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07.05(일)_시편5.1-12_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_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글로벌 비전교회와 여름수양회를 준비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일을 통해 영생을 사는 공동체가 서로 연합하여 주의 교회를 이루게 하옵소서. 이시간 주의 보혈로 나의 영혼을 씻어 주시고 주의 양식을 먹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오늘 시인은 밤새 자신을 짓누르던 대적들의 위협을 안고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가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귀를 기울이사’, ‘심정을 헤아려’,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라고 말하며 다급하고 애가 타는 마음을 진실하게 고백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최고의 재판관은 왕이었기에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올려드립니다. 우리는 삶의 문제가 있을 때,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 누구를 찾습니까? 오늘 시인처럼 왕이신 하나님을 찾으시길 축복합니다. 이러한 시인의 기도는 허공에 흩어져버리는 넋두리, 신세한탄이 아닙니다.
시인은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신음 소리를 아시고 들으십니다. 만물의 통치자이신 왕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사연을 올려드리며 자신의 사정을 다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밤은 길었고, 혼돈과 어둠 속에서 삶의 문제의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아침에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편 5편에서 “아침”이라는 표현은 해가 떠오르며 희망이 새롭게 시작되는 보편적인 우리의 일상 경험을 가리킵니다(시 30:5; 46:5; 130:6). 특히 시편 130:6은 “기다림”과 기도를 연결하는데요, “내가 기도합니다”와 “내가 기다립니다”라는 두 문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다리다”(צפה)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과 신뢰를 나타냅니다. 하박국과 미가 역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믿음의 핵심임을 강조했습니다(합 2:1–4; 미 7:7).
시인이 이렇게 아침을 기다리는 이유는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헤세드’인데요, 이것은 주님의 끝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그 사랑은 영원합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 즉 헤세드의 역사입니다. 창세전 하나님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아들에게 생명을 주셨고,(요5:26, 요일4:9).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여 그에게 복종(아멘)했습니다(요14:31). 아버지는 복종하는 아들을 사랑하여 그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요15:10; 요17:24).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그에게 주신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인데(요1:18), 그것은 ‘인자와 신실함입니다.(요1:14)(서형섭)
히브리어로 ‘헤세드/아멘’인 이 인자와 신실함을, 아들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행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아멘’하시며 우리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끝없는 사랑 그리고 성실함’ 이 두 가지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보여주신 것이며, 또한 여기 모인 우리가 구원받은 자의 증거로써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게 나타내야할 모습입니다.
오늘 아침 시인은 하나님의 그 끝없는 사랑에 힘입어 주의 성전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아가 주의 성전에서 예배합니다. 이 예배는 어떤 아침엔 하다가 또 어떤 아침에는 쉬고 그러는 예배가 아닙니다. 이 예배는 나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합니다.
오늘 3절을 NICOT주석은 히브리어 원어에 맞추어 이렇게 번역합니다.
“아침에 내가 번제를 준비하고 [주의 응답을] 기다리리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빈손으로 나아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번제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 번제는 무엇입니까? 이 시를 쓴 다윗 시대에는 나를 대신한 동물이었고, 2천 년 전에는 나를 대신해 예수께서 번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들의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아침에는 내가 번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는 이 아침 하나님께 예배할 때 나를 살아있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불로 활활 태워 올려 드리는 번제입니다. 옛적 우리의 선조들은 동물을 불로 태워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리고, 2천 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여기 모인 우릴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시며 성령의 불로 자신을 태워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종이 성령 하나님 안에도 동일하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헤세드)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5
“그는 진리(아멘)의 영이라…” 요한복음 14:17
이 아침 이곳에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더이상 동물을 태워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을 통해 아버지께 예배하며 나아갑니다. 제단 위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제단 위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제사이고, 예배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에 충만한 사람만이 성령의 불로 자신을 태워 번제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을까요?
인자와 진리, 사랑과 복종, 헤세드와 아멘이 가득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만이 우리는 성령에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기에 생명이신 예수께서 보여주신 두 기둥 ‘인자와 신실’, ‘끝없는 사랑과 성실함’, ‘헤세드와 아멘’의 모습으로 우리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리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신실하게 기다리십시오. 아침이 밝아 오듯, 빛되신 하나님의 공의가 내 삶의 현장 깊숙이 임할 것입니다. 아침마다 우리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아버지 앞에 올려드릴 때 우리의 막막하고 답답한 일상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주님의 풍성한 사랑과 구원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오만한 자, 거짓말하는 자,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를 미워하시고 멸망시키는 분이십니다. 악은 주님과 함께 머물 수 없습니다. 하나님 곁에서는 어떠한 악도 감히 머물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악인이 잠깐 승리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으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오늘 9절은 주를 배역하는(מָרָה, be rebellious, disobedient) 자들에 대해 말하는데, 그들의 특징은 ‘신실함(ἀλήθεια)’이 없다는 것입니다(창24:27, 사랑(חֶסֶד)과 신실(אֱמֶת=ἀλήθεια)). 또한 심중이 심히 악하며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고 아첨하는 혀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하는 자의 특징은 ‘아멘’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참으로 그러하다’라는 의미인데, 단순히 입술로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의 행위가 포함되는 단어입니다.
신명기 27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연속적으로 열 두번에 걸쳐서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어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열 두 번은 ‘온전히 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에게 느헤미야가 선포한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합니다.(느5:13) 우리가 날마다 짓는 죄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지옥으로 가지 않는 이유는 우리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하심과 그분의 성실하심(신실하심)으로 우리가 아침마다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애3:22-23)(NIDOTTE)
그런데 악에서 떠나지 않은 채 몸만 성전을 오가는 자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와 예물, 기도를 가증히 여기시고 물치리실 것입니다. 열린 무덤처럼 거짓된 입술로 공격하며 우리를 무너뜨리고 생명을 삼키려 할지라도 하나님은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격과 공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은혜를 힘입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의 사랑과 신실하심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사람을 11절에서 시인은 ‘주께 피하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의인은 하나님께 피하고, 주 안에서 즐거워 합니다. 이것은 주를 의지하고 주를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쉬운말,현대인)
이러한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기쁨에 겨워 소리칩니다. 그의 삶에서 기쁨의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좋아서도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둘러싸기 때문에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둘러싸는데, 앞 뒤 좌 우 나의 모든 일상을 감싸며 방패처럼 나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11절에서 ‘보호’로 사용된 히브리어는 사카크(סָכַךְ)입니다. 이것은 두 천사가 언약궤를 덮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출 25:20; 37:9; 왕상 8:7; 대상 28:18; 참조 겔 28:14, 16). 그의 깃털로 ‘덮으셔서’, 그의 날개 아래 피하는 자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시5:11)(UTB) 시편 91편 4절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오늘 시편 5편 12절은 이 날개를 펴는 것을 ‘군사적 비유’로 묘사해서 ‘주께서 방패로 두르신다’라고 표현합니다. 전사로써 통치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미지를 나타낸 것입니다.(UTB)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성소를 향해 엎드리는 자는 이미 가장 안전한 은혜의 보호망 안에 들어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편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성전에 들어가는 것 자체나 보호하심 그 자체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시인은 11절 한절에서 이 기쁨을 세 번이나 언급하며 기쁨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가장 중심에 있게 될 것을 내비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은 그러한 기쁨이 가득한 사람을 복을 받은 의인이라 말합니다. 이 복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결국 이르게 될 복, 영생을 말합니다.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핵심 요소는 도덕적 행위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은 영생을 얻은 사람이고, 삶 가운데 날마다 기쁨이 넘쳐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바른 관계’는 ‘인자(חֵסֵד)와 진실(אֶמֶת)’, 즉, ‘끝없는 사랑과 끝없는 복종’의 두 기둥 사이에 세워집니다.
사랑과 복종으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처럼, 성도님들도 사랑과 복종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시길 축복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지속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끝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끝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며 아멘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 아침, 주의 날개 아래 우리가 모였습니다. 주의 날개 아래 피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의 날개 아래서 주의 보혈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 받고, 은혜의 방패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오직 주의 날개 아래 기쁨이 있습니다. 이번 한주 매일 아침 주의 날개 아래 피하며 아버지의 풍성한 사랑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
나의묵상.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세상이 주는 말들, 세상이 주는 번듯한 삶, 세상이 주는 유혹이 오늘도 내게 속삭인다. 거짓말로 나를 속여 멸망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 온전히 주의 길을 걸으며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서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을 예배하기 원한다. 인자와 신실함으로 예수께서 가신 길을 가길 원한다. 인자와 신실함으로 나를 지키시는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심을 믿고 소망한다. 오늘 하루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주님의 기쁨을 얻는다.
묵상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주일모임을 갖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실 때 오직 주께 영광 올려 드리기 원합니다. 모임을 위한 모임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를 위한 모임이 되게 하옵소서. 성도의 모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참석하지 못한 사람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