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공식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세 친구들이 모든 일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가지고 있었던 공식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는 재앙을 주시고 의인에게는 번영을 주신다는 신학입니다. 세 친구들은 이 한 공식에 모든 것을 넣고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한 부분 맞을 수는 있지만 이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욥은 이 세상의 현실을 보라고 합니다. 악한 자들이 오히려 이 세상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재앙을 받지 않고 살다가 죽는 일이 있습니다. 의인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면서 사는 일이 또한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라고 합니다. 즉 욥은 세 친구들에게 하나의 공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편협 된 생각을 버리라고 요청합니다.
불의가 있는 현실
2-12절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볼의 한 현실에 대하여 지적합니다.
1절에 “어찌하여 전능자의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지” 묻습니다. 이 ‘때’는 “심판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때를 정해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죄악을 행합니다. 악한 사람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현실이 존재합니다.
2절에 힘이 있는 자가 가난한 사람을 압제하는 현실을 말합니다. “땅의 경계표”를 옮깁니다. 레위기 19장 14절, 신명기 27장 17절에 이런 행위로 땅을 빼앗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선포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있다고 이런 일을 행합니다. 양떼도 빼앗고 3절에 고아의 나귀, 과부의 소도 빼앗습니다. 4절에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냅니다. 아주 잔인한 학대가 행해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이 금방 이들에게 나타납니까?
5-8절은 압제를 당하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얘기합니다. 5절에 그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의복도 없고(7절) 추워도 가릴 것이 없고 피난처(8절)도 구하기 어렵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자비는 없어졌습니다. 9절에 빚을 갚지 못하여 자녀를 빼앗기고 옷도 빼앗깁니다. 가난한 자들이 착취를 당하는 현실입니다. 땅도 빼앗기고 굶주리고 목마른 삶이 일상사가 됩니다. 이로 인하여 신음하면서 부르짖지만 불의는 그대로 행해지고 약한 사람은 고통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12절에 그렇게 얘기하고 있지요.
“성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런 일에 대하여 너희들의(친구들) 공식으로 설명해보라는 것입니다.
욥이 던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우리가 다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이 땅에서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의 일만이 우리의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길로 인도하시고(롬 8장 28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유익하고 복이 되는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게 되면 그때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우리가 다 이해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어떻게 하나님의 세계를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악행이 존재하는 세상
13-17절은 악행이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때로는 악한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악한 행동을 합니다. 이런 현실이 이 땅에 존재합니다.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13절)의 삶을 이 땅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내용을 보십시오.
14절.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사람, 즉 힘이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밤에는 도둑이 된다.
15절. 간음하는 사람들이 밤에 활동한다. 아무도 보지 못하리라고 하면서. 성적 범죄가 이 세상의 밤을 물들이고 있다. 이들은 밤을 기다린다. 어둠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둠이 죄악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6절.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가 있다. 도둑이다. 이들 역시 밤을 좋아한다. 이들에게는 아침보다 밤이 좋다. 17절에 이들에게 빛이 있는 아침은 죽음의 그늘 같다.
이런 일들은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보면 이런 일들이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욥이 사는 시대만 그러합니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런 일이 없습니까? 죄로 인한 악행을 더욱 증가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그런 일을 행할 때마다 큰 재앙이 내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논리대로 이 세상의 일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 친구들의 논리대로라면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재앙을 받아야 합니다. 이들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이런 일을 계속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번영 신학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공식적으로는 번영 신학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말하는 대화의 내용을 보면 이런 번영 신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생각해도 큰 규모를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는 능력 있고 큰 목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 가운데 있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들이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으로부터 큰 자리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욥의 세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욥이 하고 있는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악인들을 저주하는 욥
18-25절은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를 욥도 갈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욥은 악한 사람들을 저주를 합니다. 다음의 내용을 보십시오.
18-19절. 가뭄과 더위에 의하여 눈이 녹은 물이 곧 마르듯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유가 빨리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20절. 죽었을 때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즉 그의 어머니도 그를 잊고(기억하기 싫은 자식이 되고) 구더기도 달게 먹을 것이다.
21절. 임신하지 못하여 후손이 없을 것이다.
24절. 높아져도 잠깐이요 바로 없어질 것이다.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사람들의 고통의 문제를 더 생각하고, 악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욥 역시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5절에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리 ‘내 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헛되게 만들 자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욥은 자신의 말을 거짓되거나 헛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욥은 지금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는 악인이 잘 될 수도 있다, 번영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형통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악인들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이 잘 될 수도 있고 의인이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공식으로는 악인에게는 언제가 재앙이 있어야 하고 의인에게는 언제나 번영이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그들의 잘못된 편협 된 생각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혜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것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고난 받는 문제를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악인이 바로 멸망하지는 않고 반드시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22-24절은 그런 내용입니다. 악인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 “의가 거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의가 있는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 되면 의가 충만히 거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이 세상에 악인들이 번성하고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는 일이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악인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1편 1절에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록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에는 악인이 번성하는 것 같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걸어야 합니다. 목자의음성교회 이남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