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께스 항구에서 바르셀로나, 시쩨 해변까지… 감성 여행 에세이
피카소의 바다에서 행복 찾기
예술가의 흔적을 돌아보며 진정한 행복을 찾다
피카소가 가난하고 절망 속에 살던 시절, ‘청색시대’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스페인 북부의 항구, 까다께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까다께스에서 청색시대의 푸른색과 다른 새로운 푸른색을 발견했고, 바로셀로나의 빈민가에서 좌절과 고통을 극복했다.
이 책은 피카소의 흔적들을 따라 가며 행복을 찾는 여행 에세이로, 피카소의 여정을 따라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장은 피카소가 친구 페르난데스와 함께 몇 달간 머물렀던 까다께스이다.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어촌, 까다께스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덕분에 스페인의 작가와 화가들이 찾아와 영감을 얻는 장소가 되었다. 피카소 역시 까다께스를 여름 휴가지로 선택해 이곳에서 머물렀다. 야생적이고 광물적인 해안 풍경은 처음으로 입체파 실험을 시도하고 있던 피카소의 마음을 끌었다. 해안 절벽뿐만 아니라 마을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들은 스페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으로, 파리 생활에서 향수에 시달리던 피카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피카소의 입체파는 까다께스의 골목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삐뚤삐뚤한 벽과 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겹쳐 보이고 비켜 보이고 때로는 정면으로 보이는 그 창문들과 긴 벽들의 조합은 어떤 입체파의 그림들보다 더 기가 막힌 조화를 보여 준다. 그림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흰 벽들만 보이는 골목길들과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오는 집들의 조화는 순수한 스페인의 정열을 상징한다. 까다께스의 골목이 아름다운 것은 모든 골목들이 바다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작품 <팬파이프를 부는 청년들>, <달려가는 여인들>, <서커스 하는 사람들>, <공놀이 하는 가족들> 등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특히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이다. 세대가 다르고 예술적 취향이 달랐던 달리와 예술적 동지가 되었던 것도 어쩌면 까다께스라는 공통의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보이는 모든 풍경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연상한다. 호텔의 초록색 물병에서 지중해의 화가 마티스를 떠올리고, 아라넬라 해변의 몽환적인 풍경에서 달리의 <시간의 지속>을 연상하며 피카소가 좋아했던 시인 보들레르를 회상함으로써 청색시대의 고뇌를 연결 짓기도 한다.
두 번째 장은 피카소의 제2의 고향, 바르셀로나다. 피카소가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자랐고 미술공부를 시작하고 첫 전시회도 열었다. 이곳은 피카소의 고향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이를 기념하는 장소들이 많다. 치유델라 공원 옆에 ‘피카소의 길’이 있고, 피카소의 단골집인 ‘일곱 개의 문 레스토랑’이 있으며, 유명한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피카소 미술관에는 그의 청색시대 작품들이 고스란히 소장되어 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를 입체파적으로 재해석한 연작들도 이곳에 있다.
이곳에서 피카소는 늘 출입문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화가, 조각가들과 어울리곤 했다. 이곳은 그 당시 문인과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였고, 이런 만남의 결과로 여러 종의 예술 잡지들이 술집에서 발간되기도 했다.
저자는 <아비뇽의 처녀들>의 무대인 유명한 사창가 거리를 배회하기도 한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옆 까레 델 비스베 골목에서 피카소의 뿌리를 찾아 헤맨 끝에 피카소의 청색을 이해하게 된다. 또 바르셀로나 항구를 거닐며 예술로 승화된 고통의 깊이를 이해한다.
세 번째는 바르셀로나에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항구 도시 시쩨다. 시쩨는 피카소 친구의 별장이 있던 해변 도시로, 피카소는 시쩨를 매우 좋아해 여름이면 이곳에서 화가, 시인들과 함께 술집 주변을 흥청거리기도 하고 휴식을 갖기도 했다.
저자도 이곳에서야 비로소 피카소를 이해하고, 그의 그림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왜 그를 찾아 이곳에 왔는지 알게 된다.
여행의 끝에서 자신의 꿈의 종착지를 찾는 여행. 그렇지 않다면 인생은 그냥 헤매는 인생에 불과했을 것. 그는 드디어 꿈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어떤 것도 진실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저자는 행복을 찾았다. 슬프디 슬픈 행복, 즐거움과 함께 슬픔이 녹아 있는, 불행과 고통과 비극이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행복. 시쩨의 아침바다를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