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꼭 잡아요
유 로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은 모습을 보면 마음에 파도가 인다. 반갑게 악수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반갑고, 무슨 결의를 다짐하듯 손을 굳게 잡은 모습을 볼 때는 힘찬 응원을 보내고, 행사장에서 손에 손을 잡고 율동을 하면 어깨춤으로 흥을 돋운다. 그런가 하면 낙심하거나 아픈 사람에게 누군가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면 위로의 마음을 보탠다.
주일 아침이면 으레 교회로 향한다. 성가대 연습실로 들어서는데 벌써 동그라미 친구들이 와서 찬송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흘러나오는 성가에 흥얼거리며 악보를 들었는데 눈길이 앞에 앉은 수희와 슬기의 손으로 향했다. 서로 깍지 낀 손을 흔들며 힘차게
찬송을 부르는 모습이 어여삐 보였다. 언니 수희는 심한 장애로 성가대에 서지 못하지만 슬기는 성가대원이다. 슬기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수희가 있다. 피를 나눈 자매도 아니요. 친척도 아닌데, 동생 슬기가 손만 잡아줘도 수희는 안정을 찾는다. 초점 없는 얼굴에 혼자 중얼거리는 마흔다섯 살 수희는 두세 살 아이의 지능을 가졌고, 슬기는 스물두 살 처녀로 소통이 되지만 지적장애가 있다. 예배드리는 도중에도 수희의 손을 잡고 우당탕탕 화장실로 데려가는 모습이며, 언니 언니 하며 친절하게 식판에 음식을 담아주며 아기 다루듯 하는 슬기를 보면 참 기특하다. 몽땅한 동생 슬기가 꺽다리 수희를 잡아끌기라도 하면 겅중겅중 끌려가는 모습이 이제는 조화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 두 사람은 동그라미라는 지적장애인들을 보호하는 기관에서 산다. 슬기는 대체로 양호한 편으로 사랑이 많은 아인데 가끔 이해
못할 행동을 한다. 조금만 심기가 불편해도 팩 돌아서서 자리를 떠 버린다. 그렇게 엄마처럼 수희의 손을 꼭 잡아주던 어느 날, 팽하고 돌아서더니 한동안 그 애를 볼 수 없었다. 다른 친구의 손에 이끌려 다니던 수희는 웃음이 사라지고 중얼거림도 심해졌다.
우리 집에서 가까이 있는 동그라미 가족들은 버스를 탈 때나 시장에서도 자주 마주친다.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기 때문에 모여 다닐 때가 많다. 육십 대 여성의 영희 씨는 그들이 부르는 이모로 통하는데, 함께 시장에 갔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잠시 수희의 손을 놓기라도 하면 길을 잃어 한바탕 비상이 걸린다. 우리는 그들의 행선지를 찾아보기도 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도하며 안부를 기다린다.
몇 년째, 주일마다 혹은 행사가 있을 때도 함께 있다 보니 그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언제부턴지 몇몇 아이들에게 관심이 갔다.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 번들번들한 머리에서는 비듬이 하얗게 떨어지고, 몸에서는 냄새도 난다. 그런 그들에게.
"다비야, 머리 자주 감고 교회에 오면 더 예쁘겠어."
"영희 씨, 참 잘했어요."
"슬기야 오늘 최고로 멋졌어!"
엄지 척하는 권사님의 말씀에 이제는 옷매무새도 깔끔해지고 긴머리를 자른 헤어스타일까지 많은 변화가 왔다. 올 보름 명절에는 교회에서 윷 마당이 펼쳐졌다. 제비뽑기로 몇 개의 조를 짜서 윷놀이를 했는데, 나는 수희와 같은 조가 되었다. 낯가림이 심한 수희가 손을 잡아끄는 내 곁으로 가까이 왔다. 규칙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던져도 파이팅! 하며 기를 모아주면 이상하리만치 잘 던졌다. 무덤덤한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제법 흥미로워했다. 주최측에서 만든 부전승으로 우리가 상을 타게 되었는데 상품으로는 3단짜리 곽티슈였다.
"수희 덕분에 우리가 상을 탔네 잘했어요. 이것도 선물!"
양손에 상품을 든 수희는 어리둥절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관심 가져 주고, 챙겨 주고, 칭찬해 주었더니 동그라미 가족들이 많이 달라졌다. 서로 챙기고 이해하는 마음이 많아졌다. 씻기도 잘
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하더니 주일을 기다린다고 한다. 이제 원장도 교회에 나온다. "우리 아빠 왔어요, 우리 아빠예요." 원장 곁에서 좋아하는 아이들이 인상적이다. 한동안 삐쳐있던 슬기도 돌아 와 다시 수희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깍지 낀 손을 흔들며 성가연습을 하고 언니 수희를 잘 챙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진정한 실천이지 싶다. 성가 연습을 해도 박자나 음정이 잘 맞지 않지만, 함께 한다는 것에 기쁨이 있다.
오늘도 남편은 교회 봉고차로 노인이며 동그라미 식구들을 교회로 실어 나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르르 연습실로 들어가는 아 이들 노인의 지팡이가 되어 손을 꼭 잡고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늙수그레한 남편의 뒷모습이 실루엣처럼 다가온다.
우리 주변에서 장애인들이나 노약자나 독거노인을 쉽게 만나게 되는데, 바로 아랫집에 구십이 넘은 독거노인이 살고 있다. 자식이있지만 없는 듯 사는 노인이다. 아직은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지병인 심장병에 치매까지 오다 보니 돌보미가 필요하다. 꼬장꼬장한 노인은 자식이 오라 해도 안 가고, 요양원에도 가지 않고 "나는 그냥 집에서 죽을 거니께." 라며 버티고 있다. 언제부턴지 이장의 손에서 바통을 이어받듯 서로 서로가 들여다보면서 돌보미가 된다.
우리 부부를 대할 때마다 "작은아들이 가니 큰아들이 온 거여. 내가 노년에 복이 많다니께."라는 말을 하지만 그저 우리의 가족이려니 대한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때론 연장을 들고 달려가서 뚝딱뚝딱 뭔가를 고쳐 주고, 텃밭에 약을 쳐주며 일손을 돕는다. 어느 날새벽 갑작스러운 호출이 있어 달려갔다. 119를 부르지 말라고 손사래 치는 노인이 또 체하여 헐떡이고 있었다. 구토로 어질러진 방을치우고 약을 먹여 가라앉히는 응급처치를 했다. 자리에 누운 노인을 보고 돌아오는 어둑한 길에 우리는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휴 마음을 놓았다.
육십 후반을 달리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몇 년 전부터 불어닥친 재난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남
편은 인천으로 장거리 출퇴근을 한다. 말을 많이 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날에는 목 수술을 했던 남편의 성대에 무리가 생겨 쉰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그곳에 가면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 한다. 서로 손을 잡는다는 것은 가까운 사람과의 친근한 표현이며 배려이기도 하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점에서 의지가 될뿐더러 든든하기까지 하다.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은 일로 고난을 당하거나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누군가 위로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을 보면 감동이 된다.
아침이면 상큼한 내음과 함께 반겨주는 자연이 있고, 기다렸다는듯 꼬리치는 멍멍이와 냥이들이 웃음을 준다. 내가 심고 가꾼 꽃과
나무들이 푸른 잎을 피우고 꽃망울을 터뜨리며 내게 손을 내밀면 마음이 환해진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입에서 맴도는 찬송가에 힘이 나고, 깍지 낀 손을 흔들며 힘차게 찬양하는 이들에게서 새 희망을 본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돌아온 남편의 목소리가 변해 와우와우 말하면 울컥 목이 메지만, 오늘도 우리 부부는 침대에 누워 손을 꼭 잡은 채 단잠을 청한다.
"내 손 꼭 잡아요."
첫댓글 2024년 학산문학 여름호
아침이면 상큼한 내음과 함께 반겨주는 자연이 있고, 기다렸다는듯 꼬리치는 멍멍이와 냥이들이 웃음을 준다. 내가 심고 가꾼 꽃과
나무들이 푸른 잎을 피우고 꽃망울을 터뜨리며 내게 손을 내밀면 마음이 환해진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입에서 맴도는 찬송가에 힘이 나고, 깍지 낀 손을 흔들며 힘차게 찬양하는 이들에게서 새 희망을 본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돌아온 남편의 목소리가 변해 와우와우 말하면 울컥 목이 메지만, 오늘도 우리 부부는 침대에 누워 손을 꼭 잡은 채 단잠을 청한다.
"내 손 꼭 잡아요." ...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다는 것....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진심이 없이는요.
이 세상에 소외된 이들이 없기를. 모두가 함께 피는 꽃이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