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27:1-12
누가 행복자인가?
대개의 사람들은 몸이 건강하며 의식주가 걱정이 없고 부부간에 금술이 좋으면 그것을 보고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잘 되고 사업이 번영하는 일 등을 가리켜 그것이 행복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비단 성도가 아닌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별 다름없는 행복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행복의 일면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것들도 행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를 산상수훈에서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주님이 말하는 행복은 우리의 생각의 행복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 1.진정한 행복자는 불의를 말하지 않는 자입니다
욥은 당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긍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고 본문 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 어떤 혹독한 처지에 이르더라도 불의에 관한 말은 절대로 입 밖에는 내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 준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불의를 말하지 않는 자가 진정 행복한 자입니다.
사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자신의 처지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안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듣든지, 아니면 비난을 듣든지 혹은 건강하든지 아니면 병들었든지, 사업에 성공했든지 아니면 실패했든지, 극단에 이르러 살게 되었든지 아니면 죽게 되었든지, 그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그 입에서 불의한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 행복한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야고보서 3:10절에서 말씀합니다.
진정 어떤 처지에서도 불의를 말하지 않는 자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진정 행복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진실로 불의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힘쓰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악한 말을 하지 맙시다. 더러운 말을 하지 맙시다. 추한 말을 하지 맙시다. 진진실된 말을 하는 우리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2.진정한 행복자는 순전을 버리지 않는 자입니다
다음으로 욥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 나는 단정코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본문 5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최악의 처지에 이르더라도 자기의 순전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 준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의 순전성은 신앙의 생명이요, 자기 남편을 향한 한 아내의 정조와도 같은 것입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불순물이 없는 깨끗한 생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사랑받는 제자였던 폴리갑은 처형자들이 예수만 버리면 살려주겠다고 제의하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주님은 한번도 나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 예수를 요되게 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불길에 휩싸여 죽어 갔습니다. 순전한 믿음을 지키며 순교의 제물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진정 이런 일이야말로 신앙의 순전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정 행복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순전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티없는 깨끗한 믿음을 소유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3.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는 자입니다
욥은 계속하여 <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고 본문 6절에서 고백합니다. 진정 이 말은 욥 자신이 삶의 마지막 날까지 스스로 부끄러울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 준 것입니다.
자신에게 깨끗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부끄러워서는 안됩니다.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요, 그런 사람이 참된 행복자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마다 다 건강을 원하고 성공을 원하고 번영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복관은 좀더 높은 하늘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실 내가 불의를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신앙의 순전을 버리지 않을 수 있으며, 조금도 자기를 책망할 수 없는 데까지 이른다면 그것이 곧 참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정녕 지상의 행복은 자기 하나만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복음적인 행복은 뭇 사람을 평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행복만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성숙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 27:13-23
누가 불행자인가?
어떤 사람이 파산을 당했습니다. 혹은 몹쓸 병이 걸렸다거나 사업에 실패하였습니다. 또한 자식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또는 모함을 당해 곤욕을 치렀다고 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불행한 자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이 불행의 일면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다운 행복관을 지향해야 하듯이 이런 불행관도 복음적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적으로 보면 불행처럼 여겨지는 것들도 참된 행복으로 바꾸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처럼 낭패스러운 인생을 산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 온갖 천대와 수모만 겪다가 결국엔 극형까지 받고서 죽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자신을 죽여 모든 죄인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욥은 진정 누가 불행한 자인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불행한 자입니까?
##### 1.종적없이 사라져 버릴 자입니다
욥은 악인의 종말이 어떤 것인가를 본문 전체에 걸쳐 잘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13절에서 20절까지의 전반부에는 우리가 벌써 알고 있는 통상적인 것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비해 21절에서 23절까지의 후반부에는 상당히 유념해 볼 만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악인은 결국 이 땅에서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1절에서 보면 < 동풍이 그를 날려보내며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가리켜 무어라고 이름지어 부르더라도 이 땅에서 종적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게 될 자는 진정 불행한 자입니다. 물론 사람이란 누구나 죽고 나면 다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여기서 사라지게 된다는 표현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진정 예수님께서 "그 수족을 결박하여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추방 당하고 말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멋대로 살다가 종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고 만다면 그처럼 불행한 자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켐피스는 < 그대가 죽고 난다면 아무도 그대를 기억해 줄 사람이 없다.>고 경고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기억한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 2.하나님께 아낌받지 못한 자입니다
욥은 이어 악인은 <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손에서 피하려 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문 2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악인은 하나님 앞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기 전에 절대로 아낌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진실로 사람끼리도 아낌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커다란 비극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조차 아낌을 받지 못하고 내쳐진다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진정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자녀를 눈동자처럼 아끼고 지키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께로부터 아낌을 받지 못하고 버림 당한다면 그런 존재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이유야 어떻든 하나님께 아낌을 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행한 자도 없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귀한 존재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 3.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자입니다
욥은 또 악인에게 < 사람들이 박장하며 비소하고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고 본문 2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하나님께 버림받게 될 것을 가리킨다면 여기서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될 것을 가리킨 말입니다. 사람들은 가끔씩 어떤 사람을 가리켜 '인재'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사람을 가리켜 '쓰레기'라는 말을 쓰기고 합니다. 그는 정녕 불행한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디모데후서 4:11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는 어떤 자를 가리켜 < 어찌하여 그 일을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 고전 5:2에서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재와 쓰레기를 대조시킨 것입니다.
속언 가운데 '한 나라의 왕이 죽어도 백성이 웃는 경우가 있고 이름 없는 나무꾼이 죽어도 이웃 사람들이 우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됨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말 자는 참으로 불행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실 겉으로 나타난 불행자보다 훨씬 심각한 불행자가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에게서나 사람에게서나 조금도 아낌을 받지 못하고 살다가 마침내는 종적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게 될 자들이 곧 그들입니다. 이렇게보면 세상에서 얼마나 호의호식하느냐 하는 것은 그것이 도리어 불행의 미끼가 되는 것일 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인정받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