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열왕 3,5-6ㄱ.7-12; 로마 8,28-30; 마태 13,44-46
찬미 예수님
무더위에 잘 지내셨나요? 더위에 지내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모두 수고가 많으시지만, 학생들 가르치시는 선생님들께서 더욱 존경받으셔야 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특별히 선생님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학교를 한 학기 다니다가 그만두고 신학교에 들어갔는데요, 대학 공부를 마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나중에 신학교 다니려면 아버지가 등록금을 또 내주셔야 하는데, 신자도 아니시고 반대하실 것이 뻔한 아버지께 너무한 일이다 싶어 대학을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듣고 고등학교 친구 세 명이 저를 불러냈습니다. 지금은 다른 백화점으로 바뀐 것 같은데, 1989년에 선화동에 동양 백화점이라고 있었어요. 12층짜리 건물이었는데, 한때 대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백화점 뒤에 ‘시나브로’라는 경양식 집이 있었는데, 돈가스가 1,200원이었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나브로’는 순우리말인데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입니다. 당시로서는 1,200원짜리 돈가스를 사 먹는다는 것은 무척 고급진 일이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제가 신학교에 가면 저와 절교하겠다고 말하면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식사이니 비싼 거 먹자고 그 집에서 만났습니다.
한 친구가 네 글자로 제게 물었습니다. “너 미쳤냐.” 저도 네 글자로 답했습니다. “돈이나 내.” 친구들은 제게, ‘왜 신학교에 가려 하는지 자기들을 설득하라.’고 했습니다. 문득 제게 좋은 비유가 떠 올랐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어느 섬을 발견했어. 그 섬엔 보물이 잔뜩 있었어. 그런데 내가 타고 간 배가 너무 작아서 보물을 실을 수가 없어. 그래서 다시 육지로 나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큰 배를 마련하는 중이야. 다시 가서 보물 다 실으려고.”
이 얘기를 하면서 저는 스스로 감탄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비유를 생각해 낸 거지?’ 그런데 나중에 복음을 읽어보니 오늘 복음 말씀을 섞은 것이었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의 비유입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스스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아직도 그것을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기는지, 보물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십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무척 현명합니다. 남을 설득할 수 있는 언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청한다는 것도 현명하거니와, 자신의 직무를 특권이 아니라 주님의 백성을 위한 봉사직으로 생각하였다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모든 지도자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솔로몬은 개인의 은혜를 청하지 않고 백성의 안녕을 위해 자기 본분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인 분별력을 청했습니다. 이 분별력은 모든 이에게, 특히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더욱 필요한 덕목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있을 때 신학생들에게, 지도자로서 사제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세 가지를 강조했는데요, 첫째가 분별력, 둘째가 책임감, 셋째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즉 역지사지였습니다. 지도자에게 분별력이 없으면 공동체 구성원의 안녕에 위협이 되고 공동체가 분열될 수 있기에 분별력은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분별력을 기르기 위해 기도와 성찰, 진지한 대화와 독서가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분별의 기준은 복음이어야 하기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늘 질문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저 자신이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지 성찰하고 있는데요, 하느님께 분별력의 은혜를 끊임없이 청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보물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백성에게 잘 봉사하기 위한 분별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방 여인들에게 빠져 마음이 주님에게서 돌아서면서 그의 보물은 바뀌게 되고 그는 타락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단 한 가지를 청한다면, 무엇을 청할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것을 앞으로도 항구히 보물로 여길까요?
밭에 숨겨진 보물과 진주의 비유를 묵상하며,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고,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진주를 사야 합니다. 무엇인가에 충실 하려면 다른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충실 하려면,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하고, 게으름을 극복해야 하며, 재미있게 여기는 어떤 일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포기와 대가의 지불없이 위안과 위로가 자동으로 주어지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요?
오늘 파견 성가는 가톨릭성가 61장 “주 예수와 바꿀 수는 없네”인데요, 제가 사제 서품 받고 첫 미사를 드릴 때 입당성가로 골랐던 곡이기도 합니다. 막상 입당하면서 부르려니 울컥해서 미사를 제대로 못 드릴까봐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면서 입당했었는데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이 세상 부귀 영화와 권세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 사랑이여.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작년 12월, 아버지 장례미사 때에도 입당성가로 이 성가를 불러드렸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이 세상 모든 영예와 행복도.
슬픔과 괴로움 밀려와도 영원히 주님만 의지하리.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이 성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 그 보물을 얻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문득, 하느님께 보물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시고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셨습니다. 당신께 가장 귀한, 당신의 모든 것인 아드님을 내 주시면서까지 그 밭을 사셨습니다. 그 밭은 바로 우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얻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가장 귀한 보물이고 값진 진주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귀한 보물이고 값진 진주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될 것입니다.
https://youtu.be/yHM2aWURRB0
성가 "주 예수와 바꿀 수는 없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