었다.
"아저씨, 참치는 고래만큼 커요? 고기 잡던 이야기 좀 해주세요."
"참치는 고래에 비하면 아주 작아. 참치엔 여러 종류가 있지. 우리가 잡았던 참치는 보통 돼지 한 마리 정도 크기야. 눈이 큰 '빅 아이' 그리고 지느러미가 노란 '옐로우 핀'을 주로 잡았어. 고기를 잡는 일과는 무척 힘들었지만 수천개의 낚시를 던지고 쉬는 시간에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어. 사방을 쳐다봐도 우리 배뿐, 어느 땐 수평선에서 구름 기둥이 사방을 에워싸면 보물이 가득한 성에 있는 것 같아서 황홀했지."
"그 성의 보물은 참치인데요?"
"그래, 난나 네 말이 맞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럼, 아저씨는 그 때 보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다는 아름다웠고 특히나 구름기둥 성에 갇힐 땐 황홀했지. 그러나 곧 외로웠어. 너무 그리웠지. 하얀 찔레꽃이 핀 고향의 산골짜기, 그리운 가족들, 친구들이… 난나야, 미움이나 아픔을 지우는 건 그리움이란다. 그리움은 우리에게 누구든 무엇이든 사랑할 용기를 준단다."
"그리움이 보물이라……"
"난나야, 네 고향 갯밭에서 탱자국민학교 다닐 때 동생 옥이가 찔레꽃잎 도시락을 가지고 온 일 기억나지? 넌 곱추인 동생이 나타나자 무척 창피했지. 넌 학교 뒤 솔밭으로 들어가 바다를 보고 마음의 고요를 찾은 다음에야 보았지. 찔레까시에 손톱 밑을 찔리며 널 위해 찔레꽃잎을 딴 옥이의 따뜻한 마음을. 그건 네 마음의 그리움이야. 그래서 넌 옥이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다 보았지."
(2)
파도가 검은 바위에 부서질 때마다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날아갔다. 그들이 풀숲의 등불이 되고, 외로운 섬의 등대가 되고, 밤하늘의 별이 되어 반짝이는 건 아닐까?
난나는 옥이를 생각하며 은은한 찔레꽃 향기를 목구멍으로 삼키며 물었다.
"다른 나라에도 가 보았겠네요?"
"다섯 나라. 아프리카에선 '케냐'라는 나라를 가 보았지. 우리 나라의 부산항 격인 뭄바샤 항구에서 한 달간 보낸 적이 있어."
"큰 사막도 있어요?"
"어린 왕자가 지구별 여행을 시작한 사하라 사막 말이지. 난나도 정채봉 선생님처럼 '생 떽쥐페리' 아저씨와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구나? 네가 먼 훗날 생 떽쥐페리와 그의 글을 좋아해 훌륭한 동화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는데… "
"제… 제가 동화작가요? 정채봉 선생님요?"
"아- 아냐, 넌 아직 몰라. 아저씨가 정채봉 동화작가를 좋아해서, 그 분처럼 '어린 왕자'를 좋아해서 해본 말이야."
난나는 서울 아저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곧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정채봉 선생님도 서울에 사시나요?"
난나의 이 질문에 서울 아저씨는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듯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 보며 말했다.
"난나야, 저기 반짝이는 수 많은 별들을 봐. 아름답지? 저 별들 중 아주 작은 별에 어린 왕자가 살고 있어. 그래서 모든 별들이 더 반짝이고 아름다운 건 아닐까?"
난나는 잠시, 생선 행상을 하고 돌아와 불을 켜 놓고 손자를 기다리실 할머니의 모습을 떠 올리며 말했다.
"할머니가 불을 켜고 난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 동네 골목 골목이 더 정답듯이 말이지요?"
"그래 맞다. 역시 난나의 마음은 그리움이 가득하구나."
"그래, 이 아저씨는 난나가 남해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까 바다가 더 정답단다. 아저씨는 큰 집을 짓는 곳에서 일하는데 힘들 때 널 생각하면 마음은 어느새 바다로 달려와 바위를 치는 파도를 보며 힘을 얻는단다."
"나도 누군가 한테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할머니가 말도 못 꺼내게 하는……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요."
서울 아저씨는 곧 들썩일 것만 같은 난나의 어깨를 자기의 어깨 밑으로 끌어당기며 조용히 말했다.
"난나야, 정채봉 선생님이 서울에 사느냐고 물었지? 정채봉 선생님은 어린 왕자가 사는 별동네, 아주 작은 별에 산단다."
"아주 작은 별?"
"스무 살 엄마와 함께 아주 작은 별에서 살아. 가끔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스무 살 엄마……?"
"정채봉 선생님이 세살 때 스무 살 엄마가 세상을 떠났단다. 그래서 난나 너처럼 동생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랐지. 그것도 네 고향같은 남해 갯밭에서."
"나와 비슷하네?"
"하지만, 정채봉 선생님은 어렵고 외로웠던 환경 속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을 친구로 삼아 마음 부자가 되었단다. 열심히 공부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어린이와 외로운 어른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꿈을 주는 많은 동화를 썼단다."
"마음 부자?"
"마음 부자란, 그래 맞다! 옥이다! 소라껍질을 귀에 대고 바다의 산호초 궁전소리를 듣는 옥이. 갯밭에 널려 있는 소라껍질도 마음을 열고 귀에 대면 용궁의 자명고가 될 수도 있지."
"마음을 열면…?"
"그래, 우리별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알려 준 소중한 비밀처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 보아야만 보인단다."
(3)
"난나야. 참새를 좋아하니?"
"허수아비를 좋아하니까, 참새도 좋아해요."
"허수아비를 좋아하니까, 참새도 좋아한다?"
"바람에 날리는 헐렁한 흰 옷자락이, 김을 매시느라 이랑을 탈 때 보였다 사라졌다 하던 우리 할머니 옷자락 같아서 난나는 허수아비가 좋아요."
"참새들 때문에 일거리가 생긴 허수아비는 행복하지. 허수아비를 믿고 방심한 논 주인, 그래서 더 신나는 참새 떼. 사실은 허수아비와 참새 떼는 같은 편이거든.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저씨는 보았지. 어느 날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잡고 있었는데, 참새 떼가 자기의 논으로 우르르 날아드는 것을 본 논 주인이 허겁지겁 달려왔지. 그런데 크음! 크음! 기침만 하는 거야. 다른 말은 못하구서."
"나 같으면 워이! 워이! 쫓지."
난나는 두 팔로 주먹을 던지며 말했다.
"웬 줄 아니? 이웃집 할아버지의 헌 옷을 입고 있는 허수아비는 논 주인보다 나이가 많았거든. 그래서 뒷짐만 지고 먼 곳만 바라보며 크음! 크음! 기침만 한 거야."
던진 난나의 주먹이 바다에 떨어진 듯 서울 아저씨 귓가에 풍덩! 풍덩! 소리가 들렸다.
"그 때 아저씨는 보았지. 참새들에게 조금있다가 다시 오라고 속삭이며 밀집모자를 푹 눌러 쓰는 허수아비를 말이야. 그 밀짚 모자 속 일자눈썹이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는 것도……"
멀리서 불을 환히 밝힌 배 한 척이 통통통 지나갔다.
"난나야, 바다 참새를 본 적 있니?"
"바다참새라니요? 바다에는 논도 없어 벼도 없는데."
"날치를 말하는 거야. 참새 떼처럼 우르르 바다 위를 날아 다니는 고기."
"고기가 날아 다녀요?"
"그래. 몸길이는 어른 한뼘 가량돼. 가슴지느러미가 길게 발달해 있어. 이것을 날개처럼 펴서 날아다니는 거야. 꼬리지느러미는 두 가닥으로 째졌는데 긴 아랫것이 날 때 키 구실을해. 이 날치 떼가 파도 위를 날아 봐. 무지개가 다발로 날아 가는 것 같지."
"정말 멋있겠다! 수평선 뿐인 바다에서 보고 싶다. 날아가는 바다참새!"
"네 꿈이 선장이니까, 실컷 볼 수 있을 거야. 날개를 가진 고기를. 참, 난나야! 지금도 볼 수 있어"
"어떻게요?"
"네 동생 옥이를 생각해봐."
"옥이는 사람이고 그리고……"
"아냐. 볼록한 옥이의 등에 날개가 들었다는 게 아냐. 옥이의 마음에 날개가 들었다는 거지. 네 고향 갯밭의 동네머슴 마음에도, 동묵이 아저씨 마음에도 날개가 들어있어. 분명히."
"옥이도, 동네머슴도, 동묵이 아저씨도 하늘을 날수 있단 말인가요?"
"그래! 그들은 날수 있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니까. 그들의 마음은 늘 행복하고. 그래, 하늘나라는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야."
이때 난나는 밤하늘에서 반짝하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의 눈짓.
(4)
"난나야, 너도 달빛을 좋아하지?"
"빨간 동백꽃에 흐르는 달빛도 좋고, 바다에 쌓인 하얀 달빛도 좋아요. 그런데 밤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서 보는 달빛은 더 좋을 것 같아요."
"보름달빛 보다는 초승달빛이면 더 좋겠지?"
"초승달은 난나처럼 자라나니까요."
"그래, 이를테면 넌 초승달이 뜬 바다를 밤배를 타고 떠날 준비를 하는 셈인데…"
"밤배를 타고요?"
"그래, 밤배를 타고… 누구나 두렵지. 저 넓은 검은 바다로 작은 등불 하나를 밝히고 떠난다는 것은. 그러나 달리다 보면 초승달도 차츰 자라나 보름달이 되어 바다를 환하게 밝혀 준단다. 등대들이 반짝이며 외로움도 달래주고 마음엔 그리움이 커가지. 거친 파도는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준단다."
"희망?"
"찬란히 해가 뜨면 수 많은 항구들이 가슴을 열고 기다리지. 옥이와 할머니가 있는 항구, '더덕 먹는 모임'의 회원들이 있는 항구, 네 친구 불이가 있는 항구, 영희가 있는 항구…….
난나는 옥이, 할머니, 대학생 형, 꿀벌 할아버지, 우체부 아저씨, 불이, 영희…… 하나 하나 얼굴을 떠올리다 파도소리가 아늑하게 멀어지고 반딧불이가 날아와 아른거리는 걸 느꼈는데…… 깜빡 서울 아저씨의 어깨를 기댄 채 잠이 들었다.
하모니카 노래 소리에 난나는 서울 아저씨 무릎에서 부시시 일어나며 물었다.
"하모니카 소리는 참 좋아요. 달빛같은 소리예요. 물새의 울음 같기도 하구요."
"중학교 때 조금 배웠지. 너무 외로웠거든. 외로운 사람들은 더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더 가까이 한단다. 네가 언젠가는 쓸, '아니지- 아직 넌 난나지' 네가 언젠가 읽을 정채봉 선생님의 동화 중 <<왕릉과 풀씨>>에 이런 글귀가 있단다."
"어떤 글귀요?"
"개미와 풀씨가 왕릉에서 주고 받는 말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인가' 하는 건데, 그대로 옮겨 보면 이래"
풀씨. "나는 작고 힘이 없는 풀씨지만 아무데나 떨어져도 뿌리를 내리고 살지. 봄이면 솔숲 사이에서 우는 뻐꾸기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여름이면 이름을 갖지는 못했지만 작은 꽃을 피우기도 해. 살아서 흔들리는 내 이파리하고 임금님의 녹슨 칼하고 어떤 게 더 소중해?"
개미. "난 잘 모르겠어. 사람들은 썩었을망정 칼이 더 소중하다고 할텐데…"
풀씨. "그건 진짜로 소중한 것이 아니야. 죽은 고래보다는 산 피라미가 더 중요해. 죽은 고래는 아무리 몸집이 커도 물살이 떠밀려 내려가지만 산 피라미는 아무리 몸집이 작아도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거든."
난나는 두 무릎 사이로 묻었던 얼굴을 들며 말했다.
"나도 풀씨처럼 뻐꾸기 노래가 좋아요. 그리고 산 피라미가 좋아요. 그 노래 다시 한 번만 불러 주세요."
서울 아저씨는 난나의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주며 하모니카를 불었다.
뻐국 뻐꾹 봄이 가네
뻐꾸기 소리 잘가란 인사
복사꽃이 떨어지네
난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어깨를 옆으로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하모니카를 따라 노래를 불렀다. 영구와 정수…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이 초가을 배추처럼 싱싱한 고향 바다와 함께 안겨 오고 부엉이골의 솔 바람도 불어왔다.◇
◆동요로 부르는 동화
정채봉의 동화 <<오세암>>을 동요로 부른다
'실제의 오세암은 내설악에 있다. 백담사에서 사오 리쯤 올라가면 된다. 내가 오세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신한국지> 강원도 편 중 인제군을 보면서였다. 거기에 씌어 있기를 원래는 관음암이었는데 오세동자가 부처가 되어서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다섯 살 먹은 아이가 부처가 되다니…. 나는 그 사연을 좀더 알아보기로 했다.
오세암은 원래 고성군의 군지역 내에 있는 건봉사의 아랫절이었는데 건봉사지에 간단한 유래가 나와 있었다. 어느 해 겨울, 설정이라는 스님이 오갈 데 없는 다섯 살바기 사내아이를 데리고 올라가 참선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량이 떨어져서 스님이 대처로 탁발을 나간 사이에 폭설이 몇 날을 계속 내리퍼부어 길이 막혀 버렸다. 이듬해 봄, 마침내 길이 열려 불쌍히 죽었을 아이의 시체나 거둘까 하고 암자에 올라가 스님은 깜짝 놀랐다. 아이가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오세암을 동화로 쓰기 위해 휴가를 얻어 오세암으로 찾아갔다. 지금도 교통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버스로 인제까지 가서 물어물어, 걸어걸어 오세암에 오른 시각은 해질무렵이었다. 암자에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까먹고 있을 뿐 스님이 계시지 않았는데 어디에서인가 파랑새가 한 마리 포르르 날아와서 마루에 걸터앉은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한두어 마디 짹짹거리기도 했다.
후일 나는 <오세암>을 쓰면서 글이 잘 안되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는데 하얀 돌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 소리 같은 어떤 소리가 들리면서 글이 풀리곤 했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오세암의 파랑새 소리인 것 같아서 가슴에 전율이 온다.'
-<아름다움은 진실이다>에서
독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작가의 문학작품을 산책하고 즐기는 일, 그건 분명 삶을 풍부하게 하므로 매우 유익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다소 길지만 부분부분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부르다 보면 뻐꾸기 울음처럼 사랑과 그리움이 우리들 마음을 촉촉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뻐꾸기
뻐꾹 뻐꾹 봄이 가네
뻐꾸기 소리 잘가란 인사
복사꽃이 떨어지네
-윤석중
-바다보다 넓게 내리는 눈
(1)수만 마리 하얀나비 /나는듯 눈발 가득한 바다 /눈이누나 넓게내려
(2)스님 보니 대여섯살 /아이와 소녀 손목을 잡고 /소나무와 나란히서
(3)작은 나무 그릇그릇 /든것을 보니 얻어먹 구나 /물빛처럼 시린눈총
(4)스님 눈썹 눈송이가 /콧등에 도야 고녀석 이참 /스님입가 초승달떠
(5)누나 하늘 스님옷색 /저런색 재색 맛없는 국색 /때가지난 나물국빛
(6)스님 웃음 거두고서 /그릇에 돈을 넣고서 가니 /쫓아오는 물새울음
(7)첫눈 금방 녹고녹아 /스님은 탁발 그릇비 우고 /설악자락 접어들고
(8)길가 짚속 키득소리 /나물국 스님 누나야 간다 /헤쳐보니 남매남매
(9)너희 집에 왜안가니 /집없다 여기 자겠단 말야 /눈그치면 눈보라쳐
(10)괜찮 괜찮 우리들이 /싸우지 않음 매운 바람도 /우릴비켜 가는걸뭘
(11)어린 것들 눈바람속 /죽을지 몰라 발길을 돌려 /스님스님 둘을불러
(12)어디 가요 절에가지 /따뜻한 방도 밥도 있단다 /손뼉치네 사내아이
(13)이름 뭐냐 스님묻네 /난길손 누나 이름은 감이 /거참드문 이름이다
(14)길손 이름 떠돌이래 /누나이 름은 눈감았 으니 /감이감이 그냥감이
(15)스님 우리 눈치않해 /너희는 나의 조카다 조카 /세사람등 눈발내려
-바람의 손자국, 발자국
(16)누나 누나 절을한다 /복달라 빌고 명달라 빌지 /부처님이 성가시네
(17)누나 댕기 당긴것은 /나아냐 바람 바람이 었어 /우리눈에 안보이는
(18)부처 님은 바람볼까 /볼지도 몰라 볼지도 몰라 /흔들리는 나뭇가지
(19)부처 님은 바람보여 /마음의 눈을 뜨고계 시니 /부처님은 바람보여
(20)지금 감인 육신창문 /길손과 나는 마음에 창문 /닫혀있지 닫혀있지
(21)공부 열심 하다보면 /창문이 열려 마지막 창도 /하늘뒤란 보여보여
(22)스님 마음 눈떠고파 /바람도 보고 뒤란도 보아 /누나한테 말해줄래
(23)내일 부터 공부가자 /신난다 길손 좋아라 깡충 /마등령에 관음암가
(24)언제 까지 머무나요? /봄오면 온다 그래요 참지 /우리길손 공부많이
(25)스님 길손 암자간건 /오줌도 싸고 법회때 방귀 /말썽부려 말썽부려
-물초롱 속에 구름을 넣어서
(26)길손 작은 물초롱을 /흰구름 넣어 가지고 가지 /개울에서 건져왔지
(27)길손 스님 관음암에 /당도를 하니 붉은해 뉘엿 /도망가는 짐승소리
(28)아냐 아냐 함께살자 /산양과 장끼 쫓는다 길손 /스님염주 고녀석참!
-입김으로 피는 꽃
(29)겨울 잠에 빠져있는 /암자를 길손 소리로 깨워 /벌집찾고 다람쥐굴
(30)누나 꽃이 바위틈에 /얼음속 발을 묻고서 폈어 /돌부처님 입김으로
(31)감이 큰절 있잖느냐 /스님은 답답 내있는 곳엔 /누나마음 항상있지
(32)스님 나랑 함께놀자 /앉아만 있음 무엇이 나와 /솜다리꽃 못피면서
(33)길손 벌떡 일어나서 /우물가 속을 들여다 봤지 /흰구름은 없어없어
(34)구름 오면 혼낼테야 /새앙쥐 보고 마루밑 뒤져 /바릿대와 염주알을
-살며시 웃는 얼굴
(35)뒤란 맨끝 골방문앞 /문둥병 스님 살다가 죽어 /길손팔뚝 소름돋아
(36)누나 방도 무섭겠다 /여기서 지켜 나금방 올게 /발로문턱 와당탕탕
(37)길손 살금 골방으로 /벽걸려 있는 도롱이 떼니 /방안밝아 들창밝아
(38)벽에 걸린 그림한폭 /머리에 관을 쓴보살 이지 /연꽃받쳐 웃고있어
(39)길손 그림 향해절해 /전길손 너무 떠들어 미안 /얼른나와 골방나와
(40)제가 놀러 와도돼요 /한참을 있다 길손이 물어 /그럼내일 또올게요
(41)길손 골방 청소청소 /보살님 춥죠 솔가리 긁어 /군불넣어 드릴께요
(42)길손 그림 속에계신 /보살님 웃게 흉내를 내네 /소리없이 방귀방귀
(43)아휴 냄새 보살꿨지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어 /그림보살 길손좋아
(44)나는 엄마 없어없어 /내소원 엄마 가지는 거야 /엄마라고 불러도돼?
-마음을 다해 부르면
(45)엄마 삶은 밤있어요 /가장큰 것을 남겨왔 지요 /어서잡수 잡수셔요
(46)엄마 동무 흰구름은 /이렇게 몸을 웅크려 자죠 /두레박이 풍덩해도
(47)엄마 엄마 우리엄마 /탱화를 보고 하는말 이군 /고녀석참 고녀석참
(48)내일 혼자 놀고있어 /양식을 위해 저잣거 리에 /갔다올게 금방올게
(49)내가 없어 무섭거든 /관세음 보살 관세음 보살 /마음다해 부르면와
-쌓인 눈이 마루에 닿다
(50)스님 부랴 서둘러도 /설악쪽 이미 어두어 졌어 /큰눈큰눈 오겠는걸
(51)스님 입안 바싹말라 /바쁘게 걸어 서둘러 가도 /폭설폭설 정강이에
(52)안돼 길손 혼자있어 /먹을것 없는 암자에 혼자 /스님스님 쓰러졌네
(53)스님 구한 농부농부 /쌓인눈 마루 끝에와 닿아 /스님가야 나는가야
(54)암자 어디 있습니까 /마등령 고개 절대로 못가 /길손길손 스님앓아
(55)스님 감이 데리고서 /암자로 간건 온날로 부터 /오십일이 된날된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56)눈이 녹아 빙판빙판 /용케도 발이 나가는 것은 /나무뿌리 덕이었다
(57)봄이 오나 흙내음나 /감이가 코를 킁킁거 리네 /골골허리 봄기운와
(58)감이 귀가 자주쫑긋 /눈썹도 움찔 마등령 고개 /넘어넘어 길손내음
(59)스님 소리 들리셔요 /새소리 말고 목탁의 소리 /아냐아냐 딱다구리
(60)스님 우리 길손이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정말 /스님크음 눈물삼켜
(61)스님 소리 들리지요 /목탁을 두들 긴소리 여요 /어서어서 가자꾸나
(62)감이 땅에 내려주니 /걸음을 멈춰 들린다 하네 /관셈보살 관셈보살
(63)관셈 보살 관셈보살 /스님이 무릎 바쁘게 꿇니 /법당문이 열리었네
(64)걸어 나온 발은발은 /빠알간 맨발 길손이 맨발 /길손네가 살아있니
(65)엄마 엄마 오셨어요 /배고파 하면 젖주고 함께 /놀아놀아 주었어요
(66)길손 말이 떨어질때 /관음봉 에서 하얀옷 여인 /소리없이 내려왔네
(67)여인 길손 품안으며 /이어린 아인 하늘의 모습 /모습모습 하늘모습
(68)티끌 하나 가감없이 /그대로 나를 찾았고 불러 /나를위로 위로위로
(69)나를 위해 개미얘기 /기쁘게 하려 춤추고 노래 /꽃이피면 꽃아이야
(70)바람 불면 바람아이 /바람과 숨을 나누었 으니 /이아이는 이제부처
(71)순간 우물 안에구름 /빨갛게 변해 감이의 환희 /스님스님 파랑새가
(72)정말 관셈 보살님이 /새로새 몸을 바꾸어 날아 /감이네가 어찌보냐
(73)스님 모두 보입니다 /스님도 햇빛 마루에 길손 /모두모두 보입니다
(74)아아 길손 부처부처 /스님은 계속 절하고 절해 /눈든감이 절해절해
(75)길손 엄마 품안편히 /손바닥 뺨에 모로누 워서 /놀이라도 구경하듯
(76)설악 산에 꽃비내려 /솜다리 토끼 금낭화 사슴 /뭉게뭉게 꽃구름이
-연기 좀 붙들어 줘요
(77)사흘 후에 길손장례 /기적의 소문 퍼져서 몰려 /많은사람 자꾸자꾸
(78)스님 들은 길손구박 /했던것 깊이 깊이뉘 우쳐 /암자이름 아예바꿔
(79)다섯 다섯 살짜리가 /부처가 된곳 부처가 된곳 /오세암여 오세암여
(80)길손 이를 돌보아온 /스님인 설정 괴롭고 슬퍼 /감이또한 슬퍼슬퍼
(81)장작 불이 타올랐다 /연기는 곧게 하늘로 올라 /흰구름과 함께흘러
(82)스님 염불 모두절해 /감이만 중얼 감이만 중얼 /저연기좀 붙들어줘
◇◆◇
"좋은 동화란 함께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작은 아픔도 그리고 쌀톨만한 기쁨도 독자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함께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좋은 작품의 판별 기준이다.
-<나이 많은 아이님>에서
"우리들 육신의 고향이 출생지나 어머니를 말한다면 영혼의 고향은 동심(童心)이므로 이를 기조로 한 동화야말로 하느님, 그 의의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는 동화야말로 '있는 것을 있게 하고 없는 것을 없게 하는 인류 존재 지향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나는 내 동화의 역할을 '인간의 삶을 위로해 주고 보다 승화시키는 데'에 두고 있다."
"나는 나의 길, 곧 '하느님은 동화이시다'를 추구하고자 한다. 어둠보다는 밝음을, 추함보다는 아름다움을, 육신보다는 정신을, 양보다는 질을."
-<하느님은 동화이시다>에서
감동을 주는 좋은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출근을 위해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지만 전동차 안에서 맑고 고운 글로 내 영혼을 깨워 살찌운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행운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정채봉 동화작가님께 감사를 드린다.
작은 것이 우리들에겐 더 소중하다. 이번 문학기행에 참여하는 선배님 동료들 후배들 그리고 일반인들 모두 가능하면 여러 권 읽고 동행하길 원한다. 분명 우리의 삶을 풀잎처럼 맑고 바다처럼 넉넉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만날 지도 모른다. 우리가 돌아간 뒤 신성리 갯밭으로 생 떽쥐페리가 편지를 가지러 오겠지만 그 전에 별을 산책하다가 잠깐 고향을 다니러 온 물새를.
詩 <물새가 되리>를 옮겨 적으며 글을 맺는다. 모두 건강한 여름을 맞길.
내가 죽어서
다음 몸을 받는다면
물새가 되겠다
흙한테 미안하지만
물에서 하루치를 벌어
하루를 사는
단순한 노동자가 되고 싶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오늘의 작은 만족에 훨훨 날며
비록
겨울날 맨발로 얼음 위를 걸으며
부리로 얼음을 쪼지만
그 누구를 원망도 시기도 하지 않는
하얀 물새가 되고 싶다
그리움이야 멀리 바라보며 피우는 꽃
강 건너 흙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하는 나는
죽어서 다음 몸을 받는다면
기꺼이
물새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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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화작가 -샘터에서 오래 근무한 -정채봉님은 2001년 1월 9일 세상을 떠났지요. 2005년 그의 고향 순천시 해룡면으로 문학여행을 갔는데, 11월 1-2일 다시 순천으로 정채봉. 김승옥 문학여행을 떠납니다. 이 가을 어디든 여행 떠나보심 어떨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