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들의 출가 (41)
까삘라왓투를 떠나 말라족이 사는 아누삐야의 망고숲에 잠기 머무실 때였다.
아름다운 동산으로 나들이 가듯 코끼리를 타고 성문을 나서는 무리가 있었다.
사꺄족 왕자 아누룻다(Anuruddha). 밧디야 (Bhaddiya). 데와닷따(Devadatta), 아난다(Ananda), 바구(Bhagu), 낌빌라(Kimbila), 우빠난다(Upananda)와 이발사 우빨리(Upali)였다.
그들은 굳은 결심으로 권력과 재산을 버리고 부처님을 뒤쫒고 있었다. 말라족 경계에 다다른 일행은 코끼리를 돌려보내고 몸에 걸친 장신구를 풀어 모두 우빨리에게 주었다.
“우빨리야,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거라. 이것이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머뭇거리는 우빨리를 뒤로하고 아누삐야의 망고숲 가까이 다다랐을 때였다. 숨 가쁘게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우빨리였다.
“왜 고향으로 가지 않았느냐?”
턱에 차는 숨을 고르며 우빨 리가 말하였다.
“왕자님들의 장신구를 가지고 저 혼자 돌아가면 성미급한 사꺄족이 절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분명 제가 나라를 떠나도록 왕자님들을 유인하거나 죽였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많은 보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도 전 편히 살 수 없습니다.”
아난다가 가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늘 순종하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그에게 의지할 곳을 찾아주고 싶었다.
“우빨리야 그럼 말라족 왕에게 너를 보살펴주도록 부탁해보마.”
우빨리는 고개를 저었다.
“귀한 집안에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던 왕자님들도 세상의 영화를 버리고 수행자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저 같은 하인이 뭐가 아쉬워 출가를 망설이겠습니까? 저도 왕자님들을 따라 비구가 되고 싶습니다.”
우빨리는 빈손이었다.
“우리가 준 보석과 비단옷은 어떻게 했느냐?”
“길가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습니다. 누구든 먼저 보는 사람이 가져가겠지요.”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왕자들이 우빨리의 등을 두드렸다.
“좋다, 함께 가자.”
망고숲에 도착한 일행은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간청하였다.
“세존이시여, 저희도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바른 법과 율을 닦도록 허락해주소서.”
반갑게 맞이하는 부처님께 아누룻다가 나서서 말했다.
“세존께서는 저희 사꺄족에게 자존심의 깃발을 꺾으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셨습니다.
사꺄족의 교만과 오만 무례함을 저희부터 뉘우치겠습니다. 이발사 우빨리는 오랫동안 저희 시중을 들어온 벗입니다.
이 친구를 먼저 비구로 만들어주십시오. 이젠 저희가 우빨리를 받들고 존경하며 갖춰야 할 도리를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은 왕자들을 칭찬하고 우빨리를 먼저 출가시켰다. 사꺄 왕자들은 자신들의 출가에 앞서 하인이었던 우빨리의 발아래 차례차례 머리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처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부처님이 새롭게 출가한 우빨리와 왕자들에게 당부하셨다.
“나의 법은 바다와 같다. 바다는 수많은 강물을 거부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며, 바다의 물맛은 언제나 하나이다. 우리 승가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며, 평등한 그들에게는 올바른 법과 율이라는 한맛이 있을 뿐이다. 명심하라. 계를 받은 순서에 따라 예를 다할 뿐 신분과 귀천의 차별은 여기에 없다. 인연에 따라 사대(四大)가 합해져 몸이라 부르지만 이 몸은 무상하고 텅비어 ‘나’라고 고집할만한 것이 없다. 진실하고 성스러운 법과 율을 따르고 절대 교만하지 말라.”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사꺄족 왕자들은 수행자로 다시 태어났다. 가장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은 사람은 밧디야였다.
그는 부처님께서 까삘라를 방문했을 당시 연로한 숫도다나왕을 대신해 국정을 총괄했던 사람이었다.
아누삐야숲에 머물던 어느 날, 외진 곳에서 홀로 선정에 감기던 밧디야가 숲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좋구나 , 아 좋구나.”
부처님이 밧디야를 불러 물으셨다.
“밧디야, 뭐가 그리 좋은가?”
“저는 지난날 겹겹이 둘러쳐진 높은 성벽과 칼과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보호를 받고도 편히 잠들 수 없었습니다. 인적없는 나무아래, 깊은 밤 홀로 있어도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지금의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부처님은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같이 기뻐하셨다.
“그렇다, 밧디야, 나의 법은 실로 행복하단다. 열반은 실로 안온하단다.”
그러나 모두가 빗디야만큼 바르게 가르침을 이해하고 열반의 기쁨을 누린 것은 아니였다.
더구나 유독 곱게 자란 마하나마의 동생 아누룻다는 게으르고 나태하기까지 했다.
부유한 그의 부모님은 한번도 아누룻다에게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없을 만큼 그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그런 아누룻다에게 숲 속 생활은 불결하고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모든 일에 태만하고 법문을 듣는 자리에서 졸기까지 하는 아누룻다를 부처님은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호되게 꾸짖으셨다.
그 후 자신의 게으름을 자책한 아누풋다는 누구보다 열심히 정진하였다.
지나친 정진을 살가라며 부처님이 만류하였지만 아누룻다는 잠을 자지 않고 강행했다.
결국 극심한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아누룻다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천인의 눈을 얻고, 열반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어느날, 떨어진 가사를 손질하던 아누룻다가 벗들에게 외쳤다.
“공덕을 쌓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어느 분이 저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주시겠습니까?”
말없이 다가와 그 바늘을 받아든 분이 계셨다. 부처님이었다.
사꺄족 왕자들과 함께 출가한 이발사 우빨리는 매우 진중한 사람이었다.
우빨리는 모든 비구들의 모범이 될 만큼 계율을 칼날처럼 지켰다.
거기에 깊은 사려까지 갖춘 그는 계율로 인한 논란이나 마찰이 생겼을 때 계율을 제정하신 부처님의 뜻을 면밀히 살펴 현명하게 판단해주곤 하였다. 그런 우빨리를 부처님은 승가의 규율을 제일 잘 알고, 제일 잘 지키는 비구라며 칭찬하셨다.
수많은 사꺄족 왕자들이 출가할 때 홀로 남았던 마하나마는 그 후 사꺄족의 왕이 되어 까삘라를 방문하는 비구들에게 공양을 끊지 않았다.
특히 병든 비구들은 언제든 찾아와 약재를 가져가도록 허용할 만큼 승가를 극진히 공경하고 봉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