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9~10.16] 박수용展 - 모리스갤러리, 대전 미술전시회
전시명 : 박수용展
전시기간 : 2014/10/09~10/16
전시장소 : 모리스갤러리
관람시간 :
관 람 료
문 의 처 : 042-867-7009
● 고고한 정신과 품격을 향한 박수용의 조형의지
황선형(모리스갤러리, 아트허브 대표)
박수용은 작품을 구현함에 있어 완전무결함을 지향(志向)하는 작가다. 그의 투철한 작가의식은 추호의 티끌과 빈틈도 용납하지 않는다. 극도로 세련된 간결한 묘사와 과감한 생략과 무한한 확장, 부드러움과 투박함 같은 박수용 고유의 조형어법이 만들어내는 완성도 높은 작품들은 그가 얼마나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근자(近者)에 대다수 많은 작가들의 작품 제작방식의 경향(傾向)은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작업방식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수 많은 전시와 지나칠 정도로 빈번하게 열리는 아트페어와 같은 각종 행사의 출품을 위한 영혼 없는 작품들을 대량 생산해 내는 처지에 놓여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품은 허술하기 그지없고 창작에 대한 고민과 열정은 찾아보기 힘들뿐만 아니라,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복제(複製)와 반복을 거듭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런 정황(情況)에 비추어 볼 때 박수용의 결벽(潔癖)스러울 정도로 철저한 작가 정신이 만들어내는 무결점(無缺點)의 작품들은 더욱더 영롱한 광채(光彩)를 발(發)하고 있는 것이다.
박수용이 그간 추구해온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한국의 전통적인 산수화(山水畫)와 문인화(文人畫)에서 보여지는 고고한 정신과 품격, 자연과의 교감을 조형 작업으로 표현’ 했다고 정의 할 수 있다.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대지, 사람, 동물, 나무, 연못, 꽃, 물, 새, 나비와 같은 소재들은 자연의 위용(偉容)을 묘사한 산수화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표현한 한국의 전통적인 산수인물화(山水人物畵)에서 다루던 소재들과 유사한 구성으로, 박수용의 작품을 대할 때면 고사관월도(高士觀月圖)와 김홍도(金弘道)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와 같은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곤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많은 화가들과 사대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그려졌던 고사관월도는 인간이 달로 상징되는 자연을 ‘눈길’ 이라는 시감각(視感觸) 기관을 통해 관조(觀照)하는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이는 사람과 자연이 서로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고, ‘말 위에서 듣는 꾀꼬리 소리’ 라는 뜻의 김홍도의 마상청앵도(가인은 꽃 아래에서 천 가지 피리 소리를 듣고 / 운사는 술독 앞에 한 쌍의 귤을 보누나 / 언덕 위 버들가지를 어지러이 오가는 금북은 / 안개와 비를 엮어 봄의 강을 짠다) 또한 이인문(李寅文)의 화제(畫題)처럼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멋스럽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들 작품들은 박수용이 20년 넘게 추구해온 고고(高古)한 정신과 자연과의 교감을 표현한 작품의 원형(原形)이라 할 수 있다.
박수용은 돌, 흙, 브론즈, 나무, 쇠, 스테인레스와 같은 다양한 재료들을 잘 다루는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까라라(Carrara) 유학파답게 대리석, 화강석, 자연석, 오석과 같은 다양한 형질(形質)의 돌을 다루는 능숙함은 더욱 뛰어나다. 그간 이런 다양한 재료와 돌을 이용하여 발표한 작품의 시리즈들을 살펴보면 1) 고향인 충북 옥천군 청산면의 따뜻하고 정감 어린 이미지를 부드러운 선과 입체감으로 자연과 상생하는 인간의 삶을 소박하게 돌에 담아낸 ‘청산송 시리즈’ 2) 생명 잉태의 근원인 대지(大地)를 심도 있게 표현한 ‘테라(Terra) 시리즈’ 3) 꽃봉오리나 인체를 기반으로 나비를 결합하여 생명의 순환을 표현한 ‘호접몽(胡蝶夢) 시리즈’ 4) 위트와 유머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부조 시리즈’ 5) 전통 산수화를 현대적 감각의 입체 조형으로 재해석한 ‘산수 시리즈’ 6) 나무의 재료적 특성과 평면과 입체의 공존(共存)을 모색한 ‘목판각 시리즈’와 같은 다양한 작품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시리즈들은 다양한 재료의 질료적(質料的) 특성과 부합(符合)되는 실험을 통해 조각의 태생적 한계인 표현 방식의 극복과 함께 박수용이라는 작가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번 모리스갤러리 전시에서는 돌과 브론즈를 결합시켜 표현한 ‘산수 시리즈’와 투박하고 토속적인 서정성으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낸 ‘청산송 시리즈’가 한층 심화(深化)된 모습으로 선보인다.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나르키소스(Narcissos) 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사슴, 대지 위에 고매(高邁)하게 피어난 매화(梅花)와 고양이의 농염(濃艶)한 자태, 우물가에 앉아 상념(想念)에 빠진 듯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여인과 같은 작품들에서는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구상계열 조각가들이 인체 위주로 작업의 주제를 삼았던 것에 반해, 박수용의 작업은 자연의 이치와 교감을 주제로 생명 예찬과 순환을 기저(基底)로 삼아 자연의 순리(順理)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서사구조(敍事構造)를 취하고 있다. 또한 박수용은 과감한 생략과 무한한 확장과 같은 회화적 표현방식의 특징들을 입체 조형에 적극적으로 수용(受容)하여 구사함으로써 여백의 미를 통한 사유(思惟)의 폭을 확장 시킴은 물론 여운(餘韻)을 남김으로써 작품에 대한 잔상(殘像)이 오래 가도록 유도(誘導)한다. 바로 이런 장치들은 박수용 작품의 큰 특징 중 하나이며 박수용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構築)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한국 조각은 김복진(金復鎭)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2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삼는다면 이제 겨우 9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역사와 다른 장르에 비해 작품 활동하는 작가의 수가 현저히 적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조각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지극히 부족한 상태이다. 게다가 1984년부터 시행된 미술장식제도는 기대효과와는 반대로 미술계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부작용을 야기시켰다. 조각계로 한정(限定)해서 미술장식제도로 인한 문제점을 간단하게나마 살펴보면 1) 작가들이 공공미술 선정을 위해 각종 이해관계에 휩싸여 작가적 본분(本分)을 상실하고 2) 소위 작품보다 돈이 되는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작가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들을 생산해 내지 못하고 3) 설치된 작품이 주변 환경과의 부조화(不調和)로 인해 환경 공해를 유발(誘發)시키고 4) 결국 이런 설치 작품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조각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이 이런 상태이다 보니 한국 조각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최대 위기에 직면(直面)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커다란 동요 없이 묵묵히 작업에만 전념하는 박수용과 같은 의식 있는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원숙기에 접어든 중견작가로서 조각계를 위해서나 작가 개인을 위해서나 박수용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은 무겁고 길은 험난하다. 앞으로 박수용의 행보가 더욱더 궁금해지고 기대된다. 계속 지켜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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