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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구절>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 창세기 32장 28절 (개역개정)
“Then the man said, ‘Your name will no longer be Jacob, but Israel, because you have struggled with God and with humans and have overcome.’”
— Genesis 32:28 (NIV)
<말씀 쉽게 해석하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더 이상 “야곱”이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붙잡는 자”, “속이는 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야곱은 실제로 자신의 힘과 계산으로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씨름한 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이름 변경이 아니라, 야곱의 삶 자체가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과거의 야곱이 아니라 새롭게 빚어질 이스라엘로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말씀의 배경>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뒤 오랫동안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지낸 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극도의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 밤, 얍복강 나루터에서 홀로 남은 야곱은 어떤 사람과 밤새 씨름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 씨름이 단순한 육체적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씨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끝까지 매달렸습니다.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그리고 하나님은 그 씨름의 자리에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야곱은 그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묵상칼럼>
인생에는 얍복강 같은 밤이 있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홀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순간입니다. 두려움과 후회, 상처와 불안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씨름하게 됩니다.
야곱은 평생 자신의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머리로 계산했고, 손으로 붙잡았고, 속임수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얍복강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야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씨름의 밤을 통해 야곱을 새 사람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보다 더 큰 은혜를 가지신 분입니다.
사람은 과거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지만, 하나님은 미래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야곱은 절뚝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뚝거림은 패배의 상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흔적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자기 힘으로 걸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걷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함보다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며 눈물로 기도했던 시간들은 헛되지 않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과 삶을 새롭게 빚어 가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더 이상 과거의 이름으로 살아갈 사람이 아니다.
내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아갈 사람이다.”
<결단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야곱처럼 제 힘과 계산으로 살아가려 했던 모습을 내려놓습니다.
두려움과 염려 속에서도 하나님께 매달렸던 야곱처럼
저도 오늘 주님을 붙들게 하옵소서.
제 과거의 실패와 상처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사실을 믿게 하시고,
사람들이 붙여 준 이름보다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인생의 얍복강 같은 밤을 지날 때에도
도망하지 않게 하시고,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 삶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칼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면 받으리라”
— 요한복음 16장 23절
오스왈드 챔버스는 말합니다.
“당신의 기질이 예수님의 생명에 기꺼이 항복하면 당신은 아버지와 더 이상의 거리를 느끼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과의 거리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기도를 해도 멀게 느껴지고, 말씀을 읽어도 마음이 닫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거리는 하나님께서 멀어지셔서 생긴 것이 아니라, 내 기질과 내 고집, 내 방식이 여전히 중심에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릅니다.
급한 성격, 예민함, 고집, 두려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쉽게 낙심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기질 자체보다,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게 원래 내 성격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옛사람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기질 위에 당신의 생명을 덧입히기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워했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차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는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기질을 가졌는가”보다 “그 기질이 누구에게 항복했는가”입니다. 베드로의 충동적인 성격도, 바울의 강한 열심도, 요한의 예민한 감성도 주님께 붙들리자 복음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기질이 제거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 아래 다스려진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과 기질을 정죄하시기보다, 그것을 주님께 맡기라고 초청하십니다. 내가 나를 붙들고 있을수록 하나님은 멀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나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생명에 순복할수록 아버지는 가까워집니다. 신앙은 억지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움직이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결단의 기도>
주님,
제 안에 있는 고집과 두려움과 인간적인 기질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원래 내 성격”이라는 말 뒤에 숨지 않게 하시고,
제 삶이 예수님의 생명에 기꺼이 항복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와 멀어진 듯 느껴질 때마다
주님 안에서 다시 가까워지는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제 감정과 성품보다 성령님의 다스리심을 더 따르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살아 움직이게 하시고,
기도할 때마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산수정교회 5월 기도제목입니다. 기도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