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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0일 울주군 언양 지역에 화마가 휩쓸고 지난날 백련사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짜장면 꼽배기를 후딱 해치우고 슬슬 잠올라 카는데 절에 가자 하는 말에 후딱 챙겨입꼬 어디로 갈꼬 ? 가까운데로 검색해서 신흥사로 쓩쓩 달려 엉뚱한 밀양땜으로 가는 바람에 경치 구경 멋찌게 하고 턴 해서 다시 신흥사로 ....
신흥사(新興寺)는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영취산(靈鷲山)에 있다. 통도사의 말사(末寺)이다. 301년에 신본(信本)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 때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이므로 신빙성이 없다. 초창기에는 건물이 110동에 이르는 대찰(大刹)이었다고 한다.
신흥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까지의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초기의 연혁(沿革)을 알 수 없다. 다만 '여지도서(與地圖書)'의 ' 신흥사재군서육십리이천산 (新興寺在郡西六十里梨川山) '이라는 기록을 통해, 양산군 이천산(梨川山)에 신흥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어, 조선 후기에 사세(寺勢)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사천왕도(四天王圖)는 대광전 내부 서측면 벽 중앙 제일 하단에 그려진 것이다. 중방목과 중깃 때문에 3개로 나누어진 벽체에 그려졌는데, 왼쪽에서 첫 번째 칸에는 비파(琵琶)를 들고 있는 동방 지국천왕(東方 持國天王)
두 번째 칸에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北方 多聞天王)과
용과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서방 광목천왕(西方 廣目天王)을 배치하였다.
세존좌도장 世尊坐道場 부처님께서 도량에 앉으시매 청정대광명 淸淨大光明맑고 깨끗한 크 빛을 발하시네 비여천일출 比如千日出마치 천개의 해가 한꺼번에 떠 오른 듯 조요대천계 照耀大千界온 세상을 비추시네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동산을 보시한 후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만약 허락하여 주신다면 나는 장식하고 싶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가서 말씀을 드렸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뜻대로 가서 그림믈 그리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허락을 들은 다음 온갖 채색(彩色)을 모으고, 아울러 화공(畵工)들을 불러서 어느 채색으로 그리는 것이 좋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들은 어디부터 제작하여 어떤 것을 그리고 싶으냐고 다시 물었다. 장자가 나는 잘 알지 못하겠으니 마땅히 부처님께 가서 물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장자여, 문의 양쪽에는 마땅히 집장약차(執杖藥叉)를 그리고, 그 옆의 한 면에 대신통변(大神通變)을 그리며, 또 한 면에는 오취생사(五趣生死)의 수레바퀴를 그리고, 첨하에는 본생사(本生事)를 그리며, 문 옆에는 지만야차(持卍夜叉)를 그리고, 강당에는 늙은 비구가 법요(法要)를 선양하는모습을 그려라.
식당에는 음식을 들고 있는 야차(夜叉)를, 창고 문에는 보배를 가진 야차를, 안수당(安水堂)에는 물병을 가진 용이 묘한 영락(瓔珞)을 붙인 그림을 그리고,
욕실과 화실에는 천사경(天使經)의 법식에 의한 그림과 약간의 지옥변상(地獄變相)을,
첨병당(瞻病堂)에는 여래(如來)가 몸소 병을 간호하는 상(像)을, 대소행처(大小行處)에는 시체의 모습을, 방 안에는 마땅히 흰 뼈와 해골을 그려라 '
위의 내용은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根本說一切有部毘那耶雜事) '라는 경전에 기록된 최초의 불교 그림이자 불교벽화인 기원정사(祇園精舍) 벽화에 과한 내용으로, 우리 사찰에 남아 있거나 그려지는 벽화도 위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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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전 불단(佛壇)에는 목조석가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脇侍)하여 있다.
1657년 대광전을 건립할 때 함께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존(本尊)은 나발(螺髮)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으며, 여기에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다.
후불벽(後佛壁) 뒷면에는 흑색 바탕에 백선묘(白線描)로 그린 관음삼존도(觀音三尊圖)가 그려져 있다.
현재 전국의 사찰 전각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는 모두 10여점 정도인데, 모두 본존불과 상관없이 관음보살을 그렸다는 점이 하나의 특징이다.
대광전 후불 뒷면에 가로 444.5cm 세로 223.7cm의 규모로 그려져 있다.
후불벽 뒷면에 그려져 있는 것으로 수월관음(水月觀音)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어람관음(魚籃觀音)을, 오른쪽에는 백의관음(白衣觀音)을 배치하여 삼존(三尊)을 구성하였다. 이처런 하나의 화면에 관음삼존(觀音三尊)을 표현한것은 희귀한 사례이다.
전체적으로 검은 바탕에 백색 선묘(線描)로 그렸으나, 보살의 머리카락과 정병(淨甁)에 꽂힌 버드나무가지는 녹색으로, 얼굴과 가슴, 손, 발 등은 피부색으로 채색하였다.
백의관음은 인도(印度)가 그 기원이며, 수월관음은 중국(中國)이 기원이다. 특히 어람관음(魚籃觀音)의 도상은 우리나라 불화에서 보기 드문 예로,
중국 당(唐)나라 때 어람관음의 연기설화에서 그 시원(始源)을 찾을 수 있다.
왼쪽, 어람관음 (魚籃觀音) 수월관음(水月觀音)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원형의 두광(頭光)을 갖추고 감아올린 머리에 쪽을 진 모습이다. 겉으로 드러난 복식(服飾)은 아무런 특징이 없이 일반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여 귀갑문(龜甲紋)을그려 넣었고, 듬성듬성 기운 듯한 표현도 눈에 띈다.
그러나 가슴과 소매, 다리 등에 부분적으로 드러난 안쪽의 옷은 화려한당초무늬와 연꽃무늬, 국화무늬가 장식되어 있어 이중적인 복식착용을 보여준다.
이로 볼 때 누추한외면은 어람관음의 설화(說話)에서 보이듯, 생선을 파는 여인의 화신(化身)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속의 가려진 화려함은 관음보살 본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어람관음의 연기설화 당나라 헌종(憲宗) 12년인 817년 때, 섬서지방은 사람들의 성질이 난폭하여 사악(邪惡)한 일만 일삼고 있는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이었다.
어느 날 이 지역 금사탄 위에서 바구니에 생선을 담아 팔고잇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러자 청년들은 서로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싸움을 벌이기에 이르렀는데, 이에 그 여인은 많은 청년들에게 '관음경(觀音經)'을 나누어주며 하룻밤에 다 외우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관음경(觀音經)을 다 외운 청년이 수십 명이 되자 여인은 다시 '금강경(金剛經)'을 나누어주며 하룻밤 사이에 외우라고 했다.
다시 이튿날 금강경을 다 외운 사람이 10명이 되자, 여인은 '법화경(法華經)'을 나누어주며, 사흘 안에 다외우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마씨(馬氏)라는 청년이 홀로 다 외우고 여인과 혼례식을 올렸는데, 그 여인은 혼례식장에서 돌연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 여인의 장례를 치른 뒤 100일이 지난 어느 날, 한 노승(老僧)이 청년에게 찾아와 그 여인은 관음보살(觀音菩薩)의 화현(化現)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청년이 달려가 무덤을 파헤치자 향기가 진동하고 관(棺) 속에는 황금빛 쇄골(鎖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노승(老僧)은 ' 이는 관음보살이 몸을 나타내오 중생을 교화한 성스러운 자취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그 후 이 지방의 사람들은 성질이온순해지고 신심(信心)이 깊어졌다고 한다.
햇살님
국화꽃님
여여월님
수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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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굉장한 곳에 다녀 오셨고 글도 묘해서 조용한 시간에
공부하도록할께요. 감사 감사해요. _()_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저도 잘보았어요....아이들 천진한 음성공양도 좋구요~~
어람관음은 정말 흥미롭네요....처음 듣는 일이라서~~ㅎㅎ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차분히
정리해서 올릴것인데
덤성덤성 자란 풀무데기처럼
엉성하기 그지 없어 보입니다
어람관음도 저도 처음 봤습니다.
저도 알고 간것이 아니라
무작정 출발해서 댕겨온곳이라
설화부분은 대충 오디서 들었을꺼 가튼디
요줌은 사진을 찍는것을 너무통제를하시니
차분히 보여드리기 애럽찌요
관음도는 부처님 계신뒤편 벽화에 올려져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보면 탱화는 뒷편의 벽면에 붙어 있는 관계로
대다수 사람들이 못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 허다 합니다.
문화재라고 탐색 하다 보면 그렇게 구석 구석 훑어 보거든요. ㅎㅎ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이신 어람관음님의 중생제도를
잘 공부하고갑니다. _()_
좋은곳 참배할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사천 왕도 해설도 감사 감사.
운문사 땜 주위로는 크고 작은 많은 사찰들이있더군요.
덤성 덤성 올려주신글 엄청 도움됩니다.
다음주엔 어디로 가실까???
울산에있는 산골짝에 있는 신흥사엘 댕겨왔습니다
오르고 내려가는길이 험해서 어지간한 님들께선
한번으로 족할듯한곳이였습니다
저도 울산에살면서 이런 오지가 있었나 했습니다
천천히 정리해서 올릴께요
그렇게 가시기 어려운곳 ~~
용천님 덕분에 관세음보살님 참배했습니다. _()_
가기쉽고 누구나 알수 있는 사찰 여행은
사람들속에 치여서 멍할때가 가끔 있어
조용한곳으로 찾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눈내리는 날에 은해사 묘봉암에 미끌어지고
넘어지고 물팍에 시퍼렇게 멍들고 올라가니
저만치 아래 뚱뚜구리한놈이 쑈를 하고 올라오니
스님께서 한마디 하시데요 일년치 기도를 오늘 다했구랴
하시며 웃으시더만요 ....
맞어요. 그날 눈이 많이와서 도우넛 까지 찌그러진날~~
이젠 너무 위험하게는 다니시지 마세요.
50대도 나이가 많은걸 느끼죠.
곱배기 먹으니 졸립지요.
그럴때 무리해서 운전하시면 위험 하기도...ㅎ
덕분에 좋은 풍경의 그림 감상 잘 했어요.
듬성 듬성이 이 정도 ??
하긴 옛부터 포님의 능력을 알아는 봤고만유 ~~~
계속 다녀오세요.
함께 할 수 있는 옆지기 도반이 있어 행복하신 포님 !
늘 혼자 다녓는데
요줌들어서 같이 가자 합니다
따라댕기면서 사실불평불만이
엄청 합니다
좋은길나뚜고 험하고 애러운데만
데꼬 댕긴다꼬 잔소리 쫌합니다
산도타야하고 외길도 가야하니
쫌 상그럽습니다
그래도 댕겨오고나선 좋아하니
또 갈텨 물어봅니다
스틱은 두개 챙겨 다닙니다
옆구리가 허전하면 힘들어도
붙어 있고 싶은 마음 아실랑가 물러유 ~~~~ ㅎㅎ
그 옆지기님 힘드시게 해도 좋타카시니 다행입니다.
내같트면 못가 할텐데...
생긴걸 보세요
보통으로는 안되우 꼽배기는 기본으로 하구요
덤으로 탕수육도 대짜로 묵어야 한답니다
그런데 요줌 시험에 잘빠져 듭니다
부처님을 찾아가는 그날은 엄청시리 잠이 쏟아져도
꾸역꾸역 비탈진길을 요리조리 잘피하고 댕겨유
도착을 하면 언제 졸렷냐 하면서 맑아진답니다
참배를 마치고 집에 올쩍시면 또 파리약 먹은듯해도
좋은기운을 담꼬 와서 그런지 월요일도 별루 안피곤해유~
아~~ 그래요.
운전중 잠오는 버릇있어 힘들때있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