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혼자 있기 싫어
구 활
내 친구 K는 점심 먹기 한두 시간 전에 “밥이나 같이 먹자.”는 연락이 오면 “선약이 있다.”며 거절한다. 점심 약속은 적어도 하루 이틀 전에 해야지 한두 시간 전의 긴급 초청은 ‘백수건달이라고 얕보는 처사’라는 게 친구의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그건 분명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전화 한 통 없이 무료하게 지내 온 지난 며칠간의 외로웠던 일상에 대한 짜증이 “나도 약속 있어.”란 말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조선조 영조 때 홍애洪厓 이기원이란 선비도 비슷한 처지였던 모양이다. 그는 이런 시를 지었다. “집 근처 시원한 나무그늘이 쏟아져 있어도/ 찾는 이 없어 방석을 높이 매달아 두었네./ 늙고 보니 문밖 나설 일 없어 한가롭네./ 닭들도 심심한지 개를 향해 덤벼들고/ 몰래 기어오는 뱀을 향해 참새가 짹짹거리네./ 이웃 꼬마 녀석도 심심한지/ 찔레꽃 따기 하자며 찾아오네.” 한가한 여름 대낮을 묘사한 시 한 편을 읽어보니 시원한 오이냉국 한 그릇을 마신 듯하다. 이 시를 읽고 또 읽어보면 느티나무 바람그늘 아래서 한일閑日을 즐기는 듯 보이지만 실은 외로움을 하소연하는 촌로의 고독이 사무친다.
‘고독을 좋아한다.’는 말은 가짜다. ‘혼자서 즐긴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자신이 고상하게 보이기 위한 아부 발언에 불과하다. 진짜로 혼자서 즐기는 이는 독락獨樂이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혼자 즐기는 것을 남이 알까 두렵기 때문이다.
조선조 중종 때 사람 회재晦齋 이언적은 나이 마흔 하나에 순탄했던 벼슬살이를 타의에 의해 접고 낙향한다. 경주 안강 자옥산 밑에 독락당이란 집을 짓고 은거에 들어간다. 그는 이 집을 지을 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집이 아니라 안분자족한 삶을 살기 위해 호화롭지 않게 지었다. 화려한 팔작지붕 대신 수수한 맞배지붕을 얹고 집의 높이도 낮출 수 있는 한도까지 낮췄다. ‘감춤이 드러냄보다 상위 개념’이란 걸 실천한 건축물인 셈이다.
회재는 독락이란 말 그대로 혼자서 즐기기로 작정했지만 귀양살이와 다름없는 낙향의 긴 세월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그는 독락당 옆 별채인 계정溪亭을 산중 암자란 느낌이 들도록 양진암養眞庵이란 현판을 달았다. 회재는 집 뒤에 있는 정혜사의 스님이 마음대로 이곳을 드나들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든 것이다. 억불숭유 시대의 승려는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격의 없이 학문을 토론할만한 상대여서 회재는 정자를 암자로 만들어 스님을 끌어들인 것이다.
독락이란 외로움의 소산이다. 슬플 때 통곡을 하면 슬픔이 잦아들고 외로울 때 “나는 외롭다”고 소리치면 고독이 물러나는 법이다. 회재는 별채를 암자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동쪽 담 옆으로 흘러가는 자계천의 물소리를 귀로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물소리를 눈으로 보기 위해 담장을 헐고 살창을 달았다. ‘가만히 앉아 난초 향기를 듣는다’는 정좌난문향靜坐蘭聞香이란 옛말이 있듯이 소리를 눈으로 보는 관음觀音의 경지로 올라선 것이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계류수가 흘러가는 소리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친구로 삼았을까. 회재가 사랑한 독락의 세계는 바로 자연을 예술로 승화시킨 풍류의 현장인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미국 매사추세츠 콩코드에서 2마일 떨어진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혼자 살았다. 하버드 출신인 소로는 홀로 있기를 좋아하여 월든 호수 옆에 살면서 일상을 일기로 적었다. 일기는 ‘월든’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어 자연주의 문학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나는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홀로 있는 것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고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의 거리로 측정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은 혼자다. 하나님 역시 홀로 존재한다. 모든 위대한 것들은 혼자다. 내가 외롭지 않은 것은 새집으로 이사 온 거미가 외롭지 않은 것과 같다.”
소로는 “외롭지 않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그의 내면에는 고독의 그림자가 밤하늘의 별 부스러기처럼 곳곳에 달라붙어 있었다.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교를 좋아한다. 나는 타고난 은둔자가 아니다. 볼일 보러 술집에 가는 경우 제일 끈질긴 손님보다 더 오래 눌러 앉아 있을 때도 있다.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하여, 다른 하나는 우정을 위하여, 나머지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
소로는 ‘혼자서 즐기기를 좋아한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월든’이란 강의 모습이 변하기도 전에 보따리를 챙겨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로 돌아오고 만다. 진실로 고독과 벗하며 살기를 즐겼다면 2년 2개월이 아닌 22년쯤 그곳에 머물렀어야 옳았다. 그도 외로움이 지겨웠던 모양이다. 동양 삼국의 최고 선비인 공자는 ‘벗이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고, 맹자도 ‘대중과 함께 즐기는 낙’을 최고로 쳤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인 신흠은 세 가지 즐거움을 이렇게 말했다. “문을 닫고 맘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맘 맞는 친구를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 맘 맞는 산천 경계를 찾아가는 것.” 나는 선비의 말씀에 동의한다. 그 중에서도 들메끈 졸라매고 문밖 나서는 것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첫댓글 문을 닫고 이가을 책을 가까이 하고 싶네요, 아~문을 활짝 열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싶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