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희망 전령사’ 릴레이 인터뷰-심장병 어린이들의 代父 수와진
<사랑 그리고 희망 - 2009 대한민국 리포트>
“수술비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 그냥 보고 있는 건 죄악”
‘사랑·희망 전령사’ 릴레이 인터뷰 - 심장병 어린이들의 代父 수와진
▲ ‘수와진’의 형 안상수씨가 지난 8월30일 덕평자연휴게소에서 모금함에 돈을 넣는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1980년대 서울 명동성당 앞에 가면 그들이 있었다. 쌍둥이 듀엣 ‘수와진’.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운동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그들은 거리모금공연으로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그 후로 20여년이 흐른 2009년 8월30일, 그들은 자리를 옮겨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모금공연을 하고 있었다. 20대 청년이었던 안상수, 안상진(49) 형제는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러나 기타를 치며, 때론 노트북컴퓨터에 저장된 반주녹음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여전히 맑고 파워풀했다.
[인터뷰=오애리 문화부장(덕평·이천)]
모금함에 정성스럽게 돈을 넣는 여행객들의 손길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두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도 꼬박꼬박 ‘감사합니다’란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공연을 지켜보던 한 여성은 “젊었을 때 명동성당 앞에서 노래하던 두사람을 본 게 마치 어제 같은데 여기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니 너무 반갑다”며 “아직도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거리공연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당초 계획은 ‘수와진’ 두사람을 한자리에서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동생 안상진씨가 1989년 불의의 사고로 활동을 접은 후 거의 20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5집 앨범 녹음에 참여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형과 함께 모금공연을 재개했다는 것이 뉴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8월30일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 약속장소에서는 안상수씨 혼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함께 공연한다더니, 어느새 서로 결별하고 솔로로 활동하는 겁니까.
“(웃음) 물론 아닙니다. 지난 5월 고속도로 휴게소 공연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한곳에서 함께 공연했어요. 그런데 모금실적이 잘 오르지 않는 것이 문제였지요. 올해에만 심장병 수술을 시켜줄 어린이가 30명입니다. 그대로 가다가는 모금액수 채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더군요. 고민 끝에 모금의 효율성을 위해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각자 공연하기로 했지요. 그 결과 공연 3개월 만에 2000만원을 모았고, 5명의 어린이에게 수술을 시켜줄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시간, 동생 안상진씨는 이천휴게소에서 공연 중이었다. 사진촬영을 위해 덕평자연휴게소로 와달라는 요청을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오늘 모금목표를 채우려면 자리를 비우기가 힘들고 갈 길이 멀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인터뷰는 덕평과 이천휴게소를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987년 ‘새벽아침’으로 가요계에 데뷔, ‘파초’ 등의 히트곡을 내며 팬들의 사랑을 받던 ‘수와진’에게 희망과 나눔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한창 인기듀엣로 활동하던 1989년 어느날 안상진씨가 괴한의 습격을 받아 3, 4년 동안 생사의 경계를 오갈 정도로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7년간 안상진씨는 후유증에 시달리며 요양생활을 했고, 형 안상수씨를 비롯해 가족은 그 고통의 시간과 싸워야 했다.
“환자 가족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환자보다 어떤 의미에선 더 힘든 게 바로 가족이거든요. 동생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말 앞이 깜깜하더군요. 함께 가수활동을 했던 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요. 심장병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면, 주말 이틀간 휴게소에서 뙤약볕을 맞으며 하루종일 힘들게 노래해도 마음만은 날아갈 듯 상쾌해져요.”(안상수)
‘수와진’이 많은 병 중 특히 심장병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가족병력이 크게 작용했다. 막냇동생을 세살때 심장병으로 잃은 것을 비롯해 할머니, 삼촌 모두 같은 병으로 별세했기 때문이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더군요. 국내 의료진의 심장병 수술 수준은 세계적입니다. 적절한 시기에 심장병 어린이가 수술을 받을 수만 있으면 대부분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런데도 돈이 없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저희들을 통해 수술 혜택을 받은 아이들이 건강해져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감동은 직접 느껴보지 않고는 실감하지 못할 겁니다.”(안상진)
지금까지 ‘수와진’을 통해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이들은 700명이 넘는다. 현재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5명까지 합치면 정확하게 744명이다.
“명동성당 앞 거리공연을 시작했을 땐 이렇게까지 이어질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예쁜 인형이라도 사주고 싶어서 거리에 나서게 됐거든요.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하다 보니 잊히지 않은 에피소드도 참 많습니다. 한번은 수술받고 완쾌된 여성이 저희들을 찾아왔어요. 건강해져서 어느새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더라고요.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마치 손자를 본 듯한 기분이었지요.”(안상수)
‘수와진’이 다시 함께 무대에 서기로 결심한 것은 4년 전인 2005년. 1990년대말 안상진씨가 완전히 회복하면서 다시 뭉치자는 말은 서로 여러 번 나눴지만, 막상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월은 훌쩍 지나갔다. 형 상수씨가 솔로활동을 계속하며 사업까지 하는 바람에 듀엣 재결성 여유를 못냈는가 하면, 형이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는 동생이 사업으로 바빠 시간을 못내 타이밍을 또 놓치고 말았던 것. 사업실패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던 두사람은 2008년 음반 ‘수와진- 다섯번째 이야기’ 취입을 계기로 라이브카페 공연을 함께 시작했고, 지난 5월부터 3개월째 주말 이틀 동안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수도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모금공연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안상진씨가 공식으로 활동을 재개하기 이전에도 형 상수씨는 홀로, 때로는 동생과 함께 심장병어린이를 위한 모금운동은 계속해왔다.
‘수와진’의 휴게소 공연은 보통 40분 노래하고 20분 정도 휴식시간을 갖는 식으로 6시간 동안 이어진다. 찬양전도사인 막냇동생 안상범씨를 비롯해 후배들이 공연 중간중간 교체멤버로 나와 모금운동을 함께 펼치기도 한다.
―20대때 했던 거리공연을 재개해보니 느낌이 어떻던가요. 체력적으로 힘들어보이는데.
“한번 해보세요,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지금은 날씨가 조금 시원해져서 다행이에요. 우리 둘이 평일에는 라이브카페에서 새벽까지 몇시간씩 공연하는데, 주말에도 목을 쉴 수가 없으니 가수로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요. 남들은 이 나이에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계속하냐고 하더군요. 돈이나 열심히 벌라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죽어서 싸가지고 가지도 못하는데 돈벌기에만 매달리면 뭐합니까. 아무래도 우리는 거리 팔자인 모양이에요. 하하.”(안상수)
―매주 모금 실적은 얼마나 됩니까.
“한 곳에서 주말 이틀간 평균 150만원 정도 모읍니다. 두곳에서 공연하니까 300만원 정도 되는거죠. 그렇게 2주 정도 모으면 웬만한 병세의 아이 한명을 수술시켜줄 수 있어요.”(안상진)
현재 두사람의 목표는 올해 30명, 내년 50명 등 2011년까지 100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수술을 시켜주는 것. 환자는 휴게소를 매개로 지자체 등 지역사회를 통해 소개받고 있다. 시술은 심장병 전문병원인 부천 세종병원이 맡고 있으며, 모금액 전액 역시 병원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휴게소란 원래 소비공간이지요. 하지만 저희는 이곳을 문화서비스와 봉사, 나눔의 유통공간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어린이들이 기부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방송출연도 좋고, 가요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마음을 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다면 저희는 대만족입니다.”(안상수, 안상진)
수와진은…
쌍둥이 듀엣 ‘수와진’은 1987년 ‘새벽아침’이 수록된 첫 앨범을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직업가수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명동성당 앞 거리 공연을 계속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와진’은 기부문화가 아직 척박하던 한국사회에 신선한 감동을 전해줬다. 두번째 앨범 ‘파초’, 세번째 앨범 ‘바람 부는 거리’가 히트하면서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받았던 1989년 새해 첫날, 동생 안상진씨가 서울 여의동에서 노상강도에게 머리를 맞아 크게 다친 뒤 ‘수와진’의 활동은 사실상 마감됐다.상진씨가 10여년 동안 투병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형 상수씨는 솔로 가수 활동을 계속해나가며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활동을 이어갔다. 듀엣 활동을 접은 지 만18년 만인 2008년 ‘수와진 - 다섯번째 이야기’가 출시됐다. 사고 후 안상진씨가 참여한 첫 앨범이다.
출처 : 문화일보 9월 2일자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