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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맛 이야기’]
■ 바질페스토의 형님, ‘호두페스토' 를 아시나요 / 23.02.26.
● 호두의 풍미 높이고, 입맛 돋우는 별미
_ 호두, 올리브 오일, 생크림, 우유에 불린 빵가루 등을 섞어 만든 호두페스토. [Gettyimage]
치매와 관련된 책을 읽던 중 '일주일에 5컵 이상의 견과류를 섭취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염증수치가 낮다'라는 문장을 읽었다. 조그만 알갱이에 들어 있는 마그네슘, 알파 리놀렌산, L아르기닌. 식이섬유 같은 것들이 항산화, 항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체내에 생기는 염증은 여러모로 좋을 게 없지만 치매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처음 알았다.
일주일에 5컵의 견과류라면 무심코 집어 먹어서 채울 수 있는 양은 아니다. 그러면 같은 양의 견과류를 요리해 먹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견과류를 활용한 소스, 음식 등을 소개하려 한다.
약간의 잣과 마늘 그리고 앤초비, 올리브 오일과 치즈, 신선한 바질을 잔뜩 넣고 곱게 갈아 걸쭉한 농도로 완성하는 '바질페스토'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소스다. 파스타 소스로 활용할뿐 아니라 빵에 바르고, 고기나 생선요리에도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바질페스토는 이탈리아 리구리아 지역의 제노바라는 항구 도시에서 유래하여 '제노베제(genovese)'라고도 불린다. 바질페스토를 만들 때 잣은 아주 조금만 들어간다. 올리브 오일과는 질감이 다른 기름기, 날 것 같은 고소함과 은근한 쌉싸래함이 여러 재료와 엉기고 섞이며 맛에 기여한다. 하지만 견과류 섭취를 목적으로 하자니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
_ 쎄쎄종의 아몬드 초콜릿 무스 케리구리
사실 리구리아 지역에는 바질페스토보다 한수 위 원로 대접을 받는 전통 소스가 있다. 바로 '호두페스토(호두소스)'다. 살사 디 노치(salsa di noci) 혹은 살사 알레 노치(salsa alle noci)라고 불린다. 만드는 법은 바질페스토와 비슷하다. 바질 대신 호두를 잔뜩 넣고, 잣과 마늘도 조금씩 넣는다. 마른 빵이나 빵가루를 우유에 불러 축축하게 만들어 페스토 농도를 맞추는 용으로 오일과 함께 사용한다.
올리브 오일은 빠질 수 없지만 앤초비와 치즈는 선택사항이다. 원한다면 생크림 같은 풍성한 맛의 동물성 지방을 곁들여도 좋다. 혹은 허브를 조금 섞어 만들 수도 있다. 비건 메뉴라면 우유 대신 두유를 사용하면 된다. 맛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호두를 끓는 물에 우르르 삶아 얇은 껍질을 제거한다. 쓰고 떫은 맛은 제거되고 달고 고소한 맛이 진해진다. 번거로운 만큼 더 부드럽고 진한 맛이 나는 건 사실이다. 이 페스토는 호두뿐 아니라 아몬드나 캐슈너트를 활용해 폭을 넓힐 수 있다.
_ 머큐리 에스프레소의 아몬드 크림 에스프레소.
알맞게 삶은 파스타와 호두페스토를 약한 불에서 가볍게 버무리며 볶아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요리는 완성이다. 소스의 농도가 되직하면 파스타 삶은 물로 조정한다. 마지막에 검은 통후추를 바로 갈아 듬뿍 뿌리면 맛과 모양새를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다. 미세한 입자를 가진 크림 같은 호두페스토는 '그저 호두맛이겠지'라는 예상을 뒤엎기에 충분한 복합적 맛이 난다.
호두페스토는 빵이나 바삭한 크래커에 꿀이나 잼을 함께 발라 먹거나, 마요네즈나 땅콩버터 대신 샌드위치 스프레드로 사용할 수 있다. 두툼하게 구운 소나 양고기 스테이크, 숙성이 잘 된 치즈와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_ 타르틴의 비건 아몬드 크림 케이크.
호두페스토보다 가볍고 단조로우며 깔끔한 맛이 나는 '비건 크림'은 물에 불린 아몬드나 캐슈너트로 만들 수 있다. 물에 불린 견과류와 식물성 오일, 소금을 넣고 아주 곱게 갈아 만든다. 메이플시럽이나 레몬즙 등을 넣으면 맛은 한층 풍요로워진다. 오일 대신 물을 많이 넣고 곱게 갈아 면포에 거르면 비건 크림이 된다. 액체를 거르고 남은 찌꺼기는 빵이나 과자를 구울 때 반죽 재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식물성 오일과 풍미 좋은 마른 과일 등을 넣고 한 번 더 곱게 갈면 스프레드나 딥으로 만들 수 있다.
● 아몬드 젤라또‧아몬드 크림커피… 아몬드 축제
_ BNHR(벤허)의 아몬드 크림
마침 28일까지 서울 용산구 타르틴베이커리 한남점 등에서 '캘리포니아 아몬드 스낵 위크'라는 재미있는 행사가 진행 중이다. 행사에 참여하는 9개 매장에 가면 아몬드로 만든 별별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제철 과일과 채소를 가지고 이탈리아 스타일 아이스크림인 젤라토를 만들어 선보이는 '젠제로'는 아몬드 페이스트와 우유를 섞어 만든 젤라토를 내놨다. 빈틈없이 조밀한 젤라토의 질감에 고소하고 달콤한 풍미가 잔뜩 스며있는데 버터 캐러멜과 아몬드 조각이 바삭한 '단짠'을 더한다.
성수동 라테 맛집으로 소문난 'BNHR(벤허)'는 두 종류의 아몬드 크림과 생크림을 섞어 만든 진득한 크림이 올라간 커피를 마련했다. '머큐리 에스프레소바'에서는 크림·시럽·토핑으로 가공한 아몬드 삼총사와 쓰디 쓴 에스프레소의 조화를 맛볼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점을 둔 '타르틴 베이커리'는 비건 아몬드 크림 케이크를 만들었다. 파이지 안쪽에 아몬드 밀크, 반건시, 스파이시 애플 잼을 채우고 아몬드 버터로 만든 바삭한 크럼블을 듬뿍 올려 덮었다. 분명 비건 메뉴인데 누가 몰래 동물성 지방을 넣기라도 한 듯 놀랍도록 진하고 풍성한 맛이다.
디저트 숍 '쎄쎄종'은 아몬드로 다채로운 식감과 풍미를 만든 다음 하나의 디저트 안에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아몬드 초콜릿 위에 아몬드 캐러멜로 만든 프랄린을 얹고 공기를 한껏 품은 가벼운 크림인 무스, 부드러운 과자 느낌의 와글와글 크럼블, 파삭파삭 깨지는 맛이 매력적인 크런치로 마무리했다. 이 외에도 르솔레이, 새들러하우스, 루트에브리데이, 도토리가든에서도 기발한 아몬드 메뉴를 만날 수 있다.
단단한 껍질 속에 든 씨앗 혹은 열매인 견과류는 꽉 찬 영양만큼 요리에 활용될 가능성도 무궁무진한 게 사실이다. 수분 없이 마른 상태로 유통되니 보관하기에도 좋은 식재료이다. 비건 식단에서 동물성 지방을 대신할 재료로 주목받지만, 버터나 우유 등과 섞였을 때 증폭될 깊고 진한 맛을 상상하니 절로 군침이 돈다. 어쩌면 일주일에 5컵의 견과류를 무리 없이 섭취할 수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